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역사상 최고의 전문하사(진)>
전설의 부대가 있다.
그런 소문이, 요 근래 남성 이용자가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대단한 유명세를 타고 있다.
***
군대 이야기란 것이 원체 남자가 두 명만 모여도 날밤을 샐 수 있는 그들만의 화젯거리라는 건 이미 두말할 필요도 없는 소리.
그들에게 흥미로운 군대썰이란 가끔 삼시세끼 밥보다도 흥미로운 것이 되곤 한다.
오늘도 무료함을 해소시켜 줄 참신한 이야깃거리를 찾아 커뮤니티를 활보하던 유저들. 그런 그들에게 이날 찾아온 새로운 이야기의 화두가 바로 이러했다.
<진짜 개쩌는 부대에서 오늘 막 전역한 썰 푼다>
'개쩌는 부대'
남자들에게는 보기만 해도 절로 엔돌핀이 솟구치고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문장이었다.
보통 부대라는 단어 앞에 '개쩌는'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면, 그 의미는 약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 어지간한 환경으로는 감히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극악한 환경을 자랑하는 곳.
그것이 설비 때문이든 인간관계 때문이든, 혹은 지리나 지형지물 때문이든 상관없이 그곳에서 복무한 이에게 꿈에서도 다시 만나기 싫은 악몽 같은 현실을 선사하는 '개쩌는 부대'.
또 하나는 위의 사례와 정확히 반대되는 부대로, 가끔 같은 군필자들 사이에선 "이 새끼야 그 정도면 복무가 아니라 피서를 다녀온 거지." 같은 말로 진담 섞인 농담을 듣는 또 다른 '개쩌는 부대'다.
그리고 보통 이 두 사례 중에서, 인터넷에 떠도는 쪽은 십중팔구 전자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군역을 경험한 젊은 남성 중 십중팔구가 군대에 대해 좋은 기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을 더 많이 가진 탓이리라. 등가교환이라고 해야 할까.
헌데 오늘 올라온 화제는 참으로 이상했다.
썰의 화자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부대는 전자도, 후자도 아니었다.
아마 군역을 마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저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부대였다.
글의 전문은 이러했다.
<우리 부대는 강원도 산골까진 아니어도 춘천이랑 경기도 사이 어림잡은 곳에 있는 부대였거든?
부조리 사건사고 전파도 군 생활하면서 간부한테나 몇 번 들어본 게 다고, 탈영병도 딱히 나온 적 없고, 맞진 않았는데 종종 갈굼 정도는 당했음.
딱히 GOP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막 훈련이 엄청 많지도 않았지. 한두 달에 한 번 조금 큰 훈련 잡히는 정도?
아, 근데 사람은 대대치곤 별로 없어서 총 대대원이 200명쯤 됐나? 대대장도 중령이 아니라 소령이었고.
아무튼 그냥저냥 올 사람 오고 갈 사람 가는 곳임.>
이 시점까지 읽었을 때, 대다수의 커뮤니티 유저들은 이 지루하리만치 만연한 평범함 속 어디에 '개쩌는' 부분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보통 자신의 개쩌는 부대를 소개하는 이들의 문구를 살펴볼 때면, 그들은 마치 같은 정신세계를 공유한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산의 봉우리가 구름을 뛰어넘고 경차만 한 멧돼지가 연신 짬통을 헤집는 인외마경을 앞서 소개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도 아니면 평범한 장소를 마경으로 만드는 인간군상이라던가.
하지만 이 글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마치 유행 지난 해외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같은 문장으로 자신의 부대를 소개할 따름이다.
오늘도 꽝인가. 유저들이 그런 생각을 품을 때쯤, 이야기의 화자가 흥미로운 말을 던졌다.
<근데 진짜 존나 개쩌는 게, 밥이 진짜 뒤지게 맛있었음.>
의문부호가 또 한 번 떠오른다.
