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 속전속결.-1-
"한국팀의 승리입니다."
갑작스럽다는 말로도 모자란 심사단의 선언에 행사장이 정지한다.
프랑스팀과 한국팀의 기세는 그야말로 백중지세. 긴 논의 끝에 승패가 정해졌더라도 제법 딴소리가 나왔으리라 쉬이 짐작할 수 있을 만큼 팽팽한 경기였다.
그런 와중에 심사가 끝나자마자 승패를 정해 버린다?
이쯤 되면 반박을 하기 이전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실제로 관객의 반응이 그러했고.
관객과 선수를 가리지 않고 말을 잃은 행사장. 군소적인 웅성거림만이 고요한 실내에 약간의 흔들림을 낳았다.
"뭐야, 한국팀이 이겼다고?"
"근데 너무 성급한 거 아닌가?"
"왜. 한국팀 거 엄청 맛있어 보인다며."
"프랑스팀이 맛없게 만든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음식을 실제로 먹은 것도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는 현 상황에 마냥 참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
알고 있는 정보라곤 요리의 외관과 심사단의 평가가 전부인 현 상황에서 심사단의 결정에 의심을 표할 여지는 없다.
다만 요리를 만든 당사자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저,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짧은 침묵 끝에 드디어 나온 질문.
선수 중 누군가 나서주길 오매불망 기다린 관객들이었으나, 잠시 후 그들은 당황한 얼굴로 그 말을 꺼낸 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류찬혁.
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승자가 제 승리에 대한 의문을 표출했기에.
의미심장한 찬혁의 뚱한 표정이 전광판 가득 잡혔다.
***
이런 승리, 인정할 수 있어!
뭐? 잘못 말한 거 아니냐고? 무슨 소리야. 왜 인정을 못 해? 이긴 건 좋은 건데.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긴 하지만.'
나는 내 승리를 부정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의를 제기했는가? 그건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이번 판정에 약간 의아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좀 너무 빠르잖아.'
그만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면 차라리 몰라도 프랑스팀의 요리는 객관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수준의 요리였다. 까놓고 말해서 나도 승패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요리사는 만들 때 의심하고 완성한 뒤 믿으라는 말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완성한 뒤에도 마냥 믿을 수만도 없게 만든 게 프랑스팀의 요리였다.
'그런데 그게 바로 승패가 결정됐단 말이지.'
승리가 싫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심쩍은 승리는 사절이란 소리다.
여긴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된 결승전.
이기든 지든 이 자리에 있기 걸맞은 실력이 있다고 증명할 수만 있다면 된다. 그리고 그 증명을 위해선, 조금의 티끌도 있어선 안 된다.
내 실력에 일말의 의심이라도 품게 된다면 이 개고생을 해가며 대회에 우승하는 보람이 없지 않은가.
이길 때 이기더라도, 이유 있는 승리를. 값진 승리란 바로 그런 걸 뜻한다.
"판정에 불복하는 건 아닙니다만, 저희나 프랑스팀은 물론이고 관객 여러분도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내 말에 심사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저희도 조금 당황스러운 나머지 설명이 부족했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렇게 판정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명확한 이유? 청자들의 의문부호에 이번엔 다른 심사위원이 굳은 얼굴로 말을 이어받는다.
"그건 사실 음식의 순수한 맛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 팀의 요리가 선보인 퀄리티는 저희 수준에서는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섯 개의 요리가 분명히 세계 최고라 해도 모자람 없는 퀄리티였어요."
퀄리티만 따져 고르자니 아빠랑 엄마 중에 누가 더 좋은지 고르는 것보다 힘들더라고요. 너스레를 떤 심사위원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저희는 생각을 조금 바꿨습니다. 맛에서는 둘 다 만점. 그렇다면 다른 평가기준을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한국팀이었던 겁니다."
"다른 평가기준을 적용해서, 저희가 뽑힌 거라고요?"
"예.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번 주제에 대한 이해도가 되겠죠."
