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400화 (완결) (400/403)

400. 안녕히.完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모든 시식이 끝난 뒤, 심사단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오르톨랑이다. 오르톨랑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심사단의 고개가 마구 도리질 친다.

오르톨랑은 무려 한 종의 멸망을 유도했을 정도의 요리.

인륜적인 부분에 눈을 딱 감는다면 역사적으로도 프렌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요리가 바로 오르톨랑이다.

어찌 보면 프렌치의 일그러진 자존심 그 자체.

아무리 형편없게 찌그러졌대도 자존심은 자존심이다. 이탈리안과 프렌치는 그가 속한 유럽 요리문화의 양대 산맥. 그런 이들의 자존심이란 감히 값을 치기 힘들 만큼 비싸다.

근데 그런 자존심이, 동양의 10대 소년이 즉석에서 만들어낸 요리와 버금간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게 사실.

그러나 가장 분한 건, 그들의 몸뚱이는 이미 그런 감정의 호소를 배반한 지 오래라는 것.

감정의 호소에 휘둘리기에 그들의 혀는 오랜 세월의 미식으로 지나치게 단련되어 있었다.

설령 평정심이 흔들리는 상황이더라도 맛에 대한 평가만큼은 결코 흔들리지 않게끔.

정작 그 흔들리지 않는 평가를 믿을 수 없는 건 그 혀의 주인이었지만 말이다.

한 번 새겨진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에게 남은 길이라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는 자세를 빠르게 정비하는 일이었을 따름이라.

그럼에도 숨기지 못한 동요가 연달아 책상을 두드리는 손가락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런 그들 중에서도 아직 약간이나마 평정심을 유지하는 이가 있었다.

여태껏 파견을 나온 심사단 중에서도 가장 장년층에 해당하는 인물.

벌써 70을 넘어 80을 바라보기 시작한 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게 기술의 발전인 거겠지."

"예?"

"생각해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보세요. 우리가 아까 먹은 게 오르톨랑입니까?"

"그거야……."

오르톨랑이라고 하면 오르톨랑이겠지만, 아니라고 하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애매한 물건이다.

로랑의 오르톨랑이란 결국 재현을 끝내주게 잘 한 참새 통구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한 사실이니까.

"어디까지나 현재에 발달한 기술력과 조리도구, 식용 화학약품으로 절묘하게 그 시절을 재현해낸 요리입니다. 요컨대, 현재의 기술력과 요리사의 상상력으로도 거기에 닿는 게 충분히 가능하단 말이죠."

맞는 말이야. 다른 두 심사위원은 그의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들 중 가장 연장자인 그가 기술력에 대한 진보적인 발언을 하다니, 묘하게 놀랍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류찬혁 선수의 요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신 건가요?"

"일단은, 그게 제 의견입니다."

조심스러운 발언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이번 시합의 승자는 류찬혁이다'라고.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시합에 대해…… 아니. 로랑 선수의 요리에 대한 것도 할 이야기가 조금 있을 것 같네요."

"예?"

"이건 좀 이따 심사평을 발표할 때 말씀드리도록 하죠."

의아한 표정을 짓는 다른 심사단에게서 눈을 돌리며, 그는 착잡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저었다.

***

"얘네는 대체 언제 결과 발표하냐?"

"무슨 심사를 이렇게 질질 끌어."

제법 오랜 시간에 걸쳐 심사가 진행 중인 한편, 관객석에서는 여기저기서 작은 불평불만이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심사단에게는 천신만고의 시간이었으나 관객에게는 그저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뿐이기에.

하물며 심사단이 관객의 사정을 고려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시간은 더욱 늘어졌고, 불만의 기류는 그만큼 팽창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오랜 기다림 끝에, 비로소 내부회의에 종료를 고한 심사단이 무대 위 단상에 섰다.

심사단을 대표하는 이는 그들 중 가장 연장자인 남자.

