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 끝장전.-7-
"한국팀 대표 류찬혁. 준비한 요리는 오겹살 콩피 스테이크입니다."
찬혁이 내놓은 요리는 앞서 심사를 마친 로랑의 오르톨랑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현무암처럼 거친 질감의 새까만 접시에 깔린 짙은 주홍빛을 띤 소스와 볶은 줄기채소 가니쉬. 그리고 그 위에 자리한 네모반듯하게 잘린 구운 삼겹살은 마치 황토로 된 땅 위에 굳건히 선 성벽처럼 보인다.
우아하다는 인상보다는 거칠고, 마초적인 인상이 가득한 한 접시.
선뜻 손을 대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정도로 딱딱한 얼굴을 가진 요리에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되는 것이 바로 소스 위에 연꽃처럼 장식된 몇 송이의 꽃이었다.
하얀색 뿌리로 시작하여 꽃잎 끝자락으로 갈수록 연보라색으로 변하는 그라데이션 색채를 가진 소담한 꽃.
그것이 너무 화려하지 않은 덕에, 반대로 기품 있는 남성 정장의 포켓에 장식된 코르사주와 같은 멋을 풍긴다.
심플하다 못해 단순함이 도가 지나칠 지경이던 로랑의 접시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꽃단장을 한 요리였다.
사람의 꾸밈이란 본래 야생동물의 의태와도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의태라는 행위가 가진 쓰임새는 대략적으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또 하나는 반대로 남의 눈에 띄기 위해.
모순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단순히 시선을 끄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향한 경계심을 최소치로 만들어 서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의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찬혁의 요리는 나름 의태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었다.
방금 먹은 오르톨랑에 정신이 빠져 있던 심사단의 이목을 성공적으로 제게 끌어왔으니 말이다.
"방금 로랑 선수의 요리는 맛은 분명 뛰어났지만 지나치게 단촐한 감이 있었죠?"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보는 맛이 먹는 맛보다 너무 뒤떨어지면 그것도 분명 좋은 일은 아니죠."
거짓말. 찬혁은 심사단의 말에 속으로 코웃음 쳤다.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으면서.'
애당초 로랑의 요리를 심사할 때 저들은 생김새에 대한 평가는 안중에도 없이 먹기 바빴다는 걸 아는 찬혁이다.
'물론 이해는 해.'
의태란 약자의 행위. 백수의 왕인 사자와 산군 호랑이는 사냥을 위한 보호색을 가질지언정 굳이 몸이나 털을 부풀려 자신이 위험한 존재라 어필하지 않는다.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야생에 사는 동물들 대다수는 그들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될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들판을 뛰노는 야생동물 역할은 내 차진가.'
찬혁은 작게 현실을 실감했다. 오르톨랑이 산맥을 호령하는 범이라면, 자신의 이번 요리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기껏해야 좀 잘 큰 멧돼지 정도로 보이리라는 것을.
하지만. 혹시 저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왕귀한 멧돼지는 엄니로 호랑이 뱃가죽도 뚫어 죽일 수 있다 이거야.'
***
찬혁의 요리를 앞둔 심사단의 표정은 어딘가 홀가분한 느낌이 배어 있다.
사실, 그들처럼 심사단의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요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이 자리에 선 이들이 만든 요리라는 건 못해도 별 두 개는 넉넉히 붙여줄 수 있을 정도니, 무엇을 먹든 맛있다는 어필만 제대로 해준다면 평가에 대한 어려움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없다.
그런 그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은 정말 잘 빠진 두 요리 중에 어느 한쪽을 반드시 꼽아야 하는 그들의 처지에 있다.
옥석을 가리는 것도 아니고 최고급 옥 두 개 중에서 티끌 하나 차이로 우열을 나누어야 하는데, 거기에 더해 그 행위에 수십, 수백 명의 운명이 달렸다 하면 없던 복통도 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이번 심사와 어떤 관련이 있느냐.
사실, 심사단은 이번 마지막 심사가 정말 쉬우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류찬혁 선수는 백 년에 한 번 볼까말까 한 천재고, 만드는 요리도 당연히 그 정도 수준이지만…….'
'오르톨랑은 고작 옥 따위가 아니야. 다이아몬드지.'
같은 옥이라면 어렵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와 옥이라면? 그건 굳이 고민해야 할 사항조차 아니었다.
"시식을 시작해볼까요?."
"그래요. 그럽시다."
이들의 입에 이토록 웃음기가 넘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굳이 크게 고민할 필요 없이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면, 심사위원이란 자리는 결코 불편한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그들이 정말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면 말이다.
***
"오, 역시…… 류찬혁 선수가 만든 요리는 이번에도 만듦새가 대단하군요."
식기를 든 심사단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두꺼운 통삼겹의 가운데를 절반으로 가르는 것이었다.
두꺼운 스테이크의 완성도는 단면을 한 번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고기는 어느 정도로 익었는지, 외부의 열기가 내부로 얼마나 침투했는지, 고기 속 지방질이 제대로 살결에 녹아들었는지 등등.
