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 끝장전.-6-
"오르톨랑이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 맞지? 아니 이런 양심 터진 인간을 봤나. 왜 그걸 요리대회에 들고나와?
"야 이 씨."
순식간에 치아라는 이름의 1차 방어선을 꿰뚫은 쌍시옷 발음이 이어지기 직전 간신히 삼켰다.
엄청난 기세였다. 거의 19세기 전열보병 라인을 21세기 주력 전차가 충각으로 들이받는 수준의 돌파력이었어.
아주 간만에 제 역할을 다한 입술을 달싹이며 헛소리를 좀 웅얼대니 판단력이 조금 돌아왔다.
'말이 오르톨랑이지 진짜 오르톨랑은 아니야.'
애당초 내가 본 건 틀림없이 참새고기였는데, 오르톨랑이 튀어나올 껀덕지가 어디 있겠어.
다만 진짜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것이 진짜와 완전히 다르다는 결론을 내기엔 이르다.
하다못해 중국발 짝퉁 명품조차 몇몇 부분에 있어선 원본의 기술력을 얼추 따라가는 일이 있다.
심지어 이번엔 다른 누구도 아닌 로랑 마틴 정도의 세계구급 셰프가 직접 그 이름을 언급했으니, 적어도 그만한 자신감이 있기에 꺼낸 소리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예상컨대 이것은 참새를 통한 오르톨랑의 재현, 못해도 그걸 모방한 요리 정도의 수준은 될 터.
'위험한데.'
재현, 혹은 모방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프랑스 만인이 인정하는 최고의 프렌치를 꼽으라 하면 오르톨랑은 못해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여기서 인륜이라는 기준을 하나 제거한다? 그럼 못해도 세 손가락 이내로 바로 순위가 급상승하지.
참고로 이 세 손가락 안에는 푸아그라 요리가 껴 있다.
아무튼, 로랑이 준비한 건 바로 그 인륜적인 문제를 이런 공식적인 대회에서 대놓고 내놔도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만큼 해결한 오르톨랑.
"오우야."
쫄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복싱 좀 친다고 갑자기 알리랑 한 판 붙어보라고 던져주면 누가 쫄지 않을 수 있을까.
오히려 좀 치는 놈이라 알 수 있다. 갑자기 눈앞에 튀어나온 상대가 세상에 상대를 찾기 힘든 괴물이란 사실을.
근데 말이지, 가끔 어떤 미친놈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죽은 알리랑 한 판이라도 붙어 볼 수 있단 건, 복서한테 최고의 영광이자 천금을 주고서도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니 달게, 그것도 아주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미친 생각을 말이다.
그리고, 이거 참.
어떡하나.
절로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견디기가 힘들다. 그렇다.
그 미친놈이 바로 나야.
***
"저게 오르톨랑이야? 별거 없어 보이는데?"
심사단 앞에 자리한 로랑의 요리를 본 관객 중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기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객이 비슷한 감상을 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의 프렌치라며 온 인터넷에서 설레발 가득하던 오르톨랑이란 요리의 완성품은 그들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단촐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진짜 플레이팅까지 끝난 거야?"
"여백의 미도 정도가 있지, 저건 그냥 도화지에 점 하나 찍은 수준이잖아."
한 뼘보다 살짝 더 긴 직경을 가진 무늬 없는 새하얀 접시 중앙에 놓인 참새 통구이 하나.
가니쉬는 커녕 장식과 소스조차 없다. 여백의 미가 과하다는 관객의 말이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광경이다.
"아니, 저게 맞아."
그러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그런 관객들과는 반대였다.
저것이 정말 오르톨랑이라면, 저 배치야말로 '옳은' 플레이팅이었으니까.
루이의 발언에 헬레나가 의아해하며 묻는다.
"저게 맞다뇨?"
"음…… 헬레나 넌 오르톨랑 먹어본 적 없지?"
"예. 그야 오르톨랑은 제가 꼴레주collège에 들어가기도 전에 금지됐으니까요."
오르톨랑의 취식, 취사를 금지하는 법안이 발령된 것은 1999년. 요리사 공부를 프랑스의 중학교인 꼴레주에 들어간 다음부터 시작한 헬레나는 그 이전엔 오르톨랑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아마 자연사 도감에서나 잠깐 봤을까 싶을 정도다.
