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 끝장전.-3-
"오르톨랑이라고?"
오르톨랑.
그것은 유명한 전통 프랑스 요리의 이름이다.
멧새의 일종인 회색머리 멧새. 오르톨랑 멧새로 만든 요리라는 뜻에서 붙은 단순한 이름이지만, 이 요리가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걸 공식 석상에서 만들 생각이야?"
일컫기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요리', '악마의 정찬', '주께서 분개하실 죄악'.
그 이름만 들어도 알다시피, 오르톨랑을 향한 세간의 인식은 좋게 말해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괜히 법적으로 취사, 취식이 금지된 요리가 아니다.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만드는 것조차 범죄인 요리.
오르톨랑이 이토록 흉흉한 별명을 얻게 된 데에는 다름 아닌 오르톨랑의 조리법이 그만큼 논란을 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르톨랑의 조리는 살아 있는 오르톨랑 멧새를 '특수한 방법'으로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먼저 살아 있는 오르톨랑 촉새의 두 눈을 멀게 한다.
무언가로 가리든, 생으로 뽑아내든, 아니면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암실에 가둬놓든.
눈이 먼 오르톨랑 멧새는 어항 속 금붕어처럼 자기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뱃속에 음식을 저장하려 애쓴다. 그런 오르톨랑 멧새에게 수수와 견과류, 과일 등을 먹이로 주어 살을 찌우고 위장을 가득 채운다.
그 뒤, 적당히 살이 오른 오르톨랑 멧새를 산채로 브랜디의 일종인 아르마냑에 빠트려 익사시킨다.
그다음은 털을 뽑아 마지막 손질을 한 뒤, 간단하게 소금, 후추로 간하여 오븐에 구우면 완성.
머리를 제외한 전신을 한입에 씹어 넘기는 것이 옳은 취식법이며, 이때 향기가 날아가지 않도록 머리에 하얀 손수건을 뒤집어쓰는 행위가 마치 신에게서 자신을 숨기는 것 같다 하여 신에게도 먹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요리라는 별명도 있다.
그야말로 생명에 일체의 존중도 없는 조리법.
맛을 위해 인륜을 져 버린 요리다.
하지만 그 맛은, 적어도 세계 제일을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오죽했으면 그 요리에 빠진 사람들이 너도나도 남획한 탓에 오르톨랑 멧새가 멸종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근래에는 개체 수를 회복하여 어느 정도 생태계 복귀 궤도에 올랐다고는 하나, 오르톨랑 멧새야말로 인간의 욕망이 가진 추악한 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생물이다.
그런 요리를 대회에서 만들겠다니. 그것도 수천만 명이 보는 앞에서.
운이 좋으면 대회 실격이고, 운이 나쁘면 업계 퇴출이다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오르톨랑 같은 요리를 만들 리가 없다.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는 나현주를 향해 김철정이 입을 연다.
"분명해. 오르톨랑이야. 근데…… 뭔가 이상해."
"이상하다니?"
"오르톨랑을 만드는 건 맞아. 그런데 내가 아는 오르톨랑은 아니야."
"?"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에 나현주가 눈꼬리를 올린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이건…… 내가 설명을 못 할 것 같다. 직접 봐야 알 거야."
마침 여러 마리 따로 나눠서 작업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런 말과 함께 김철정이 노트북을 몇 차례 조작하더니 찬혁의 화면 옆으로 로랑의 화면을 띄웠다.
더더욱 깊어지는 의문에 화면으로 시선을 집중하는 나현주.
그리고 잠시 후, 나현주는 김철정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 진짜네."
그건, 그녀가 아는 오르톨랑 요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그건 오르톨랑이었던 것이다.
***
궁극의 요리가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서는, 그 어떤 요리에도 지지 않을 궁극의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오르톨랑은 어느 의미 그런 로랑의 생각에 가장 부합하는 요리였다.
만드는 것 자체가 범죄인 탓에 평범한 사람은 입에 댈 기회조차 없는 오르톨랑. 초대형 레스토랑의 후계자인 자신조차 '세상에는 이런 요리도 존재했다는 걸 알아둬라'라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고작 몇 번 먹어본 게 전부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
오르톨랑이란 게 얼마나 훌륭하고, 또 얼마나 추악한 요리인지를 아는 데에는 말이다.
