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89화 (389/403)

389. 속전속결.-3-

"하필 걸려도 이런 게 걸렸어."

고속조리라는 주제에 맞춰 거의 수백 개 분량의 만두소와 만두피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재료를 리어카에 실어 나르고 있자니 입에서 절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이게 말이 돼? 하필 시간제한 고속조리 같은 게 우리한테, 그것도 결승전에서 걸리냐고.

"뭐 하다가 어르신들 관절 다 나가라는 것도 아니고."

평균적으로 남성의 신체적 전성기는 30대 초반가량에 끝난다고 한다.

그 뒤로는 아무리 관리를 잘 해도 곡선이 완만해질 뿐 상승하는 일은 없다.

심지어 그건 근력이나 그런 부분의 이야기지, 심폐지구력이나 젖산 분해 속도 같은 체력과 이어진 신체기능은 하락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

20대와 40대의 신체능력 차이는 크다.

하지만 40대와 60대 사이의 차이는 그보다도 훨씬 크다!

"거기다 하필 만들어야 하는 게 만두란 말이지."

만두소에 조미료, 향신료를 제외한 다섯 가지의 육, 해,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이번 심사의 룰.

이거야 적당히 파, 마늘, 고기, 두부, 숙주 정도로 타협을 보면 되긴 하긴 한…….

"아니, 잠깐만."

혹시 마늘은 향신료인가? 마늘이 이에 씹힐 정도로 넣는데 그건 이미 채소인 게 아닐까?

음…… 이건 아무래도 좀 세밀한 면담이 필요한 부분 같으니까 일단 넘어가고.

"만두는 어려운데……."

만두. 우리가 평소에 제품으로 나온 걸 손쉽게 편의점에서 사 먹는 탓에 깨닫지 못할 뿐이지, 옛날의 만두는 상당한 고급음식이었다.

만두피를 따로 만들고, 거기다가 고기나 채소를 소로 만들어 반죽하여 넣어 먹는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상당한 사치였으니까.

당장 소에 들어가는 재료로 죄다 따로따로 반찬거리를 만들 수도 있고, 밀가루 같은 경우에는 어지간한 신분이 아니면 손에 넣기도 힘들었다.

뭐, 사실 이거야 조선 시대 때에나 통할 이야기니까 넘어간다 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지 않는가?

3년도 아니고 3세기가 넘게 지난 현대에 와서도 요식업자들이 기피하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수제만두다.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만들기가 귀찮고 힘들거든.

피 반죽하랴 소 만들랴, 거기서만 끝이 아닌 게 그렇게 만들어서 예쁜 모양으로 빚어주기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손을 많이 타는 녀석을 열심히 만들어도 사람들 인식에는 기껏해야 만둣국 따윌 제외하면 반쯤 사이드메뉴 취급. 수익률이 좋냐고 물으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기피 메뉴인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사실 그거야 저쪽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같은 신발을 신었대도 그걸로 전력질주 마라톤을 하면 당연히 차이가 생기지.

차라리 조깅 정도였다면 또 모를까.

그렇다고 '이런 부당한 경기, 인정할 수 없어!' 같은 소리를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주제에 따라 유불리함이 나뉘는 일이야 한두 번도 아니고.

…… 어째 나는 불리함에 걸린 적이 훨씬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더라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

벌써 진다는 생각은 말고, 젊은 녀석은 젊은 녀석답게 건강한 몸을 써봐야지.

몸이 좋으면 머리가 힘들 일이 없다고, 모처럼 좋은 몸을 갖고 머리만 싸매는 것도 좀 그렇다.

2인분…… 아니, 3인분은 거뜬히 해내겠단 각오로 임하도록 하자.

잠시 후, 재료를 다 옮긴 뒤에 심판에게 묻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마늘은 향신료입니다. 다른 재료를 추가하세요."

에에, 어째서.

***

향신료를 채소처럼 넣는다면 그것도 재료가 되는 게 아닐까?

라는 내 웅변은 통하지 않았다. 그럴 거면 적어도 절인 거라도 가져오라면서 말이다.

아 왜! 마늘은 그냥 쌈장 찍어 먹고 생으로 먹고 구워 먹는 채손데!

심판은 그렇게 항변하는 나를 무슨 미친놈처럼 보더라. '이게 세계 최고의 셰프 후보……?' 같은 얼굴이었다. 못 잊을 거야, 그거.

"그래, 외국 사람이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가슴속에 웅녀 한 분 모시지 않는 단군의 덕을 모르는 이와 어찌 대업을 이루리오.

