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5. 라떼는 말이야.-8-
찬혁의 요리는 크림소스를 곁들인 말 등심 블랙&블루 스테이크.
접시 중앙의 오목한 골에 잘 담은 쌀밥처럼 소복하게 담긴 건더기 가득, 꾸덕한 크림소스와 날개라고 부르는 접시의 넓은 테두리를 강강술래 하듯 둥글게 감싼 얇게 저민 말의 등심.
장식이라고 해봐야 크림소스의 하얀색을 돋보이게 만드는 몇 장의 신선한 녹색 허브 잎과 고기 위에 소담하게 올라간 유자 후추가 전부.
찬혁 스스로가 평가하기로는 앞서 나온 4색 소금을 곁들인 마둔살 육회와 비교하면 플레이팅이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일품이었으나, 심사단의 눈에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오, 이건 또……."
"아까 접시는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한 멋이 일품이었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아주 정갈한 멋이 있군요."
마둔살 육회의 아름다움이 꽃이라면 이 크림소스 스테이크의 아름다움은 우뚝 솟은 난초.
사람은 물샐 틈 하나 없이 꽉꽉 채워진 것만큼이나 눈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텅텅 빈 것에도 마음이 끌린다.
산 하나를 통째로 뒤덮은 웅장한 대수림과 지평선 너머까지 뻗은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메마른 사막.
그 두 가지 모두에 어떤 방식으로든 경탄을 보내는 것이 사람이기에.
여백의 미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리라.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 찬혁은 자신이 직접 나서 심사단 각자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주었다.
얇게 저민 스테이크 몇 점, 서너 숟갈 분량의 크림소스, 그리고…….
"빵?"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빵이 몇 조각.
프라이팬에서 적당한 온도로 느긋하게 잘 구운 듯, 양쪽 단면이 보기 좋은 황금빛을 띈 토스트였다.
"질감을 보면 프랑스의 바게트 같은 종류의 식사용 빵처럼 보이네요."
"하지만 정통 바게트에 비하면 조금 껍질이 얇아 보여요."
그러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뿐. 이내 심사단은 빵에 대한 흥미를 거둔다.
애당초 스테이크에 빵을 같이 주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고기와 빵.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조합은 언제나 정답에 가까운 것이고, 유명한 스테이크 매장 중에선 고기 맛보다 오히려 빵 맛이 인상적이기에 그 매장을 찾는 고객도 있을 정도니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찬혁이 그들 앞에 음식을 던 접시를 하나씩 내려놓자마자 그들이 빵부터 집으려 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빵을 먼저 먹고, 그다음 소스나 고기를 같이 먹는 것이 평범한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찬혁은 갑자기 그들을 말려 세우기 시작한다.
"아, 잠시만요. 시식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제가 음식을 먹는 순서를 안내해드려도 괜찮을까요?"
"예?"
"빵은 가장 나중에 먹어야 하거든요."
빵을 가장 나중에? 이해할 수 없단 표정을 짓는 심사단이었으나 찬혁의 설명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가장 처음 이 유자 후추를 올린 고기만 따로 먼저 드셔보시고, 그다음엔 크림소스를 고기 위에 올려서 와플처럼 접어서 드신 뒤, 마지막으로 빵에 고기를 올리고 그 위에 소스를 얹어서 드시면 됩니다."
고기가 가장 먼저. 빵은 가장 나중.
이해할 수 없는 요청에 심사단이 아리송한 얼굴로 묻는다.
"……그게 이 요리를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순서인가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여기서 찬혁이 '그렇다'고 말한다면, 이 요리의 맛이 어떻든 감점 요인이 되리라.
음식을 어떻게 먹든 그건 어디까지나 먹는 사람의 고유한 권한이고, 요리사가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으니까.
누군가의 엄격한 통제를 따르며 얻는 대단한 미식은 집 근처 단골집에서 자유롭게 만끽하는 한 번의 끼니보다 못한 법이다.
