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 끝장전.-4-
결승전 마지막 시합이 24시간 생중계로 방송된다는 것이 세간에 알려진 뒤,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불판이 됐다.
안 그래도 이미 대형 장작이 탈대로 타올라 가을철 산불처럼 불어난 열기.
부나방처럼 불을 향해 모여든 사람들은 불구경으로도 모자라 거기에 기름 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본래 인터넷 커뮤니티에 심취한 유저들이란 족속들은 대부분 싸움판만 났다 하면 본인이 험상궂은 손님이라도 된 것 마냥 그 난장판에 뛰어들길 망설이지 않는 이들이었고, 그런 습성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 불판을 놓은 곳은 전 세계의 방송국이란 이름의 거인들이었고, 거인들이 놓은 불판은 아주 자연스럽게도 그 크기가 아주 어마무시하단 사실이었다.
주말 연속극이 끝난 다음 나오는 30초짜리 예고편 내용만 갖고도 일주일 내내 입씨름…… 아니. 손씨름을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이 24시간 동안 전 세계에 동시 송출되는 방송 앞에선 오죽할까.
생방송 채팅, 커뮤니티, 올튜브, 개인방송, etc, etc…….
너나 할 것 없이 뒤도 안 보고 무작정 이 난장판에 끼어든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지식과 믿음으로 무장하고 전쟁터에 섰다.
두 손에는 무기, 머리에는 적의, 앞에는 전장.
이제 남은 건 무엇일까?
그렇다. 남은 거라곤 오로지 싸움뿐이었다.
이 방송이 끝나기 전엔 결코 멈추지 않을 싸움 말이다.
─아니, 이건 누가 봐도 한국이 이긴다니까? 벌써 한 번 이겼는데 두 번이라고 다르겠음?
└응, 아니야. 역전각 씨게 잡혔죠? 프랑스가 패승승으로 한국 쳐바를 거 뻔하죠?
└└대체 뭘 근거로 역전각 잡혔다는 건지 물어나 보자. 솔직히 2라운드도 한국팀 평균체력이 딸려서 문제였던 거지 평범한 주제로 했으면 거기서 시합 끝났지. 팀 전체 실력차이가 명확하잖아
└└└나도 솔직히 한국팀 우승 점친다. 류찬혁 쟤는 보면 못할 게 없어 보임;
└└└└올해로 20살에 요리천재 방송만 세 번, 광고에 출연료로 억 가까이 받았다던데. 난 대체 저 나이에 뭐 했지…….
└└└└└혼자서 인생 2회차 사는 듯
…… 한국의 커뮤니티인 만큼 중간부터는 한국팀의 대표선수인 찬혁에 대한 이야기로 빠지긴 했으나, 그것을 감안 하더라도 시합 시작 직전에는 한국팀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사실상 여태껏 사람들이 접한 전적이 그러했다.
프랑스팀이 자국을 제외하면 TV에도 따로 방송되지 않는 패자전에서 경기를 치를 동안, 한국팀은 전 세계에 생방송 되는 본선에서 무패를 기록하며 결승전에 진출했으니까.
거기에 더해 1회전에서 서로 승부가 갈린 두 팀인 만큼 한국팀의 승률이 높을 만도 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찬혁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드러누웠을 때에도 그런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24시간이나 있는데 좀 쉴 수도 있지ㅋㅋㅋㅋ
─진짜 자신감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아까 2라운드 끝나자마자 주저앉던데, 체력 쫙 빠진 상태로 고집 부려서 요리한다고 더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사람들은 찬혁의 그런 당황스런 행동을 위트있는 전략으로 받아들였다.
그랬던 시청자들의 의견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 건, 오히려 찬혁이 막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요리를 시작한 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로랑이 만드는 요리의 정체를 소수의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한 다음부터였다.
─야, 나 지금 로랑 쪽 보다 생각한 건데. 저거 설마 그거야?
─그거 맞는 것 같은데……?
└그거가 뭔데 이 씹덕들아;
─오르톨랑…… 오르톨랑이다! 대회에서 오르톨랑을 만든다고? 위법 아니야?
─아니, 위법은 아니지. 명확하게 보면 오르톨랑은 아니잖아. 고기는 평범한 참새고기고, 조리법도 꽤 온건해
─오르톨랑하고 엄청나게 비슷한 오트롤랑 비슷한 요리를 만드는 거라고 봐야하나?
─엄밀히는, 그렇게 봐야겠지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씹덕쉑들 지들만 아는 걸로 신났죠?
└└인싸쉑 지만 모르는 거 나와서 뿔났죠?
└└└텐련이?
