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09화
라헬은 나한테 가장 필요 없는 영혼을 팔 때 즐거워한다.
그런데 라헬은 아르마보다 무타진의 영혼을 적극적으로 팔려 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한테 더 필요 없는 건 아르마의 능력일 텐데?
“사지 않으실 건가요?”
라헬이 재촉했다.
밧줄을 한 번 더 끌어당기는 라헬. 이제 주도권을 거의 빼앗겨 버렸다.
무타진의 능력이 정말 나한테 필요 없는 건가?
한데…… 이 께름칙한 느낌은 뭐지?
순간 허허실실(虛虛實實)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혹시?’
난 라헬을 가만히 쏘아보다가 말했다.
“아르마의 영혼을 사는 게 나을까?”
“전 무타진을 추천하고 싶지만, 지웅 님은 원체 제 말을 안 들으시잖아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아르마의 영혼을 드리겠…….”
라헬이 말을 하며 아르마의 영혼을 내게 밀려 했다.
“잠깐.”
난 그런 라헬의 행동을 제지했다.
우뚝.
라헬이 그대로 멈췄다.
“역시 무타진을 사야겠어.”
순간.
“……!”
라헬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입에는 오싹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모로 꺾었다.
“정말 그러시겠어요?”
“응.”
“정말 그러시겠냐구요?”
“그럴 거라고. 무타진의 영혼을 사겠어.”
그 말에 라헬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이마에 힘줄이 불뚝 돋아났다.
그리고 발광하기 시작했다.
“무타진이라니이이이이! 그런 쓰레기 같은 영혼의 힘을 가져서 뭘 하겠다는 건데요!”
하, 하하하…… 역시나 덫을 친 것이었어.
“약아빠진 놈. 시끄럽고 빨리 무타진의 영혼이나 내놔.”
라헬에게 끌려가던 줄을 내가 강하게 당겼다.
“정말 후회 안 하시겠어요? 무려 10링크나 되는 영혼이라구요. 잘 생각해 보세요.”
“계속 입 아프게 하지 마.”
“……젠장.”
뭐, 젠장?
방금 젠장이라고 했어, 저 자식이?
내가 저놈의 멱을 잡고 흔들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라헬이 무타진의 영혼을 손으로 살짝 밀었다.
그러자 내게 날아온 무타진의 영혼이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라헬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무타진의 힘을 갖게 된 걸 축하드려요, 고객님. 다음번엔 더 많은 링크를 들고 오세요~!”
“거지는 빨리 꺼져라?”
“잘 알고 계시네요.”
라헬의 쌀쌀맞은 음성과 함께 어두운 공간이 사라지고 우리 집 앞 골목길이 나타났다.
사실 이번에도 혹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능력이 있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내 생각에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만큼 고차원적인 능력을 갖게 되려면 훨씬 많은 링크가 필요할 듯했다.
그러기 위해선 링크를 쓰지 않고 모으는 것보다, 날 성장시켜 앞으로의 선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았다.
“후우.”
이제 5월인데, 하늘을 가득 덮은 먹구름 탓인지 입김이 나왔다.
“이걸로 두 개의 힘을 얻었어.”
“방금 얻은 힘에 대해 알려줄 게 있다.”
내 어깨에 앉아 있던 카시아스가 말했다.
“응? 낭아권?”
카시아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인드 탭을 열어라.”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2/2
영매 : 2
아티팩트 소켓 0/1
보유 링크 : 1
영력이라는 항목이 2에서 2/2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없던 항목이 생겼다.
영매? 저게 무슨 뜻이지? 카시아스는 당연히 저게 뭔지 알려주려고 마인드 탭을 열어보라 한 것이겠지.
“설명해 줘, 카시아스.”
“영매(靈買). 말 그대로 네가 사들인 영혼이라는 뜻이야. 그 뒤에 숫자 2는?”
“사들인 영혼의 수네.”
“그렇지.”
“그런데 왜 영매라는 항목이 이제 나온 거야?”
“그 전까지는 있어봤자 별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필요성이 생겼어.”
“어째서?”
“영매를 터치해.”
난 시키는 대로 허공에 보이는 글자를 터치했다.
팅.
맑은 소리와 함께 영매가 최상단으로 올라가며 다른 글자들을 지우고서 이런 화면이 떠올랐다.
영매
패시브 소울 : 1
―강인한 육신[소라스]
액티브 소울 : 1
―낭아권[무타진/소모 영력 1/재충전 5초]
“패시브 소울(Passive Soul)…… 액티브 소울(Active Soul)?”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겠어?”
“글쎄…… 근데 여태껏 한글로 표기되다가 저 두 개는 왜 영어로 나오는 거야?”
“아티팩트 소켓은 그럼 한글이었나?”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한글로 쓰이긴 했으나 영단어였다.
“이 마법, 오류 같은 게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말했지. 마인드 탭의 항목들은 네게 가장 익숙한 활자로 표기가 된다고.”
“한글이 가장 익숙한데?”
“착령(着靈).”
“……뭐?”
“패시브 소울을 그나마 한글로 표현한 거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넌 무슨 말인지 전혀 감도 못 잡겠지.”
“그러니까 모든 항목이 무조건 한글로 표기되는 게 아니라, 각 항목마다 내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활자로 표기된다 이거야?”
“그래.”
그럼 패시브 소울의 뜻은…….
“영혼의 힘을 사기만 하면 항상 그 영혼의 힘이 발휘된다는 건가?”
“맞다. 반대로 액티브 소울은 사들인 영혼의 힘을 원할 때 발동해야 하지.”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은 MMORPG게임과 닮은 점이 제법 많았다.
