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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9화 (9/153)

데일리 히어로 009화

라헬은 나한테 가장 필요 없는 영혼을 팔 때 즐거워한다.

그런데 라헬은 아르마보다 무타진의 영혼을 적극적으로 팔려 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한테 더 필요 없는 건 아르마의 능력일 텐데?

“사지 않으실 건가요?”

라헬이 재촉했다.

밧줄을 한 번 더 끌어당기는 라헬. 이제 주도권을 거의 빼앗겨 버렸다.

무타진의 능력이 정말 나한테 필요 없는 건가?

한데…… 이 께름칙한 느낌은 뭐지?

순간 허허실실(虛虛實實)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혹시?’

난 라헬을 가만히 쏘아보다가 말했다.

“아르마의 영혼을 사는 게 나을까?”

“전 무타진을 추천하고 싶지만, 지웅 님은 원체 제 말을 안 들으시잖아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아르마의 영혼을 드리겠…….”

라헬이 말을 하며 아르마의 영혼을 내게 밀려 했다.

“잠깐.”

난 그런 라헬의 행동을 제지했다.

우뚝.

라헬이 그대로 멈췄다.

“역시 무타진을 사야겠어.”

순간.

“……!”

라헬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입에는 오싹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모로 꺾었다.

“정말 그러시겠어요?”

“응.”

“정말 그러시겠냐구요?”

“그럴 거라고. 무타진의 영혼을 사겠어.”

그 말에 라헬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이마에 힘줄이 불뚝 돋아났다.

그리고 발광하기 시작했다.

“무타진이라니이이이이! 그런 쓰레기 같은 영혼의 힘을 가져서 뭘 하겠다는 건데요!”

하, 하하하…… 역시나 덫을 친 것이었어.

“약아빠진 놈. 시끄럽고 빨리 무타진의 영혼이나 내놔.”

라헬에게 끌려가던 줄을 내가 강하게 당겼다.

“정말 후회 안 하시겠어요? 무려 10링크나 되는 영혼이라구요. 잘 생각해 보세요.”

“계속 입 아프게 하지 마.”

“……젠장.”

뭐, 젠장?

방금 젠장이라고 했어, 저 자식이?

내가 저놈의 멱을 잡고 흔들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라헬이 무타진의 영혼을 손으로 살짝 밀었다.

그러자 내게 날아온 무타진의 영혼이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라헬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무타진의 힘을 갖게 된 걸 축하드려요, 고객님. 다음번엔 더 많은 링크를 들고 오세요~!”

“거지는 빨리 꺼져라?”

“잘 알고 계시네요.”

라헬의 쌀쌀맞은 음성과 함께 어두운 공간이 사라지고 우리 집 앞 골목길이 나타났다.

사실 이번에도 혹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능력이 있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내 생각에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만큼 고차원적인 능력을 갖게 되려면 훨씬 많은 링크가 필요할 듯했다.

그러기 위해선 링크를 쓰지 않고 모으는 것보다, 날 성장시켜 앞으로의 선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았다.

“후우.”

이제 5월인데, 하늘을 가득 덮은 먹구름 탓인지 입김이 나왔다.

“이걸로 두 개의 힘을 얻었어.”

“방금 얻은 힘에 대해 알려줄 게 있다.”

내 어깨에 앉아 있던 카시아스가 말했다.

“응? 낭아권?”

카시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인드 탭을 열어라.”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2/2

영매 : 2

아티팩트 소켓 0/1

보유 링크 : 1

영력이라는 항목이 2에서 2/2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없던 항목이 생겼다.

영매? 저게 무슨 뜻이지? 카시아스는 당연히 저게 뭔지 알려주려고 마인드 탭을 열어보라 한 것이겠지.

“설명해 줘, 카시아스.”

“영매(靈買). 말 그대로 네가 사들인 영혼이라는 뜻이야. 그 뒤에 숫자 2는?”

“사들인 영혼의 수네.”

“그렇지.”

“그런데 왜 영매라는 항목이 이제 나온 거야?”

“그 전까지는 있어봤자 별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필요성이 생겼어.”

“어째서?”

“영매를 터치해.”

난 시키는 대로 허공에 보이는 글자를 터치했다.

팅.

맑은 소리와 함께 영매가 최상단으로 올라가며 다른 글자들을 지우고서 이런 화면이 떠올랐다.

영매

패시브 소울 : 1

―강인한 육신[소라스]

액티브 소울 : 1

―낭아권[무타진/소모 영력 1/재충전 5초]

“패시브 소울(Passive Soul)…… 액티브 소울(Active Soul)?”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겠어?”

“글쎄…… 근데 여태껏 한글로 표기되다가 저 두 개는 왜 영어로 나오는 거야?”

“아티팩트 소켓은 그럼 한글이었나?”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한글로 쓰이긴 했으나 영단어였다.

“이 마법, 오류 같은 게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말했지. 마인드 탭의 항목들은 네게 가장 익숙한 활자로 표기가 된다고.”

“한글이 가장 익숙한데?”

“착령(着靈).”

“……뭐?”

“패시브 소울을 그나마 한글로 표현한 거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넌 무슨 말인지 전혀 감도 못 잡겠지.”

“그러니까 모든 항목이 무조건 한글로 표기되는 게 아니라, 각 항목마다 내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활자로 표기된다 이거야?”

“그래.”

그럼 패시브 소울의 뜻은…….

“영혼의 힘을 사기만 하면 항상 그 영혼의 힘이 발휘된다는 건가?”