그가 마이크를 잡자 웅성거리던 대회장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음을 느낀 그가 짧은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희 심사단은 긴 상의 끝에 이번 시합의 승자를 선출했습니다. 그 결과를 지금부터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 결승 개인전. 승자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겹쳐 울리는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

두 팀의 선수들도 긴장이 역력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은 심사위원이 외친다.

"한국팀! 류찬혁 선수! 류찬혁 선수가 이번 개인전의 승리자입니다. 따라서……!"

한 박자 쉬고, 숨을 가득 들이마신 그가 외친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의 우승자는 한국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아!

─펑! 펑펑!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한국팀을 응원하던 관객의 함성과 무대에 설치된 폭죽이 동시에 울려 퍼지며 하모니를 낳는다.

하모니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친 음색이었으나, 그 속에 담긴 환희의 뜻만큼은 누가 보아도 명백하리라.

"해냈다! 해냈어!"

"찬혁아, 우리가 이겼다!"

"아니, 좀 힘이, 아니 팔 힘 세요! 팔 부러져요!"

양쪽에서 거의 헹가래라도 칠 기세로 닥쳐드는 두 어른을 밀어내며, 찬혁 또한 숨길 수 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이, 미소 짓는 이 뒤엔 울상 짓는 이도 있는 법.

프랑스팀과 그들을 응원하던 관객들은 충격적인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오로지 로랑만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

"……."

다만, 팔짱을 낀 그의 손은 거의 제 팔뚝을 쥐어뜯으려는 듯 힘줄이 굳게 돋았다. 질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익히 알았지만, 그 결과 앞에서 마냥 태연하기란 힘든 법이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어진 환호성이 멎은 뒤, 다시금 고요를 찾은 대회장.

여전히 굳은 얼굴 위에 식은땀 몇 방울을 매단 심사위원이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마이크에 작게 숨을 불어넣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압니다. 여러분 중에선 이 선택에 대해 의문을 품으시는 분도 계시다는 걸. 그러니 이번 심사에 대한 간단한 근거 하나를 프랑스팀 여러분께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만약 듣고 싶으시다면요."

그의 눈짓에 로랑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하겠다는 의미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근거를 설명드리기 전 제 소개를 잠깐 드리겠습니다. 저는 미쉐리 타이어를 근무하여 2000년도 중반에 정년으로 퇴직한 미쉐리 가이드 편집부 출신, 모리스라고 합니다. 암행평가단에 근무한 건 80년대 초부터 90년대 중반까지였습니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프랑스인이라는 건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애당초 미쉐리 타이어는 프랑스 회사였으니.

"저희 심사단이 이번 심사에서 류찬혁 선수가 승리했다고 평가한 이유는, 로랑 선수가 만든 오르톨랑에서 결정적 결함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모리스의 말에 로랑의 눈매가 바짝 섰다.

자신이 만든 요리에 결함이 있다. 요리사에게는 비할 데 없는 치욕스런 어휘였다.

그러나 모리스는 오해하지 말아 달라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요리 자체의 퀄리티를 크게 손상시켰느냐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합에서 두 선수가 내놓은 요리는 어느 쪽이 이겨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요리였습니다. 그러니, 아주 자그마한 결함이라도 평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 그 결함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로랑의 질문이었다.

모리스는 그 대답을 쉬이 꺼내지 못하겠다는 듯 이마에 식은땀을 더하다가, 이내 결심을 굳히곤 답했다.

"…… 제가 한창 평가부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기는 오르톨랑 취식, 취사 금지 법안이 프랑스에서 통과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 또한 소문이 자자한 오르톨랑을 먹은 경험이 당연히 있죠…… 아니. 정확히는 고작 경험으로 끝난다고도 할 수 없겠군요."

부끄러운 과거를 밝힌다는 듯 말을 고르는 모리스의 입가가 애처롭게 떨렸다.

