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히어로 005화
그거 아주 초인적인 능력이네.
가히 소머즈나 육백만 불의 사나이 급이다.
“두 번째 영혼의 이름은 소라스.”
라헬이 가운데 있는 영혼을 가리켰다.
“소라스의 능력 중 가장 뛰어났던 건 강인한 육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만큼 맷집도 뛰어났죠. 힘도 제법인데 그에 비해 민첩성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자면 데브게니안 대륙에선 겨우 삼류 무사에 턱걸이하는 수준이었죠.”
어째…… 저렇게 말하니까 엄청나게 안 땡긴다.
게다가 소라스의 능력을 설명하는 라헬의 표정도 떨떠름하다.
“마지막 세 번째 영혼의 이름은 라모나.”
라헬이 가장 오른쪽 영혼을 가리켰다.
“라모나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자가 치유 능력이었어요. 그만큼 그녀는 죽음의 위기에서 여러 번 살아나기도 했죠. 이건 라모나의 가문 사람들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하나의 특징이었죠. 복부 깊이 칼이 들어와도 응급처치만 해두고 사흘이면 깨끗하게 나아 버릴 만큼 자가 치유력이 어마어마하답니다.”
우와, 무슨 엑스맨을 보는 것만 같다.
사실 지구에도 초능력자들이 존재한다는 말이 돌긴 한다.
그러나 난 지금껏 그런 초능력자들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초능력자들은 늘 SF판타지 영화나 소설, 만화 속에서만 접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초능력자들과 비슷한 입장이 되려는 순간에 서 있었다.
“파펠, 소라스, 라모나. 어떤 영혼의 능력을 사시겠어요?”라헬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으음.”
이거 참 고민되는 일이다.
일단 소라스는 제외.
라헬도 소라스의 능력을 설명할 땐 영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럼 남은 건 파펠과 라모나인데, 파펠의 능력은 뛰어난 청력, 라모나는 일반인보다 월등한 자가 치유 능력이다.
그럼 내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혹시 자가 치유 능력이라는 걸로 다른 사람도 치유할 수 있어?”
“아니요. 말 그대로 ‘자가’ 치유 능력이라 그건 불가능해요.”
그렇군.
괜한 기대였나?
이제 겨우 가장 싼 능력을 살 수 있게 된 건데, 너무 큰 걸 바란 모양이다.
그 능력이 남도 치유할 수 있다면 엄마에게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불가능하겠지.
아무튼 그렇다 해도 세 가지 중에 가장 매력적인 능력인 것은 맞다.
“결정했어. 난 라모나의 능력을…….”
라헬의 입꼬리가 양쪽 귀에 걸렸다.
그런데.
퍽!
“윽.”
카시아스가 뛰어올라 꼬리로 내 울대를 때렸다.
덕분에 난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왜 이래?”
카시아스는 어느새 내 어깨에 올라탔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지금 너한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니야.”
“그럼, 파펠?”
“그딴 거 가져서 뭐할래? 어차피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너 몰래 하는 얘기라곤 네 흉보는 게 다일 텐데.”
……딱히 틀린 말이 아닌지라 반박할 수 없다는 게 슬프다.
“그럼 설마 소라스?”
“바로 그 설마야.”
순간 라헬이 미소 띤 얼굴로 카시아스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저런 표정이 가능하지? 눈이랑 입이 완전히 따로 논다. 섬뜩하다 못해 그로테스크할 정도다. 아무튼 기분이 상한 모양인데, 나도 라헬의 심정 이해 한다. 애써 좋은 거 추천해 줬는데, 이상한 거 사라 그러니까 기분 나쁠 만하지.
“하지만 라헬이 소라스의 능력은 별로라잖아. 맷집이랑 힘이 좀 센 게 다라는데.”
“그건 데브게니안 기준에서지. 데브게니안의 삼류 무사가 지구에 오면 효도르 급은 될 거다.”
“저, 정말이야?”
“그래.”
자기 치유 능력이 딱히 엄마의 병환 치료에 도움 되는 것이 아니라면 효도르가 되는 게 더 나을 듯했다.
“그럼…… 소라스를…….”
말을 하며 별생각 없이 라헬을 바라봤다.
그런데 라헬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부릅떠진 두 눈엔 핏발이 다닥다닥 일어났다.
“라, 라헬?”
“잘 선택하세요, 유지웅 씨. 한 번 선택하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어요. 정말 소라스의 힘이 갖고 싶으세요? 네? 이 쓰레기 같은 능력이 갖고 싶단 말이에요?!”
이 녀석 봐라?
갑자기 이전과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신경 쓰지 말고 선택해라. 어차피 저건 허상 속의 캐릭터다. 레이브란데가 설정해 놓은 프로그램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야. 지구로 따지자면 온라인 게임 속 NPC와 같은 거지.”
레이브란데란 작자는 괴짜 혹은 사이코일 것이다.
이런 괴이한 마법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소라스를 사겠어.”
“칫, 안 넘어가네.”
안 넘어가네?
그럼 저 녀석, 내가 가장 좋은 영혼의 힘을 사지 못하게 방해했던 거란 말야?
괘씸함에 미간이 찌푸려지는 순간, 소라스의 영혼이 내 안으로 훅 빨려 들어왔다.
“어?”
짝짝짝.
라헬이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 웃는 얼굴로 박수를 쳐줬다.
“축하드립니다, 지웅 고객님. 소라스의 힘을 얻게 되었어요. 가장 좋은 영혼의 힘을 가지게 된 만큼 잘 사용하시길 바랄게요.”
속 보인다.
“손님을 속이려 들다니, 건방지네.”
“유지웅 님, 이제 링크 없으시죠? 땡전 한 푼 없는 거지는 손님이 아니므로 응대해 드리지 않아요. 안녕히 가세요.”
