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12화
지루한 오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당은 점심을 먹으러 온 학생들로 바글거렸다.
점심시간은 항상 내게 곤욕이다.
나와 같이 식사를 하려는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식판에 음식을 담아 사람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내 중학교 친구 상덕이가 옆에 앉았다.
“……뭐냐?”
내가 묻자 상덕이가 헤실 거리며 웃었다.
“밥 같이 먹으려고.”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같이 왕따당할까 봐 평소엔 알은척도 안 하더니 어쩐 일이냐고?”
“아니…… 너 좀 달라진 거 같아서. 그리고 오늘 태진이 패거리도 학교에 안 왔고…….”
그거였구만.
우리 반에서 왕따를 주동하는 건 태진이 패거리다.
그놈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내 옆으로 온 것이었다.
“네가 친구냐?”
“학교 끝나면 가끔 연락하잖아.”
“치사한 새끼.”
“근데…… 아까 아랑이랑 무슨 얘기했어?”
“아무 얘기도 안 했어.”
“거짓말하고 있네.”
“밥 먹으러 왔으면 밥이나 처먹어.”
“밥은 먹지 말래도 먹을 거야. 근데 그냥 밥만 먹으면 좀 퍽퍽하잖아. 대화도 하면서 먹자.”
“무슨 대화?”
“사실 내가 요즘 고민이 좀 있거든.”
“그럼 학교 끝나고 얘기해.”
“아, 되게 빡빡하게 구네, 진짜.”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상덕이가 툴툴대거나 말거나 난 밥을 먹었다.
상덕이는 그런 내 옆에서 진짜 큰 고민인데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느냐며, 인간이 변했네, 의리가 없네, 별의별 소리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때, 식당 입구 쪽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와 여학생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악!”
“비켜! 이 씹새끼들아!”
나와 상덕이가 소란이 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태진이가 한 손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눈을 희번덕거리며 서 있었다.
상호와 상진이도 보였다.
“유지웅, 이 개새끼 어디 갔어!”
퍽!
“악!”
태진이가 악을 쓰며 근처에 있던 남학생을 야구방망이로 후려쳤다.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남학생이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그 광경을 본 상덕이가 식판을 들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그러더니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딴청을 부렸다.
“유지웅!”
퍽!
콰당탕!
태진이가 식당의 의자를 걷어차며 날 찾았다.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유지웅이 누구야?”
“어떻게 해…… 누가 좀 말려봐.”
“선생님 불러와야 하는 거 아냐?”
식당에 있던 모든 학생의 시선이 태진이에게 향했다.
그중엔 태진이보다 더 주먹을 잘 쓰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미쳐 버린 태진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태진이의 앞길을 터주었다.
그제야 녀석은 날 발견하고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유지웅, 이 씨팔새끼야!”
쾅!
태진이가 앞을 가로막던 의자를 걷어찼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 책상을 밟고 붕 날더니 내 정수리를 향해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저 정도는 맞아도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이제 내 몸은 그런 몸이니까. 그런데 한순간 엄습하는 공포가 눈을 감게 했다.
그때.
[눈 떠!]
머릿속에서 카시아스의 음성이 울렸다.
감았던 눈을 뜨고 다가오는 야구방망이를 바라봤다.
[주먹 쥐고 아무 데나 휘둘러!]
이런저런 생각을 할 새가 없었다.
다급히 주먹을 내질렀다.
퍽! 퍼억!
주먹을 휘두르느라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바람에 야구방망이는 내 어깨를 때렸다.
동시에 내 주먹이 태진이의 가슴을 가격했다.
“컥!”
태진이가 숨 막히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날아가 테이블에 부딪혀 널브러졌다.
쿠당탕!
“크헉! 억……!”
태진이는 계속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했다.
반면 내 어깨는 그냥 좀 뻐근한 정도였다.
녀석이 놓친 야구방망이가 바닥을 굴렀다.
[그거 들어.]