이번 주제에 대한 이해도?
당연히 이번 시합의 주제는 특수육류를 사용한 요리였다.
우리 팀과 프랑스팀, 양쪽 다 주제와 그에 따른 규칙은 철저하게 지켜서 결과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거기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단 말인가.
그 의문에 심사단은 답한다.
"이번 시합의 주제는 특수육류를 사용해서 요리를 만드는 것. 정확히는 특수육류'만' 사용해서 요리를 만드는 것이었죠. 저희는 이 시합의 의의가 특수육류의 '특수함'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렸다고 판단했습니다."
"특수육류…… 말은 특수육류지만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가축화가 덜 된 선호도가 떨어지는 식재료라는 뜻이죠."
그건 맞지.
특수육류가 괜히 특수육류가 아니다.
국민의 육류소비량을 측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뭐, 식육 거래량? 그것도 대충 맞는 소리다만, 대체적인 국민의 육류소비량을 측정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냥 학교나 군대, 회사 식당 등의 단체급식을 한 번 살펴보는 것이다.
아무리 식당 몇 개가 좀 특이한 고기를 열심히 팔아도 전국에 퍼진 학교, 군대 같은 시설의 식사량과 비교하면 조족지혈만도 못하다.
그런 급식에 소나 돼지, 닭, 오리 같은 완전 가축화된 생물의 고기가 자주 쓰이는 이유가 있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적당히 신선하기만 하다면 얼마든 맛있게 만들 수 있고, 관리가 편하고, 싼값에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근데 대체로 특수육류란 것들은 정반대인 경우가 훨씬 많단 말이지.'
가축화가 덜 돼서 완전히 안전한 사육이란 게 보장되질 않았으니까 고기 자체의 안전성도 애매하고, 수율이 나빠서 값도 비싸고, 특이한 풍미 때문에 쉽게 먹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무마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가축화가 덜 된 특수육류를 굳이 찾아 먹는 사람도 있다. 저희는 그것에 주목했습니다. 가축에는 없는 특수육류만이 가진 장점을 얼마나 잘 살렸느냐. 그런 면에서 저희는 한국팀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심사위원이 말을 잇는다.
"한국팀의 요리는 말고기만이 가진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육질의 탄력, 독특한 풍미 등. 세 가지 요리로 저마다 다른 특징을 확실하게 선보였죠. 컨셉이 겹치는 요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에 반해 프랑스팀이 선보인 요리는…… 분명 훌륭했지만, 한국팀의 요리를 먹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더군요. 과연 다른 육류로 같은 요리를 만들면 똑같이 맛있을까? 라는 생각이 말입니다."
…… 확실히,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헝가리안 굴라시 식 스튜. 이건 아마 토끼고기보다 쇠고기로 만드는 편이 훨씬 맛있었겠지. 소의 고기와 뼈로 우린 육수는 어지간한 야생동물로는 잽도 안 될 정도로 깊은 맛의 육수가 나오니까.
굴라시의 향신료 맛으로 토끼 특유의 부족한 풍미를 보충하긴 했어도, 굴라시 자체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토끼고기 자체보다 토마토가 먼저 언급된 것도 그래서겠지.'
아무리 내장이 추가됐다 한들 특유의 향미를 깔끔하게 제거한 놈으로는 조금 힘들다.
'푸딩도 그렇고.'
피의 비릿한 맛을 크림과 설탕, 카라멜로 지우고 특유의 철분 맛과 피 특유의 풍미를 살리겠단 발상은 괜찮았지만…… 저것도 차라리 돼지의 피로 하는 게 나았을 거다.
'갓 뽑은 돼지 피를 구하는 게 좀 어렵긴 하지만, 신선한 피를 중탕으로 저온소독 한 다음 거기에 풍미가 죽지 않도록 하면서 악취를 볶은 밀가루로 만든 루 따위로 잡아줬더라면…….'
뭐, 그래. 레시피 개량에 대한 생각은 잠시 뒤로 미루자.
