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92화 (392/403)

392. 속전속결 –6-

"둘 다 잘했다!"

"졌어도 잘 싸웠어!"

"멋지다!"

박수갈채가 울려 퍼진다.

그것도 다름 아닌 패배한 팀인 한국 팀을 응원하던 한국인 관객들에게서 말이다.

그들로부터 시작된 박수는 마치 전염되듯 양옆으로 조금씩 동참자를 늘려가더니, 이윽고 1분도 지나지 않아 관객석 전체가 박수 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어……."

찬혁은 이 상황이 제법 어색했다.

좋은 시합이었다며 팀을 가리지 않고 칭찬의 박수가 튀어나온 경기가 없던 건 아니지만, 이만큼이나 가타부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관중에게서 박수 세례를 받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한 번을 제외하면 전승으로 올라온 한국팀은 예외인 소리였지만, 아무리 열심히 시합에 임했다 하더라도 졌다는 이유로 욕을 먹은 팀이 한둘이 아니다.

여태껏 관객 속에 섞여 염탐을 명목으로 시합을 관전해 온 찬혁은 그것을 잘 안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 달랐다.

박수도 박수지만, 근본적인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

조리대에서 등을 돌린 찬혁이 관객석을 향해 꾸벅 목례하며 감사를 표하자, 이미 천장에 달했다고 생각했던 박수 소리가 한층 더 덩치를 불린다.

격전에 시달린 탓에 얼떨떨한 상태긴 했어도 그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찬혁이 아니었다.

진 사람에게도 이토록 성원을 보내주다니, 찬혁 입장에서야 퍽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번 경기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이들이라면 반대로 찬혁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두 팀이 보여준 시합은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그중에서도 찬혁의 근성 넘치는 모습은 가히 군계일학이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으니까.

이런 모습이 제법 쓸 만한 장면이라 여긴 건지, 아니면 사람으로서 마음에 든 것일지.

의중은 알 수 없으나 한창 시합을 중계하던 MC는 과장된 억양으로 관객의 박수에 동참하며 마이크에 대고 외친다.

"관객 여러분 모두가 엄청난 박수와 성원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그만큼 두 팀의 건투가 인상적이었다는 뜻이겠죠. 지금 TV와 컴퓨터 화면 너머에서 방송을 지켜보고 계실 시청자 여러분도 분명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크게 숨을 들이켜곤 말을 잇는 MC.

"명승부였습니다. 단 45개 차이. 사람 수로 계산하면 인당 9개.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차이지만, 그럼에도 승부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고개를 들지 못할 선수는 없습니다!"

관객석을, 그리고 선수들을 돌아보며 외치는 MC의 목소리가 박수 소리가 잦아든 행사장을 뒤덮는다.

"온 힘을 다해 당당히 쟁취한 승리였고,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패배였습니다! 보십시오, 여러분! 지금 여기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이 서 있습니다!"

MC의 혼이 담긴 열변에 과연 그 누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새부턴가 다시금 울리기 시작한 박수 소리는 그마저 성난 파도처럼 집어삼키고 말겠지.

행사장의 천장을 뚫고, 담장을 넘어 바깥 저편으로 뻗어 나가려는 우레와 환호성 속에서 그가 다시금 입을 열어 관객들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한국 팀 대 프랑스 팀! 프랑스 팀 대 한국 팀! 이 둘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강! 최고 중의 최고! 그 자리의 마땅한 주인을 가리기 위한 최후의 경기가 아직 저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MC의 외침이 점점 관객과 시청자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여러분! 보고 싶으십니까? 왕좌의 주인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으십니까!?"

아까만 해도 그런 엄청난 대결을 본 이들이다. 감히 어떻게 그 말에 아니라 답할 수 있으랴.

침묵이 곧 긍정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르다.

"보고 싶다! 보고 싶어어!"

"우아아아아아!!"

"류찬혁! 류찬혁! 류찬혁!"

"로랑! 로랑! 로랑!"

사방에서 쏟아지는 외침.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들을 수 없는 혼란의 도가니.

하나 그 속에 담긴 뜻만큼은 명확하다.

