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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1화 (11/153)

데일리 히어로 011화

연을 맺다

교문을 지나며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새삼 진짜인가 의심이 들었다. 그만큼 실감이 나지 않았다.

태진이 패거리를 힘으로 제압하는 건, 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 벌어졌다.

기분이 참 묘했다.

“저기…… 형.”

“응?”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그러고 보니 내 생각에만 빠져서 대화도 한마디 나누지 않고 있었다.

“유지웅. 넌?”

“연이랑이에요.”

“연이랑? 연씨야?”

“네.”

“특이 성이네.”

“그런데 형, 혹시 무술 같은 거 배웠어요?”

“아니? 그런 거 배운 적 없는데.”

“근데…… 몸이 장난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주먹도 엄청 세고. 그 정도 치는 사람 고딩 중엔 거의 없어요.”

“그런가?”

하긴 효도르에 버금가는 육신을 얻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도 작은 덩치와 곱상한 얼굴에 비해 깡이 대단했었다.

태진이 패거리 셋을 코앞에 두고서도 눈 하나 깜빡 안 했다.

게다가 나한테 얻어맞고 코앞에서 날아드는 태진이를 가볍게 피했다.

반사 신경이 보통이 아니었다.

“너야말로 보통내기가 아니던데? 깡도 제법이고.”

그러자 이랑이가 머쓱하게 웃었다.

“사실 그런 양아치들 하나도 안 무서워요.”

“뭐? 그런데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었어? 아니면 네가 때려눕히려는 순간 내가 오지랖 부린 거야?”

“그런 건 아니에요. 아마 때렸으면 반항도 못 해보고 맞아야 했을 거예요.”

이놈 도대체 정체가 뭐야?

궁금해하는 사이 어느덧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이랑이는 잠시 닫았던 입을 다시 열었다.

“사실 저 무술을 배우거든요.”

“무술?”

“네. 극천무라고 우리나라 고유의 무술 중 하난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왜?”

“일인전승이거든요.”

일인전승이라 함은, 단 한 명에게만 전승된다는 뜻이다.

무협 책을 보면 일인전승되어지는 무술이라든가 하는 것이 많이 나온다.

나도 무협 책을 보며 일인전승이란 말을 알게 되었다.

한데 그렇다는 말은.

“네가 극천무라는 걸 일인전승으로 전수받고 있단 말이야?”

“네. 저는 친할아버지한테 전수받았어요.”

“그게 그럼 연씨 가문이 만든 무술이야?”

“그런 건 아니에요. 가문의 사람에게만 일인전승되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에 와서는 뿌리가 어디인지도 희미해졌어요. 하지만 극천무는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구요.”

“극천무라는 게 쉽게 말하자면 택견 같은 거지?”

“맞아요.”

“신기하네. 그런 무술을 하는 사람도 만나고.”

“저는 형이 더 신기해요. 무술도 배우지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런 주먹을 가지고 있는 건지.”

“아, 그럼 네가 어느 정도 반항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왜 가만히 있었어?”

“아버지가 극천무로 나보다 약한 사람은 되도록 때리고 다니지 말라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난감하던 참이었어요. 때릴 수도 없고, 그냥 맞을 수도 없고. 근데 형이 도와준 거예요. 진짜 고마워요.”

이 녀석, 반항 정도가 아니라 그냥 때려눕힐 수 있었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자기 실력에 상당히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야. 너도 봐서 알겠지만, 그놈들 나랑도 악연이거든.”

“그러고 보니까 그 인간들, 형한테 막 대하던데. 평소에도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막 대했지.

아니, 막 대한 정도를 넘어섰지.

하루하루가 어찌나 지옥 같았는지 모른다.

“네 말이 맞아. 고등학교 입학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겹게 괴롭혔어.”

“왜 당하고만 있었어요?”

그러게.

난 왜 속으로만 놈들을 욕하면서 단 한 번 제대로 덤벼볼 생각은 못 했을까.

딱 한 발.

한 발만 앞으로 내디디면 되는 거였다.

그럼 다른 발이 나간 발을 따라온다.

일과 백 사이는 큰 차이가 없지만, 영과 일 사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해보는 것과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시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그것은.

“용기가 부족했던 거지.”

“그럼 오늘부터 용기 내게 된 거예요?”

“그런 셈이지?”

나와 이랑이가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런데 이랑이 이 녀석 웃는 얼굴이 꼭 강아지를 닮았다. 게다가 눈 밑에 애교살도 두둑한 것이, 미소만 지어도 여자들이 홀딱 넘어올 상이다.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본관 건물에 다다랐다.

1학년은 1층, 3학년은 3층에 교실이 있다.

그런데 이랑이는 나를 따라 2층 계단을 밟았다.

“너 어디 가려고?”

“아~ 누나가 오늘 지갑 놓고 갔다 그래서 전해주려구요.”

“누나가 있어?”

“네. 형이랑 같은 3학년이에요.”

난 1반에 도착했고, 이랑이도 날 따라 1반으로 들어섰다.

“누나가 나랑 같은 반인가 보네?”

“네.”

가만……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이름이 연이랑이랬지?

우리 반에도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학생이 있다.

연아랑.

언감생심 내가 가슴속에 담아둘 엄두도 나지 않는 예쁜 여자아이.

공부도 잘하고, 밝고, 잘 웃고, 친절하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고, 엄친딸이 따로 없다.

“누나~!”