─그나저나 류찬혁은 뭐 하고 있음? 아까 일어났잖아
─고기 꺼내는 것 같더라
─고기? 무슨 고기?
─삼겹살
─…… 실화야?
─감동실화임
─오…….
낡은 문헌과 자료로밖에 볼 수 없었던 전설적인 요리 vs 어제도 먹은 돼지 삼겹살로 만든 요리.
그 결과는 굳이 물어볼 것도 없었다.
로랑이 만드는 요리는 단숨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는 곧 찬혁의 승리를 유리하게 점치던 여론이 반전하는 시발점이 됐다.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조롱성 글의 대상은 대부분 찬혁으로 뒤바뀌었고, 전직 요리사들의 개인방송에선 프랑스팀의 우승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심지어는 불법으로 개설된 토토 사이트에서조차 프랑스팀에 높게 설정되었던 배당금이 어느새 팽팽해지더니, 이내 한국팀의 배당금이 더 높아지는 일도 있었다.
한창 편을 들어주던 여론이 순식간에 손바닥 뒤집듯 태세를 바꾼 상황.
아마 찬혁이나 로랑 본인이 작금의 상황을 보았다면 어지간히 어이가 없었으리라.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당사자들은 이미 조리실에 반쯤 감금되다시피 한 탓에 그럴 일은 없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작금의 상황이 누구에게나 즐겁지만은 않았다.
예를 들어 찬혁을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그의 친구들이나, 같은 팀원들 같은 경우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절로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실력 있는 요리사이기에, 오르톨랑이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요리인지를 알고 있어서 심란한 마음은 더더욱 커질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도 그러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
"하이고, 아주 개판이 따로 없네."
일을 끝내고 방에 들어와 새벽 늦게까지 생중계 화면을 켜놓고 다다미 바닥에 누운 양희연은 작은 액정 너머로 보이는 찬혁을 바라보며 작게 혀를 찼다.
'침착한 건지 느긋한 건지.'
어딘가 묘하게 늘어진 동작으로 요리를 이어나가는 찬혁에게선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질 않는다.
'만날 저짝이긴 했제.'
뭘 해도, 어떤 상황이어도 잘 투덜대긴 하지만 긴장해서 실수를 저지르진 않는 녀석.
어떤 문제가 생기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던 녀석.
그런 녀석이니만큼, 이번에도 알아서 잘 하겠지.
어딘가 근거가 빈약한 믿음을 갖고 화면을 바라보던 양희연은, 이내 느긋하게 움직이던 찬혁이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곤 자세를 바로 했다.
"수비드 머신? 수비드 할라카나 보네."
서둘러 움직인 찬혁이 준비한 것은 수비드 머신이었다.
돼지고기 수비드. 그다지 자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신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애당초 적당한 덩어리 고기라면 수비드는 대부분의 상황에 사용 가능한 조리법이니까.
특히 찬혁이 선택한 통삼겹살이라면 고기 내부의 부드러운 식감은 끝까지 살리면서 후처리에 따라 겉은 바삭한 느낌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 근데 왜 수비드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하지만 양희연은 의아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굳이 평가하자면, 돼지고기 수비드라는 것 자체가 이런 대회의 결승전에서 나오기엔 너무 평범한 방법이다.
애당초 장시간 조리라는 주제 아래서 돼지고기를 다룰 생각을 했다면 양희연의 경우 망설임 없이 훈연 바비큐를 선택했을 것이다.
수비드와 훈연은 맛이 배이는 깊이부터가 다르다.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시중에서 파는 인스턴트 원두커피와 프로가 직접 볶아 만든 드립커피 정도의 차이가 있다.
'점마 짬바가 있으니 앵간한 레스토랑 정도를 기준으로 잡는다 캐도 훨씬 괜찮긴 할 건데…….'
문제는 여기가 그 '앵간한 레스토랑' 수준의 무대가 결코 아니라는 것.
하물며 상대가 준비하는 건 오르톨랑이라는 프렌치의 최종병기. 말하자면 프렌치의 핵폭탄과 같다.
함부로 쓰면 온갖 지탄을 면키 어렵지만, 일단 쓰면 효과는 확실하다는 점이 특히.
더군다나 로랑은 자신이 개발한 레시피로 그런 지탄을 받을 부분에 대해서도 충실한 대비를 끝마쳤다.
어중간한 화력으로는 감히 대들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대체 어쩔 생각일까. 저도 모르게 얼굴 가득 지어진 근심 어린 표정으로 찬혁을 바라보던 양희연은, 문득 찬혁의 행동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응?"
