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동창회 X 삼각전선>
성심고등학교는 명문 조리고등학교다.
'명문'
그 두 음절 단어를 제 수식어로 쓰기 위해 전국 수많은 학교는 일개 개인이 감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금액과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이미 그것을 제 것 마냥 쓰고 있는 학교 또한 다를 것은 없다.
본래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쉽다고, 한 번 얻기보다 얻은 걸 잃는 것이 더 빠르다.
명문은 명문 나름대로 제 손에 쥐어진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건 성심고라고 다를 것이 없다.
예를 들어 찬혁이 3년간 몸을 담은 대회반이나, 졸업 후 취업 및 유학 지원 업무 등등.
학부모 입장에선 듣기만 해도 군침이 줄줄 흐르는 수많은 특혜가 그들이 지갑을 아낌없이 열게 만드는 좋은 명분이 된다.
명문이란 이름으로 괜히 돈만 많이 받아 처먹는다는 악평을 피할 명분이 말이다.
하지만 재학 중 받는 지원은 그렇다 쳐도, 졸업 후 받는 지원은 이미 학교를 떠난 졸업생의 신분으로는 쉽게 접할 방법이 없다.
애당초 대다수의 학생은 졸업자 지원 제도에 대해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은 탓에 제도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졸업생 중 손에 꼽았고, 혹여나 지원을 받고 싶게 된다 해도 어떤 것을 지원해 주는지, 어떤 방식으로 지원이 진행되는지 등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론 알아내기가 번거롭고 힘든 게 사실이었다.
이는 성심고를 운영하는 재단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입학하는 것보다 졸업하는 게 훨씬 힘들다는 성심고.
졸업생은 그 자체로 아주 고등한 교육과정을 수료한, 지식과 끈기, 성실함, 노력이 모두 공적인 인정을 받은 인재다.
그런 인재가 학교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진 채 계속 업계에서 힘써주는 것 자체로 성심고의 명예는 지켜진다.
그러니 졸업생에 대한 예우를 해줌과 동시에, 그들이 언제든 학교의 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어려운 이야기지만, 성심고는 한 가지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내놓았다.
보통 학생들끼리의 자체적인 행사인 동창회를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로 만든 것이다.
격년에 한 번씩 학교의 이름으로 대형 연회장 하나를 빌려 치러지는 동창회.
보통 동창회라고 하면 기껏해야 같은 반 학생을 다시 만나는 정도의 행사로 끝나지만, 이 행사는 수신 거부자와 졸업 후 15년 이상 지난 졸업생을 제외한 인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성심고에서 공식적으로 초청장을 보내어 졸업생 전체를 대상으로 치러지는 동창회.
참가는 자유지만, 요리업계처럼 다소 폐쇄적인 성향이 있는 업계에선 이런 곳에 얼굴을 비춰주는 것만으로도 취업이나 사업에 큰 도움이 되기에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거나 딱히 안 나와도 궁할 게 없는 사람들을 빼곤 대단히 높은 참석률을 자랑한다.
뭣보다 동창회의 OB로부터 학교의 졸업생 지원에 대한 조언도 구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에 달하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물론 그런 생각은 딱히 없이 그저 친했던 친구들 얼굴을 보려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녀들 또한, 대충 그러한 경우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 안 왔네."
"……."
"올해는 나오겠지 싶었는데. 얘는 어디서 뭐 하고 다녀서 얼굴 한 번을 안 비춰?"
나현주, 양희연, 백예은.
오랜만에 서로를 마주한 그녀들이 덜 익은 감이라도 씹은 것처럼 떫은 표정을 지었다.
***
그녀들의 경우를 '대충 그러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간단했다.
세 사람은 친한 친구들의 얼굴을 오랜만에 직접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도 맞지만, 그만큼 만나기를 기대했던 사람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오늘'도'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류찬혁.
그녀들이 오랜만에 보고자 했던 이의 이름이었다.
"인마는 무슨 학교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박히더니 전역하자마자 유학 간다 해놓곤 연락 한 통이 없는데?"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부러 일본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자리한 양희연의 말에 나현주가 답했다.
