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08화
“아니……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는데…….”
정수리를 제대로 찍힌 모양이다.
점장님은 이마를 슥 닦더니 화들짝 놀라서는, 앞주머니에 넣었던 아기 새를 다급히 내게 건넸다.
“거, 건투를 빈다.”
[아기 새를 내 쪽으로. 꼬리로 감싸고 있을 테니.]
[오케이.]
난 아기 새를 카시아스가 앉아 있는 어깨에 놓았다.
그리고 나무에 올랐다.
두 손으로 기둥을 잡고 두 발을 박찼다.
나무 기둥은 그렇게 큰 아름이 아니었다.
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월하게 나무 기둥을 오를 수 있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어미 새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어디 한 군데 제대로 쪼일 상황!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 없이, 오른손을 뻗어 어미 새의 모가지를 틀어쥐었다.
[이제 부러뜨려 죽일 거냐?]
그럴 리가!
한 손으로 어미 새를 반항하지 못하게 한 뒤, 나머지 손과 다리만을 이용해 나무를 올랐다.
가지 한편에 새 둥지가 보였다.
아기 새를 거기에 내려놓고, 어미 새도 덩달아 내려놓았다.
어미 새는 아기 새의 안전이 확보되자 더 이상 날 공격하지 않았다.
“와아~!”
짝짝짝짝!
밑에서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쩐지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태어나서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일면식도 없는, 저토록 많은 사람에게 박수갈채를 받아본 적이 있었나?
없었다.
그나마 가족들이 생일날 모여 축하한다고 박수를 쳐준 것이 전부다.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난 나무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타탁!
“……어?”
그래놓고 당황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뛰어내렸는데, 그 높이가 상당했다.
한데 두 다리에 아무런 무리가 가질 않았다.
낮은 높이에서 사뿐히 내려선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나만큼 날 지켜보던 사람들도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다시 열렬히 박수를 쳐주었다.
점장님도 벌떡 일어서서 내 어깨를 탁탁 두들겼다.
“역시 유지웅! 그 정도의 날렵함은 보여야 조각 같은 몸에 대한 의리지!”
“젊은 청년이 대단하네, 아주!”
“멋졌어~ 총각~!”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이거…… 뭔가 기분이 엄청 좋다.
그때 머릿속으로 기계음이 들려왔다.
띠링!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새를 구해줬네요~? 하마터면 그렇잖아도 피곤한 119대원들을 호출할 뻔했는데, 참 잘했어요~! 선행을 쌓아 8링크가 주어집니다!
8링크? 방금 8링크라고 했어?
대박이다!
여태껏 가장 크게 얻은 링크가 3이고, 나머지는 다 1링크씩 적립되었다.
그런데 한 번에 8링크라니!
개똥을 치우거나 유주 누나를 취객에게 구해준 건 1링크였고, 할아버지의 수레를 밀어준 건 3링크였다.
그 선행들보다 아기 새를 구해준 것이 더 값어치 있단 얘긴가?
생명을 구했기 때문에?
그렇게 따지면 유주 누나를 도와준 것 역시 생명을 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취객이 눈 돌아가서 유주 누나를 흉기로 찌르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너무 비약적이긴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 없다.
따라서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럼 뭐지?’
고민에 빠진 내게 사람들이 다가와 저마다 한마디씩을 건넸다.
하지만 지금 내 귀엔 그들의 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대충 미소로 받아넘기며 계속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어?”
나도 모르게 주변의 사람 수를 세어봤는데…… 점장님까지 여덟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카시아스를 만난 이후부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사람들을 도와줬을 때, 그들은 혼자였다.
유주 누나를 구해주었을 때도, 누나 혼자 곤경에 처해 있었다. 그때의 선행은 모두 1링크로 보답 받았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수레를 밀었을 땐, 할아버지를 도와주던 손자가 있었고, 그들을 돕고 싶어 했던 김치 아주머니가 함께였다.
전부 해서 셋.
난 수레를 밀어준 대가로 3링크를 받았다.
누나의 생리대를 사 왔을 때도 받은 건 1링크였다.
그리고 지금.
아기 새의 무사 구조를 바라는 사람이 여덟이고, 선행을 한 결과 8링크를 얻었다.
‘그래, 그거야!’
결국 내가 선행을 베풀었을 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만큼 링크로 환산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지런하지 못한 누나의 신발을 정리한 것도 선행은 선행이다.
하지만 누나는 자신의 신발을 누군가가 가지런히 놓아줬으면 하는 생각을 안 했다.
그렇다면 이건 내가 선행을 베풀었다고 해도 노카운트다.
도움을 바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선행을 할 때 도움을 바라는 이가 몇 명인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오류가 생긴다.
‘그럼 개똥은 뭐였지?’
내가 그것을 치울 땐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머리가 살짝 복잡해질 수도 있는 문제지만 난 금방 답을 찾아냈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지나가면서 개똥을 본 누군가가 속으로 그랬겠지. 저것 좀 누가 치워주었으면.’
만약 그런 바람을 가진 이가 두 명이었다면 2링크를 받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똥을 치우길 바라는 사람은 있었어도, 작은 하드 막대를 치우길 바라는 이는 없었기에, 이것 역시 노카운트된 것이다.
나 같아도 하드 막대엔 무심하겠다.
그렇지만 개똥은 너무 눈에 잘 띄고, 불결해서 누군가 좀 치워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물론 이것은 추측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가장 그럴듯하다.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의 법칙을 알아내려고 깊은 생각에 빠진 내 귀로 점장님의 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해결했으니 이제 다시 등산하러 가자, 지웅…… 억!”