혹시 데브게니안 데륙에도 그런 게임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 액티브 소울의 힘을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기술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발현하고 기술의 이름을 외쳐라.”
“……그런 부끄러운 짓을 꼭 해야 돼?”
“시험 삼아 지금 해봐. 마침 지나가는 사람도 없으니.”
난 아직 집 근처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로변이 아닌지라 날 지켜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고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런 다음 마음속으로 낭아권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끌어 올렸다.
“낭아권.”
이어 작은 음성으로 기술의 이름을 말했다.
순간!
쐐애애애애액!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서운 속도로 주먹이 날아갔다.
눈 한 번 깜빡하는 동안 뻗어나간 주먹은 남의 집 담벼락을 그대로 때렸다.
쾅!
퍼서석.
“……!”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오래된 담벼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카, 카시아스. 이거 어쩌지?”
당황해서 질문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조금 전까지 내 어깨 위에 있던 카시아스는 어느새 저 멀리 도망치는 중이었다.
치사한 놈 같으니라고!
결국 나도 카시아스의 뒤를 따라 달렸다.
* * *
버스 정류장에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카시아스는 어느새 다시 내 가방에 올라타더니 투명하게 모습을 감췄다.
“방금 그게 낭아권이다.”
“이거 제대로 한 대 맞으면 그냥 기절하겠는데.”
“아울러 네가 소라스의 육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담벼락과 함께 네 주먹도 부서졌겠지.”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 전의 비리비리한 몸이었다면 낭아권을 몸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인드 탭을 열어 영력을 확인해 봐.”
시키는 대로 마인드 탭을 열어보니 영력의 항목이 1/2로 바뀌어 있었다.
“수치가 1 줄었어.”
“내가 전에 말했었지. 영혼의 힘 중에는 네 영력을 소모해야 하는 기술도 있다고.”
“그랬지.”
“낭아권은 액티브 소울이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선 1의 영력이 필요해. 따라서 네 영력에서 1이 소모된 것이지. 하지만 소모된 영력은 1분이 지나면 다시 차오른다.”
“그렇구나. 한마디로 낭아권은 연속으로 두 번을 사용하게 되면 다시 한번 사용하기 위해서는 영력이 차오르는 1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네.”
“그래. 하지만 낭아권을 두 번 연속 딜레이 없이 사용하는 건 무리야.”
그러고 보니 낭아권을 설명하는 란에 재충전 5초라는 항목이 있었다.
“낭아권을 한 번 사용하면 5초를 기다려야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맞다. 연달아 사용할 경우 네 근력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그만큼의 딜레이를 두는 거지.”
“엄청 섬세하네.”
“실제로 낭아권을 만들어낸 무타진 역시도 한 번 낭아권을 사용하고 난 다음엔 5초 이상 쉬어야 재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타진은 자신보다 센 상대를 만나 딜레이 없이 낭아권을 세 번 연속 사용하고 말았지. 그 바람에 오른손의 뼈는 아작 나고 인대는 파열, 근육은 전부 끊어져 평생 불구로 살다 죽어야 했어.”
“난 강제 딜레이가 걸려 있어서 다행이네.”
“레이브란데의 배려겠지.”
“그런데 이 기술로 어떤 선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편의점에서 근무할 때처럼 불량배로부터 선량한 사람을 구할 수 있겠지. 그리고 꼭 선행할 때만 기술을 써야 하는 건 아니야. 네 몸을 지키는 데도 사용할 수 있어. 태진이 패거리한테 본 때를 보여줘라. 좋은 기회잖아.”
아…… 그래, 그걸 잊고 있었어.
영혼의 힘을 꼭 선행에만 사용하란 법은 없지.
우선은 시궁창 같은 내 인생부터 바꾸는 거야.
더는 이렇게 엉망으로 살아갈 순 없어.
어쩌면 여태껏 난 주변 상황만을 원망해 왔었는지 모른다.
나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 그렇지 않다고 외면했으나,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원망만 했을 뿐,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변 상황이 날 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내가 변하면 주변 상황도 전부 바뀐다.
이제는 파문을 일으킬 때다.
얼어붙어 있던 발을 내디딜 때다.
* * *
버스는 학생들을 가득 실어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데 늘 입던 교복이 오늘따라 어색했다.
몸이 변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 교복은 키에 맞추다 보니 품이 좀 넉넉했다.
교복을 구매할 당시 어머니는 몸에 맞게 품도 줄이자고 했지만, 난 마른 멸치 같은 내 몸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 싫어 이대로가 좋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런데 그 억지가 이제 와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지금은 너무나 잘 맞았다.
진작부터 이러려고 맞춘 것 같을 정도였다.
신이 났다. 그러다 보니 발걸음도 가벼웠다.
학생들 틈에 섞여 평소보다 리드미컬하게 걸어가는데, 큰 길 어귀에서 익숙한 얼굴 셋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태진이와 상호, 상진이였다.
‘이렇게 일찍 등교를 해?’
한데 자세히 보니 등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가방이 없는 거야 그렇다 치고, 교복 차림이 아니었다.
셋 다 사복을 입고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1학년 남학생 한 명을 잡아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근처를 지나가던 다른 학생 몇 명이 이를 봤지만 아무런 제지도 못했다.
지광고에서 태진이는 얼굴을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이었다.
태진이가 학교 짱은 아니지만 성질이 더럽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래서 괜히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싫어 모른 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난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당장 걸음을 옮겨 태진이 패거리가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