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90화 (390/403)

390. 속전속결.-4-

"와. 사람이 저게 되나?"

관객 중 누군가가 중얼거린 그 말이 참으로 옳았다.

아무리 요리에 일자무식인 사람이더라도 살면서 칼 한 번 안 잡아본 사람이 드물다.

동네 식당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다수 있다.

그렇기에 아는 것이다. 아무리 기술자라 불리는 사람이더라도 인간인 이상 한계가 있다는 걸.

방금 선수들이 보여 준 몇 가지 잡일에 한정한다면 한 명의 기술자보다 다섯 명의 초보가 더 낫고, 다섯 명의 초보보다 잘 빠진 기계 하나가 훨씬 낫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기계도 단 10분 만에 10kg짜리 양파 한 망을 통째로 껍질을 벗기고, 다지고, 볶아내지 못한다. 그것도 홀몸으로는.

흔히 성실히, 잘 일하는 사람을 보고 '기계처럼 일한다'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팀은 그 이상이다.

기계처럼이 아니라 기계였다. 요리하는 기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기계가 번뜩이는 영감과 재치를 발휘하지는 않으므로.

그리고 그런 기계를 상대하려면, 상대하는 쪽조차 범상해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프랑스팀 좀 봐봐. 저쪽은 해산물을 들고 왔는데?"

"새우랑 문어다. 와, 저렇게 큰 문어는 TV에서나 봤는데."

관객이 프랑스팀의 재료를 보며 감탄하는 동안, 그들의 맞은편에 있던 찬혁도 프랑스팀이 챙겨온 재료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크림치즈에 시금치, 새우, 문어, 그리고 샬롯. 평소에는 못 볼 조합이야.'

토르텔로니가 아무리 생긴 게 만두와 쏙 닮았다 하더라도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피에 속재료를 넣어 빚는다는 본질만 같을 뿐 들어가는 내용물은 판이하게 다르다.

주로 고형물을 속재료로 넣는 만두와는 달리, 토르텔로니는 조금 더 부드러운 것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크림치즈다.

하지만 프랑스팀의 이번 선택은 달랐다.

크림치즈를 바탕으로 사용하면서도 고형물을 넉넉하게 첨가했다. 일종의 리파인인 셈이다.

'만들기에 더욱 편한 재료도 많았을 텐데.'

아무리 규칙 탓에 속재료로 다섯 가지 이상의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지만, 맛의 품질은 크게 떨어트리지 않으면서, 그보다 훨씬 만들기 쉬운 재료가 분명 있을 터였다.

찬혁만 해도 그런 방법이 몇 개고 떠올랐다.

'특히 저 새우는…….'

한국팀이 만두소로 사용할 재료를 꼽을 때 가장 먼저 제외한 것이 해산물이다.

이미 반쯤 손질이 끝난 상태로 나오는 육고기에 비해 너무 손질할 게 많다. 특히 새우 같은 갑각류는 더욱 그렇다.

손질할 것이 많다는 것은 시간이 많이 든다는 뜻이고, 이는 속도를 겨루는 대결에 치명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데도 굳이 새우를 썼다, 라.'

무슨 꿍꿍이 속인지.

좀처럼 짐작하지 못할 상대의 행동.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런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속재료를 준비하는 속도가 한국팀 못지않다는 것.

'…… 아니, 반대야. 오히려 저쪽이 살짝 더 빨라.'

아무리 재료에 열기熱氣를 통할 시간이 불필요하다 한들 프랑스팀이 고른 재료는 한국팀이 고른 재료보다 분명 처리하기 고단한 것들.

그런 재료로 자신들보다 빠르다.

"쯧."

이제 막 성인이 된 소년은 그것을 자신과 함께한 어른들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오롯이, 그들의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는 자신을 향한 질타가 섞인 혓소리에 작은 짜증이 깃든다.

승부욕 강한 소년이 패배의 예감을 느꼈을 따름이리라.

***

풍문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한 가지 요리에 종사한 고수는 그 손놀림만을 보아도 능히 수준을 가늠할 만하다고.

간단한 예를 들어 초밥의 경우, 초밥 하나를 완성하는 데까지 회에 손이 몇 번이나 닿느냐로 그 사람이 달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솔직히 근데 그거 헛소리지.'

무슨 무림 고수야? 그걸로 그 사람이 요리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초밥만 해도 그렇다.

