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86화 (386/403)

386. 라떼는 말이야.-9-

한 명의 심사위원이 찬혁의 그림자의 악마를 겹쳐 보던 그때, 다른 두 심사위원은 찬혁이 주장한 '순서'에 대한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말의 젖으로 만든 두 가지 부산물을 이용해 말 특유의 풍미를 극단적으로 강화한 크림소스."

"그에 비해 담백함과 말 특유의 육질을 절묘하게 강조한 스테이크. 이건……."

담백한 맛에서 강한 맛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트.

이것과 비슷한 방식의 요리를 심사위원단은 몇 번이고 경험한 적이 있다.

프렌치의 코스요리나, 일본의 초밥 같이 맛의 강약을 따라 모든 요리를 확실하게 음미하기 위한 먹는 순서가 있는 요리.

이 크림소스 스테이크 또한 비슷하다.

만약 처음부터 크림소스를 먼저 곁들여 먹었다면 고기 자체의 육질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혀도 상당히 놀랐겠지.'

담백하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말 특유의 육향을 품고 있는 스테이크.

그것이 미리 대비할 시간을 주었기에 소스를 곁들여 먹었을 때에도 좀 더 수월하게 먹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에스프레소를 먹기 전에 카페라떼로 혀를 익숙하게 만드는 것에 가깝다.

'처음 먹는 사람이라면 순서를 지켜 먹는 걸 추천한다는 건 이래서구나.'

'너무 향이 강한 요리가 거북한 사람은 크림소스의 곁들이는 양 정도를 자신이 조절해서 먹을 수도 있겠지만 처음 먹는 사람은 그럴 수도 없을 테니까.'

거기까진 심사위원단 전체가 이해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직 저 토스트가 남았단 말이죠."

"보통 이런 요리를 마무리 지을 때는 두 방법 중 하나를 씁니다만……."

맛의 강도를 점점 올려가는 것이 그 첫 번째.

두 번째는 맛의 강도를 오히려 줄이고 벡터를 바꿔 식사를 마무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때와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을 사용하느냐는 요리사의 마음이지만 먹는 입장에 선 사람이라고 해도 경험이 쌓일 만큼 쌓이면 어느 정도 예상을 할 수 있게 된다.

'겉보기는 아무리 봐도 평범한 토스트고…….'

'밀가루 음식은 기름기와 냄새를 억제하는 기능을 하지. 빵도 크게 다르지 않아. 특히 식사용 빵이라면.'

그리고 심사단이 예상하는 빵의 기능은 후자.

어딜 어떻게 보아도 평범한 토스트. 무언가 장치를 해놓았다곤 해도 그렇게 강렬한 무언가는 아니겠지.

빵 위에 스테이크와 크림소스를 얹은 빵.

사실 겉보기만 보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모양새의 요리가 아닐 수 없다.

'자극적인 맛의 요리를 밀가루 반죽에 싸 먹는 건 동서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는 방법이지.'

'아마 반미 같은 요리와 비슷한 느낌이겠지.'

그것이 바로, 오늘의 아침 해가 밝은 이래 그들이 저지른 최고의 오산이었다.

─바삭!

마치 사포처럼 까끌까끌한 보풀이 일어날 정도로 바싹 구운 빵의 겉면이 과자를 씹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부서진다.

보통 이만큼이나 구워 버리면 마늘빵처럼 속까지 딱딱하게 변하게 되지만, 찬혁이 구운 빵은 절묘한 화력조절 덕분에 겉은 바삭, 속은 본래의 촉촉한 질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평범한 때였다면 그 기술에 큰 놀라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찬혁의 솜씨에 대해선 충분히 놀란 다음이거니와, 빵의 식감에 일일이 놀랄 만큼 이번 심사에 나온 요리의 수준이 낮지 않았으니까.

"읍!?"

"엇?"

그럼에도 심사단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방주사에 이어 정신무장까지 단단히 하고 있던 그들이 놀란 건 어째서일까?

"진해졌어! 맛이 더 진해졌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거기서 맛이 더 진해질 수가 있다고!?"

그건 바로, 그들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반대 방향으로.

"아니, 진해지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자극적인 맛을 줄여주는 빵과 같이 먹었는데, 오히려 훨씬 자극적인 풍미가 되다니? 거기다 이 야성적인 느낌은 대체……."

"뭔가 특별한 재료로 만든 빵인 건가? 아니, 아니야. 빵이 그랬다면 눈치를 못 챘을 리가 없어."

크림소스 속 두 겹의 비밀을 풀어낸 심사단도 이번에는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이 보는 것과, 혀가 맛보는 것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에.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깨달았다.

"이, 이래서 빵은 마지막에 먹는 게 좋다고 한 거였군요."

찬혁이 자신들에게 순서를 지정해 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사실을.