점장님이 말을 하다 말고 허리를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왜 그러세요?”
“허, 허리가…….”
“허리가 왜요?”
“나무에서 떨어질 때 삐끗한 모양이다.”
“네? 많이 아프세요?”
“아…… 아프긴 하지만 너와 등산을 하기로 했다면 정상까지 올라서는 것이 의리이이이이으아으아아아악!”
의리를 외치던 점장님이 비명을 질렀다.
“점장님, 저와의 의리도 중요하지만 아픈 점장님의 몸을 치료해 주는 것도 몸에 대한 의리인 것 같은데요.”
“그, 그런가?”
“그럼요.”
점장님은 마지못해 수긍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오늘은 이만 내려가야겠구나, 지웅아.”
“네.”
“의리 있게 날 부축해 줄 수 있지?”
“그럼요.”
* * *
띠링!
―괜히 설치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친 점장님을 도와주었어요. 선행을 쌓아 1링크가 주어집니다.
난 점장님을 주차장까지 부축해 내려왔다.
점장님은 차에 올라타 겨우 운전을 해서, 날 집 앞에 데려다주었다.
그러고는 바로 병원을 찾아 떠났다.
지금 시간 7시 00분.
이제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집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샤워한 뒤, 교복으로 갈아입고 책가방을 챙겨 나왔다.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2
아티팩트 소켓 0/1
보유 링크 : 11
“음흠흠~”
11이라는 숫자가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어느새 내 어깨에 올라탄 카시아스가 말했다.
“기분 좋아 보이는구나.”
“당연하지. 선행의 법칙을 알았으니까.”
“선행의 법칙?”
“링크의 액수가 어떻게 정해지는 건지 알았다고.”
“그 정도는 나도 눈치챘다. 도움을 바라는 사람의 수를 반영하더군.”
“어? 눈치챘네?”
“대마법사의 지혜를 뭘로 보는 거냐.”
탁!
“아야! 자꾸 꼬리로 때릴래?”
“아무튼 축하한다. 법칙 하나를 알아냈으니 이제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겠네.”
“당연하지.”
“영혼을 사러 갈 거냐?”
“물론! 소울 커넥트!”
낭아권(狼牙拳)
다시 그 검은 공간, 소울 스토어에 들어왔다.
내 앞엔 미약한 빛을 발하는 영혼 네 개가 보였다.
샤라라라라랑―
시원한 기계음이 들렸고, 보랏빛 장발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미남자, 라헬이 나타났다.
그는 예의 바르게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지웅 님. 두 번째 만남이네요.”
라헬이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저 미소에 속으면 안 된다.
놈은 뼛속까지 장사꾼이다.
같은 가격에 가장 값어치가 떨어지는 물건을 먼저 팔아먹으려고 한다.
처음엔 그놈이 단순히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확실히 알겠다.
돈이 있을 땐 무조건 굽히고 보는 게 장사꾼이 틀림없었다.
“오늘은 11링크나 들고 오셨네요? 그래서 살 수 있는 영혼이 두 개 더 추가되었답니다. 왼편의 희미한 빛을 내는 두 개의 영혼이 저번에 봤던 파펠과 라모나구요, 그보다 살짝 더 밝은 오른쪽 두 개의 영혼이 10링크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영혼이랍니다. 그들의 힘을 습득하는 데 필요한 영력은 2구요.”
확실히 좋은 영혼일수록 점점 더 빛이 밝아지는구나.
“그럼 새로운 영혼들에 대해 설명해 드리죠.”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들어야 한다.
라헬과 나 사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라헬이 10링크의 영혼 중 하나를 가리켰다.
“이 영혼의 이름은 아르마. 살아생전 그녀의 별명은 바늘꽃이었어요. 바늘꽃의 꽃말은 섹시한 여인이죠. 다르게는 마성의 여인이라고도 불리었답니다. 그만큼 아름다웠죠. 그녀가 마음을 먹으면 유혹하지 못하는 남자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그녀의 가장 큰 능력은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죠. 어때요?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라헬이 줄을 휙 당겼다.
“전혀.”
어림도 없지. 다시 내 쪽으로 줄을 당겨왔다.
내가 남잔데 같은 남자를 꼬셔서 뭘 하자는 거야.
“다음 영혼의 이름은 무타진. 삼류 낭인으로 싸움 실력도 대단치 않았고 그의 비기인 낭아권 역시 크게 뛰어난 기술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웅 님의 세계에서 사용하기엔 아주 좋은 기술이에요. 무타진의 영혼을 사게 되면 낭아권을 익히게 되죠.”
“낭아권이 정확히 뭔데?”
“말 그대로 이리의 어금니에 뜯긴 것처럼 아프다는 뜻이에요. 적을 향해 휘두른 주먹에 제대로 맞으면 0.2톤의 무게가 1미터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유발하죠.”
그거 엄청나잖아?
내가 흥미 있어 하자 라헬의 입가에 드리운 미소가 짙어졌다.
“어때요? 끝내주는 능력이죠? 제가 볼 때 지금 지웅 님께 가장 필요한 능력은 바로 이거예요. 강력 추천해 드리죠.”
어? 뭐야?
오늘은 라헬이랑 내 생각이 통했나? 아주 적극적으로 무타진의 능력을 권하네?
“그래? 그럼 무타진의 능력을…….”
난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점점 더 귀에 걸리는 녀석의 입꼬리에 내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라헬이…… 밧줄을 확 당겼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