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 끝장전.-5-
─굿~모~닝~ 빠라빠빠빱─
"그래, 굿모닝이다."
지금이 아침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마는.
피곤에 절은 허탈한 웃음을 삼키며 알람을 끈 시계를 손에서 내려놓는다.
아니, 대체 왜 알람시계 알람 설정을 저렇게 정겨운 음악으로 해둔 거야?
괜히 이 시계를 준비한 제작진에게 불평을 토해본다.
시간 감각을 까먹지 않으려고 설정해둔 알람이지만 이게 오히려 내 멘탈을 깎아 먹을 줄이야. 새벽같이 출근하던 시절의 악몽이 뇌를 좀먹는군.
이 주방에는 창문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창문'도' 없다.
바깥으로 통하는 창구라곤 꽉 닫힌 문 하나뿐인 공간. 화장실 갈 때 빼곤 요 24시간 동안 햇살조차 못 봤다.
이런 곳에서 시간감각마저 까먹으면 사람 미치기 딱 좋지.
"근데 알람이 저러면 시간이 생각나서 사람이 미치겠어."
저 벨소리 만든 사람은 장수할 거야. 녹음한 사람도 장수할 거고. 욕으로 수명스택이 쌓인다면 매일 아침마다 수천만 개씩 쌓일 거다.
그 정도 스택이면 Q가 범위스킬로 변한 탑서스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겠지. 이거야 철정이 녀석이나 할법한 소리긴 하다만.
뭐 어쨌든.
이런 환경에서의 조리라는 건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본인이 처음에 계획한 컨셉을 끝까지 지키면서 옳은 방향으로 퀄리티를 올릴 수 있느냐.
그리고 이 과정을 수행하는 도중 괜한 욕심으로 본래 컨셉을 망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느냐.
자신과 싸운다 함은 곧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자문자답이다.
욕심의 통제, 나태의 통제, 마음의 통제.
모든 게 적절히 동원되어야 비로소 하자 없는 물건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내 자신을 평가해 보자면…….
"…… 괜찮은데."
나는 통제를 통제하는 데에 성공한 듯싶다.
마지막 심사까지 앞으로 5시간. 이 여정의 끝을 볼 때가 됐다.
***
"끝났네."
24시간에 걸친 생방송이 끝났다. 12시 정각에 시작되는 마지막 심사까진 아직 한 시간하고도 조금 더 시간이 남았지만, 마지막 완성 장면만큼은 공개되지 않는다.
일종의 엠바고였다.
시합 과정이 공개되는 건 좋지만 마지막 장면까지 전부 까발려서야 심사를 보는 재미가 없다.
이것은 자연스레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질 테니, 제작진 입장에서나 요리사 입장에서나 그다지 나쁠 건 없는 이야기였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재밌게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끊긴 것 같은 불쾌한 심정이었지만.
사실상 '그래서 안 볼 거야? 응?'이라며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거들먹거리는 꼴이다.
무엇보다 슬픈 건, 그렇다고 안 볼 재간이 있는 건 또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될까요?"
암전된 화면 옆으로 뚝뚝 끊기며 올라가는 채팅창을 잠시 바라보던 차윤구가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옆에 앉은 안영길에게 물었다.
그러나 안영길은 명확한 대답 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다.
"아직은 알 수 없겠죠."
"음……."
"장시간 조리에서 가장 바쁠 때는 손님에게 요리가 나가기 직전이니까요. 그때 할 일이 가장 많지 않습니까."
"하긴, 장시간 조리라는 것도 결국은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거지, 정말 24시간 내내 요리를 한다는 뜻은 아니죠."
이런 주제에서 진짜 요리다운 요리를 하는 시간은 오히려 마지막 한 시간.
즉 시청자들은 볼 수 없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본 건 말하자면 빙산의 일각. 그렇게 준비한 재료를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바닷물 아래에 잠긴 빙산의 나머지 부분의 모양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준비한 두 사람의 재료만 봤을 때에 언뜻 찬혁이 불리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오르톨랑과 삼겹살 콩피. 확신할 순 없지만, 만약 전자의 완성도가 제 원전과 버금가는 수준이라면, 이 대결은…….