그렇다. 지금 이 자리, 외침은 곧 긍정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체 없이 순서를 진행해보도록 할까요? 류찬혁 선수! 로랑 마틴 선수! 60분 뒤부터 제3라운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시합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저희 진행요원에게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3라운드. 장시간 조리.

이번 고속 조리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승부. 여태껏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찬혁과, 시합이 끝난 뒤부터 한국 팀을 매섭게 바라보고 있던 로랑의 시선이 비로소 맞부딪친다.

마지막 전투의 서막이었다.

찬혁과 로랑이 준비를 위해 앞서 스테이지를 떠나 있는 동안, 다른 선수들도 편안한 휴식 시간을 맞이한 건 아니었다.

각각 900개에 가까운 만두와 토르텔로니. 종합하면 1,800개에 달하는 그 엄청난 양의 요리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그 많은 걸 고작 선수나 심사단 선에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애당초 이 규칙을 처음 만들 때 이만큼 많은 양의 음식이 만들어지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작진 측에서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까. 그것을 고민하던 제작진은 이윽고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어차피 2천 개 가까이 있는데, 그냥 관객 여러분한테 서비스 식으로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이전, 찬혁과 로랑의 장시간 조리 경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막내 작가의 의견은 이번에도 반론 없이 통과됐다.

만두나 토르텔로니는 일단 빚은 다음에는 만드는 과정이 크게 어려운 요리도 아니었기에 선수들도 동의했다.

"요리야 누가 먹어줘야 요리지."

"내가 만든 게 쓰레기통 들어가는 것만큼 슬픈 게 또 없어요."

선수들의 상태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진행요원을 보조로 붙여준다는 말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자 제법 빠르게 상황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채 다 만들지 못하고 남아 있던 재료를 마저 사용한 두 팀은 끝끝내 합산 2천 개의 벽을 넘어 버리고 말았다.

시합을 할 때보다 훨씬 느긋한 페이스로 한 덕분이었다. 그마저도 어지간한 요리사는 발끝조차 따라잡지 못할 속도였지만.

"어디 보자. 저희는 간단하게 쪄서 해볼까요? 찜통도 그냥 그대로 쓰면 될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겠지만…… 개인적으론 약간 국물이 있는 편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면 구운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은데요. 갈비 양념을 했으니까 맛은 이쪽이 제일 어울릴 거예요."

"그럼 적당히 나눠서 해볼까요?"

"예."

한국 팀은 찌고, 굽고, 삶는 세 가지 방법의 조리를 택했다. 사실 만두로 할 수 있는 모든 조리법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반대로 프랑스 팀이 선택한 방법은 결국 파스타를 만드는 것이었다.

기실 토르텔로니라는 것 자체가 생긴 것만 만두지 결국은 파스타에 쓰는 면이었기에, 그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소스는 크림이랑 토마토, 오일이면 충분하지?"

"그거면 충분히 소화하겠지."

토르텔로니를 데친 뒤 소스와 함께 볶는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단순한 만큼 요리사의 실력이 훤히 드러난다는 점이.

격렬한 시합 직후인 탓에 두 팀 다 상당히 설렁설렁 일하는 중이었음에도 평범한 사람은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른 일 처리.

오죽하면 일을 도우러 온 진행위원들이 그들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그들과 선수들 사이에 통역사라는 의사 전달책이 낀 프랑스 팀 측은 생각보다도 훨씬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저거! 토마토! 저거는! 크림! 저거는! 오일!"

"아, 아, 네! 따로따로 담으란 말씀이시죠?"

"한 팩에 세 개, 소스는 한 국자만!"

"네!"

제작진 측에서 급하게 공수한 일회용기가 채워지기가 무섭게 각 입구 방향으로 배달되고, 카트에 빈 공간이 생기기 무섭게 다시금 그 위로 일회용기가 쌓인다.

말이 두 팀 합쳐 2천 개 이상이지, 그걸 세 개씩 담으면 팩으로만 700개 가까운 양이 나온다.

쉽게 볼 수 있는 물량이 아니었다.

그렇게 선수들과 진행위원들이 고생하는 한편, 관객석은 마치 아까까지의 소란이 환상이었다는 듯 사라져 있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관객석.