카시아스의 말이었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제대로 밟아놓지 않으면 또 기어올라. 한번 손볼 때 제대로 손봐야 돼. 다음번엔 네 눈만 봐도 오줌을 지리도록.]
머릿속이 하얗다.
어떤 이성적인 사고 같은 게 잘되지 않는다.
그저 카시아스가 시키는 대로 야구방망이를 들었다.
넘어진 태진이를 부축하던 상진이와 상호가 놀라서 굳었다.
“이 개새끼들아아아아!”
갑자기 가슴 속에 참아왔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녀석들에게 당한 지난 세월이 필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그냥 내가 가장 만만했기에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내 기분 따위 안중에도 없이 괴롭히고, 때리고, 심부름을 시키고, 노예처럼 부리면서 온갖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정신없이 달려가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뻑!
“아악!”
상호가 머리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퍽! 퍽!
“크악!”
상진이는 어깨와 허벅지를 얻어맞고서 주저앉았다.
그에 태진이가 벌떡 일어서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내 야구방망이가 더 빨랐다.
뻐억!
“컥!”
야구공을 때리는 것처럼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태진이가 복부를 얻어맞았다.
놈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런 녀석의 어깨를 다시 한번 후려쳤다.
뻑!
“끄으……!”
태진이가 비틀거리더니 다시 넘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세 놈을 난 정신없이 두들겨 팼다.
퍽퍽퍽퍽퍽퍽퍽!
야구방망이는 쉴 새 없이 불을 뿜었다.
처음에는 반항을 하려던 세 놈이 갈수록 축 늘어지더니 이제는 반항도 제대로 못하고 꿈틀거렸다.
“형! 이러다 죽겠어요!”
누군가 와서 날 뜯어말렸다.
이랑이였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난 겨우 방망이질을 멈췄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태진이 패거리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옷 밖으로 드러난 곳곳에 피멍이 들었다.
아마 어디 한두 군데는 부러졌을 것이다.
카시아스가 시키는 대로 하긴 했는데, 뒷수습이 문제였다.
고3의 마지막 겨울.
이제 수능을 치고 나면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인데 큰 문제를 저질렀으니 학교에서 짤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뒷수습을 해줘야겠지?]
한데 카시아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순간 무언가 이상한 기운이 나를 스쳐 태진이 패거리에게 스며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태진이 패거리의 몸에 있던 피멍이 사라졌다.
[뭘 한 거야?]
카시아스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상처를 치료해 준 거다. 신 나게 두들겨 팼어도 뒤탈 나지 않도록.]
마법사라더니 별걸 다 한다.
난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를 내던졌다.
타탕.
알루미늄 방망이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모두 나와 태진이 패거리를 둘러싼 채 침묵만을 지켰다.
그때였다.
띠링!
―신성한 점심시간에 난동을 피워 식당에 있던 학생들을 불편하게 만든 태진이 패거리를 혼내줬습니다. 선행을 쌓아 218링크가 주어집니다.
‘뭐?!’
그야말로 놀랄 노자다.
난 이게 설마 선행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들어온 링크가 1, 2링크도 아니고 무려 218링크였다.
말인 즉 218명이나 되는 학생이 도움을 바랐다는 것이다.
‘이 식당에 있던 학생 중 218명이 태진이 패거리를 제압해 주길 바랐던 거야?’
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무리도 아니다.
태진이 패거리는 고3이 되어서도 정신 못 차리고 학생들을 괴롭혀 댔다.
한데 뒷배경이 좋은 건지 학교 내에서 큰 처벌을 받은 적이 없었다.
태진이의 아버지가 정치 쪽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진의 여부는 확실치가 않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태진이 패거리를 불편해하는 학생은 학교에 제법 많았다.
한데 태진이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식당에 쳐들어와 아무 상관 없는 학생들을 후려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당연히 그런 태진이를 막아주길 바라는 학생이 많았을 것이다.
‘218링크면…… 제법 괜찮은 영혼의 힘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 힘이 엄마의 병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기를.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 가족은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내가 환희에 차 미소 짓던 그때.