─똑똑
"한국팀 선수 여러분. 슬슬 출발 준비 끝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 메이크업 하신 뒤에 무대 올라가실게요."
앞을 읽을 수 없는 상황에 침음을 하기도 잠시. 그들의 상념은 대기실 문을 노크하며 등장한 촬영팀에 의해 끊기게 됐다.
현장에 서는 요리사에게 화장은 사치에 더해 장애물이지만, 오늘은 그저 심사와 수상식이 있을 뿐이니 화면에 나갈 그들도 메이크업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연락이 있었다.
그들도 못내 허락하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화장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닌지 하나같이 작게 인상을 찌푸린 그들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결과는 보면 알 수 있게 되겠죠."
그저 지금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24에 걸친 시합의 종착점인 바로 이곳! 여러분이 미처 못 보신 한 시간의 준비를 통해 비장의 무기를 갈고 닦은 두 요리사가 다시 서로를 마주했습니다! 과연 승리하는 건 누구인가? 누가 결승전을 제패하고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의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깃발을 꽂을 것인가!"
MC가 숨을 길게 들이켜곤, 단번에 들숨을 내뱉으며 외친다.
"지금부터 심사를 시자아아악! 합니다아아아!!"
─와아아아아!
아이고 귀야. 귀청 떨어지겠다. 다들 왜 이렇게 흥분한 거야?
어째 평소보다 한층 더 격해진 함성을 내지르는 관객들을 흘겨보곤 다시 고갤 돌린다.
완성을 한 걸음 앞둔 요리를 들고 올라선 무대.
혹시 있을지 모를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운영위원에게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당하며 거의 연행되다시피 끌려온 나는, 비로소 나와 같은 꼴을 면치 못한 상대와 무대 위에서 마주했다.
"……."
"……."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같은 고생을 나눈 로랑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 봤지만, 그는 그걸 보고도 딱히 마주 손을 흔들어주진 않았다.
그저 어딘가 불만스러움이 느껴지는 무표정으로 이쪽을 쭉 바라보고 있을 뿐.
…… 아니, 저건 원래 표정이 저런 건가?
하여튼 얼굴 무섭게 생긴 사람이랑은 쉽게 친해지기도 힘들어. 나현주가 딱 그랬는데. 걔는 분위기만 보면 오래된 야쿠자 여두목 상이라.
정작 그쪽에 보다 가까운 건 땅딸보 친구인 양희연 쪽이라는 게 우스운 부분이다. 아마 본인이 들으면 내 쪼인트를 까려고 들지도.
아무튼, 잡생각으로 조금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 뒤, 나는 로랑과 그의 조리대를 살폈다.
이미 98% 정도는 완성된 요리를 들고나오긴 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남은 2%를 채워야 한다.
아예 완성하고 가져오면 그동안 맛이 떨어지니까.
원래 대부분의 요리는 막 완성했을 때가 맛있다. 가끔 완성한 다음날에 먹는 게 더 맛있는 것도 있다만.
'그러니 지금 잘 살피면 어떤 요리를 준비해왔는지 대충 알 수 있지.'
로랑의 자리에는 이미 예열이 끝난 오븐, 그리고 준비한 재료가 담긴 트레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븐에 굽기만 하면 끝나는 요리인가?'
소스도, 가니쉬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듯 오연한 자세.
대체 무슨 요리를 준비했기에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마침 그가 트레이를 가리고 있던 커다란 천을 거둔다.
그리고 그 트레이에 있던 것은…….
"새?"
새였다. 새고기. 그것도 한 마리가 내 주먹보다도 작은 새.
'메추리? 아니야. 더 작아. 참새인가?'
내장 손질은 따로 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특수한 방법으로 한 건지.
배에 칼 댄 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 참새.
'…… 용케 또 괜찮은 식재를 구했네.'
거의 제 몸통의 반절만 한 머리통이 붙은 모습을 보면 요즘 사람들은 분명 거부감을 느끼리라 생각하지만, 참새고기라는 건 과거에는 생각보다 흔하게 취급되는 식재였다.
