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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히어로-4화 (4/153)

데일리 히어로 004화

지붕에서 쥐 여러 마리가 달리기 시합을 했다.

“…….”

사실 우리 집은 엄청나게 낡았다.

보증금 500에 월 15만 원.

그래도 이 가격에 거실 하나, 방 두 개, 화장실 하나, 넓은 마당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한데 이번 달부터 집세를 20만 원으로 올려달라는 바람에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가족은 아빠와 누나가 벌어오는 돈이 병원비를 감당 못해 빚이 산더미다.

그래서 나도 한 달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버지를 돕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것도 내겐 난관이었다.

빵 셔틀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이후로 위축된 삶을 살다 보니 어느 가게에서도 나를 쓰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맘씨 좋은 점장님을 만나 운 좋게도 알바 자리를 구하게 된 것이다.

거리도 가깝다.

집에서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편의점이었다.

난 거기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알바를 한다.

사실 고등학생의 경우 이런 데서 알바를 하면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우리 점장님은 최저임금을 지켜주셔서 달에 45만 원 정도는 아버지 손에 쥐어드릴 수 있었다.

편의점 점장님은 그야말로 ‘정도를 걷자!’가 신조인 분이다.

정도가 아니면 걷지 말 것이며,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아야 하고, 의리를 저 버리는 건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라 말하시는 분이다.

나는 그런 점장님을 좋아한다.

지금은 5시 40분.

이제 슬슬 편의점으로 나가봐야 할 때였다.

“카시아스, 나 알바하러 가야 돼.”

“편의점 알바 그딴 거 때려치고 선행이나 더 해.”

“내가 편의점 알바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그동안 지켜봤으니까.”

하긴 처음 대면하자마자 내게 돈이 필요하다는 걸 다 알고 있었지.

“진짜 스토커가 따로 없네.”

알바나 가자.

* * *

쫄래쫄래쫄래쫄래.

이거 은근히 신경 쓰인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만든다.

카시아스는 가증스럽게도 평범한 고양이인 척하며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동네 골목길을 나와 횡단보도까지 걸어가는데도 계속 쫓아왔다.

결국 난 참지 못하고서 녀석에게 버럭 소리쳤다.

“제발 알바는 좀 편한 마음으로 가자! 스토커도 아니고 뭐하는 짓이야, 이게!”

그때 엄마 손을 잡고 내 옆을 지나가던 아이가 빼액!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저 오빠 고양이한테 화내~! 흐어엉!”

“동물 가여운 줄 모르고, 쯧쯧.”

모녀는 내 곁에서 후다닥 멀어졌다.

입을 쩍 벌리고 어버버거리는 날 보며 카시아스는 히죽거렸다.

“관두자. 싸워서 뭐하냐.”

체념하고서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편의점에 가려면 여기를 건너야 한다.

건너자마자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바로 편의점이 나온다.

그나저나 여기 신호는 은근히 길단 말야.

지루함에 열심히 눈 운동만 하는데, 저 멀리서 깡마른 할아버지가 폐품이 가득 실린 수레를 힘들게 밀고 오는 게 보였다.

난 그 광경을 별생각 없이 지켜봤다.

그러다 수레가 내게 가까워졌을 무렵, 신호등의 보행 신호가 들어왔다.

내가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카시아스가 꼬리로 뒷목을 탁 때렸다.

“왜?”

“선행해야지. 저 할아버지 지금 저 속도로 수레 끌다간 신호 바뀌기 전에 못 건넌다.”

“신호 바뀌기 전에 못 건널 걸 미리 예측해서 도와주라고? 그게 선행이야?”

“꼭 그게 아니더라도 무거운 수레 끌며 힘들어하는데 밀어주면 그게 선행이지.”

듣고 보니 그러네.

“알았어.”

난 뒤돌아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저기…….”

“으응?”

말이 잘 안 나온다.

한 달 동안 편의점 알바 하면서 얼굴이 많이 두꺼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평소에 하지도 않던 짓을 하려니 괜히 몸이 배배 꼬인다.