"순서를 지키지 않고 먹었다면 단순히 먹는 건 몰라도 심사에는 분명 지장이 있었을 겁니다. 사칙연산의 답을 알아봤자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통 이런 요리에서 빵은 너무 강한 재료의 맛을 눌러주는 역할을 합니다만…… 이건 반대에요. 빵의 직선적인 풍미를 소스가 맛과 함께 잡아주고, 고기는 요리와 혀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주죠."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어째서 내장과 고기가 그대로 쓰인 곳보다 빵에서 훨씬 직선적인 말의 풍미가 느껴지는가.

과연 어떤 비밀이 저 빵에 숨어 있는가.

찬혁은 심사단의 의문에 별거 아니란 듯 담담히 답한다.

"빵 자체는 그다지 대단할 건 없습니다. 그냥 비치된 생지 중에서 바게트용 생지를 가져와서 껍질이 두꺼워지지 않게 구운 게 다거든요."

"예? 그럼……."

"맞습니다. 평범한 바게트빵이에요. 뭔가 있다면 그건 토스트를 할 때 들어갔죠."

평범한 빵에 무엇을 했기에 이런 맛이? 얼떨떨한 눈빛을 보내는 심사위원단에게 찬혁이 말을 잇는다.

"토스트를 구울 때는 보통 버터나, 특수한 경우에는 마가린 같은 걸 씁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찬혁이 작은 그릇 하나를 심사단에게 들어 보인다.

"이번에는 조금 특이한 재료로 토스트를 해봤거든요."

특이한 재료? 심사단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릇 안을 바라보고, 자연스럽게 카메라 또한 심사단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곳을 비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먼저 기함을 지른 건 심사단이 아니라 관객들이었다.

"우윽! 저, 저게 뭐야!"

"뭔가 거멓게 번들거리는 게 있는데?"

"저걸로 토스트를 구웠다고?"

그렇다. 놀란 관객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처럼, 그릇 속에는 검회색 빛깔을 띤 불투명한 액체가 가득 담겨 있었다.

거기다 빛을 반사하는 모양새가 평범한 액체도 아니다.

눈으로 보았을 때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모양새.

그러나 심사단은 꺼리는 기색은 하나도 없이, 오히려 찬혁의 아이디어에 진심으로 감복했다는 듯 경탄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놀랐다.

"아하! 이걸 써서 토스트를 한 거군요! 버터 대신 이걸 사용해서!"

"어떻게 해야 토스트에서 그런 맛이 나는 건가 했는데, 그런 방법을 쓸 줄이야!"

관객들은 반대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기분 좋은 모양새도 아닌 물건을 보고 저렇게 좋아하다니? 하물며 심사단은 저걸로 구웠다는 토스트를 직접 먹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저것은 기름입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그들의 의문에 종지부를 찍은 건, '라떼 선언' 이후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이탈리아 출신의 심사위원이었다.

어딘가 힘이 빠져나간, 축 늘어진 목소리로 그가 말을 잇는다.

"그것도 평범한 기름이 아니라 검은 지름. 말의 막창을 볶을 때 내장에서 빠져나온 기름을 모아둔 것이죠. 그렇죠? 류찬혁 선수?"

"예, 맞습니다. 기름을 따로 모야 몇 가지 향신료를 넣고 한 차례 끓여 살짝 향을 입힌 뒤, 그 기름을 버터 대신 사용해서 빵을 구웠죠."

내용은 이러했다.

처음 찬혁이 크림소스를 만들 때, 생크림과 우유로 크림소스의 베이스를 만들기에 앞서 검은 지름을 볶으며 빠져나온 다량의 기름.

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이 배출되는 기름의 양에 깜짝 놀란 찬혁이 엉겁결에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두었던 막창의 기름.

그것으로 바게트를 흠뻑 적신 뒤 프라이팬에 구운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돌직구 같은 맛도 충분히 설명이 돼요!"

"본래 동물의 냄새 성분은 피와 지방에 가장 많죠. 그 둘이 섞인 검은 지름을 써서 빵을 굽다니, 크림으로 한 차례 맛을 덮은 크림소스보다 풍미가 훨씬 직선적일 수밖에 없죠!"

찬혁이 첨언 하겠다는 듯 짧게 말을 이었다.

"거기다 마늘을 잘라 토스트 단면 위에 몇 차례 긁어서 마늘의 향과 알리신 성분을 살짝 입혔습니다. 매운맛이 혀에 코팅되어 있던 크림소스의 유분을 날려서 보다 날카롭게 맛을 느끼셨을 겁니다."

"오오!"

"갈릭 브레드를 만드는 기초적인 기법을 그런 방식으로 사용할 줄이야!"

사실, 고작 그 정도로 마늘을 넣었다고 주장하는 찬혁의 마음속에선 웅녀가 경을 치며 '그런 건 마늘을 넣은 요리가 아니야!'라며 울부짖고 있었지만, 찬혁은 그 마음을 꾹 눌러 달랬다.