밥이 맛있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안 그래도 고생하는 입장에서 밥이라도 맛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과연 그것은 '개쩌는' 일인가?
그 의아함을 화자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깔끔하게 해소시켰다.
<짬밥 먹고 싶어서 전문하사 신청서 받아서 싸인까지 했었음. 제출은 안 했지만.>
그렇다. 이 정도면 정말 개쩌는 일이었다.
전문하사란 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때를 맞이한 병사가 말단 부사관인 하사로 진급하여 최소 6개월에서 최장 1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군생활을 연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갑자기 사회로 나가기 전에 목돈을 준비할 수 있다.
잠시 방풍막 뒤에서 사회의 찬바람을 조금이나마 맛보고 준비하는 기간을 가질 수 있다.
많은 행보관이 온갖 감언이설로 병장을 유혹하지만, 까놓고 말해 그게 개소리란 건 대부분의 병사가 익히 아는 사실.
운 좋게 사지 멀쩡히 전역할 때가 됐으면 얌전히 집에 가는 게 살길이다. 누구 좋으라고 몸 망가질 생활을 1년이나 더 할까.
그러나 화자는 그 미친 짓의 문턱을 잠깐 밟았다 돌아왔다.
그것도 고작 밥이 너무 맛있다는 이유로.
이쯤 되면 화자가 일종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바깥에선 배를 자주 곯고 다닌 이가 아닌지를 먼저 의심해야 할 지경.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다만, 화자가 꺼낸 이야기엔 그러한 상식이 통용되지 않았을 뿐.
<내가 상병 꺾일락 말락 할 때쯤이었나? 그 전에는 원래 우리 부대 밥도 그냥 짬밥이었거든? 똥국에 소 발 담근 무국, 아니면 김치 대충 물에 풀어놓은 찌개 같은 것만 나오고 소야나 미역국 나오면 사단장님 생신인 날.
근데 이상하게 언제부턴가 갑자기 밥이 졸라 맛있는 거야.
맨날 저녁 시간 되면 생활관 짱박혔다가 설렁설렁 px나 가던 병장들이 갑자기 자기보다 먼저 밥 받지 말라고 갈구고, 맨날 깨작대던 선임들은 무슨 삼시세끼 죄다 두 번씩 돌려받고.
오죽하면 나 병장 단 다음에 생긴 우리 부대 대표적인 부조리가 일병 꺾이기 전엔 밥 추가로 받는 거 금지였을 정도;>
인생의 낙이 px에서 냉동 돌려먹는 것밖에 없는 병장들이 식당에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그것만으로 이미 믿기지 않는 일이었는데,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보다 더했다.
<내 후임 동기가 본부 px병으로 빠졌는데, 걔가 듣자 하니 px관리하는 군무관이 매출이 50%가 넘게 하락해서 매일 울상으로 다녔다고 함. px에서 폐기가 나왔다니까? 믿겨 짐?
대대 주임원사는 원래 친하던 짬 받아가는 아저씨랑 대판 싸웠는데, 이유가 짬이 안 나와서 돼지 사료가 안 나오니까 밥 좀 맛없게 만들라 해서 그거 갖고 민간인이랑 멱살 잡음; 내가 위병소 근무하면서 직접 봄.
사실 주임원사가 우리 부대에서 밥 제일 많이 받아먹는 사람이었거든. 대대장급도 어지간하면 터치를 못 하는데 오죽할까.>
그 이후에 나오는 이야기도 아주 비범하기 그지없었다.
몇 주에 한 번씩 면 요리 같은 특식이 나오는 날 준비된 스파게티가 무슨 레스토랑에서나 볼 것 같은 맛이었다느니, 짜장면은 어지간한 바깥 고급 중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었다느니 하는 일화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던 것은 훈련 중 먹은 주먹밥에 대한 일화였다.