“맞다. 반대로 액티브 소울은 사들인 영혼의 힘을 원할 때 발동해야 하지.”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은 MMORPG게임과 닮은 점이 제법 많았다.

혹시 데브게니안 데륙에도 그런 게임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 액티브 소울의 힘을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기술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발현하고 기술의 이름을 외쳐라.”

“……그런 부끄러운 짓을 꼭 해야 돼?”

“시험 삼아 지금 해봐. 마침 지나가는 사람도 없으니.”

난 아직 집 근처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로변이 아닌지라 날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고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런 다음 마음속으로 낭아권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끌어 올렸다.

“낭아권.”

이어 작은 음성으로 기술의 이름을 말했다.

순간!

쐐애애애애액!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서운 속도로 주먹이 날아갔다.

눈 한 번 깜빡하는 동안 뻗어나간 주먹은 남의 집 담벼락을 그대로 때렸다.

쾅!

퍼서석.

“……!”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오래된 담벼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카, 카시아스. 이거 어쩌지?”

당황해서 질문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조금 전까지 내 어깨 위에 있던 카시아스는 어느새 저 멀리 도망치는 중이었다.

치사한 놈 같으니라고!

결국 나도 카시아스의 뒤를 따라 달렸다.

* * *

버스 정류장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카시아스는 어느새 다시 내 가방에 올라타더니 투명하게 모습을 감췄다.

“방금 그게 낭아권이다.”

“이거 제대로 한 대 맞으면 그냥 기절하겠는데.”

“아울러 네가 소라스의 육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담벼락과 함께 네 주먹도 부서졌겠지.”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 전의 비리비리한 몸이었다면 낭아권을 몸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인드 탭을 열어 영력을 확인해 봐.”

시키는 대로 마인드 탭을 열어보니 영력의 항목이 1/2로 바뀌어 있었다.

“수치가 1 줄었어.”

“내가 전에 말했었지. 영혼의 힘 중에는 네 영력을 소모해야 하는 기술도 있다고.”

“그랬지.”

“낭아권은 액티브 소울이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선 1의 영력이 필요해. 따라서 네 영력에서 1이 소모된 것이지. 하지만 소모된 영력은 1분이 지나면 다시 차오른다.”

“그렇구나. 한마디로 낭아권은 연속으로 두 번을 사용하게 되면 다시 한번 사용하기 위해서는 영력이 차오르는 1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네.”

“그래. 하지만 낭아권을 두 번 연속 딜레이 없이 사용하는 건 무리야.”

그러고 보니 낭아권을 설명하는 란에 재충전 5초라는 항목이 있었다.

“낭아권을 한 번 사용하면 5초를 기다려야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맞다. 연달아 사용할 경우 네 근력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그만큼의 딜레이를 두는 거지.”

“엄청 섬세하네.”

“실제로 낭아권을 만들어낸 무타진 역시도 한 번 낭아권을 사용하고 난 다음엔 5초 이상 쉬어야 재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타진은 자신보다 센 상대를 만나 딜레이 없이 낭아권을 세 번 연속 사용하고 말았지. 그 바람에 오른손의 뼈는 아작 나고 인대는 파열, 근육은 전부 끊어져 평생 불구로 살다 죽어야 했어.”

“난 강제 딜레이가 걸려 있어서 다행이네.”

“레이브란데의 배려겠지.”

“그런데 이 기술로 어떤 선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편의점에서 근무할 때처럼 불량배로부터 선량한 사람을 구할 수 있겠지. 그리고 꼭 선행할 때만 기술을 써야 하는 건 아니야. 네 몸을 지키는 데도 사용할 수 있어. 태진이 패거리한테 본 때를 보여줘라. 좋은 기회잖아.”

아…… 그래, 그걸 잊고 있었어.

영혼의 힘을 꼭 선행에만 사용하란 법은 없지.

우선은 시궁창 같은 내 인생부터 바꾸는 거야.

더는 이렇게 엉망으로 살아갈 순 없어.

어쩌면 여태껏 난 주변 상황만을 원망해 왔었는지 모른다.

나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 그렇지 않다고 외면했으나,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원망만 했을 뿐,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변 상황이 날 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내가 변하면 주변 상황도 전부 바뀐다.

이제는 파문을 일으킬 때다.

얼어붙어 있던 발을 내디딜 때다.

* * *

버스는 학생들을 가득 실어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늘 입던 교복이 오늘따라 어색했다.

몸이 변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 교복은 키에 맞추다 보니 품이 좀 넉넉했다.

교복을 구매할 당시 어머니는 몸에 맞게 품도 줄이자고 했지만, 난 마른 멸치 같은 내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싫어 이대로가 좋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런데 그 억지가 이제 와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지금은 너무나 잘 맞았다.

진작부터 이러려고 맞춘 것 같을 정도였다.

신이 났다. 그러다 보니 발걸음도 가벼웠다.

학생들 틈에 섞여 평소보다 리드미컬하게 걸어가는데, 큰 길 어귀에서 익숙한 얼굴 셋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태진이와 상호, 상진이였다.

‘이렇게 일찍 등교를 해?’

한데 자세히 보니 등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가방이 없는 거야 그렇다 치고, 교복 차림이 아니었다.

셋 다 사복을 입고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1학년 남학생 한 명을 잡아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학생 몇 명이 이를 봤지만 아무런 제지도 못했다.

지광고에서 태진이는 얼굴을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었다.

태진이가 학교 짱은 아니지만 성질이 더럽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래서 괜히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싫어 모른 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당장 걸음을 옮겨 태진이 패거리가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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