이랑이의 부름에 교실에 있던 아이들이 시선을 돌렸다.

그 속엔 창가 중간쯤 위치한 책상에 앉아 여학생들과 수다를 떨던 아랑이도 있었다.

“이랑아~”

아랑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랑이를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확실히 이랑이가 여자들 홀리게 만들기 딱 좋은 얼굴이긴 하지.

아랑이가 코앞에 다가왔다.

“지웅야, 안녕?”

“어…… 아, 안녕.”

아랑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다.

가끔 내게 인사를 건네주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아랑이랑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여기, 지갑.”

이랑이가 아랑이에게 지갑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근데 지웅 형이랑 누나랑 같은 반이었네?”

“응? 지웅이 알아?”

“아까 학교 오다가 양아치 같은 인간들이 나 삥 뜯으려고 그랬어. 그런데 지웅 형이 그놈들 줘 패줬어.”

“진짜?”

아랑이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지웅아…… 너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아닌가?”

달라졌겠지.

비실비실하던 인간이 근육질이 되었으니.

“누나, 지웅이 형이 나 도와줬다니까?”

“아, 그랬댔지. 고마워, 지웅아.”

“아니…… 뭐.”

“근데…….”

아랑이가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솔직히 이랑이의 말이 믿기지 않겠지.

내가 맨날 태진이 패거리한테 시달리며 사는 걸 익히 봐왔을 테니까.

“아무튼 지웅 형, 오늘 고마웠어요. 앞으로 알은척하고 지내요~!”

“그래, 그러자.”

“누나도 지웅 형한테 잘해줘!”

“알았어~ 얼른 가봐.”

이랑이가 교실을 나가자 여학생들이 아랑이에게 몰려들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아랑아, 동생이야?”

“응.”

“우와~ 진짜 귀엽다. 완전 존잘!”

“너네 집 유전자 진짜 대단하다. 겁나 부러워.”

“난 저런 애가 친동생이면 사랑에 빠질 거야.”

“아랑아, 나 동생 좀 소개시켜 주라!”

“미친년! 아랑이 동생을 네 솔로 탈출의 제물로 삼지 마.”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여학생들 틈에서 빠져나와 내 자리에 앉았다.

내 자리는 창가 쪽 맨 뒤다.

그런데 그런 내게 아랑이가 다가왔다.

“지웅아.”

“응?”

“정말 네가 이랑이 도와준 거야?”

“응…… 그랬는데?”

“아, 미안. 기분 나쁘게 들렸지? 난 다른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워낙 상상이 잘 안 돼서.”

“나도 믿기 힘든데, 사실이야.”

“아…… 그래. 아무튼 정말 고마워. 우리 이랑이는 함부로 싸우면 안 되거든.”

“들었어. 무슨 극천무 일인전승자라며?”

“이랑이가 그런 말도 했어?”

“응. 비밀이야?”

“아니…… 딱히 비밀은 아니지만 걔 다른 사람한테 자기 얘기 같은 거 잘 안 하거든. 지웅이 정말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도 이랑이 싹싹해서 좋더라.”

“걔가 그렇게 남을 싹싹하게 대하는 거 난 처음 봐. 얼마나 까칠하다고.”

“정말?”

“응.”

나와 대화할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랑이한테 엄청나게 점수를 딴 모양이다.

“그리고 지웅아, 이건 그냥 하는 말이니까 괜한 참견 한다고 생각지 말았으면 해.”

“뭘?”

“남을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너 자신을 가장 도와야 할 때가 아닐까 싶어.”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고마워.”

“다음에 시간 될 때 밥 한번 살게.”

“밥은 무슨, 괜찮아.”

“아니야. 이랑이랑 같이 보자. 이번 주말에 시간 어때?”

“주말에…… 별 약속은 없는데?”

“그럼 토요일날 점심 먹자. 열두 시까지 조각 공원에서 보는 걸로. 어때?”

어떠냐니?

완전 좋지!

“알았어.”

“그래. 그럼 그때 봐.”

이랑이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거 상황이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 거지?

토요일이면…… 모레잖아?

나 지금 모레 아랑이랑 점심 약속 잡힌 거야?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 반에서 외모로는 최고인 아랑이와 점심을 먹게 되다니!

심정 같아서는 만세라도 외치고 싶었다.

얼떨떨한 정신을 다잡고 나니, 그제야 내가 잠깐 잊고 있던 존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카시아스는 어디 갔지?’

아까 이랑이를 도와주는 시점부터 이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그때 무언가가 내 발목을 툭 건드렸다.

[나 찾냐?]

동시에 머릿속에서 카시아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텔레파시 마법이었다.

난 바닥을 내려다봤지만 카시아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시아스? 투명 마법 쓴 거야?]

[그래.]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계속 따라다녔어.]

[그랬구나.]

[그나저나 주변에 미인들이 꼬이는구나.]

[그러게…… 나도 놀랍다.]

[네가 변하니까 네 주변 상황이 변하는 거다. 원래 여자들은 강한 남성에게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는 법이지.]

[연애 박사 나셨네. 여자를 그렇게 잘 알아?]

[누구보다 잘 알지.]

[잘났다.]

하여튼 말하는 게 묘하게 얄밉다니까.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이랑이와 연을 맺게 된 것도, 그리고 아랑이와의 관계가 한발 앞으로 나아간 것도 전부 카시아스 덕이다.

고맙다, 똥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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