"그건 참 아까운 일이네. 오르톨랑을 못 먹어본 건 인생의 손핸데 말이야."
"셰프 같은 사람 때문에 그런 금지 법안이 생긴 거예요."
"…… 크, 흐흠."
도무지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팩트의 폭력에 명치를 후려 맞은 루이가 작게 헛기침을 하곤 말을 이었다.
"아, 아무튼. 오르톨랑의 기본적인 개념은 맛의 응축이야. 오르톨랑 촉새라는 저 자그마한 새 속에 얼마나 알차게 맛을 꾹꾹 욱여넣을 수 있느냐가 최종적인 맛을 결정짓거든."
굳이 눈을 멀게 하여 무작정 밥만 먹는 기계로 만들어 살을 찌우는 것도, 그걸 또 굳이 익사시켜 장기 속에 아르마냑이 가득 차게 하는 것도.
결국엔 맛의 압축률이라는 놈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밑 작업에 불과하다.
"그래서 잘 만든 오르톨랑이란 녀석일수록 맛이 잘 응축되어 있어. 맛이란 걸 뇌가 받아들이는 정보라고 생각할 때, 그 정보의 양을 따지면 저 주먹보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대야 가득 담긴 스튜보다도 많은 정보량을 담고 있지."
"…… 아하. 그래서 저렇게 단촐한 게 좋단 거군요. 저 이상 다른 맛이 섞였다간 어차피 정보 과다가 될 테니까."
"정답이야. 뭐, 그것도 로랑 저놈이 얼마나 제대로 오르톨랑을 재현해냈느냐에 달렸겠다만."
안 그래도 한입에 한 마리를 통째로 씹어 삼켜야 하는 오르톨랑. 거기에 괜히 무언가 더하려고 해봤자 방해만 될 뿐이다.
'저 작은 새고기 하나에 그만한 풍미가……?'
헬레나가 흥미로운 시선으로 심사단을 바라볼 무렵, 심사단 측이 심사를 볼 준비를 끝마친다.
준비라고 해봤자 접시 하나에 식기 한 세트 정도가 끝이었으니 크게 시간이 들 것도 없었고, 들일 생각 또한 없었다.
심사위원들의 머릿속엔 당장에라도 눈앞의 요리를 입으로 가져가고 싶은 욕구뿐.
로랑은 그런 심사단의 마음을 이해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맛보실 요리는 제가 참새를 통해 재현한 21세기형 오르톨랑입니다! 시식을 하시기 전, 이것을 먼저 착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로랑이 가리킨 것은 테이블 위, 식기와 함께 놔둔 린넨 재질의 커다란 냅킨이다.
본래에는 식사하는 이가 사용하는 고가형 냅킨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 의미가 대단히 많이 바뀐다.
잘 포개어 접은 냅킨을 넓게 펼치는 심사단. 그 크기는 사람의 얼굴 정도는 정수리부터 덮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커다랗다.
'당연하지. 그러려고 있는 물건이니까.'
심사단은 그것의 용도를 눈짐작만으로 충분히 파악하곤, 더 이상 누가 재촉할 새도 없이 그것을 머리 위에 뒤집어쓴다.
마치 후드 점퍼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모양새. 뒤집어쓴 장본인들조차 아주 자그마한 빗살구멍이 아니라면 바깥을 살필 수가 없다.
이것이 오르톨랑을 먹을 때 필요한 도구 중 하나.
바깥의 시선에서 먹는 이의 얼굴을 가림과 동시에 오르톨랑의 향이 날아가지 않고 얼굴 근처에서 맴돌게 하기 위한 안배가 담긴 물건이다.
"감사합니다. 이제 시식을 진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후에는 더 이상 무엇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심사단이 오르톨랑을 향해 달려든다.
포크도, 나이프도 있으나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깨끗하게 닦은 손가락으로 직접 참새통구이를 잡아, 다리 쪽을 제 입으로 오게 들고는 머리만 빼고 한입에 베어 문다.
─오독! 까드득!
갓 돋은 나뭇가지 끄트머리보다도 얇은 참새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듣는 이에 따라선 충분히 소름끼치게 다가올 수 있는 소리였으나, 심사위원 중 누구도 그 소리를 제대로 들은 이가 없었다.