<너희 봉지밥 알지?>
봉지밥이란 야외 숙영 등이 낀 대형 훈련 중의 장병의 식사에 쓰이는 요리의 은어로, 사실 요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먹을 것과 음식물 쓰레기 사이의 무언가다.
그날 식단에 계획된 밥과 반찬을 되는대로 대야 따위에 넣고 비벼 봉지에 한 주먹씩 담아주는 요리. 먹을 때는 봉지 끄트머리를 이빨로 뜯어내 쭈쭈바처럼 짜 먹는다고 하여 봉지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군필자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그저 에너지 보충만을 위한 먹을 것.
그러나 화자가 말하는 봉지밥은 달랐다.
<봉지밥을 딱 받았는데, 아니 무슨 공구스 밥버거가 있더라고. 나중에 들어 보니까 취사병 애들이 손수 하나씩 만든 거라잖아.>
시판되는 제품보다 훨씬 맛있었다는 것도 놀랄 노자지만, 그보다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훈련 중이라는 그 열악한 상황에 용케도 그런 것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대대원이 간부까지 죄다 합치면 230명쯤 될 텐데, 취사병은 다섯 명이 안 되거든? 근데 그걸 한 시간 만에 만들었다는 거야. 진심 그때 느꼈음. 우리 취사병 애들은 인간이 아니란 걸.>
그때 생긴 밥심 덕분인지 화자의 부대는 훈련에서도 특출나게 좋은 성과를 거뒀고, 이것을 눈여겨 본 상급 부대의 지휘관이 부대에 왔다가 부대 밥을 먹고 나선 주마다 한두 번은 부대에 들러 끼니를 해결하고 갔다고 한다.
물론 그때마다 부대를 청소하는 건 병사들의 일이었지만, 그 불만마저도 밥만 먹이면 쏙 들어갈 정도라고 하니, 화자의 글을 읽던 커뮤니티 유저들은 이쯤 되면 밥에 마약을 넣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렇게 한 달 전쯤 전역하고 나서 무슨 밥을 먹어도 부대 밥보다 맛이 없길래 존나 인생이 제행무상해지는 느낌이었거든? 나도 이게 엄청 호들갑 같긴 한데 진짜 진심이었단 말이지? 근데…….>
몇 칸의 엔터 후, 화자가 글을 잇는다.
<그럴 만했어. 와, 올투브에서 예전 방송 클립 보다가 졸라 익숙한 얼굴이 딱 보여서 바로 찍어왔지.>
그리고 삽입된 한 장의 사진.
동영상을 스크린샷으로 찍는 바람에 워터마크가 난잡하게 남은 사진에는, 시상대 꼭대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가슴에는 태극기를 붙인 네 명의 장년, 그리고 한 사람의 소년이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나와 있었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 우승자. 거기 대회 최연소 참가자였던 이 류찬혁이라는 사람, 취사장에서 맨날 얼굴 보던 아저씨가 이 사람이더라.
사진 보고 나서 겨우 알았음.
그리고 요즘 계속 생각함.
아, 진짜 시바 그때 단기하사 신청서에 지장 찍고 바로 냈어야 됐는데. 진심 존나 후회됨.
평생 뒤져라 일해도 이 사람 요리 한 번 먹기가 힘들 텐데, 그거 삼시세끼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었는데. 진짜 인생 시바거…….>
자신의 놀라운 경험을 설명한 장문의 글은 짤막한 신세 한탄이 섞인 욕설로 그렇게 끝을 맺었다.
잠시 후, 해당 글은 보안정책에 대한 위반이라는 사유로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대응에도 무색하게 글은 이미 수많은 사람이 캡처한 지 오래.
<역사상 최고의 전문하사가 될 기회를 놓친 남자> 라는 제목으로 온갖 커뮤니티로 퍼지게 된 이 글로 인해, 찬혁은 또다시 본인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폭발적으로 자신의 유명세를 떨쳤다.
"에라이 시팔. 전역은 언제 하냐……."
찬혁의 전역이 100일 이상 남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