요즘에야 채산성이 적고 굳이 기를 필요도 없는 탓에 파는 곳이 아니면 정말 구하기 어려워지긴 했지만.
'거기다 지금 시즌이면 참새고기가 마침 맛있을 때기도 하고.'
참새는 기후변화에 민감한 조류답게 가을철만 되면 겨울을 날 준비를 하기 위해 먹이를 잔뜩 먹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벌레만 먹어도 충분하던 녀석들이 사람이 기른 곡식이나 산에서 나는 과일 따위를 먹는데, 이를 통해 살도 불리고 고기 자체의 맛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참새로 무슨 요리를 만들었냐는 건데.'
지금 다시 보니, 로랑이 꺼낸 참새의 생김새가 묘하다.
저걸로 무언가 요리를 했다면 요리를 한 흔적이 고기에 남아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로랑이 꺼낸 참새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심지어 조류 고기에 흔한 배를 가른 자국조차 보이질 않는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칠면조처럼 총배설강을 통해 내장을 제거하고 거기에 무언가를 넣어 조리한 건가?
아니, 근데 참새를 그렇게 요리할 이유가 없잖아.
보통 속에 무언가를 채워서 조리하는 이유는 고기 자체에서 흘러나온 맛이 속에 채운 재료에도 배게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인데, 참새는 다른 재료에 맛이 밸만큼 조리시간을 길게 잡을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그러기 전에 오버쿡 되는 게 빠를 테니까.
길게 뺀 목에 물에 적신 조리용 실을 감아 철봉에 거는 로랑.
이렇게 말하면 좀 표현이 그렇지만 참새를 교수형 한 모양새다.
'…… 모르겠다.'
대체 무슨 요리를 준비한 건지, 지금 저 재료만 보는 걸로는 감이 잡히지 않아 나는 내 요리에나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흡."
통째로 가져온 수비드 컨테이너.
뚜껑을 여니 하얗게 굳어 버린 액체가 담긴 것이 보인다.
기름이었다. 올리브 오일 밖에 없었다면 이렇게 굳진 않았겠지만, 여기에 섞인 다른 기름이 문제였다. 내가 일부러 냉각시킨 탓도 있겠지만.
마치 화석을 발굴하듯 굳은 기름을 갈라 그 속에 잠들었던 삼겹살을 꺼내준다.
엄격하게 계산된 시간.
완성형 콩피라는 이름을 댄 만큼, 58도의 뜨거운 기름 속에서 장장 다섯 시간 가까이 전신욕을 끝마친 삽겹살의 단면은 벚꽃처럼 아름다운 분홍색을 띤다.
수분 용출도 기존의 수비드에 비하면 거의 0에 가깝다.
"좋아."
딱 내가 원했던 모양새.
고기를 재빠르게 1인분씩 자르지 않은 보쌈 모양으로 재단한 뒤, 컨테이너 속에 담겨 있던 기름을 아이스크림 퍼내듯 한 국자 푹 떠서 달군 프라이팬 위로 얹는다.
다른 요리에는 쓰지 못할 기름으로 변한 것들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 요리에만큼은 세상 그 어떤 기름보다도 잘 어울리는 기름이다. 알력태생이라고 해야 할까.
이 기름을 녹여, 이걸로 겉을 시어링하고 껍질에 크러스트를 형성해서 소스, 가니쉬와 함께 내가는 오겹살 콩피 스테이크.
그게 바로 내가 준비한 마지막 결승을 위한 요리였다.
그것이 앞으로 5분. 5분만 있으면 완성된다.
내 노고에 남몰래 찬사를 보내며, 완성을 기다리던 그때였다.
"완성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완성 선언.
참새고기를 오븐에 넣은 뒤로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던 로랑이, 갑자기 완성을 선언한다.
'이렇게 빠르게?'
아무리 참새고기가 빨리 익는다지만, 굽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대체 무슨 요리를 준비했기에.
그런 의아함을 담아 로랑을 바라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프랑스팀 대표 로랑 마틴. 준비한 요리는 오르톨랑입니다."
…… 오, 오 뭐?
너 지금 뭐라 했니?
불합리한 궁극의 프렌치가 불쌍한 요리사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