통삼겹살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크기의 컨테이너에 물을 쏟고, 거기에 더해 수비드 머신을 양옆으로 두 개나 꽂아 요리를 진행할 준비를 마치는 찬혁.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점이 있다.
컨테이너 속에 채운 물.
보통 평범한 생수를 채워 사용하는 그곳에, 찬혁은 커다란 냄비에서 끓인 무언가를 쏟아부은 것이다.
준비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 물을 끓여서 넣은 것인가?
'…… 아닌데.'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이상한 점이 또 한 가지 있다. 찬혁이 사용한 냄비가 두 개라는 것이다.
하나의 냄비만 가득 채워도 컨테이너를 채우기에는 차고 넘친다.
그런데 굳이 냄비 두 개에 따로 준비했다?
거기다 더욱 수상한 건, 아무리 보아도 찬혁이 방금 컨테이너에 쏟은 물…… 처럼 보이는 무언가의 점도가 이상할 정도로 끈적해 보였다는 것이다. 마치 기름처럼…….
"잠깐만."
끈적하다? 기름처럼이라고?
양희연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핸드폰에 코를 갖다 박을 듯 얼굴 가까이 가져온다.
작은 화면 너머, 컨테이너 속에서 출렁이는 액체.
그 속까지는 카메라가 제대로 잡질 못하는 탓에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액체의 색이 묘하다.
물의 투명한 색이 아니라, 영롱한 황금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색상.
"기름인데?"
기름이었다. 어딜 어떻게 보아도 기름이었다. 그것도 제법 품질이 좋아 보이는 기름이다.
수비드를 하는데 물 대신 기름을?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놀라울 지경인데, 이어서 찬혁이 저지른 짓은 조금 더 그녀의 상상을 벗어난 짓이었다.
"어, 어어? 점마 뭐하노 저거?"
삽겹살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부위라는 4~8번 갈빗대를 아우르는 부위.
껍질이 아직 붙었으나 그 이외의 전처리를 완벽하게 끝낸 삼겹살. 찬혁은 그 고기를 컨테이너 속에 집어넣었다.
그렇다. 수비드의 기본 골자인 진공포장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고기를 기름 속에 집어넣은 것이다!
"저, 저저!?"
양희연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비드를 할 때 고기를 진공포장 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아니, 적어도 랩 같은 걸로 물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게끔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기에서 육즙의 용출이 많아짐과 동시에 쓸데없는 수분이 고기 속으로 들어가 고기의 맛을 밍밍하게 바꿔 버리기 때문이다.
그 상식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에 어안이 벙벙해진 양희연.
그러나 잠시 후, 그녀는 곧 정신줄을 부여잡고 방금 자신이 본 광경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는 데에 성공했다.
"…… 아니, 쪼매 기다려 봐라."
그녀의 뇌가 맹렬히 돌아간다.
이런 조리법. 그녀는 분명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기름 수비드. 수비드에 사용하는 액체를 기름으로 바꾸어 수비드를 하는 방법.
결코 흔한 사례가 아니기에, 그녀도 잠깐 까먹고 있었다.
기름 수비드의 조리법에 따르면 지금 찬혁의 행동은 결코 실수가 아니었다.
기름은 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액체. 물과는 달리 점도가 높고, 고기에 쉽게 흡수되지 않으며, 고기 속에서 수분을 용출하는 일도 적다.
오히려 물보다 기름을 쓰는 것이 수비드의 완성도가 높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수비드 기계의 청소나, 한 번 수비드에 사용한 기름은 약간이나마 육즙이 섞여 다시 사용할 수 없기에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아 사용하지 않을 뿐.
기름 수비드는 사실상 수비드보다는 저온 기름 속에 넣어 오랫동안 익히는 콩피라는 조리법과 훨씬 비슷하다.
다만 콩피의 문제점 중 하나인, 기름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탓에 커다란 식재료에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문제.
그 문제를 수비드 머신을 통해 해결하면서, 보다 완벽한 콩피가 되는 것이다.
"하믄 저건……."
찬혁이 넣은 두 냄비 속 내용물은 아마 찬혁이 만든 특제 기름.
그것을 계산된 비율로 넣고 수비드 머신을 돌린 것이다.
"…… 완성형 콩피?"
이 순간, 양희연은 찬혁의 노림수의 일부를 깨달았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찬혁은 정말로 제대로 이 무대를 찢을 무기를 벼리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미친 새끼……."
다만 그건, 정상적인 사람의 정신 상태와는 제법 거리가 먼 행동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불법 토토 사이트에서 프랑스팀과 한국팀의 배당은 1.4:8의 비율을 기록했다.
찬혁의 기행이 불러온 자그마한 사고의 일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