가라! 다음에 올 때는 쑥과 마늘을 10일만이라도 생으로 먹어본 뒤에 와라!

…… 지금 가면 우리 시합도 못 하니까 조금 이따 가시고.

"후우."

어쨌든, 재료는 전부 옮겼다.

만두피를 반죽할 밀가루 한 포대.

쇠고기와 돼지비계, 그리고 숙주나물, 두부, 양파.

소금, 간장, 설탕 따위의 조미료.

그리고 파, 마늘, 후추 등의 향, 향신,…… 후, 그래. 에이잇! 어떻게 부르든 무슨 상관이냐! 향신료라 해 그냥! 향신료!

만두를 수백…… 아니. 거의 천 개 가까이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대충 10분 안에 재료 싹 다 준비하고, 약 5초에 한 개씩 만두를 완성한다 치면……."

한 사람이 20분 동안 대략 200개를 만들 수 있다. 그걸 다섯 배로 늘리면 천 개. 간단하지?

…… 안 간단하잖아, 젠장.

벌써 힘든 싸움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기계는 못 써, 쓸 수 있는 도구는 오로지 수동 도구뿐.

맨손으로 반죽을 하고, 칼과 도마만 써서 고기와 야채를 다지고, 천 개에 달하는 만두에 들어갈 소를 팔 힘만으로 반죽해야 한다?

"하하하. 어이가 없네."

기뻐해라, 좋은 몸아. 네가 오늘 임자를 만났다.

***

관객은 환희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째서인가?

"드디어 좀 알아볼 수 있는 요리가 나오겠다."

"뭐가 뭔지 봐도 몰랐는데, 이제야 볼 맛 나겠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실 행사장을 찾아온 관객은 몇몇의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요리에 대해 그렇게 큰 지식은 없는 사람들이다.

무언가 대단한 대회를 한다. 유명한 대회다. 거기에 더해 국뽕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서 왔을 뿐.

말하자면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 어쩌다 구장에 직관을 하러 왔다고 생각하면 편하겠지.

세상을 뒤흔들 파이어볼러의 손에서 정체불명의 마구가 발사되어도, 관객은 그 속에 담긴 대단함을 쉽게 알지 못한다.

다만 전광판에 찍힌 숫자를 보고 '와, 저 사람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할 뿐.

이 대회 또한 마찬가지다.

요리사들이 고기를 해체하고 채소를 손질해도 관객에게는 요리사가 어떤 기초를 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같은 요리사란 명함을 댄 이들마저 채 반절의 파악을 어려워하는 와중에 일반인들이 어쩔 도리가 있으랴.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만두와 토르텔로니라는 국민간식이라 불러도 될 익숙한 요리가 천상계에서도 구름 위를 뚫은 고수들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다.

과연 그건 얼마나 대단한 만두일까.

"나 생업의 달인 봤는데 거기 나온 30년 전통 만두집 사장님은 만두 한 판을 순식간에 만들더라. 저 사람들도 그 정도 할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30년 동안 만두만 만들던 사람만 할까."

"그래도 이만한 대회 결승전까지 온 사람들이잖아."

웅성웅성, 웅성웅성.

사람들의 소곤거림이 끊이질 않는다.

의심과 믿음, 기대와 미심쩍음이 뒤 섞인 현장에서, 드디어 양 팀의 고수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관객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

"어, 어어?"

"뭐야 저거?"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 중 그런 것이 있다.

식품공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제품이 만들어지는지 쭈욱 이어서 촬영한 영상.

관객들은 자신이 마치 그런 영상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의 시점을 보고 있는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영상 속에서는 기계가 했어야 할 일들.

지금 그것을 행하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과 같은 피륙을 가진 사람이란 것.

"우, 우와!"

"저 크기면 20kg은 될 텐데, 밀가루 한 포대를 통째로 손반죽 하고 있잖아!?"

"지, 진짜 무식하다……."

"근데 빠르긴 엄청 빨라!"

김장철에 마을이 다 같이 김장에 나서는 시골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대야.

성인 남성이 몸을 말고 들어가 누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그것에 밀가루 한 포대를 통째로 쏟아부은 한국팀이, 이번에는 옛날 정수기에서나 쓰일법한 물통의 밀봉을 까고선 이마저 통째로 들이붓는다.

"아, 아니 계량도 안 해?"

"저러다 반죽 망치면 어쩌려고!?"

관객들의 설레발.

'이걸 실수할 리가 있나.'

먼발치에서 그 외침을 들은 찬혁이 작게 고개를 젓는다.