로랑 마틴은 기본적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맛있는 식재료를 얻기 위한 일이라면 가축을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육하는 것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입장에 설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푸아그라 같은 식재료가 그러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맛을 재현하는 것에는 한도가 있다.
억지로 깔때기를 씌워 강제로 음식을 섭취하게 만드는 방식의 푸아그라는 오히려 약간 맛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안정적인 수급이라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도 괜찮으리라고 보는 입장이었다.
애당초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생명을 죽이는 입장에서 깨끗한 방법과 더러운 방법이 따로 있겠느냐며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한도라는 게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일신의 쾌락을 위해 한 생명을 그렇게 비참한 꼴로 만드는 건 로랑이 용납 가능한 선을 세게 넘은 것이었다.
예를 들어 샥스핀처럼 실제로는 그다지 대단한 재료도 아닌 것을 위해 수천, 수만 마리의 상어를 잡아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나머지는 버려 버리는 행태가 그러했고.
또 앞서 말한 오르톨랑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맛있고 훌륭한 요리라도 결과에 취해 수단의 잘잘못을 아예 도외시 한다면 그로 인해 얻는 행복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야.'
그렇기에, 이번 시합은 로랑의 시도이자 도전의 장이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만들어낸 맛의 재현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 건 자신이었다.
그러나 가끔은 한계를 알더라도 물러설 수 없을 때가 있고, 도전해야 할 때가 있다.
로랑에게는 바로 지금이 그런 때였다.
"…… 칫."
벌써 세 번째 실수다. 로랑은 껍질을 찢고 튀어나온 지방을 보며 작게 한숨을 뱉었다.
로랑이 현재 하는 것은 재현이었다.
오르톨랑이라는 요리의 재현.
최대한 인도적인 방법으로, 이미 깔끔하게 도축을 끝낸 참새를 오르톨랑이라는 요리로 변신시키는 것.
가능하다면, 십중팔구 이번 대회의 우승은 자신의 것이다. 로랑에게는 그러리란 자신이 있었다.
오르톨랑이라는 요리가 만들어진 지 수백 년.
그 세월 동안 과학은 발달했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금의 과학은 마법과 같은 것.
마법이 있다면, 그깟 요리 한둘 정도 재현하는 게 어려울쏘냐.
'원리를 파악하면 얼마든 재현할 수 있는 요리다.'
우선 필요한 건 깨끗하게 손질한 참새다.
여기서 '깨끗하게 손질하다'의 의미는 겉은 물론 내장 속. 구강부터 총배설강에 이르는 길 전부가 깔끔하게 제거된 참새를 뜻한다.
물론 해체는 되지 않아야 한다. 해체해 버리면 오르톨랑의 재현은 영영 불가능해지니까.
'오르톨랑은 암실에서 일부러 살을 찌웠지. 급격하게 식사량을 늘려서 지방질을 늘린 거야.'
이 부분은 신예 기법 중 하나인 '인젝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특수 제작된 주사기를 통해 재료 속에 지방을 집어넣는 기법.
보통 지방질이 부족한 육고기를 다룰 때, 혹은 너무 커다란 고기에 간을 할 때 고기 내부까지 간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 이 자리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된다.
깃털을 벗겨낸 참새의 껍질과 살코기 사이. 그 사이에 오리 껍질에서 추출한 기름을 주사한다.
참새의 껍질이 워낙 얇고 약한 탓에 주사 시 압력을 아주 정밀하게 조작하지 않으면 껍질이 상해 실패작이 되기에 조심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
덕분에 로랑의 저녁식사 메뉴는 반강제로 참새구이가 됐을 따름이다. 본인이 선택한 길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했지만.
'그다음은 내장 속 내용물이다.'
오르톨랑의 맛의 포인트 중 하나는 고기를 씹었을 때 터져 나오는 견과류와 과실의 향기다.
살을 불리는 과정 중에 과일, 견과류만을 섭취한 오르톨랑의 고기에는 아주 향긋한 향미가 배게 된다.
그것만큼은 시간이 해결해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과거에는 말이지.'