그런 면에서 평가하자면, 찬혁의 콩피 스테이크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바삭한 크러스트가 올라온 껍질과 촉촉하게 녹아내린 지방. 그럼에도 껍질과 지방층 아래 자리한 두터운 살코기는 골고루 보기 좋은 분홍빛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칼질을 할 때 느껴진 감각은 또 어떠한가.
"완벽한 미디움 스테이크야."
'거의' 완벽한도, 완벽에 '가까운'도 아닌. 말 그대로 완벽한 미디움. CG로 합성한 요리기술서 삽화와 비교해도 오히려 더 빼어나게 보인다.
"10kg 분량이 넘는 덩어리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익은 부위를 선별해서 사용했습니다. 가장 맛있고, 가장 완벽한 삼겹살이라고 할 수 있죠."
찬혁의 부연설명에 심사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150g 분량의 고기 세 덩이를 확보하기 위해 10kg 상당의 고기를 사용했다면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하진 않다.
수율과 노고의 문제 탓에 기존 업장에선 결코 볼 수 없을 테지만.
"소스는…… 저는 처음 보는 타입의 소스네요."
"버터나 와인을 기반으로 만든 소스는 아닌 것 같고…… 희미한 콩 냄새가 조금씩 느껴집니다."
굵은 입자가 뒤섞인 소스.
주황색 소스가 없는 건 아니다. 오렌지 등의 감귤계 과일, 혹은 그와 비슷한 색의 과육을 사용해 만든 대다수의 소스가 이런 색이 나니까.
하지만 이런 느낌의 소스는 본 적이 없다.
단내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입자가 거칠다. 과즙이나 와인보다는 데미그라스. 혹은 크림을 사용한 소스에 더 가까운 감각.
하지만 정작 여기에 사용한 주재료가 무엇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류찬혁 선수가 신기한 음식을 만드는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역시 정체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이전, 찬혁의 시합에서 심사를 맡았던 그의 동료 몇 명 또한 이해하기 힘들지만, 맛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라고 평가하던 말이 뇌리를 스친다.
'과연…….'
동료의 평가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과 함께, 한입 크기로 잘라낸 두꺼운 삼겹살 스테이크에 소스를 듬뿍 묻혀, 가니쉬로 함께 내놓은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볶은 줄기 채소와 함께 포크로 찍어 입에 넣은 순간이었다.
"…… 어흑, 콜록! 크헉!"
심사위원이, 마치 독한 양주를 댓번에 삼킨 사람 마냥 격한 기침을 토하기 시작한다.
"무,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독, 크헙!"
좀처럼 멎지 않는 기침을 간신히 억누르는 심사위원을 보며 찬혁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 그거 그렇게 드시는 거 아닌데."
반쯤 국어책 읽기였다.
***
내가 만든 콩피는 솔직히 말하자면, 유럽에서 지내던 시절 내가 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한국인의 울분이 담긴 요리였다.
왜, 자기들은 맨날 숙성 치즈나 램 같은 냄새 나는 음식은 잘만 먹고 다니면서 마늘은 맛도 향도 대놓고 많이 먹을 게 아닌데 왜 그걸 채소처럼 주워 먹고 다니냐며 꼽을 주던 기억.
싫은 추억이다…….
하여튼 코리안에 대한 배려가 없는 놈들 같으니. 지들 보고 치즈 좀 작작 먹으라고 꼽주면 바로 식문화의 퇴보니 어쩌니 이빨이나 털 것들이.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만든 요리의 컨셉은 사실 돼지고기를 주축으로 돌아간 게 아니다.
내가 주축으로 삼은 것은 마늘.
마늘의 맛을 맛있게 즐기는 요리. 그게 이번에 내가 기획한 컨셉이었다.
간신히 기침을 가라앉힌 뒤, 이게 대체 뭐냐며 날 바라보는 심사단에게 말했다.
"돼지고기를 콩피할 때 사용한 기름에 배인 향 때문에, 다소 드시기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콩피에 사용한 기름이요?"
"예. 제가 콩피에 사용한 기름은 스페인산 산도 0.2%이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그리고 최고등급 한우의 지방을 사용해 뽑아낸 우지를 일정 비율로 섞은 물건입니다. 다만, 거기에 조금 변곡점을 주었죠."
변곡점이란 굉장히 간단한 것이다.
우지와 올리브유로 다량의 마늘을 튀긴 뒤, 마늘은 따로 처분하고 기름을 필터로 걸러 마늘의 향과 액기스가 스며든 기름을 사용한 것.
이때 사용한 마늘의 양만 대략 2kg 정도. 이쯤 되면 올리브유, 우지가 아니라 거의 마늘기름이라고 봐도 다를 게 없다.
다만 그 풍미의 깊이가 차원이 다를 뿐이지.
"장시간의 콩피를 통해 기름에 밴 마늘향과 매운맛이 고기에 듬뿍 스며들었을 겁니다."
"아니, 그런 걸 저희한테 어떻게 먹으라고……."
"물론, 먹는 방법이 있죠. 소스에 잠시 주목해주세요."
소스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심사단을 향해 말을 이었다.
"해당 소스는 동양의 전통 식재료인 두부를 만들고 남은 콩의 잔여물, 비지를 사용한 것입니다."
