데일리 히어로 013화
“……!”
태진이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 곧 시의원 선거일인데, 시기도 아주 좋지 않나?”
“…….”
태진이는 완전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건 그렇고 태진이 아버지가 시의원이었어?
어쩐지 학교에서 무서운 거 없이 설치고 다니더라니.
태진이가 아무리 나대더라도 더 주먹 센 녀석들이 그냥 무시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제대로 박치기 한번 해보고 싶나? 미리 말해두지만, 나 게슈타포다. 다른 선생들이랑 달라. 네놈 그 잘난 시의원 아버지가 압박을 넣으려 한다면 교직원 자리 던져 버릴 각오로 부딪친다.”
게슈타포의 선전포고에 태진이는 완전히 기가 눌렸다.
“그렇게 해? 대답해, 장태진!”
“……아니요.”
“그럼 어떻게 할까? 너희는 맞았다고 주장하지만 다친 곳은 아무 데도 없으니, 지웅이와의 문제는 접어두고 괜히 너한테 얻어맞은 학생 두 명의 일을 정리해야겠지?”
“네.”
“확실히 사과하고, 법대로 변상하고 교칙대로 벌을 받아라. 그러면 공론화시키지 않겠다. 알아들었나?”
“……네.”
“태진이랑 상호, 상진이는 나가봐.”
태진이 패거리가 체육실에서 나갔다.
이제 이곳엔 게슈타포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유지웅.”
“네.”
“앞으로도 용기 잃지 말고 불의에 맞서라. 오늘처럼 네가 너를 구원해라. 그럼 주변에서도 널 도와줄 거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가보도록.”
난 게슈타포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태진이 패거리가 가지 않고 서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내가 물으니 태진이가 콧잔등을 씰룩이며 따졌다.
“너 이 새끼야, 분명히 야구방망이로 죽으라고 날 두들겼잖아.”
“근데? 한 번 더 해줘?”
태진이가 내게 시비를 거는 사이 상호와 상진이는 핸드폰으로 어디엔가 쉴 새 없이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뭘 꾸미는 건지 알 만하다.
“그래, 한 번 더 해보자. 따라와.”
태진이가 뒤돌아서 상호, 상진이와 어딘가로 향했다.
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 * *
태진이 패거리가 날 인도해 간 곳은 학교 근처 뒷산이었다.
그런데 뒷산 공터에는 이미 서른 명가량의 남학생이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1, 2학년 학생들인 것 같았다.
태진이가 녀석들에게 다가가서 날 보고 돌아섰다.
“뭐 하자는 거냐?”
내가 물었다.
“오늘 여기서 아주 반 죽여놓으려고.”
“쪽수로 밀어붙이겠다?”
“저 새끼, 긴장해서 후달리는데 안 그런 척하는 거 봐라.”
태진이의 말에 상호와 상진이가 킥킥대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지렸지? 빤스 갈아입고 와~”
“놀래서 엄마 빤스 잘못 입고 오지 말고~”
그에 서른 명의 남학생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여기서 한번 붙자고?”
“그래, 새끼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 인간들에겐 격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줘야겠다.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가장 기둥이 굵은 나무로 다가갔다.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주먹을 말아 쥐었다. 기술을 시전하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시동어를 외쳤다.
“낭아권!”
그러자.
쐐애애애애애액!
강력하게 날아간 주먹이 나무 기둥을 후려쳤다.
쾅!
이번에는 전력을 다했다.
태진이를 상대할 때처럼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쩌적! 쩌저적!
나무 기둥의 타격점을 중심으로 굵직굵직한 금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내 나무 기둥엔 커다란 균열이 일어났다. 힘을 잃은 나무 기둥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울어졌다.
끄으으으으으으!
나무 기둥이 사람의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피, 피해!”
멍청히 내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던 학생들이 요란을 떨며 발을 바삐 놀렸다.
끄으으으으으! 콰앙!
부러진 나무는 흙바닥에 틀어박히며 매캐한 먼지를 일으켰다.
난 당장 옆에 있던 바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한 번 더 낭아권을 시전했다.
“낭아권!”
퍽!
이번에 내 주먹이 때린 건 올라선 그 바위였다.
속으로 과연 이걸 깨부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작정하고 휘두르는 낭아권의 파괴력은.
퍼서석!
바위를 산산조각 낼 정도로 엄청났다.
조금 전까지 바위가 있던 자리엔 큼직한 돌덩이들만 굴러다녔다.
그에 산에 있던 모든 학생이 눈이 튀어나오도록 크게 뜨고서 날 바라봤다.
“봤지? 잘 들어. 여기 있는 새끼 중 그 누구라도 한 번만 더 나한테 개기면! 그때 부러지는 건 나무가 아니라 니네들 허리다.”
꿀꺽!
내 협박에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또 하나. 오늘 이 자리에서 본 거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마라. 아가리 닥치라고. 만약에 입 잘못 놀렸다가 걸리면 터지는 건 바위가 아니라 니네들 대가리가 될 거야.”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번만큼은 태진이 패거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상호와 상진이는 이미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태진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녀석의 눈은 부러진 나무 기둥과 아작 난 바위를 바쁘게 오갔다.
“장태진.”
“……어?”
태진이가 얼이 빠져 대답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졸업이니까, 서로 모르는 척하고 살자.”
“그, 그래. 알았다.”
얼빠진 학생들을 뒤로하고 산에서 내려왔다.
이것으로 태진이와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된 것이겠지.
“잘했다.”
어느새 내 어깨에 올라탄 카시아스가 말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놈이었어.”