그러나 참으로 신기하게도, 현대의 요리사들은 시간마저도 돈으로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오븐에 살짝 굽거나 기름 없이 볶은 과일과 견과류.
그것을 굵직한 입자가 되게끔 분쇄하여 한데 섞은 뒤,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지방과 단백질 분해효소를 살짝 섞어 일종의 극초기 발효 상태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고 아르마냑을 살짝 첨가하여 페이스트로 만든다.
이렇게 만든 페이스트를 참새의 총배설강을 통해 추사하여 식도부터 위장, 내장까지 골고루 채워 넣은 뒤 재우면, 세상에 이럴 수가.
본래는 한 달에 걸쳐 편향된 종류의 먹이를 먹여야 간신히 도달하는 지점에 고작 서너 시간도 안 돼서 도착하게 된다.
'지금 당장은 살짝 밸런스가 틀어졌겠지만…….'
오븐에 굽는다면 그마저도 깔끔하게 해결될 터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상당히 고생을 한 로랑이었다.
페이스트의 입자가 굵은 만큼 주사를 할 때도 제법 힘을 줘야 하는데, 살짝만 잘못하면 압력 탓에 내장이 터져서 또다시 참새를 못 쓰게 되고 만다.
그리하여 로랑의 야식은 참새구이에 맥주가 됐다.
슬슬 악과 깡으로 버틴다는 말의 참뜻을 깨닫게 된 로랑이었다.
'마지막은 아르마냑. 이거다.'
오르톨랑을 만들 때에는, 마지막에 살을 불린 오르톨랑을 아르마냑에 익사시켜 도축한다.
이렇게 되면 식도는 물론 폐 깊은 곳까지 아르마냑이 가득 차올라, 씹었을 때 아주 향긋한 브랜디의 향기를 터트리게 된다.
"그나마 이건 좀 낫지."
조류의 위장은 각질화된 탓에 다른 동물의 위장과 비교하면 탄력성이 떨어져서 압력 조절을 실패하는 실수가 잦았다.
하지만 폐만큼은 그렇지 않다.
신선한 참새고기는 폐의 상태가 죽기 전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강을 통해 기도로 아르마냑을 적당량 주사해주면 그걸로 끝.
남은 건 위에 말한 세 가지 과정을 동시에 처리하고, 아르마냑 속에 담가 브랜디의 향이 전신에서 은은히 풍기게끔 만들어 주면 완성이다.
남은 건 온도를 올린 오븐에서 잘 굽는 것뿐.
아주 번거롭고 힘든 작업의 연속이다. 아마 로랑이라 하더라도 이걸 가게에서 만들어 팔라고 했다면 바로 거절했을 터.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만져봤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애당초 뭣 하나만 아주 살짝 잘못해도 실패하기 십상이지 않은가.
퀄리티 보장도 안 될뿐더러 수익성도 안 나온다.
다만 로랑이 보여준 것은 가능성이었다.
맛의 재현에도 한계가 없을 수 있다는 가능성.
오르톨랑이라는 요리가 다른 방식으로 부활할 수도 있음을 사사하는 가능성.
그 가능성을 대중 앞에 온전히 선보인 그때.
행사장 바깥에서는 새벽닭이 푸른 하늘을 향해 계명성을 부르짖고 있었다.
로랑 본인은 듣지 못했으나, 생방송을 통해 로랑이 손을 치켜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문득 생각했다.
저 첫닭의 울음이, 마치 승자의 개선을 축하하는 환호성 같다고 말이다.
***
"…… 말도 안 돼."
나현주와 김철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헤어져서 각자 집으로 돌아간 지 오래인 두 사람이지만, 이번 대회의 경과를 밤이 새도록 지켜보는 건 둘 다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보게 된 것이다.
오르톨랑이라는 금역에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어느 의미 요리의 역사서에 기록될지도 모르는 순간을 직접 목격한 이로써, 뿌듯한 감정도 조금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것은 불안감이다.
과연 저것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가.
삼겹살처럼 평범한 재료로, 세기의 요리를 이길 수 있겠는가.
화면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작게 걱정이 어린다.
두 사람의 심사가 채 10시간도 남지 않은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