"그 당시 오르톨랑은 적수를 찾기 힘든 인기메뉴였죠. 돈이 있다는 사람은 누구든 오르톨랑을 찾았고, 저도 주마다 한 번씩은 꼭 찾아 먹는 요리였습니다. 때문에 '진짜' 오르톨랑과 로랑 셰프가 만든 오르톨랑 사이에 있는 차이를 저희 중 누구보다 빨리 깨달을 수 있었죠."

과거엔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게 당연시됐어도, 지금까지 그런 사상을 지녔다면 인종차별주의자란 낙인이 찍히듯이.

아무리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변화한 윤리관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밝히기엔 충분히 부끄러운 이야기.

모리스는 그것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로랑 선수가 만든 오르톨랑은, 그 당시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던 오르톨랑과 아주 흡사한 맛과 퀄리티를 가진 일품이었습니다. 윤리적인 부분을 최대한 해소했음에도 그만한 성과를 보여주셨단 사실엔 찬사 이외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모리스는 자신이 말한 '흡사함'이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로랑 셰프가 만든 신식 오르톨랑의 결정적인 결함. 그건 바로 제조방식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차이점이었습니다."

"차이점이요?"

"예. 우선 참새고기의 맛이 오르톨랑 촉새의 맛과 비교하면 어쩔 수 없는 손색이 있다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참새고기에 풍미를 가미하기 위해 사용한 견과류와 과일 페이스트에서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이물감이 두 번째입니다."

"……."

굳게 입을 다문 로랑에게, 모리스가 이어 말한다.

"발효 효소를 사용한 페이스트로 참새고기에 풍미를 더하려고 한 발상은 놀랍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장에 남아 있던 페이스트가 미묘한…… 아주 미묘한 이물감을 줍니다. 더군다나 페이스트 자체에 있는 강한 단맛과 쌉싸름한 맛이 요리 전체의 균형을 살짝 어긋나게 만들었어요."

만약 과거의 오르톨랑 조리법 그대로 만들었다면 발생하지 않을 문제였겠으나, 그랬다간 세간의 질타를 피할 수 없었을 터.

오르톨랑이란 요리를 만들기로 결심한 때부터 엉키기 시작한 매듭이 로랑의 발목을 묶어 버린 것이다. 자가당착이었다.

"류찬혁 선수가 만든 요리가 지금 같은 퀄리티가 아니었다면, 거의 문제가 되지 않을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했다. 찬혁이 만든 오겹살 갈릭 콩피 스테이크는 대항마가 되기에 충분한 수준을 자랑했고, 결국 보다 확실한 결함이 있는 로랑의 신식 오르톨랑을 한 끗 차이로 밀어냈다.

그저 그뿐인 이야기.

합당하고, 당위성 있는.

모리스가 만약 심사단의 분위기를 주도하여 로랑의 승리를 유도했다면…… 아니, 단순히 오르톨랑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만 했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식가의, 프랑스인의 미식에 대한 자부심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 그렇군요. 훌륭한 심사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로랑은 제 요리에 결함이 있었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두 눈을 꾹 감았다.

이 또한, 요리사의 자부심이었다.

***

'…… 새삼 생각해보면 고생도 이런 개고생이 없었네.'

예선과 본선을 합쳐 1년.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의 여정이 바로 이곳에서 마무리된다.

시상대에 올라본 건 처음이 아니지만, 이토록 많은 관중 앞에서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올라본 건 이번이 처음.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낸 국가대표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어딘가 부끄럽고, 낯간지럽지만. 이상하게도 등골이 바짝 서고 어깨가 올라간다.

자부심과 성취감. 이 자리 가장 높은 깃대에 태극기를 내걸은 주역이 되었다는 마음 때문일까.

제멋대로 어깨춤을 추기 시작하려는 몸뚱이의 흥을 가라앉히느라 제법 고생했다.

어허, 어딜 나대. 가만히 있어 요 녀석아.

"마지막으로 금메달 수여식이 있겠습니다. 한국팀 일동, 단상에 자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말에 따라 한 걸음 앞으로 나서 허리를 굽힌다.