그러나 찬혁은 그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반 정도는 정답이고, 또 반 정도는 아니기도 합니다. 이 요리를 처음 접하신 고객이시라면, 저는 가장 먼저 이렇게 드시는 법을 추천해 드렸을 겁니다. 지금처럼요."
처음에는 순서를 지켜 먹는 걸 추천하나, 두 번째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는 요리?
심사단은 그 수수께끼 같은 답변에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처음인 저희들은 셰프의 추천대로 먹어보도록 하죠."
"송구합니다."
"아뇨. 다시 생각해 보면 궁금하긴 하네요. 류찬혁 선수 정도 되는 셰프의 추천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짧은 웃음으로 인사를 마친 찬혁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자, 비로소 심사단도 저마다 식기를 든다.
우선 살피는 것은 역시 음식의 겉모습. 그중에서도 고기에 먼저 시선이 향한다.
사실 아까부터 심사단이 품은 의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스테이크…… 라고 하기엔 굉장히 얇게 잘랐는걸.'
보통 스테이크 하우스 등의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제공할 때는 아주 두툼한 고기를 자르지도 않은 상태로 제공되는 일이 많다. 메뉴에 따라선 살에 붙은 뼈까지 함께 제공될 정도다.
고기라는 식재료는 대부분의 경우에서 대대익선이라 크면 클수록 잘 조리했을 때의 맛이 좋고, 스테이크 같은 요리의 경우엔 고기의 익힘 정도를 조절하기가 편하다.
무엇보다 고기를 원형 그대로 내가는 쪽이 육즙이나 온도의 손실이 적다.
'그런데 이건 너무 얇단 말이지.'
원기둥 모양으로 재단한 등심을 구워 얇게 저민 원 모양의 고기 몇 장. 과장을 조금 보태서 종잇장처럼 느껴질 정도다.
보통 스테이크 따위에서 느껴지는 터프함, 묵직함 같은 인상은 하나도 없이 포크가 들추는 대로 팔랑팔랑 움직이는 모습이 딱 그러하다.
'게다가 이 익힘 정도. 속은 말 그대로 블루 레어군. 스테이크보다는 칼파쵸로 보일 지경이야.'
예술적이라고 불러도 모자란 화력 조절. 블랙&블루 스테이크의 모범 그 자체를 교과서에서 뽑아낸 것 같은 조리 기술.
그러나 순번으로 따지면 분명 이것이 메인 요리일 터.
이렇게 가녀린, 스테이크 같지도 않은 모양의 요리가 메인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우물
심사단의 당연한 의문. 허나 그 당연함은, 종잇장처럼 팔랑거리는 고기를 입에 넣은 순간 메이저리그 4번 타자가 쏘아 올린 홈런볼 이상의 기세로 뇌 바깥에 사출된다.
공의 이름은 상식. 그것을 쳐낸 배트의 이름은 비상식.
"……어?"
그렇다. 비상식적이었다.
기껏해야 마분지 정도의 두께밖에 안 되는 고기가, 어째서 이토록 '씹는 감각'이 있단 말인가?
'이, 이 반탄력反彈力은 대체……!?'
마치 레어로 구워낸 두꺼운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지도 않고 통째로 물어뜯는 것 같이 턱을 되 밀어내는 힘!
그야말로 건장한 말이 입속으로 들어와 아래턱을 향해 발길질을 날리는 듯한,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감각!
그러나 질기지 않다. 무한한 쫄깃함을 선사하고, 그다음엔 얼음이 녹아 액체가 되듯 자연스럽게 갈기갈기 찢어져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흘러 넘어간다.
공존할 수 없는 두 감각이, 어처구니없게도 한 점의 고기 속에 공존한다.
"어떻게 이런…… 이토록 쫄깃하게 씹히는 고기가 어떻게 이리 부드럽게 삼켜지는 거지!?"
말 본연이 가진 풍미를 유자 후추를 사용해 살려낸 것 또한 놀랍지만, 그조차 이 경악할 만한 식감 앞에서는 한 수 접어주어야 했다.