단순한 이야기다.
그들의 뇌는 이미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순간적인 과부화 현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터, 터졌다!'
'입에서 물풍선이 터졌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작은 참새 속에는, 겉으로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 온갖 액체가 잠들어있다.
각종 장기 속을 꼼꼼히 채운 아르마냑.
식도부터 시작하여 대장까지. 신체의 커다란 통로 하나를 꽉 틀어막은 넛츠&후르츠 페이스트.
인젝션으로 집어넣은 오리 기름.
마지막으로 참새를 구울 때 나온 자체적인 육즙까지.
오븐의 열이라는 이름의 믹서기에서 누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아주 끈덕지게, 골고루 뒤 섞인 그 액체야말로 오르톨랑의 진정한 '맛'이었다.
'맛'이라는 내용물이 가득 담긴 고기 물폭탄.
심사단이 말한 '입속에서 물풍선이 터진 듯하다'는 말도 영 틀린 반응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 맛은 한 번 터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고소한 살을 씹으면 씹을수록 어디선가 끊이지도 않고 흘러나와 또 한 번 맛의 홍수를 이루었다.
"이게, 이게 오르톨랑인가!"
작게 벌린 입술 사이로 통째로 씹기엔 너무 커다란 뼈를 조심스레 뱉어내며, 그와 동시에 날숨으로 빠진 향기가 냅킨에 막혀 얼굴 앞을 아른거린다.
그것을 다시 들숨으로 비강 깊이 빨아들이면, 공기와의 외유를 즐기고 돌아온 아르마냑의 향기가 한층 더 에어로한 부드러움을 머금고 새로운 풍미로 변하여 먹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모든 과정이 계속해서, 연쇄적으로, 막힘없이.
아주 정밀하게 설계하고 배치한 골드버그 장치처럼, 치밀하게 계산된 우아한 맛의 함정.
이것이, 금단의 맛.
이것이, 한 종을 멸종 직전까지 이끈 악마의 맛.
'이, 이래서……!'
살면서 오르톨랑을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심사위원은 생각했다.
'이런 게 바로 선악과를 먹은 이브의 삼정이란 말인가?'
여태껏 자신이 알고 지내온 맛의 저변이 확장되는 맛. 사람의 상식을 뒤바꾸는 맛이란 실제로 있었구나.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여태껏 오르톨랑 같은 요리는 지식으로만 알아두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그는 지금 먹은 오르톨랑의 맛에 깊은 감동을 느끼기도 전에, 앞으로 평생을 살며 다시는 오르톨랑 요리를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중이었다.
"…… 브라보."
심사단이 입술을 달싹였다.
머리에 뒤집어쓴 냅킨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향조차 끝끝내 하나도 남김없이 음미하고.
혹시나 냅킨에 그 향이 배지 않았을까, 향수 뿌린 손수건의 향을 확인하듯 코에 문대면서.
다만 입술은, 자신들이 먹은 요리에 대한 찬사를 읊는다.
"브라보! 브라보!"
"부활했습니다! 부활했어요! 악마의 요리로서 인간의 양심이란 땅 아래 묻힌 오르톨랑이란 요리가! 이젠 악마의 마성마저 기술로서 정복한 인간의 손에 의해 다시 부활했습니다!"
역대급의 찬사.
'역대급이란 말, 진짜 많이도 쓰는 것 같은데 말이지.'
찬혁은 생각했다.
이번 대회에 임하며 정말 수많은 심사위원을 만났지만, 그 어떤 심사위원도 이토록 열정적이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자신이 먹은 음식에 대한 찬사를 날리는 이는 없었다.
무슨 요리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지지한 정당을 홍보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정치인 홍보대사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니, 하지만…….'
만약, 저 요리가 정말 오르톨랑이라는 요리의 원전을 제대로 재현해냈다면 분명 그러고도 남을 위력이 있음을 찬혁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큰일 났네."
인류의 역사에서 적수를 찾기 어려운 요리, 오르톨랑.
현대에 다시 부활한 요리에, 자신이 그 적수를 짝지어주어야 했다.
"쌉가능이지."
못할 건 없었다.
찬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으며, 한 손을 크게 뻗쳐 들고 외쳤다.
"한국팀 대표 류찬혁! 조리 완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