잠시 후, 목에 무언가가 닿는 느낌과 동시에 찾아온 무게감.

눈을 아래로 내리깔자, 내 가슴팍에서 반짝이는 황금색 패가 비춘다.

저거 진짜 황금인가? 혹시 깨무는 퍼포먼스 해도 되는 거야?

잡생각을 떨치고 고개를 들어, 목에 걸린 무게와 날 향하는 시선을 동시에 느낀다.

"……."

처음이었다.

회귀한 뒤로, 정말 무언가를 제대로 이뤄냈다는 느낌이 이토록 강하게 든 것은.

내겐 남들이 모르는 과거가 있다. 정확히는 미래지만.

그때부터 쌓여온 남모를 울분과 끝없는 고생. 그 모든 세월이 이 한 순간으로 보답 받은 것 같아서, 이상하게 눈매가 아려왔다.

관객석 저편에 펼쳐진 커다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경.성심고의 자랑! 3학년 1반 류찬혁 우승!.축>

그리고 그 아래 깃대를 잡고 선 익숙한 얼굴들.

언제부터 와 있던 건지, 반 친구들과 성심고에서 유독 자주 얼굴을 많이 뵌 선생님들이 현수막 아래 나열해 있었다.

'아니, 나 졌으면 어쩌려고 저런 걸 만들었어?'

…… 그런 감상이 앞선 게 조금 속물적이란 심정이 들어 헛웃음을 짓고, 손을 높게 들어 올려 플랜카드를 향해 흔드니 그쪽에서도 격한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 말이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내 웃음을 보낸다.

***

"류찬혁 선수. 시즌2 참가자 중 최연소의 나이로 출전하여 우승을 거두셨습니다. 지금 기분은 어떠신가요?"

"너무 상투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정말 기쁘고 또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의 응원 덕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수상식이 끝난 직후, 우리 팀은 인터뷰를 바자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솔직히 무서웠다.

내신, 외신 가릴 것 없이 달려드는 모습에 무슨 좀비떼가 날 덮치려 드나 싶었을 정도다.

그래도 어떻게든 짧은 답변으로 간단한 인터뷰를 이어나갔지만, 너무 한도 끝도 없어서 이젠 꽃다발과 메달을 지탱하는 팔과 목이 아파올 지경이었다.

거기에 더해 계속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던 얼굴 근육에 경련이 오던 시점, 어떤 기자가 내게 또다시 질문을 건네왔다.

"류찬혁 선수, 어린 나이에 정말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내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류찬혁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있는데요. 이제껏 해오신 일들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행보에도 많은 분들이 주목하고 계십니다. 혹시 계획하신 게 있다면 조금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마이크를 들이대며 묻는 그에게 나는 무슨 답변을 해주어야 할지 망설였다.

미래 계획? 아니, 솔직히 없는데.

내 미래 계획 1차는 일단 여기까지가 끝이었어.

앞으로는 2차 계획을 천천히 세워야 할 때라고.

하지만 마냥 '아무 계획도 없는데요.'라고 답하기엔 조금 가오가 상하지 않을까 싶었던 데다, 이 인터뷰를 얼른 끝마치고 슬슬 지친 몸을 쉬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대충 입에서 나오는 대로 답변했다.

"음, 글쎄요……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이제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졸업식 준비겠죠. 그리고……."

"그리고?"

똘망똘망 빛나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수십 쌍의 시선을 향해, 나는 별 생각 없이 답했다.

"입대하려고요."

"…… 네?"

"복역해야죠."

군대는 원래 걸리는 거 없으면 빨리 갈수록 장땡이야.

뭔데? 왜 그렇게 봐?

나는 당황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그들에게, 한 번 더 대답을 돌려주었다.

"군대 갈 거예요."

후에 듣기로는, 사회부 기사 댓글에 난리가 났다던가.

거 참 할 짓 없으시네 다들. 왜 남 군대 가는 문제에 왈가왈부하는지 몰라.