'여기서 우리 하는 것처럼 마늘을 넣어 버리면 모처럼 쓴 기름 풍미까지 전부 죽어 버린다고.'

프랑스에서의 수십 년조차 꺾지 못했던 찬혁의 마음속 웅녀가 무참히 반으로 접히는 순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심사석에서는 비로소 심사 이후의 식사가 시작된 지 한창이었다.

심사단은 붉은색 고기 위에 크림소스를 한가득 얹어 먹는가 하면, 누구는 고기조차 무시하고 빵 위에 크림소스만 얹어 먹기도 했다.

빵과 고기만 먹기도 하고, 아니면 고기에 아주 소량의 소스만 곁들여 먹기도 한다.

'잘 먹고 있네.'

사실, 이것이 찬혁이 원한 모습이었다.

말고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갑자기 먹기에는 난이도가 꽤 어려운 풍미를 가진 요리.

하지만 어떻게 시작하고 얼마나 조절하느냐에 따라 초심자조차 토착 제주도민 못지않은 말고기 애호가로 바꿔 버릴 수 있는 요리.

'특수육류를 쓴다는 건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게 아니지.'

그 고기가 가진 특유의 장단점을 확실히 파악하고 강조해서, 특수한 계층만이 아니라 만인이 즐길 수 있는 요리로 만드는 것.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여, 이미 그 고기를 충분히 향유하고 있는 사람조차 다시 한번 빠져들게 되는 요리.

"이거 정말 죽이는구만!"

"말고기만 써서 이만한 요리를 만들면, 아무 제약 없는 요리는 과연 얼마나 대단할지!"

"호불호는 어쩔 수 없이 갈리겠지만, 그럼에도 이건 분명 최고의 요리입니다!"

심사단의 반응을 살핀 찬혁이 작게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의도는 틀림없이 성공한 듯하다는 웃음을.

***

한국팀의 세 번째 요리는 프랑스팀과는 달리 메인에서 식사로 이어지는 코스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짧긴 하지만 말의 뼈를 구워 데친 양지, 내장과 함께 푹 우려낸 깊은 국물을 베이스로 삼은 중화식 쌀국수.

제주도의 토속음식인 말 내장탕과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중국과 동남아의 향신료로 메밀가루의 역할을 대신한 쌀국수는 심사위원에게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팀이 준비한 디저트도 훌륭한 마무리긴 하지만, 이런 방식도 식사를 마무리하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는 아주 좋은 발상이죠."

"스튜의 국물은 포만감하고는 다른 만족감이 있어요. 진한 감칠맛이 가득 밴 뜨끈한 국물은 식사의 여운을 오래 남게 하거든요. 아주 행복한 기분이 들게 하는 맛입니다."

"그건 분명 요리 전체에 잔류하는 온기의 차이이기도 할 겁니다."

스튜 요리는 여타 대부분의 요리와 다르게 식탁에 나와 다 먹기 전까지 항시 뜨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요리.

거기다 소량이라지만 벌써 다섯 개의 메뉴를 먹어치운 심사단에게, 목으로 훌훌 넘기기 쉬운 면 요리의 존재는 그야말로 구원 그 자체였다.

잠시 후, 드디어 마지막 여섯 번째 요리의 심사마저 막을 내렸다.

다른 때보다도 유독 치열했던 싸움.

기나긴 요리대결의 서막이 될 첫 번째 경기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관객들은 절로 머리가 아파진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다.

과연 승리하는 것은 누구냐.

토끼고기로 전통 프렌치의 극의를 선보인 프랑스팀이냐.

아니면 말고기로 세상 보기 힘든 신기한 요리를 대접한 한국팀이냐.

"심사단 진짜 골 아프겠다."

"나였으면 선택장애 왔을 것 같은데."

"이걸 누굴 고를 수는 있는 거야?"

참으로 누굴 선택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 고, 생각했다. 식기를 걷어가기 무섭게 심사단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아아, 그럼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제1시합. 이번 시합의 승자는……."

갑자기 결과를 발표한단 말에 당황스러운 건 관객들이다.

분명 선택하는 데에 한세월은 걸릴 것 같던 것이 왜 벌써 정해진단 말인가?

그런 관객의 동요에도 불구하고, 심사단의 말은 담담하게 이어진다.

이미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는 듯이.

"승자는 한국팀. 제1시합의 승자는 한국팀입니다."

─펑! 펑펑!

"……."

"…… 하."

승리를 축하한다는 듯 한국팀 스테이지 쪽에 설치된 폭죽이 터지며 작은 종이꽃을 뿜어낸다.

그러나 그것에 호응하는 이는 없다.

기쁘거나 안타깝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설명이 필요하다.

의아함에서 분노로 바뀔까 말까 선 위를 오가는 관객의 눈길에, 심사단이 다시금 마이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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