“무슨 일이냐!”
게슈타포가 식당에 들어왔다.
첫 번째 아티팩트 레이븐 링
게슈타포는 나와 태진이 패거리를 체육실로 데려갔다.
우리 넷은 게슈타포 앞에 나란히 섰다.
게슈타포가 미간을 잔뜩 구긴 채, 위압적인 음성으로 물었다.
“식당에 있던 학생들 말로는 태진이가 먼저 야구방망이를 휘둘렀고, 지웅이는 그 야구방망이를 빼앗아 태진이와 상호, 상진이를 구타했다는데, 사실이냐?”
“네. 거의 죽으라는 심정으로 팬 것 같아요, 저 새끼.”
태진이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게슈타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얻어맞은 것치고는 너무 멀쩡하지 않나?”
“……네?”
“내가 보기엔 아무 데도 다친 곳이 없어 보이는데. 아닌가?”
“선생님! 식당에 있던 애들이 하는 말 들었잖아요? 진짜 죽을 뻔했다니까요?”
“웃통 까봐.”
“왜요?”
“그렇게 작정하고 두들겨 댔으면 어디 멍 자국이라도 하나 있을 것 아니냐. 어서 까봐!”
게슈타포의 고함에 태진이 패거리는 어쩔 수 없이 상의를 벗었다.
하지만 이미 카시아스의 마법으로 상처가 다 치료된 상태인지라 놈들의 몸은 멀쩡했다.
“아무 데도 다친 곳이 없는데, 심하게 맞았다고?”
“그렇다니까요!”
“평소에 지웅이를 괴롭히는 건 오히려 너희 놈들이었던 걸로 안다.”
“네? 괴롭히다니요? 우리가 지웅이를요?”
태진이는 딱 잡아뗐다.
그에 게슈타포가 선글라스를 벗고 태진이를 노려봤다.
그 강렬한 눈빛에 태진이가 움찔거렸다.
“장태진, 이 새끼야. 선생님들이 쉬쉬해 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고 천둥벌거숭이마냥 날뛰지? 네가 반에서 왕따 분위기 조성하는 거 다 안다. 지웅이는 재수 더럽게 없지. 너랑 3년 내내 같은 반 되면서 계속 시달렸으니까. 저번 체육 시간에 매점 갔다 온 것도 네가 시킨 거 알고 있어!”
뭐? 그걸 알고 있었어?
아니, 그런데 왜 나한테 뭐라 그런 거야?
“하지만 내가 태진이 너를 잡는다고 왕따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왕따를 벗어나려면 당하는 본인의 의지도 필요해. 지웅이에겐 그런 의지가 없었으니 내가 아예 개입하지를 않은 거다.”
“하…… 그래요. 그랬다 치자구요. 그런데요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지웅이한테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았다는 거라구요!”
그에 게슈타포가 내게 물었다.
“정말이냐?”
순간 카시아스가 텔레파시를 전했다.
[아니라고 발뺌해.]
“아닙니다.”
“아니야?”
[모션만 크게 취하면서 바닥이랑 테이블을 때리기만 했습니다. 사람은 때리지 않았습니다.]
“모션만 크게 취하면서 바닥이랑 테이블을 때리기만 했습니다. 사람은 때리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게슈타포가 태진이 패거리를 흘겨봤다.
“그랬다는데?”
“저 새끼가 거짓말하는 거라구요! 전 이 일, 이대로 못 넘어갑니다! 증인도 있고! 저 새끼 꼭 법으로 처벌받게 만들 거예요!”
“그래?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이 일 당장 공론화시켜서 여기저기 기사에도 싣자. 현 시의원의 장남이 점심시간 학교 급식실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들어와 애꿎은 학생 두 명을 구타, 이후 다른 학생을 또 구타하려 했으나 도리어 얻어맞았다고 주장했지만 상처는 아무 데도 없었다. 어때? 이런 기사 나가면 너희 아버지께서 대단히 좋아하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