가만 보면 그저 밥에다 회를 올리는 게 끝인 것처럼 보이는 요리에도 온갖 복잡한 묘리가 있다.

어떻게 회를 뜨고 밥을 짓고 간을 하는지.

이것들 전부를 본 게 아닌 이상 그 사람의 실력을 함부로 논해선 안 된다.

'근데 이게 또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야.'

요리사라는 게 본래 그렇다.

일이 원체 고되다 보니 뭘 어떻게 하겠다 생각할 겨를도 없어 익힌 게 자연스럽게 몸으로 나오게 되는데, 보통 실력 있는 사람일수록 그것이 행동으로 배어 나온다.

속도, 정확성, 의도.

자그마한 흠 하나 없이 온전히 출수된 달인의 내공에는 나조차 이따금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내가 뭐 평생 한 가지 요리만 만들었다면 모를까, 실제로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의 기술에 비하면 내가 그 정도 능력을 갖길 바라는 건 욕심이 과한 거다.

그리고 난 지금, 그 이따금 느끼는 감정을 이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오우야."

미리 준비해 둔 반죽을 재단하여 각 팀원의 앞으로 놓으면, 그것을 받은 어르신들은 그것을 밀대로 늘려 만두피로 만든 뒤 소를 채워 넣어 빚는다.

실로 단순한 과정.

만약 여기가 대회장이 아니라 어디 가정집 거실 같은 곳이었다면 어디 가정집에서 설날 떡만둣국 준비라도 하나 싶었을 풍경이다.

단 하나, 그 속도만 뺀다면.

─스슥, 휙!

교장 선생님이 만두를 빚는 손놀림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진짜다. 농담이 아니라 지금 내 눈으로도 손가락의 움직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하나를 만드는 데에 5초가 걸릴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멍청한 소리가 따로 없다.

나는 내 기준의 최고속을 생각했던 거다. 아마 이 정도면 진짜 한계겠지 하고.

하지만 틀렸다.

새삼 깨닫게 된 거다. 세상에 한계라는 건 그 사람 본인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란 사실을.

둥글리기 한 반죽을 밀대로 펴고, 소를 담고, 반으로 접은 뒤 둥글게 말아 모양을 잡는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평범한 직구마저 시속 160km를 넘어가는 순간 적수를 찾기 힘든 마구가 된다.

그렇다. 교장 선생님의 만두 빚는 모습이 참으로 그러했다.

'3초라니.'

3초. 3초다.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끝.

아니, 저게 말이 돼?

나도 3초에 하라면 할 수는 있지, 근데 일단 만두피는 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것처럼 미리 다 펼쳐져 있는 상태여야 할 거고, 그걸로 어떻게 빚는다 쳐도 대략 열 개 중 하나 정도는 만두피가 찢어질 것이다.

'이 정도일 줄이야'

다른 어르신들도 분명 엄청난 실력이다. 만두 하나를 5초 이상 붙잡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준비된 피와 소로 만두를 빚기 시작한 지 5분가량이 지난 지금, 만두피가 들러붙지 않도록 밀가루로 하얗게 분칠한 조리대 위의 장관은 그들의 능률 차이를 여실히 밝히고 있었다.

층을 몇 단이고 쌓아 올릴 수 있는 찜통.

찜통 하나에 넣을 수 있는 만두의 개수는 열 개였고, 어르신들은 빚은 만두를 그 찜통에 담아 당신 앞에 탑처럼 쌓아 올린다.

다른 세 분이 쌓은 찜통의 층수는 평균적으로 다섯 층에서 여섯 층. 고작 5분 만에 50~60개 정도의 만두를 빚으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차원이 달라.'

교장 선생님 앞에 놓인 찜통.

그 층수는 지금, 무려 열 층에 다다라 있었다.

"와……."

옆에서 직접 지켜보는 나조차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한식대가가 한국식 만두를 빚고 있다지만 저 속도가 말이 되긴 하는 건가?

'내가 이럴 정도면 관객들은 안 봐도 뻔하지.'

어지간히 놀라운 게 아니리라. 아마 지금쯤 몇몇은 눈을 비비고 있지 않을까.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어서.

그러나 이건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하여 잊어선 안 될 사실이 있다.

꿈이 아닌 현실에는 분명한 법도와 법칙이 존재한다.