이곳이 이토록 조용해진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다.

관객 전체가, 이미 관중석을 떠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난장판이 따로 없네."

로랑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사실이 그랬으니까.

로랑은 지금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이 광경이 성경에서 그토록 일컫는 지옥의 일부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비켜! 비키라고! 좀 더 앞으로 가야된단 말이야!"

"나도, 나도 먹을 거야!"

"저번 한일전 때도 기껏 가놓고 당첨 안 됐었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뭐라는 건지.

요 근래 한국어를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한 로랑은 특유의 비상한 두뇌로 얼추 한국어 초심자 딱지는 뗀 상태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이토록 중구난방,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고함 괴성을 전부 알아듣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먼저 나와서 다행이로군.'

다음 라운드를 위해 먼저 스테이지를 내려온 덕분에 꽤 앞줄에 설 수 있었던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저 집단에 휘말렸을 거라고 생각하니 간담이 다 서늘해진 로랑이다.

"어, 저거 혹시……."

"맞아. 로랑 선수다. 왜 여기 있지?"

"여기 한국 팀이 만든 거 나눠주는 곳 아니었어?"

그나마 앞줄 쪽 사람들은 적어도 사람 얼굴을 살필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었다. 그게 로랑에게 있어서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괜히 드잡이질을 할 필요 없어 보인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선착순으로 배부하겠습니다! 새치기하거나 소란 일으키시는 분들은 강제 퇴거 조치 되오니 다들 질서를 지켜주세요!"

그렇게 시선과 고함을 견디며 순번을 기다리자, 비로소 로랑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게."

한국 팀이 만든 만두.

2라운드를 이기긴 했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인 탓에 하는 수 없이 운영진 측에서 나누어주는 것을 받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마치 스튜어디스가 기내식을 나누어주듯 커다란 카트를 끌고 다니며 만두를 나누어주는 진행요원.

그에게서 만두를 받은 로랑은, 자리를 잡고 먹는 선택 대신 그 자리에서 바로 포장을 뜯는 길을 택했다.

애당초 다음 시합을 준비할 그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던 탓이 컸지만, 그만큼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음."

이건 당첨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로랑이 얼떨결에 받은 것은 찐만두였다.

속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은 만두피. 척 보아도 육즙이 가득할 것 같은 만두는 몸이 너무 고된 탓에 역으로 잃어버렸던 식욕마저 되찾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후우, 후우, 합, 하흐……!"

온기 가득한 만두.

갈비 양념이 적절하게 밴 고기가 두부와 함께 씹혀 고소함이 배가 되고, 볶은 양파에서 기분 좋은 단맛이 가득한 채소 국물이 육즙과 섞여 맛이 배가 된다.

살짝 데친 숙주나물의 아삭아삭한 식감이 좋은 포인트로 변해 질리지 않는 식감을 연출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훌륭한 요리다.

만두라는 요리는 손에 꼽힐 정도로밖에 먹어본 적이 없지만, 이 만두는 분명 그의 짧은 인생 속에서도 당당히 정상에 위치할 수 있는 요리였다.

'……우리가 만든 것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아.'

아니, 사실 이건 토르텔로니와는 달리, 소스를 더하여 볶을 필요도 없을 만큼 이미 완성된 음식이었다.

단순히 만든 것을 찌기만 한 것뿐임에도 이 퀄리티.

만두 세 개를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해치운 로랑이 작게 뇌까렸다.

"이래서야 완전히 이겼다고 할 수도 없겠어."

20살짜리, 아니, 그의 나라의 셈법으로 치면 이제야 18, 19세 정도가 된 꼬마와 60을 넘어가는 늙은이 집단에게 이렇게나 고전할 줄이야.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새삼 그런 사실을 느끼며, 로랑은 눈을 굴려 주변을 살폈다.

왼쪽에 있던 관객이 받은 것은 프라이팬에 구운 만두.

오른쪽에 있던 관객이 받은 것은 국물에 삶은 만두.

"……."

로랑은 그날, 상당한 불공정 거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레스토랑 가족 식사권 두 장과, 만두 두 알이라는 아주 불공정한 거래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