라헬의 쌀쌀맞은 태도와 함께 어둠이 물러가고 다시 편의점 내부가 나타났다.
카시아스는 여전히 내 어깨에 앉아 있었다.
너무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버리는 바람에 어안이 벙벙했다.
“뭐야? 된 거야? 마인드 탭.”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2
아티팩트 소켓 0/1
보유 링크 : 0
보유 링크가 0인 걸 보니 확실히 영혼의 힘을 사긴 한 모양인데.
“뭐가 바뀐 건지를 모르겠네.”
“네 몸을 더듬어봐.”
“…….”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봐.”
고양이 주제에 묘하게 거부 못 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난 내 몸을 이곳저곳 더듬어보다가 느껴지는 이질감에 굳어 버렸다.
“이거…… 진짜 내 몸 맞아?”
“맞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던 내 몸에 근육이 붙어 있었다.
난 상의를 위로 휙 들었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초콜릿 복근, 빨래판 식스팩이었다.
그 위로 떡하니 자리 잡은 가슴은 넓고 탄탄했다. 조각을 해놓은 것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상의를 들어 올린 팔에도 잔 근육과 툭 불거진 힘줄들이 가득했다.
이두와 삼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장난 아니다…….”
“네 힘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을 거야.”
그래, 효도르 급이라고 했었지?
“맷집 또한.”
“하하하……! 소라스가 정답이었어.”
“다음번에도 라헬에게 속는 일이 없도록 해. 영악한 놈이더군.”
“그럴 거야.”
처음에는 좋은 놈인 줄 알았더니만.
아무튼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이게 내 몸이라니.
이렇게 단단하고 탄력 넘치는 근육들이 내 몸에 가득하다니.
너무 갑자기 완벽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지라 직접 만지고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근육이란 자고로 오랜 시간 운동을 해야 자리 잡히는 법이다.
그런데 난 그런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단지 선행을 해 쌓은 포인트만으로 이런 몸을 얻었다.
그것도 단 5링크로.
나중에 100링크 정도 되는 영혼의 힘을 사게 되면 얼마나 커다란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엄마의 병을 고치는 것도 꿈은 아닐 것이다.
“좋아! 앞으로 더!”
앞으로도 열심히 선행을 쌓아서 점점 더 좋은 능력을 얻는 거야.
그때.
딸랑.
아가씨가 들어왔고.
“어머나!”
“…….”
상의를 들어 올린 날 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도로 나가 버렸다.
“푸하하하하하하! 아주 가관이구나! 아하하하하하하하!”
카시아스가 편의점 바닥에서 배를 붙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뻥.
꼴 보기 싫어서 걷어찼다.
그때 마침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고.
“어머, 지금 고양이 학대하시는 거예요?”
“…….”
난 십 분 동안 손님에게 그건 오해라고 변명해야 했다.
손님이 나간 뒤, 카시아스는 또 포복절도했다.
내 팔자야.
거듭나다
오후 9시 50분.
늘 이 시간이면 편의점 문이 힘차게 열린다.
딸랑―!
“지웅이, 좋은 밤~!”
그녀가 매장으로 들어서면 산뜻한 라임향이 퍼진다.
해맑은 웃음, 리드미컬한 걸음, 그에 맞춰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언제나 날 미소 짓게 만드는 그녀의 이름은 한유주.
희고 고운 얼굴에 큰 키는 아니지만 밸런스가 딱 잡혀 꽉 찬 느낌이 드는 몸매가 매력적인 누나다.
얼굴은 청순하지만 나올 곳 탄력 있게 나오고 들어갈 곳은 쏙 들어간 S라인의 몸매는 한참 혈기왕성할 남정네들의 상상력을 시도 때도 없이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주 누나는 청순함과 섹시함, 두 가지 매력을 겸비한 완벽한 여자다.
그러면 안 되지만 나도 19세 사내놈인지라 가끔 유주 누나를 보며 야릇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꿈속에서 나와 말로 차마 설명하기 힘든 관계를 나누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다.
유주 누나의 나이 올해로 스무 살.
나보다 한 살 연상이며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고 있다.
물론 유주 누나 혼자서 알바를 하는 건 아니다.
야간 알바는 여자 혼자 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게다가 유주 누나 같은 미인이 하기엔 더욱더.
취객들이 들어와 진상에 시비를 거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양아치 같은 놈들이 수작질을 부릴지도 모른다. 정말 재수가 없으면 강도한테 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유주 누나와 함께 일하는 인간은 매일같이 지각이다.
기본이 10분이다.
때문에 난 그 인간이 올 때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유주 누나의 곁을 지킨다.
사실 둘이서만 있는 이 시간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사무실에서 녹색 유니폼을 걸친 유주 누나가 나왔다.
“별일 없었지?”
“네. 포스 두 대 다 현금 루즈 없어요.”
“오케이~! 응? 어머나~!”
갑자기 카운터 바닥을 바라보던 유주 누나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이게 누구야?”
유주 누나는 냅다 카시아스를 들어 올리더니 품에 안고 얼굴을 비벼댔다.
“어쩜~ 너무 예쁘다. 너 누구니?”
유주 누나는 마치 카시아스가 사람이라도 되는 양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저 망할 고양이는 보통 고양이가 아니라 정말 대답할지도 모른다.
난 만약의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선수를 쳤다.
“카, 카시아스예요!”
“카시아스?”
“네. 길냥이 같은데 절 따라오길래 어제부터 제가 키우기로 했어요.”
“그랬구나~ 카시아스 안녕? 난 유주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유주 누나가 카시아스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러자 유니폼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누나의 풍만한 가슴이 카시아스의 전신을 확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