"TV나 인터넷 뉴스 같은 데선, 몇 번 본 것 같기도 한데."
동창회에 자리한 면면 중에서도 유독 커다란 키에 어울리지 않는 주눅 든 목소리.
안 그래도 몇 명 되지 않는 현직 여성 정형 기술자 중에서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남자 명장 못지않단 평가를 받는 그녀답지 않은 태도였다. 실망한 기색이 여실히 배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졸업한 뒤엔 실제로 본 것보다 그런 데서 본 적이 훨씬 많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0번이랑 너덧 번은 비교가 안 되잖아."
대학 졸업 후 가업을 이어 온새미로의 부주방장을 맡고 있다가, 최근 온새미로의 외부 홍보 채널의 담당을 맡으며 이상하게 인터넷 방송에 깊은 관심을 보내는 삶을 사는 백예은이 말을 이었다.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세 사람이지만, 그녀들에게도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더럽게 바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요리사라는 게 애당초 상당한 3D 직종인 탓에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장기 휴가를 내기도 힘들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것도 학교 측에서 행사 일자를 비수기로 잡았기 때문.
하지만 비수기에도 눈썹이 휘날리게 바쁜 삶을 사는 그녀들이 모처럼 이렇게 자리했건만, 결국 보고 싶던 얼굴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진짜 인생 막사네."
양희연의 혼잣말에 다른 둘이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찬혁.
그는 대회 우승 뒤 인터뷰에서 장담한 대로, 성심고 졸업장을 받은 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입대했다.
동기 중에서도 유독 빠른 입대였고, 그 탓에 처음 왔던 동창회에서는 군대에 있는 탓에 참석을 못 했다며 절친인 김철정을 통해 미안하단 연락을 보내왔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사지 멀쩡하게 다친 곳 없이 전역한 찬혁은 무어라 일언반구도 없이 훌쩍 해외로 떠났다.
듣자 하니 프랑스 현지에서 초청을 받아 가게 된 워킹 홀리데이라고 했던가.
졸업 직전 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은 상대인 로랑 마틴이 정식으로 레스토랑을 물려받고, 그 지점 중 하나의 주방장으로 초청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진짜가?"
"응. 그것도 인터넷 뉴스로 나왔었어."
"엄마가 그때 좀 언짢아하셨지. 왜 국내 업장에는 들를 생각도 없이 바로 해외부터 나가냐고."
이후 듣기로는, 워킹 홀리데이를 나가 근무하는 내내 본점에 버금가는 인기를 구가한 덕분에 로랑 마틴으로부터 정식으로 주방장이 되어줄 수 없겠냐는 제의를 받았다는 모양이지만, 거기에 동의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건, 신문에서도 본 적 없으니까. 아마 맞을 거야."
"…… 니는 맨날 신문만 보고 사나."
"우리 공장, 시청률 1위 채널이 시사, 뉴스, 스포츠 채널이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뉴스 먼저 보게 되더라. 내 올튜브 알고리즘 추천, 한 번 볼래?"
"내가 미안타."
직장 평균 연령이 상당한 업체에 근무하는 나현주의 애환이었다.
"생각해보면 대회 우승하자마자 군대 간 것 치곤 기자들이 꽤 오래 쫓아다녔어."
"아마 효민 언니 탓도 좀 있을걸?"
"효민 선배가? 왜?"
"언니가 우승했을 때엔 아직 1학년이라 학교 쪽에서 취재를 거의 틀어막았잖아. 개인사에 방해될 정도의 취재는 사절한다고. 그러니 우승하자마자 프리 해진 사람한테는…… 뭐, 알만하지?"
"아."
그렇게 1년 정도 뒤 복귀한 찬혁의 소식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금 끊어졌다.
나중에 안창민을 추궁해서 나온 말로는, 이번엔 아예 학교의 지원을 받아 정식으로 해외 고급요리학교에 유학을 갔다고.
우스운 건, 말이 유학이지 가는 학교마다 거의 도장 깨기를 하듯이 졸업장을 반쯤 약탈하다시피 행동했단 사실이다.