요리사가 반죽을 할 때 밀가루와 물의 계량에 실수하는 이유는 자신이 사용한 재료의 정확한 양을 계산하지 못하는 탓이다.

그에 비해 이건 아주 간단하다.

이미 용량이 정해진 밀가루 한 포대와 생수통 하나.

거기에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소금과 계란 따위의 부재료.

그 공식을 대용량으로 적용하여 암산하지 못하는 요리사는 이 자리에 없으니까.

미세측정은 반죽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기에, 남들 눈엔 무모한 짓,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일 행동을 얼마든 할 수 있다.

"저희는 바로 만두소 준비하러 갈게요!"

"그래라!"

안영길, 이영율, 유동건. 세 사람이 그대로 대야에 들러붙어 함께 반죽을 시작한다.

놀랍게도 세 사람의 동작은 마치 하나의 기계처럼 유기적이다. 대야 속 밀가루와 물이, 어느새 하나로 뒤섞여 적당한 질감의 반죽이 되기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세 사람에게 반죽을 맞기고, 찬혁과 차윤구가 다른 곳으로 빠졌다.

만두소를 만들기 위함이다.

"으럇!"

대량조리는 제3자의 입장에서 봐도 경이로운 장면이 연출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이처럼 시장에서나 살 수 있는 10kg들이 양파 한 망을 통째로 사용해 버린다던가 하는 일이 그렇다.

수십 개에 달하는 양파 껍질이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벗겨지고, 지체할 새 없이 자리를 옮긴다.

"어, 왜 저걸 저기에 담아?"

"자르려는 거 아니었어?"

그러나 그 양파의 군집이 향한 곳은 도마 위가 아니다.

다시 한번 대야 속으로 향하는 양파더미.

밀가루를 반죽하는 대야보다야 훨씬 작은 크기지만, 그럼에도 가정집에서는 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그다음 찬혁이 보여준 행동은 간단했다.

칼을 들고, 그대로 대야 속 양파더미 위에 칼날을 내리치는 것.

"뭐야, 저 상태로 칼질을 하겠다는 거야?"

"도마도 없이? 위험한 거 아냐?"

관객들의 걱정도 무리는 아니었다. 번쩍거릴 정도로 곤두선 칼날을 난타하듯 내리꽂는 광경은 이토록 멀리서 지켜보아도 두렵다.

하지만 찬혁은 덤덤했다. 이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호텔에서 하루에 쓰는 양파만 수십kg이 넘는데, 그걸 일일이 도마에 놓고 어떻게 다져.'

편법이다. 하지만 수십 년의 내공으로 다져진 편법이다.

불규칙한 모양새로 산을 쌓고 있던 동글동글한 양파가, 어느새 네모 모양으로 잘게 다져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인간 믹서기가 따로 없는 모습.

한편, 차윤구의 방향 또한 매섭기는 마찬가지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두 가지 고기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두 개의 중식도를 내리찍으며 다지기 시작한 그의 눈빛에는 귀기마저 어렸다.

시작부터 전속력.

개막과 동시에 RPM을 레드존에 꼬라박겠다 함은 다름 아닌 이러한 모습을 가리키고 있었다.

"양파 손질 끝났습니다! 볶으면서 숙주 데칠게요!"

"이쪽도 고기에 양념하고 볶는다! 간 적당히만 해! 고기에 집중해서 갈비양념으로 볶아둘 테니까!"

"예!"

그다음 광경은 더더욱 관객들의 시선을 앗아간다.

중식용 웍 위에 수북하게 쌓인 갖가지 다진 재료들.

그런 것이 한두 개도 아니고 서너 개씩 늘어서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그것을 동시에 볶기 시작한다.

웍의 테두리를 넘어서 올라간 그것을 공중에서 뒤집어가며 볶는 것이다.

"무, 무슨 사람 팔 힘이 저래!?"

"손목 망가지는 거 아냐?"

보는 이마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아무리 믿기지 않더라도 현실은 현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조리 시작 후 대략 10분 남짓이 지난다.

고작 10분. 라면 하나를 끓여 이제 막 먹기 시작할 정도의 시간.

기껏해야 그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한국팀의 면면이 외친다.

"반죽 끝났다! 숙성은 모자라도 만두 빚을 정도는 돼!"

"소도 끝났어요! 이제 하나로 섞어주기만 하면 돼요!"

수백 개의 만두를 단번에 빚을 수 있을 만큼의 밑준비.

단 10분 만에, 그 모든 작업이 완료된다.

"…… 이, 인간이 아냐……!"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외마디 신음.

그 소리를 들은 관객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그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이곳은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 그 결승전.

초인의 제전.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들의 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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