나 대신 군역 해주면 솔직히 인정해준다. 제발 누가 해주지 않을래요?

…… 당연히 그럴 사람은 없었다.

***

"입대하려고요."

"그만해."

"군대 갈 거예요."

"그만하라고."

시상식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났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 아니, 이제는 시즌의 이름을 벗고 글로벌 셰프 서바이벌이라는 새 이름을 딴 프로그램의 열기도 슬슬 가시는 때였다.

3월. 졸업식.

모처럼 경사스런 자리에서 몇 번이나 써먹은 레퍼토리로 또다시 내 어그로를 끌기 시작한 철정이 녀석의 뒤통수를 후리려던 손을 어떻게든 집어넣었다.

그래, 맘껏 놀려라. 너도 다녀오면 생각이 좀 바뀔 테니까.

"그러고 보니 너 그거 들었냐?"

"뭐?"

"이번 졸업식에 기자랑 졸업한 선배들 역대급으로 많이 온다더라."

"왜."

"왜는 뭐야. 다 너 보려고 온대잖아."

난 처음 듣는데 그런 소리.

대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사이버 망령 노릇을 하고 다녔으면 별 온갖 잡소리에 빠삭한 이 녀석은 요상한 소스로 가져온 정보를 내게 제공하는 일이 잦다.

"졸업생 대표 연설 네가 한다며. 그 소식 듣고 오는 거지."

"…… 아니 야, 그게 뭐 이상한 거야? 3학년 대회반 대표가 나고 학년수석도 난데."

"응, 대회 가산점빨이죠? 시험 점수 수석 절대 못 되죠?"

"대회 연습하느라 공부 못 해서 그런 건데 어쩌라고."

꼬우면 너도 대회 나가서 우승하던가.

"와, 뻔뻔한 거 보소."

"뻔뻔한 게 아니고 당당한 거지."

아무렴. 나 정도 했으면 좀 당당해도 되잖아?

졸업식을 위해 학교로 가는 길. 오랜만에 입은 교복의 답답함이 몸이 또 한 번 커졌다는 걸 알려준다.

날씨는 아직 쌀쌀하지만, 이제 길에는 눈 대신 새싹과 꽃이 더 많이 보이는 시기.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봄바람에 나뭇잎이 돋기 시작한 나뭇가지가 몸을 뉘인다.

가슴 벅찬 날이었다.

3년 동안 잔뜩 신세를 진 이 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길을 걸을수록 하나둘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면면에게 인사를 건네며 교문 앞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이야."

이게 다 뭐야.

학교 주차장을 가득 채운 자동차들. 이전 보았던 졸업식 때보다 못해도 세 배는 된다.

거기에 더해 그 사이에 섞인 안테나가 달린 방송용 밴까지 몇 대 보인다.

하지만 가장 눈에 빨리 들어온 건 그것이 아니다.

교문 내부 강당 통로 앞.

그곳에 벌떼처럼 모인 사람들.

어깨에 매달린 카메라며 마이크 따위를 보면 저들의 정체는 뻔하다.

"저거 가야 되냐?"

"나 먼저 간다."

"아니 이 새."

"어허 말조심. 누가 볼지 모르는데."

그렇게 말하곤 정말 날 두고 휙 들어가는 김철정.

근데, 문으로 들어가던 녀석이 갑자기 손가락을 짓쳐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기분탓일까. 어째 그 방향이…….

"저기다! 류찬혁이다!"

"먼저 가! 먼저!"

아니 근데 진짜 이 새끼가.

날 향해 달려드는 기자 집단을 바라보며, 나는 참지 못한 육두문자를 결국 입 바깥으로 내뱉고야 말았다.

***

조금 소란이 있긴 했지만, 순식간에 중재해준 선생님들 덕분에 졸업식 자체는 큰 이변 없이 시간에 맞춰 진행 됐다.

교장선생님의 졸리는 훈시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더 꿀잠이 왔으며, 마지막으로 부르는 교가도 이제는 립싱크가 수위에 올라 거의 진짜로 부르는 수준으로 립싱크를 할 수 있었다.