다시 갔던 프랑스에선 르 코르동 블루에 들어가자마자 석 달도 안 돼서 블루리본을 달고 나오고, 그다음엔 미국 CIA로 가더니 거기서도 또 반년 만에 졸업장을 따왔다.
"그 정도면 공부가 아니라 졸업장을 따러 간 거지."
이는 사실 찬혁이 공식적 학위의 필요성을 느낀 탓이었다.
로랑 마틴의 초청으로 지점의 주방장 역할을 수행할 때에 학력이나 나이로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잦았던 탓에 하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했다.
애당초 이미 각 학교의 교수진 이상의 능력을 가진 찬혁 입장에서 월반은 그야말로 케이크를 퍼먹듯 쉬운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그녀들은, 찬혁의 이상행동에 '그놈이 오늘도 지랄병이 도졌구나'하고 어처구니없어할 뿐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찬혁의 소식이 수십 년 묵어 테이프가 다 늘어진 비디오마냥 끊겼다 이어지길 반복한 지 어언 6년.
그녀들도 벌써 스물 중반이 아슬아슬한 나이였고, 슬슬 이 동창회에서도 OB라인으로 넘어가는 선 앞에 위치한 상태.
어떻게 된 게 이 나이가 되도록 그 잘난 낯짝 한 번 보기가 어려운지.
한창 찬혁에 대한 화제를 물고 뜯던 그녀들은, 이내 그것도 질렸는지 다른 화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네, 혹시 생겼어?"
"뭐가?"
"남자친구."
정적.
등골이 싸늘해지는 고요함이 그녀들 사이에 내려앉았다.
그래. 이 정도면 물어볼 필요도 없었구나. 백예은은 자신의 가벼운 질문을 후회했다.
그녀도 사실은 알고 있다.
안 그래도 바쁜 요식업계 사람들. 어디 나가서 사람 한 명 만나기가 그토록 어려운데 연애사업 할 시간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시간도 시간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미 그녀의 보는 눈이 자신이 생각해도 과하게 높아졌단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수익이나 외모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외모도 꽤 될지도.
하지만 수익 같은 면에 관해선 이미 그녀들 본인이 돈 문제에 거의 초탈하다시피 할 정도로 제 한 몸 건사는 평생을 하고도 남을 이들이었기에 별문제가 안 됐다.
그러나 성격은…….
아니, 성격도 포함한 그 사람의 비전이나 인품 등등.
그런 면에서, 그녀들은 자신의 눈이 높아졌단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지영이 알지? 나랑 같이 대회반 했던. 걔는 벌써 남친이랑 삼 년이래."
"정말? 누구? 아는 사람?"
"응. 여준기."
"진짜?"
"봐봐. 걔네 분명 왔었는데 벌써 안 보이잖아. 둘이 먼저 간 거 뻔하지."
더군다나 이런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이다.
답안지를 이미 알고 있는데 굳이 다른 데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뇌리 한구석에서 꿈틀대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갑자기, 안 그래도 떠들썩하던 회장 중심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온 것은.
"야야! 빅 뉴스! 그 새끼 떴어!"
"?"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돌아간다.
외침에 놀란 탓도 있었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녀들이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김철정. 화력이 강한 중식 화구 앞에서 매일매일 몸을 갈아가듯 일하는 탓에 거의 동남아인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갈색이 된 피부가 인상적인 쾌활한 인상의 청년이 핸드폰을 높이 치켜들곤 외친다.
"류찬혁 온대! 방금 서울 도착해서 바로 오는 중이래!"
"!"
그 순간, 세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돌변한다.
'어라?'
'잠깐만.'
'이거 설마……?'
안 그래도 마침 직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던 탓일까.
갑자기 사냥을 나선 승냥이의 그것처럼 변한 서로의 분위기가, 이상할 정도로 싸하게 목덜미를 찔러왔다.
몸과 마음을 혹사한 탓에 늦게 찾아온 이 날.
그녀들의 청춘은,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