그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심사단이 골머리를 싸매기 시작한다.
"두께. 두께에요. 아무리 쫄깃하게 씹혀도 결국 고기가 이렇게 얇은 이상 씹으면 끊어집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게 말이 안 돼요! 고무줄 같은 탄력을 가진 고기가 두부처럼 쉽게 끊어진다니!"
탄력이란 사물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고자 하는 힘.
애당초 엄청난 탄력을 가진 무언가가 있다면, 아예 씹어서 끊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찬혁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소리인 것이다.
상식의 파괴자. 찬혁은 경악한 심사단의 시선을 받으며 작게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
'…… 이게 또, 아주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심사단의 의견에는 나도 공감한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맞는 소리긴 하니까.
하지만 만약 그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식재료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어떨까.
'도축된 경마용 말이 아니면 만들지 못했을 거야.'
내가 조리한 말은 은퇴한 경주마의 고기.
말의 고기는 본래 탄력이 상당하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생물인 말은 그 근육의 질 자체가 여타 가축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굳건하다기보다는 유연하고, 질기다기보다는 부드럽다.
그럼에도 수백kg에 달하는 신체를 시속 70KM 이상의 속도로 질주케 하는 힘을 갖춘 것이 말의 근육.
그런 말의 근육 중에서 가장 탄력적인 부위는 보통 다리나 가슴, 어깨, 엉덩이 정도를 꼽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만약 경주마였을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경주마의 허리. 코어 부분의 근육은 여타 가축용 말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이 단련되어 있지.'
본래 사람이 말에게 기대한, 그러나 이제는 거의 잊혀가는 쓰임새 중 하나인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능력'.
경주마는 그 잊혀가는 쓰임새를 태어나서 은퇴할 때까지 써 먹히는 가축.
생각해 보라, 생후 1년 정도의 교육을 받은 뒤 허구한 날 사람을 등 위에 태우고 달리는 말의 생애를.
허리 위에 자기 몸무게의 6분지 1에 달하는 사람을 실은 채 훈련을 받고, 트랙을 주파하는 모습을.
그로 인해 단련된 말의 코어 근육은 여타 말과 비교하면 기록적인 성장을 이룩한다.
내가 사용한 고기가 바로 그렇게 태어난 '비상식적인 등심'.
그것을 근육의 결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얇게 저미면, 엄청난 탄력을 가졌음에도 씹으면 뚝뚝 끊어지는 말도 안 되는 식감을 연출할 수 있다. 겉을 익힌 약간의 가열은 결의 분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장치였을 뿐이다.
'애당초 저만한 두께에서 마이야르 반응을 통한 단백질 변형으로 생긴 맛을 콕 집어서 느끼는 건 힘든 일이고.'
그리고 이 식감이 하는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보다 많은 비밀이, 아직 내 요리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으니까.
***
현실에 존재하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식감에 경악하기도 잠시.
간신히 놀란 마음을 달랜 심사단은 찬혁이 시식 전 해준 안내를 따라 요리를 시식하는 다음 시퀀스에 이르른다.
'지, 진정하자. 아직 식감일 뿐이야. 맛 자체는 크게 대단할 건 없었잖아?'
물론 그조차 여태까지 먹은 다른 요리와 비교하면 그 정도라는 이야기였지만.
"이건 분명 말의 창자를 볶아 만든 크림소스였죠?"
"네. 마유주로 향을 더하고 크림과 치즈로 가미했습니다."
찬혁의 설명이었다.
과연, 크림과 치즈를 넣어 졸인 크림소스는 사실상 내장이 든 크림소스가 아니라 크림소스를 곁들인 내장볶음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꾸덕한 질감이었다.
소스 속 내장조각을 하나 들어 올리자, 아교로 붙인 것이 덜 굳기라도 한 것마냥 잠시 달라붙었다가 아래로 주욱 늘어지는 또 다른 내장조각.