막 만들어 뜨끈뜨끈하고, 아직 비린맛이 생기지 않은 신선한 비지를 소량의 밀가루와 함께 기름 없이 볶아 수분과 함께 잡맛을 깔끔하게 없애고 고소한 맛만을 극한으로 강화한다.
거기에 계란 노른자로 만든 소스 베이스와 된장, 고추장을 섞어 만든 아주 걸쭉한 소스.
그게 바로 저 소스의 정체다. 콩의 풍미가 강한 것도 당연하지. 저기에 들어간 게 온통 콩으로 만든 거니까.
내 설명이 끝나자, 관객석에서 의문 섞인 반응이 튀어나온다.
"잠깐만. 된장에 고추장을 섞어서 만든 소스라고……?"
"그거 완전……."
"쌈장 아냐……?"
정답이다. 관객.
근데 어쩌나. 오랜 생활을 종합한 결과, 마늘에 가장 어울리는 양념은 쌈장이라는 결론밖에 나오질 않았거든.
"맞습니다. 이 소스는 제 방식대로 개량한 쌈장입니다. 다만 평범한 쌈장은 아니에요."
이 소스에는 내가 직접 만든 된장과 고추장이 사용됐다.
성심고 대회반의 특혜 중에는, 성심고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시설 중 하나인 온도, 습도, 채광이 완벽하게 제어되는 최신형 장독간에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할 수 있다는 항목이 있다.
그곳에서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장독대 컬렉션.
그중에서도 염도와 당도를 최대한 억제하여 만든 된장과 고추장은 극도로 담백한 맛을 가진 나의 특제 전통장이다.
여기에 XO장의 제작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금화햄, 말린 전복, 버섯 등의 건어물을 사용한 육수를 섞어 진한 감칠맛을 밧줄 삼아 맛의 극점을 한 곳에 꽁꽁 뭉쳐둔 것이 바로 이 소스.
기존의 쌈장보다 훨씬 염도나 당도가 적지만, 발효된 장류 특유의 감칠맛과 쌈장 본연의 맛만큼은 그대로 유지한 양념.
"이 양념에, 고기를 퐁듀처럼 푹 찍어 드시면 됩니다."
"그, 그걸로 이 독한 풍미가 해결된다고요?"
"아 한 번만 믿어보세요."
거 참 사람들이 말이야. 어? 왜 이렇게 신의가 없어? 요리사 믿지? 츄라이, 츄라이!
내 거듭된 권유에 심사단은 마지못한 얼굴로 다시 식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여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요리대회장. 어설픈 혀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다.
***
요리사를 향한 신뢰에 눈 딱 감고 음식을 맛본 심사단. 결과는 대단했다.
"세상에……."
그들은 제 혀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요리가 닿고 지나간 입천장이나 잇몸 근처를 남몰래 핥으며 믿기지 않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입김을 뱉으면 미간에 절로 주름이 잡힐 정도로 강렬한 마늘향.
다른 요리에 이런 향이 배어 있었다면 쉽게 입에 대지도 못했을 터.
그러나 신기하게도, 퓨전 쌈장 소스와 같이 스테이크를 먹으니 그 향이 씻긴 듯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아리고 매운맛 아래 숨어 있던 마늘 특유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단맛만이 혀에 남아, 그들에게 둘도 없을 행복함을 선사한다.
제 입에서 나는 향이 아니었더라면 이 요리에 마늘이 들어간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마늘 덩어리 같은 요리를 맛있게 먹다니?'
거짓말이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중독성이 생길 만큼 놀라운 맛이었다.
그렇게 듬뿍 찍어 먹었음에도 딱 적절한 짠맛과 단맛, 고소함만을 알맞게 전달해주는 소스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소스 자체에 배어든 감칠맛이었다.
혀의 수용체를 맛의 폭력으로 굴복시키는 것 같은 압도적인 감칠맛.
단순히 고기를 구웠을 때 나오는 육즙이나, 뼈나 토마토 등에서 나오는 아미노신산의 감칠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세월이 쌓여 완성된 감칠맛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감칠맛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사실, 일본을 통해 먼저 서양에 알려진 간장도 그렇지만, 서양인이 한국의 양념장 중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양념 중 하나가 쌈장인 것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단순히 볶고 끓이는 과정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발효장 특유의 감칠맛이 그만큼 서양인의 입맛에 찰떡처럼 들어맞았기에.
거기에 더해 XO장을 만드는 기법으로 우려낸 육수와 계란 노른자를 사용해 만든 소스 베이스에서 생겨난 감칠맛까지 섞인 지금, 심사단은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이 지구상에 이 소스의 감칠맛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이건…….'
'감칠맛과 강렬한 개성만큼은, 분명 오르톨랑 이상이야……!'
그들 마음속에 드높이 세워진 에펠탑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놀랍게도 다이아몬드의 상대라 믿었던 옥의 장막을 한 꺼풀 거둬내니, 그곳에 있는 것 또한 다이아몬드였다는 현실.
간단하리라 믿은 승부가 난항에 빠진다.
심사단은 실감했다.
그들은 이 괴물들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