“앞으로 네가 힘을 얻게 되면 더 지긋지긋한 놈들도 상대해야 할 텐데, 뭘 이 정도 가지고 죽는 소리야.”
“그건 또 뭔 말이야?”
“네가 변하면 주변 상황이 전부 변한다. 네가 큰 힘을 얻게 되면 그만큼 큰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는 법이야. 이건 우주의 법칙 같은 거지. 하지만 그런 큰 사건을 이겨 나감으로써 너는 더욱 값진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거다.”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변하게 된 시점은 힘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그 이후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전보다 굵직굵직한 것들로 바뀌었다.
어찌 되었든 난 그 사건을 모두 해결했다.
덤으로 이번에 218링크까지 얻었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2/2
영매 : 2
아티팩트 소켓 0/1
보유 링크 : 219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1링크가 더해져서 총 보유 링크는 219!
저 화려한 숫자를 보라.
이렇게 링크가 많은데 그냥 좋아만 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소울 커넥트!”
난 당장 소울 스토어와 접속을 시도했다.
주변의 광경이 허물어졌다.
어둠이 사위를 지배했고, 8개의 영혼이 보였다.
그중 두 개는 5링크짜리 파펠과 라모나고, 한 개는 10링크짜리 아르마였다.
즉 나머지 5개가 새로 나타난 영혼이었다.
5개의 영혼은 모두 빛의 세기가 미세하게 달랐다.
그 말은 영혼들의 등급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어서 오세요, 지웅 님. 일분일초, 지웅 님이 다시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어찌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니까요.”
갑자기 나타난 라헬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오호라~ 내가 가진 돈이 많아지니까 행동도 달라지는구나.
“브리핑부터 해보지?”
난 최대한 거만하게 들릴 수 있는 억양으로 말했다.
그러자 라헬이 굽혔던 허리를 펴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지당하신 말씀! 그럼 일단 단돈 30링크면 살 수 있는 영혼, 리조네와 마르펭의 능력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 두 영혼의 힘을 흡수하는 데 필요한 영력은 3입니다.”
라헬이 왼쪽에서 네 번째 영혼을 가리켰다.
“리조네는 살아생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미각의 소유자였답니다. 무엇이든 한 번 맛을 보면 잊는 법이 없었죠. 그리고 어떤 음식을 먹든 자신이 먹어본 재료나 향신료가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맞혔답니다. 때문에 그녀는 데브게니안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식재료를 섭렵한 뒤, 곳곳의 소문난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맛의 비밀을 알아내었습니다.”
그것참, 대단한 미식가네.
“이후 목돈을 끌어와 그녀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차렸죠. 그곳의 메뉴들은 리조네가 맛본 대륙의 뛰어난 요리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조금씩 변형하여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재해석된 음식들이 원조의 맛을 뛰어넘었다는 것이죠. 그 덕분에 리조네는 요식업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답니다. 간단히 말해서 리조네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힘은 절대미각입니다.”
저거다!
설명을 듣는 순간 내게 꼭 필요한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아버지가 운영하는 음식점은 주방을 보던 엄마가 병에 걸린 이후 모든 손님이 떨어져 나갔다.
아주머니를 고용해서 어떻게든 가게를 열고는 있지만, 실력이 영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고 비싸봤자 한 그릇에 육칠천 원 하는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실력 좋은 주방장을 고용하기란 힘든 일이다.
지금 주방에 계신 솜씨 없는 아주머니에게 월급을 지불하기도 힘들다.
이대로는 방법이 없다.
무언가 해결책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 리조네의 능력이 나타났다.
역시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라헬은 그 옆의 영혼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음은 마르펭. 리조네와 마찬가지로 30링크로 살 수 있는 영혼입니다. 마르펭은 리조네의 친남동생입니다. 그의 가장 강한 힘은 뛰어난 요리 실력! 리조네가 레스토랑을 창업했을 때 주방장으로 일하던 사람이 바로 이 마르펭이었답니다~ 사실 마르펭은 대륙 일류는커녕 그가 평생을 살았던 라만자 왕국 내에서도 일류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실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조네의 절대미각이 마르펭의 요리 실력과 만나면서 엄청난 상승작용을 일으켰죠. 그러므로~ 마르펭의 능력을 사시려거든 리조네의 능력과 함께 세트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드립니다.”
절대미각과 뛰어난 요리 실력이라면 당연히 세트로 사는 게 맞다.
내가 그 두 가지 재능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무슨 음식을 만들더라도 만들 수 있을 테니.
이제 능력을 모르는 영혼의 수는 셋.
라헬이 그중 한 영혼을 가리켰다.
“이 영혼의 이름은 바레지나트. 100링크에 5의 영력이 필요합니다. 바레지나트의 능력은 뛰어난 민첩성과 근력입니다.”
그건 내게 크게 필요한 능력은 아니다.
내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자 라헬은 남은 두 영혼 중 왼쪽의 영혼을 가리키며 얼른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쪽에 있는 영혼의 이름은 마르카스. 150링크로 살 수 있고 필요한 영력은 7 되겠습니다. 마르카스의 능력은 화(火) 속성 초급 마법을 다룰 줄 아는 것이죠.”
“화 속성 초급 마법?”
“네. 데브게니안 대륙엔 마법사들이 존재하죠. 마법사들은 다들 자기 적성에 맞는 마법을 익히게 되는데 마르카스의 경우는 화 속성 마법이 적성에 맞았답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이 뛰어난 편이 아닌지라 중급 단계에 발을 디뎌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비가 붙었던 용병과의 싸움에서 철퇴에 머리가 터져 생을 마감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