졸업생들을 위핸 신입생 연설에 게스트 축사.

갖가지 순서가 지나고, 비로소 내 차례가 됐다.

졸업생 연설.

오늘 졸업하는 성심고등학교 3학년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단상 위에 섰다.

내가 단상에 서기 무섭게 날 비추는 카메라와,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시선.

나는 그 앞에서 조심스레 내가 준비한 연설문을 펼쳤다가, 잠시 후 그냥 그걸 닫아 버렸다.

어차피 마지막 떠나는 길.

이 학교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은 만큼, 가끔은 내 멋대로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과연 내가 어떤 말을 꺼낼지 정말 궁금하단 표정으로 날 보는 이들을 향해, 난 입을 열었다.

"웬만하면 요리사는 하지 마세요."

요리과학고의 졸업생 대표 연설의 첫 마디라곤 생각할 수 없는 언사에, 날 향한 이들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근데 내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리사란 직업은 아마 세상에서 여러분이 고를 수 있는 직업 중에서 가장 고된 일 중 하나입니다. 남들보다 잠도 부족하고, 밥도 잘 못 먹고, 손님 비위 맞추랴 사장 비위 맞추랴, 몸이고 마음이고 누구보다 나을 게 없어요."

씨익, 언젠가 내가 들었던 말을 되풀이하니 절로 입에 미소가 새겨졌다.

"요리는 취미로 하면 충분해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면 그 이상은 괜한 고생입니다. 이게, 제가 처음 요리를 배울 때 들었던 말입니다."

한순간에 숙연해진 강당.

이건 현실이었다. 딱히 부정할 길도 없는 현실.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에서 우승한 나조차, 가문에서 세운 초고급 레스토랑의 주인인 로랑 마틴조차, 세계 최고의 한식 명가인 안씨 일가조차, 이 현실에선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요리사가 되기로 했을까요."

정말로, 어째서일까. 우린 그걸 다 알면서 왜 요리사가 되기로 했을까.

이 학교에서 손에 핏물이 터져가며 칼을 휘두르며 그 사실을 직접 몸으로 깨달은 우리는 왜 아직까지 이 자리에 남아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저는 그게 어째선지 모릅니다."

모른다.

사람 각자한테 사정이 있는 걸 내가 어떻게 알까.

김철정처럼 집안이 식당을 해서 그럴 수도 있고.

백예은처럼 혹독한 요리 훈련을 받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안씨 남매처럼 본인들이 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고.

나현주처럼 시선을 잠깐 돌린 곳에 이 길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양희연처럼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박 사장님처럼 손님의 웃음이 보고 싶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저, 되고 싶었습니다. 요리사가.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빠져나가려면 진즉 빠져나갈 수 있었겠지.

다른 일을 모색하려면 얼마든 할 수 있었을 터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그냥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거다.

무슨 거창한 이유도 없이,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모두 요리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장담합니다. 이미 여러분에게는 충분한 지식이 있고, 열정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리사가 되면 그걸로 끝나는 걸까.

아니.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요리사를 만났다. 저마다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다만 장사로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인 사람도 있었다.

요리사가 된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어떤 요리사가 되고 싶은지 고민하는 것. 그게 우리 졸업생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과제의 답안은 자유.

어떤 목적을 가지든 목적 그 자체에는 우열이 없다.

우열이 있다면, 자신의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지.

"저와 여러분에게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과거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쌓아올린 자산은 미래의 힘이 된다.

그것이 마음의 자산이든, 몸의 자산이든.

"과거의 경험을 기준 삼아, 현재의 목표를 잊지 말고, 미래의 꿈을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것일 테니까.

"지난 3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놓쳤던 과거를, 잊었던 현재를, 오지 않은 미래를 내게 다시 선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이크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마무리했다.

"여러분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내 학교.

안녕히. 내 미래였던 날.

이 인사가, 부디 미래에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안녕히.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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