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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10화 (10/153)

데일리 히어로 010화

* * *

으슥한 골목.

태진이 패거리는 강제로 끌고 온 1학년 남학생을 구석에 몰았다.

세 놈이서 남학생을 둘러싸더니 당장 협박을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뭐라고 하는 건지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태진이의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 없어? 씨팔, 뒤져서 나오면 죽는다, 진짜.”

“진짜 없어요.”

“하, 이 새끼가 끝까지 약을 파네.”

이전의 나였다면 벌써 손발이 차가워졌겠지.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밤새 주도를 지키느라 속 아픈 선배들이 해장국 좀 사 먹겠다는데, 같은 학교 후배가 돈 좀 못 꿔줘? 어?”

저 녀석들 밤새 술 처먹었구나.

탁.

카시아스가 꼬리로 내 목을 쳤다.

“선행도 하고, 저놈들 혼도 내줄 좋은 기회다.”

“일석이조네. 좋아, 이런 거.”

“낭아권으로 얼굴은 때리지 마. 턱 돌아간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난 용감하게 태진이 패거리에게 다가갔다.

시원하게 한번 뒤집어 버리자고 마음먹었지만, 녀석들과의 거리가 줄어들수록 점점 겁이 났다.

이건 학습된 공포다.

조건반사처럼 태진이의 존재 자체가 내게 공포로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내가 소라스의 육신과 무타진의 낭아권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대단한 싸움꾼이 된 건 아니다.

여태껏 태어나서 주먹질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나다.

누군가는 말했다.

싸움 그거 별거 아니라고.

막상 해보면 싸우는 그 순간엔 긴장돼서 맞아도 아픈 걸 모른다고.

그러니까 일단 선빵필승이고, 그게 안 되면 급소를 골라 때리고, 그래도 안 되면 상대방이 질릴 때까지 물고 늘어지라고.

그 말을 해준 사람이 누구냐?

우리 아버지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난 태진이 무리에게 다가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겼다.

낭아권을 시전하는 순간 내 영력은 1이 소비된다. 현재 내 영력 수치는 2다. 영력을 1 소비해 버리면, 다시 1이 차오르기까진 1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낭아권은 한 번 사용하면 재사용까지 5초가 걸린다.

즉 낭아권을 두 번 사용하고 나면 영력 1이 차오르는 1분 동안은 다시 사용하지 못한다.

지금 내게 낭아권 외에 다른 기술은 전혀 없다.

저 녀석들이 맞기만 해준다면야 이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두 명은 처리한다 해도, 나머지 한 명이 영력이 회복될 1분 동안 날 가만두겠냐는 거다.

‘괜찮아. 편의점에서 시비 걸던 양아치 주먹도 아프지 않았어.’

낭아권을 두 번 날린 이후엔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른다.

그러다 운 좋게 남은 한 명이 얻어맞고 쓰러지면 땡큐다.

그게 아니라면 1분을 버텨서 낭아권을 한 번 더 날린다.

계획은 그게 다였다.

‘선빵필승.’

난 내게 등을 보이고 있는 세 사람 중 태진이를 먼저 기습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진이가 뒤를 돌아봤다.

녀석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난 그대로 굳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동상이 되었다.

“어? 지웅아.”

태진이가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떼며 연기를 훅 불었다.

“너 여기 무슨 일이냐?”

“…….”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태진이를 노려봤다.

그러자 태진이가 피식 웃었다.

“아침부터 뭘 꼬나 봐, 새끼야. 내가 지금 간만에 술빨 받아서 기분이 좋거든? 한 번은 봐줄 테니까 어서 인상 풀어.”

“봐주지 마.”

“뭐?”

태진이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녀석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상호와 상진이도 그런 태진이를 따라 이마에 내 천(川)자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쌍둥이다. 그래서 인상을 쓴 모습도 똑같았다.

“하, 씹새끼, 졸라 컸네? 너 일루 텨 와.”

안 그래도 가려고 했거든.