어쨌든 심사단의 말은 이해가 됐다.
특수육류의 특징을 얼마나 잘 살렸느냐가 승패를 갈랐다…….
'하지만 그건…….'
토끼처럼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인 식재료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사실 그 해결책 또한 이미 프랑스팀이 제시하고 있던 것이다.
로랑 마틴. 그가 만든 요리는 특징이 없는 게 오히려 특징이란 점을 충실하게 활용했다.
라드를 사용해 만든 반죽으로 부족한 지방의 풍미를 더하고, 사과와 시나몬, 민트로 고기의 식감만 남기고 맛을 아예 묻어 버렸다.
그 식감은 마치 고기를 섞은 애플파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겠지만…….
'자기주장이 강한 고기였다면 그게 안 되지.'
토끼고기이기에 가능한 조합.
거기에 더해 토끼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불상사만큼은 일어나지 않도록 내장과 뼈의 액기스를 우려낸 소스로 마무리.
'역시, 만만찮은 사람이야.'
특수육류라는 재료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특징을 전부 활용해냈다.
맛으로 자웅을 가리지 못해 끝내 주제의 적합성까지 심사하게 될 줄은 짐작도 하지 못 했을 텐데, 의도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식재료의 본질을 꿰뚫고 최고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심지어 말과는 비교도 안 되게 특징을 살리기 어려운 토끼고기로.
"이상으로서 첫 번째 경기의 심사를 마치겠습니다. 양측,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
"저희도 없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시합. 특수육류 요리는 우리 한국팀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다사다난하긴 해도 제법 순조로운 출발.
그러나 내 얼굴에는 여전히 작은 근심이 어렸다.
'다음에도 이긴다고 장담은 못 하겠어.'
스테이지 맞은편. 프랑스팀의 눈에 붙은 불꽃은 여전히 형형하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더욱 크기가 커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패배했음에도 아직 투지를 전혀 잃지 않은 것일 터.
"이야……."
집념과 솜씨, 두 박자를 쌍으로 갖춘 사람을 상대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란 걸 다시금 깨닫는다.
제 몸을 깎아내면서 달려드는 기세에 내 몸까지 함께 깎여나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절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다.
"뭐야, 왜 그래?"
"아뇨……."
그런 내 상태가 이상해 보였던 건지, 유동건 사장님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신다.
거기에 나는 고개를 작게 저으며,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를 돌려주었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저쪽 팀 기세가 살벌하다 싶어서."
"…… 그래?"
어딘가 공백이 있는 대답.
이번엔 내 쪽이 사장님을 바라보니, 유동건 사장님은 어딘가 떨떠름한 얼굴로 날 마주 보며 입을 여신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예? 예에……."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사장님은 등을 돌려 대기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셨다.
나도 서둘러 뒤를 따라 걸었다. 과연 다음에는 어떤 주제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기대와 불안이 반씩 섞인 기분으로 말이다.
***
'살벌하다. 살벌하다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다.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 유동건은 작게 몸을 떨었다.
'내가 보기엔 네가 더 살벌하다.'
유동건은 찬혁과 이영율의 대화를 분명 들었다.
말고기가 거의 처음이라며 난색을 표하던 어린 청년.
그런 녀석이, 처음 만졌다는 소재로 저만한 요리를 해내다니.
'내가 저 녀석 나이였을 때엔…….'
이제 뭘 할지도 모른 채 군대 갈 날이나 기다리면서 놀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 저 20살 어린 청년은 세계 최고의 자리까지 단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발은 그곳에 서 있을지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 진짜, 저기서 더 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의 유동건에게는, 찬혁이야말로 그 어떤 상대보다 살벌한 무언가로 보였다.
내 등 뒤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볼 땐 든든하지만, 만약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게 된다면 더없이 두려울. 그런 무언가로.
"…… 한국팀이어서 다행이구만……."
세상은 불공평하다. 최근, 유동건은 그 말을 진심으로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