괜히 말 걸었다가 오지랖 떨지 말라고 욕먹으면 어쩌지?

“제,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잉?”

할아버지가 수레를 끌다 말고 놀라서 날 바라봤다.

“수, 수레 밀어드리겠다구요.”

“에헤이~ 됐어요, 됐어. 괜찮아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그 미소 덕분에 나도 용기가 생겼다.

“사양 않으셔도 돼요~”

난 수레 꽁지로 가서 힘껏 밀어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수레를 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형아~”

“……어, 그래.”

당황했다.

내게 인사를 건넨 건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였다.

할아버지 혼자서 미는 게 아니었구나.

해맑게 미소 짓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자, 형이 도와줄게. 으랏차!”

갑자기 없던 힘이 불끈 솟는다!

아이의 옆에서 수레를 힘껏 밀었다.

수레가 전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 전에 무사히 건너편 인도로 넘어왔다.

원래는 여기까지만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가는 방향이 내가 가려는 곳과 같았다.

그래서 편의점 앞까지 계속 밀었다.

“할아버지, 제가 이제 아르바이트를 가야 해서요.”

“아이고~ 여까지 밀어준 것만두 고마워요. 청년이 요새 사람 같지가 않네~ 복 받을 거예요~”

“형아!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와 아이는 내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수레를 끌고, 밀며 앞으로 나갔다.

난 멀어지는 수레를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우리 옆집에 사는 김치 아주머니였다. 김치 아주머니는 김장을 할 때마다 동네 친분이 있는 사람들한테 김치를 돌린다.

그래서 모두 아주머니를 김치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아, 김치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지웅아~ 좀 멋있다?”

“네?”

“수레 말이야. 뒤따라오면서 보니까 어린것이 할아버지 돕겠다고 수레에 매달려 낑낑대는 게 측은해서 내가 도와줄라 그랬는데, 참 좋은 일 했어.”

“아뇨, 뭐…….”

“다음번에 김장하면 지웅이네 특별히 더 많이 가져다줄게.”

“가, 감사합니다.”

“알바 가는 거지? 열심히 해~!”

“네, 안녕히 가세요.”

김치 아주머니가 몸집만큼 푸짐한 미소를 남기고서 갔다.

동시에.

띠링!

기계음이 머릿속에 울리고.

―수레를 밀어주었네요? 참 잘했어요~ 선행을 쌓아 3링크가 주어집니다.

이어 친절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3링크!”

“흐음. 한 번에 3링크라니, 횡재했군.”

“마인드 탭!”

바로 마인드 탭을 띄웠다.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2

아티팩트 소켓 0/1

보유 링크 : 3

마인드 탭에 표시된 3이라는 숫자가 참 흐뭇하다.

“흐흐흐.”

기분이 참 오묘했다.

마치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후 알바비를 받는 것만큼이나 기뻤다.

가장 싸구려 영혼의 힘이 5링크라 그랬지?

이제 2링크만 더 채우면 하나를 살 수 있다.

과연 어떤 힘을 가지게 될까?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으흐흐흐흐.”

“지웅아, 어디 아프면 하루 쉬어라! 정신이 지쳤을 땐 쉬어주는 것이 정신에 대한 의리! 스스로의 몸을 아껴주는 것 또한 정도의 길이다!”

“저, 점장님!”

언제 나오신 거야?

점장님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한 손의 주먹을 꽉 쥐고서 입을 앙다물었다.

“아니에요, 점장님.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거냐?”

“그럼요.”

“착실한 알바가 괜찮다고 하면 믿어주는 것 또한 의리! 널 믿고 난 퇴근하겠다!”

“네~ 걱정 놓으세요.”

점장님은 이미 편의점 유니폼을 벗고 정장 재킷을 걸친 차림이었다.

“그럼 네 시간 동안 편의점의 안녕을 부탁한다!”

“들어가세요.”