터벅터벅.

이제 기습이고 뭐고 물 건너갔으니 발소리 죽일 필요도 없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난 성큼성큼 태진이에게 다가갔다.

“내가 지금 널 반 죽여놓고 싶은데, 그러다가 아까운 술기운 다 날아갈 거 같아서 기회를 줄게. 이 새끼 보이지?”

태진이는 턱짓으로 남학생을 가리켰다.

“지웅아, 요즘 후배들은 선배 무서운 걸 모르나 봐. 이 새끼가 아까부터 버틴다. 네가 대신 교육 좀 시켜라.”

“……뭐?”

“사이즈 보니까 가방이랑 신발이랑 하나같이 메이커야. 털면 한 십만 원은 나올 것 같은데. 그치?”

그러자 상호와 상진이가 맞장구를 친다.

“십만 원이 뭐야? 한 이십은 나오겠다.”

“이십이 뭐야? 한 삼십은 나오겠다.”

“하하하! 삼십이 뭐냐? 한 오십은 나오겠네!”

“오십? 그럼 난 백!”

“받고 이백, 새끼야!”

“받고 삼……!”

빡!

“컥.”

태진이가 상호의 뒤통수를 갈겼다.

“미친 새끼들이 분위기 파악 못하고.”

태진이의 인상 한 번에 상호와 상진이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툭.

태진이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할 수 있지? 만약에 십만 원 털지 못하면, 부족한 건 네가 메꿔야 한다.”

내 시선이 1학년에게 향했다.

곱상하게 생긴 남자애였다.

키는 그 나이 또래 애들의 평균이었다.

그런데…… 입을 앙다물고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은 크게 겁먹은 기색이 아니었다.

특히 눈이 살아 있었다.

“일단 한 대 쳐. 할 수 있지? 이렇게 주먹 말아 쥐고.”

태진이가 한 손으로 내 주먹을 말았다.

“이제 죽빵을 날려. 뻑! 해봐.”

주먹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1학년을 때리기 위해서? 절대 아니다.

맞을 놈은 따로 있다.

“빨리 해, 새끼야! 안 하면 네가 맞는다.”

태진이가 날 재촉했다.

“어서!”

빡!

내 뒤통수에서 둔탁한 충격이 전해졌다.

태진이가 주먹으로 때린 것이다.

그래, 조금 더 때려라.

아주 화끈하게 저지르게!

“해! 하라고! 해, 병신아!”

뻑뻑뻑!

태진이의 손이 내 뒤통수를 계속해서 갈겼다.

속에서 악이 차오른다.

“빨리 해!”

그래, 해줄게, 썅!

빡!

태진이의 주먹이 한 번 더 내 뒤통수를 때리는 순간, 녀석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낭아권!”

스킬을 시전했다.

순간 말아 쥔 내 오른 주먹이.

쐐애액!

바람을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튀어나갔다.

뻐어어어억!

“커억!”

낭아권이 태진이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가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태진이의 몸이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상호와 상진이의 고개가 태진이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실수했다.

태진이가 그대로 날아간다면 뒤에 있는 남학생과 부딪힐 판이다.

한데, 남학생이 몸을 슬쩍 틀었다. 태진이는 아슬아슬하게 남학생을 스치고 지나갔다.

퍽!

담벼락에 등을 부딪힌 태진이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일격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상호와 상진이가 태진이를 바라보다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들의 눈엔 놀라움과 분노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이 새끼가!”

상호가 내게 달려들었다.

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본 적이 없는 나다.

낭아권을 시전하는 것 말고는 뭘 해야 하는지 제반 지식이나 경험 같은 게 전무하다.

내가 어리바리하는 사이, 지척까지 다가온 상호의 주먹이 날아왔다.

퍽!

코가 살짝 얼얼했다.

정통으로 안면을 얻어맞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였다.

편의점 양아치의 주먹이 그랬던 것처럼, 상호의 주먹도 내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난 뒤로 밀려나지도 않은 채 상호의 주먹을 받아냈다.

