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일리 히어로-3화 (3/153)

데일리 히어로 003화

카시아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환한 빛이 일었다.

또 한 번의 기적이다.

빛은 찰나지간 사라졌다.

이후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지금 뭘 한 거지?

“계약이 무사히 맺어졌다.”

“겨우…… 이걸로?”

뭔가 뒤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다.

그리고 계약을 하는 와중 이해 못할 말이 있었다.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은 뭐야?”

“내가 네게 사용하려 하는 이 마법을 만든 자의 이름이 레이브란데. 그가 만든 마법의 이름이 인과율이다.”

“그럼 지금 네가 나한테 마법을 사용했다는 거야?”

“그래.”

이제부터 내가 선행을 쌓으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지는 거란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카시아스가 앞발을 쭉 내밀었다.

“첫 번째 선행이다. 저 앞에 저거 보여?”

“뭐?”

“열 걸음 앞에. 바닥에 놓인 저거.”

“열 걸음 앞…….”

내 시선이 길바닥을 훑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거기엔 차마 오래 쳐다보기 힘든 무언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혹시…….”

“그래, 그 혹시다. 저 개똥을 치워라.”

“…….”

뭐, 이런 개똥 같은 경우가.

“저걸 치우라고?”

“선행해야지.”

나는 집안에서 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동물의 변을 치워본 적 또한 없다.

내 평생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일을 지금 하게 생겼다.

“빨리 선행해.”

카시아스가 꼬리로 내 뒤통수를 탁탁 때렸다.

학교에서는 빵 셔틀.

지금은 선행 셔틀이 된 기분이다

선행, 그리고 선행

우리 집은 작은 마당이 딸린 낡은 집이다.

집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병원에 계시고 아버지는 아직 가게에서 돌아오지 않으셨다.

누나는 직장에 나갔을 시간이다.

난 비닐봉지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으.”

억지로 개똥을 비닐봉지에 담고, 입구를 꽉 묶었다.

카시아스는 그때까지도 내 머리 위에 올라타 있었다.

“이제 됐지?”

“잘했다.”

그 순간.

띠링!

이상한 기계음이 머릿속에 울렸다.

이어, 다정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개똥을 치웠네요~? 비위도 참 좋으셔요~ 선행을 쌓아 1링크가 주어집니다.

“뭐, 뭐야?”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카시아스가 꼬리로 내 뒷목을 탁! 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을 것이다.

“네가 선행을 쌓아서 링크를 획득한 거야.”

선행을 쌓으면 무언가를 적립해 준다 그랬었지.

그나저나 정말로 선행을 하니 뭔가를 주는구나.

근데 이걸로 뭘 하라는 거지?

“링크를 모아서 영혼의 힘을 사는 거다. 하지만 일단은 다른 것부터 하자.”

“뭘 하면 돼?”

“마인드 탭(Mind Tap)이라고 말해봐.”

마음? 정신? 아무튼 그런 걸 두드린다고?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마인드 탭.”

내가 말을 하자마자 눈앞에 이상한 것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온라인 게임을 할 때 캐릭터의 상태를 알려주는 상태 창 같았다.

“진짜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건 네 현 상태를 네게 가장 익숙한 활자를 통해 보여주는 기능이다. 쭉 살펴봐.”

이름 : 유지웅

소속 : 지구, 대한민국

성별 : 남

나이 : 19

영력 : 1

아티팩트 소켓 0/1

보유 링크 : 1

“마법이라는 거…… 진짜 엄청나구나.”

그런데 영력이랑 아티팩트 소켓은 뭐야?

“이름, 소속, 성별, 나이는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영력(靈力)이 뭔지부터 알려주지. 영력의 수치가 높을수록 넌 더 뛰어난 영혼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단순히 링크만 많이 모은다고 영혼을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좀 더 쉽게 설명해 봐.”

“그러니까 네가 사고 싶은 영혼이 10링크라고 치자. 그런데 그 영혼의 힘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영력은 2야. 이럴 경우 너한테 10링크라는 돈이 있지만 영력이 1이라면 그 영혼을 사봤자 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지.”

“간단치가 않네.”

“어려울 것도 없다. 영력도 링크를 사용해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가능하니까. 한 가지 더. 네가 받아들인 영혼의 기술 중 몇 가지는 사용하는 데 영력이 소모된다.”

머리가 아파오려고 한다.

“그것도 더 쉽게 설명 부탁할게.”

“상대방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일격필살의 공격기 같은 것을 얻게 됐다고 치자. 그런데 그 공격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영력이 1이라면, 넌 1의 영력을 소모해야만 공격기를 현실에서 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 애써 링크를 써서 업그레이드시킨 영력이 그런 식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야?”

“그렇게 소모한 영력은 1분이 지나면 다시 차오른다.”

“정말로 게임 같은 시스템이네.”

“게임이 아니라, 현실적인 네 영력의 크기를 수치로 표현한 것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의 영력은 사실 제로에 가깝지. 한데 넌 레이브란데의 인과율을 받아들임으로써 1이라는 영력을 갖게 된 것이고.”

영력이 커지다 보면 나중에 귀신도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알았어. 아티팩트 소켓은 뭐야?”

“네가 링크로 살 수 있는 건 영혼의 힘뿐만이 아니야. 레이브란데가 살아생전 차곡차곡 모아놓았던 아티팩트도 살 수 있지.”

지금 나랑 스피드 퀴즈 하자는 거지?

“아티팩트는 뭔데.”

“마법의 힘이 담긴 물건이다.”

판타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마법의 반지를 얻어 거인의 힘을 얻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해리 포터에서도 주인공이 요술 망토를 얻어 몸이 투명해진다.