점장님은 후다닥 편의점을 나가 주차장으로 달려가셨다.

부아아아앙!

곧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도로에 나선 점장님의 애마 스파크가 빠르게 멀어져 갔다.

“오늘도 술 약속 있으시구나.”

점장님이 서두를 땐 꼭 술 약속이 있을 때다.

그런데 술을 진탕 드시고 난 다음 날이면 꼭…….

“절제해서 드시겠지, 뭐.”

난 내 일이나 열심히 하자.

* * *

띠링! 띠링!

―백 원이 모자라 사탕을 못 사 먹는 아이에게 백 원을 보태주어요~ 선행을 쌓아 1링크가 주어집니다.

―지갑을 두고 간 손님에게 지갑을 갖다 주었네요? 선행을 쌓아 1링크가 주어집니다.

“됐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갈 무렵, 드디어 5링크를 다 모을 수 있었다.

“알바도 하고 링크도 벌고 일석이조네.”

알바를 하다 보니 종종 손님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드디어 5링크를 다 모았군.”

카운터 밑에 웅크려 있던 카시아스가 계산대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이제 영혼의 힘을 사라.”

“어떻게 사는 건데?”

나도 얼른 사고 싶어 죽겠으니 방법을 토해내라, 깜장 고양아!

“소울 커넥트(Soul Connect)라고 말해.”

“소울 커넥트.”

카시아스가 말하는 대로 따라 외쳤다.

그런데 이거 은근히 쪽팔린다.

마인드 탭을 외칠 때도 그렇지만 소울 커넥트란 단어를 외칠 때는 더 부끄럽다.

누구 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손발이 간지럽다.

나도 모르게 오그라든 손을 천천히 펴고 있는데.

“어?”

주변의 광경이 일그러지더니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모든 것이 사라진 공간엔 어둠만이 가득했다.

“여긴 뭐야?”

“영혼을 살 수 있는 곳, 소울 스토어(Soul Store)다.”

카시아스의 설명과 함께 희미하게 빛나는 빛 덩어리 세 개가 나타났다.

덩어리들은 하나하나가 내 머리통만 했다.

“이 불 도깨비 같은 것들이 영혼이야?”

“그래. 지금 네 수중에 있는 링크로 살 수 있는 영혼 세 개다. 다 5링크짜리지.”

샤라라라랑―

머릿속에서 산뜻한 효과음이 들렸다. 그리고 낯선 남자의 음성이 이어졌다.

“어서 오세요, 유지웅 님. 소울 스토어는 처음이시죠? 제 소개를 하죠.”

세 개의 영혼 앞에 갑자기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미남자가 나타났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작은 얼굴, 시원시원하게 뻗은 팔과 다리, 새하얀 피부. 그리고 어깨까지 기른 보랏빛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마지막으로 사람 좋은 미소가 매력적인 사내였다.

그가 한 손을 배에 대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라헬이라고 합니다. 소울 스토어에 온 걸 환영해요.”

라헬.

외모와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소울 스토어에서는 지웅 님께서 소지한 링크로 영혼의 힘을 구입하실 수 있어요. 지금 지웅 님이 소지한 건 5링크이므로 이 옆에 있는 세 영혼 중 하나의 힘을 살 수 있죠. 모두 1의 영력을 필요로 하니 영력이 모자라 구매 못 하는 일은 없으실 거예요. 그런데 이 영혼들의 빛은 매우 약하죠? 빛이 강렬하고 맑을수록 더욱 강한 힘을 지닌 영혼이라는 뜻이에요. 우선 이 영혼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드릴게요. 첫 번째 영혼의 이름은 파펠.”

라헬이 가장 왼쪽 영혼을 가리켰다.

“파펠은 남들보다 뛰어난 청력을 가진 이였죠. 어느 정도였냐면 신경을 집중할 경우, 개미 발걸음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고 해요. 아울러 주변에서 들리는 잡다한 소리 중,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골라 더욱 자세히 들을 수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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