상호는 내 얼굴에 주먹을 박은 자세 그대로 어리둥절해하며 날 바라봤다.

“뭐, 뭐야, 이 새끼?”

“…….”

이걸로 완벽하게 전세 역전.

놈들의 주먹은 나한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굳이 낭아권을 시전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일단 받은 것부터 돌려주고!

뻑!

“컥!”

주먹으로 상호의 얼굴을 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술의 시전 없이, 오로지 내 의지로 내 몸을 움직여 사람을 때려봤다.

“후우! 후우!”

이건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다.

대단히 흥분된다.

아드레날린이 쫙 퍼지며 몸이 솜뭉치가 되어 허공에 붕 뜬 것 같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찌릿하는 게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 같다.

상호는 얼굴을 움켜쥐고 뒤로 널브러졌다.

그런 상호에게 상진이가 놀라서 다가갔다.

“상진아! 괜찮아?”

……쓰러진 녀석이 상진이고 멀쩡한 놈이 상호였구나.

쌍둥이다 보니 헷갈렸다.

상진이를 품에 안아 흔들어대던 상호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날 노려봤다.

상진이도 태진이처럼 내 주먹 한 방에 정신을 잃었다.

“너 진짜 뒈지고 싶냐!”

상호가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거…… 내가 할 소리 같은데.”

이젠 나도 담이 커졌다.

태진이 패거리가 내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유는 놈들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할 경우 육체적 고통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내게 어떠한 고통도 줄 수 없는 입장이 된 놈들을 계속 무서워할 필요는 없었다.

너무 약해 빠져서 이제는 분노가 치밀지도 않는다.

내가 얻은 힘으로 초전박살을 내주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

“이 개새끼가!”

상호가 냅다 달려와 발을 뻗었다.

난 그걸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퍽.

내 배에 상호의 발이 꽂혔다.

하지만 튕겨 나간 건 내가 아니라 상호였다.

“윽!”

털썩.

엉덩방아를 찧은 상호가 다시 일어나서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더 빨랐다.

상호의 코앞으로 다가감과 동시에 주먹을 질렀다.

어떤 식으로 주먹을 쥐어야 하고, 어떻게 뻗어야 효과적인지 그런 건 모른다.

지금 나와 상호의 힘 차이는 어른과 갓난아이를 비교하면 적절할 것이다.

어른의 주먹은 아무렇게나 휘둘러도 갓난아이에게 치명타가 된다.

퍽!

“억!”

내 주먹에 배를 얻어맞은 상호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쩍 벌렸다.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결국.

털썩.

두 놈과 마찬가지로 널브러졌다.

“후우우.”

싸움을 시작할 때보다, 이렇게 맞서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확 진정되었다.

띠링!

―태진이 패거리한테 삥 뜯길 뻔한 후배를 도와주었네요. 그래요, 링크로 얻은 힘은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거예요. 선행을 쌓아 1링크가 주어집니다.

그렇지.

저 남학생만 도움을 바랐을 테니, 1링크가 주어지는 게 맞다.

“너, 너 이 개새끼! 이따가 보자!”

상호와 상진이가 기절한 태진이를 부축하고 부리나케 도망갔다.

이런 순간을 너무나도 많이 바랐는데, 막상 이토록 쉽게 정리되니 어쩐지 허무했다.

“괜찮아?”

난 남학생에게 물었다.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빙그레 미소 지었다.

녀석은 키가 살짝 작아서 그렇지 얼굴은 기가 막히게 잘생겼다.

남자치고 상당히 곱게 생긴 게 전형적인 미소년의 이미지였다.

마치 순정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였다. 그래서 그런지 험한 일 한 번 안 해봤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태진이 패거리가 만만하게 보고 끌고 갔나 보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선배.”

학교를 다니며 처음으로 듣는 선배란 호칭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선배는 무슨…… 그냥 형이라고 불러. 일단 학교 가면서 얘기하자. 이러다 지각하겠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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