어떠한 일이 생긴다면 그 일이 생길만한 이유가 있으며, 무언가 일어났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바로 이처럼 말이다.

"……후우, 슬슬 속도가 떨어지는 것 같네요. 찬혁 학생. 잠시 자리를 맡아줄 수 있나요?"

"예!"

교장 선생님의 이른 교체 선언.

평소 두 시간의 요리조차 넉넉하게 해내셨단 걸 생각하면, 생각보다 이른 속도였다.

'…… 두 번째 시합이라 그래.'

차라리 이게 첫 번째 시합이었다면 훨씬 해볼 만했을 텐데.

시기에 맞추지 못한 작은 아쉬움이 입가를 맴돌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15분. 혀끝이 쓰다.

'아직도 그만큼.'

그렇다. '아직도'였다. 내게는 남은 시간이 그렇게 느껴지고 있었다.

***

분업이라는 게 있다.

여러 사람이 한 가지 일을 각자 처음부터 끝까지 따로따로 도맡는 게 아니라, 그 일에 필요한 업무를 분할하여 맡는 것이다.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선 일을 처음 접하는 초심자라도 맡은 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이 훨씬 용이하고, 뭣보다 일에 끊김이 생기지 않아 훨씬 능률이 좋아진다.

'사실 우리한테 익숙해진다 뭐다 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지만 말이야.'

그보다는 끊기지 않는 능률이란 게 중요하다. 찬혁의 생각이었고, 또 한국팀 전체의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선택한 방법이 바로 차륜전.

말로는 거창하지만 사실상 돌아가면서 만두를 빚자는 말이다.

반죽을 정량으로 떼어주는 것 정도는 크게 힘든 일도 아니지만, 혼자 그것을 다 해내려면 동선이 번잡해지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만두를 빚다가 팔과 손이 지쳐 속도가 너무 느려지는 것 같으면 반죽을 떼어주는 이와 자리를 바꾸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

물론 분당 수십 개씩 만두를 빚는 그들에게 반죽을 쉼 없이 떼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일을 아예 멈출 겨를은 없겠지만, 만두를 빚는 것보다야 훨씬 일이 간단한 덕분에 어느 정도 체력의 안배가 가능하다.

'전력질주 승부지만, 결국은 장기전이야.'

전력과 체력안배.

정말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이나 그것을 실제로 양립시켜야 한다는 것이 한국팀의 고뇌였다.

나이에 따른 체력의 소모 속도는 1분 1초가 지날수록 가속하기만 한다.

자리를 교체하여 반죽을 떼어줄 때도 사실상 체력이 회복되는 건 아니다. 단지 숨 돌릴 틈, 저린 팔을 조금 달랠 틈이 생길 뿐이지.

"슬슬 팔이 고되 보입니다. 영율 씨, 저랑 바꾸시죠."

"윤구야. 팔에 경련 인다. 잠깐 바꿔."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한국팀은 되도록 마지막 라운드까지 이 시합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찬혁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정작 다른 이들은 그렇게 됐을 때의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리고 찬혁 또한 그들이 부담을 느끼리란 걸 눈치채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찬혁아. 안 바꿔도 되냐?"

"아직 할 수 있어요."

"……그래. 영길 선생님. 저랑 바꾸시죠."

남은 15분.

찬혁은 앞서 장담한 대로 5초에 하나 꼴로 만두를 빚어내며 결코 속도를 떨어트리지 않았다.

전력을 너무 오래 유지한 팔과 손등에 조금씩 경련이 일었지만, 완성된 만두에는 한치의 흠집조차 없다.

놀라운 집중력이고, 놀라운 끈기였다.

그렇게 다른 이들이 20분 동안 적어도 2번씩은 자리를 바꿀 때, 찬혁만큼은 처음 교체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만두를 빚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삐, 삐, 삐, 삐, 삐이이이!!

드디어, 그들에게 주어졌던 30분의 시간이 종료를 알린다.

"하아, 하아……!"

부저 소리와 동시에 마지막에 손에 쥐고 있던 만두까지 끝내 찜통 안에 내려놓은 찬혁이 넘어지는 기세로 털썩 주저앉는다.

그런 찬혁의 앞에 쌓인 만두가 담긴 찜통.

그 층의 개수는, 물경 스물 이상.

끝 모를 근성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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