아티팩트란 아무래도 그런 힘이 담긴 물건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선행을 해서 모은 링크로 영력을 늘릴 수도, 영혼의 힘과 아티팩트를 살 수도 있다 이거지?”

“그래.”

“사야 할 게 정말 많네.”

“그러니까 열심히 선행을 해야지. 네가 더 큰 선행을 할수록 많은 링크가 들어올 거야.”

“……알았어.”

고생길이 눈앞에 훤해지는 기분이다.

그냥 봐도 많은 링크를 얻어야 인생 역전의 활로가 열린다는 걸 알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선행이라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

그리고 선행의 기준도 확실히 모르겠다.

사실 선행이라는 것 자체가 애매모호하다.

내가 선행이라고 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선행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머리 복잡하네.’

심각한 고민에 빠져 고개만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카시아스가 내게 말했다.

“일단은 네가 얻은 링크로 영력부터 늘리자. 마인드 탭에 보이는 영력을 터치해 봐.”

손을 뻗어 영력이라는 글자를 살짝 건드렸다.

마치 허공에다 손을 뻗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게 맞을 거다.

지금의 마인드 탭은 내 눈에만 보일 테니 말이다.

팅.

맑은 소리와 함께 영력이 밝게 빛났다.

곧, 영력이란 글귀가 위로 올라가며 다른 글자들을 지워 버렸다.

이어, 아래로 이런 안내가 나타났다.

영력 : 1

영력을 2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1링크입니다.

[Yes/No]

“업그레이드 해.”

“알았어.”

난 ‘Yes’에 손을 가져갔다.

팅.

이번에도 맑은 소리와 함께 ‘Yes’가 밝게 빛났다.

그 빛은 삽시간에 내 시야를 가득 잡아먹고서 사라졌다.

다시 눈앞에 나타난 마인드 탭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영력 : 2

영력을 3으로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 비용은 3링크입니다.

[Yes/No]

“된 거지?”

“잘했다.”

“그런데 3으로 업그레이드할 땐 비용이 더 드네.”

“그 비용은 계속해서 늘어날 거야. 그러니 먹고 자고 싸는 시간 외엔 선행을 열심히 해라.”

“그 노예 부리듯 말하는 것 좀 어떻게 안 될까?”

“시끄럽다.”

탁!

카시아스가 꼬리로 내 뒷목을 쳤다.

이거 은근히 기분 나쁘네.

태진이가 뒤통수를 때릴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근데…… 영혼의 힘은 얼마나 해? 비싸겠지?”

“능력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우선은 가장 싼 것부터 사자.”

“얼마나 하는데?”

“5링크.”

“초반부터 5링크? 그럼 선행을 다섯 번 해야 하는 건가?”

“개똥만 다섯 번 치울래?”

“누가 동네 개똥 청소부인 줄 알아?”

“선행의 크기에 따라 들어오는 링크의 값은 달라진다.”

“그 크기라는 건 대체 어떤 기준인 건데?”

“나도 확실히 모른다.”

“모른다니?”

“이 마법은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레이브란데가 만든 거지. 그가 선행에 어떤 기준을 두고 링크의 값을 매겼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마법은 네게 처음으로 시전한 것이니까.”

“답답하네. 그럼 그 레이브란데가 멋대로 정한 기준값과 엇나가는 선행을 하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붕어 대가리는 아니군.”

역시 내가 걱정했던 부분이 문제로 대두됐다.

영력이 쌓이는 선행의 기준을 모르면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가 없다.

기껏 힘든 선행을 해놨더니 포인트 하나 주어지지 않고 시간만 허비할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을 둘러봤다.

뒤편에 누가 다 먹고 버린 하드 막대가 보였다.

내가 그것을 주우려 하자 카시아스가 비웃었다.

“과연.”

“시끄러워.”

하드 막대를 주웠다. 그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좀 전 같은 기계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건 선행으로 쳐주질 않네.”

개똥도 버려진 것이고, 하드 막대도 버려진 것이다.

똑같이 버려진 것을 주웠는데 왜 반응이 없는 것일까?

“선행의 법칙에 대해서는 차차 알아가기로 하지. 그보다 차라도 한잔 대접하지 그래?”

……고양이 주제에.

* * *

카시아스는 자기 앞에 놓인 접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게 뭐지?”

“뭐긴 뭐야, 우유지.”

“난 차를 내오라 했을 텐데.”

“고양이가 차를 어떻게 마셔? 고양이 혓바닥은 뜨거운 걸 못 견디잖아. 그리고 찻잔은 어떻게 잡을래? 접시에 우유 따라준 것만도 감지덕지하라고.”

속 시원하다.

카시아스가 내게 해를 끼친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카시아스의 말대로만 된다면 그는 내게 엄청난 은인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놈의 고압적인 자세는 왠지 계속 얄미웠다.

그래서 소심한 복수를 했다.

난 미소를 머금고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찻잔에 담긴 녹차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향 좋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들고 있던 찻잔이 갑자기 자의식이라도 찾은 듯 내 손을 벗어났다.

“어?”

찻잔이 난다!

찻잔은 허공을 두둥실 날아서 카시아스의 얼굴 앞에 멈췄다.

그리고 살짝 기울어지더니 카시아스의 입에 차를 흘려 넣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찻잔을 들고 있는 것 같았다.

“흠. 싸구려 티백 맛이군.”

남의 차를 뺏어 먹고 독설을 한 카시아스가 거실을 둘러봤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냐?”

“이런 집이 뭐 어때서?”

라고 말하는 순간.

우다다다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