소스를 덮은 유분의 막이 한 겹 벗겨지자마자 거칠게 올라오는 농후한 내음.
"허어. 이번에는 꽤 자기주장이 강렬한데요."
자기주장이라면 방금 등심 한 조각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다르다.
그것이 '고기'로서의 자기주장이라면, 이 소스는 '말고기'라는 자기주장을 하고 있었기에.
침을 꿀꺽 삼킨 심사단이 등심 위에 크림소스를 올려 반으로 접고는 입에 욱여넣는다. 그 모습이 마치 쌈을 싸 먹는 듯하여 한국인 관객들이 침을 꼴딱 삼켰다.
"와……."
"안 되겠다. 조만간 제주도 한 번 가야지……."
관객들이 감탄을 하거나 말거나 심사단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묵묵히, 음식을 맛볼 뿐.
음식을 입에 넣으려 애쓸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느릿한 움직임. 음식의 맛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느끼고자 하는 그들의 심정이 행동에서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제야 크림소스를 얹은 스테이크를 삼킨 심사위원이,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맛있다."
너무나 짧은, 심사위원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기 힘들 만큼 단순한 평가.
그럼에도 그 한마디에 담긴 심저를 울리는 고동에, 수많은 관객의 이목이 그에게로 향했다.
"맛, 맛있어요. 예! 맛있어요!"
헌데 어째서일까. 심사위원은 꼭 말을 하는 방법을 까먹기라도 한 것처럼 맛있다는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그에게 향한 시선에 의아함과 짜증의 감정이 섞이기 시작했으나, 그 누구보다도 강한 의문을 느끼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심사위원 본인이었다.
'맛있어, 맛있는데, 이유를 설명하질 못하겠어!'
아마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씹자마자 면발 끊어지듯 톡톡 튕기며 끊어지는 고기의 결 사이사이로 절묘하리만치 완벽하게 간을 맞춘 크림소스의 짠맛과 고소함, 감칠맛이 녹아들어서 맛있다던가.
내장이 가진 쫄깃하고 강렬한 맛과 크림소스의 조화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던가.
그 외에도 온갖 수많은 표현이 그의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바깥으로 꺼낼 수 없다.
너무나 많은 '맛있는 이유'가, 오히려 그중 하나를 선택하길 방해하고 있었으니까!
맛있는 요리가 맛있는 이유는 맛있기 때문이다!
그런 무대포 같은 논리를 진심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가슴이!
감성의 무논리로 이성의 논리를 무너뜨려 보이겠다는 듯!
"그, 그러니까, 이 요리가 맛있는 이유는……!"
감성과 이성의 정면충돌 탓에 입조차 통제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든 이성에게 더욱 힘을 실어 이 상황을 타파하고자 애썼다. 왜냐하면 그는 심사위원이었고, 심사위원에게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요리를 평가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에.
'한마디, 한마디라도……!'
문단, 문장, 단어, 낱말, 음절.
머릿속 언어세계를 헤집던 그는, 간신히 그 사이에서 자신이 꺼낼 수 있는 최선의 단어를 입 바깥으로 내뱉었다.
"라, 라떼latte!"
평가할 때 주로 쓰던 영어도 아닌, 자국의 말인 이탈리어였으나, 그는 자신의 뜻을 어떻게든 바깥으로 꺼내는 데 성공했다.
"라떼를 쓴 겁니다! 이 말고기 요리에는 라떼가 쓰였어요!"
라떼? 그것은 우유를 뜻하는 이탈리어의 말이지 않은가.
관객이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지 못하는 동안, 그가 말을 이었다.
"이 크림소스에 들어간 말의 창자를 볶을 때, 류찬혁 선수는 말의 젖latte di cavallo으로 만든 마유주를 사용했습니다. 그걸로 말 특유의 향을 일부러 강화한다! 다시 들어도 대단한 조리법입니다. 프렌치에 있는 플람베 같은 조리법과 같은 형태를 했으면서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죠!"
마른 목을 침을 삼켜 적신 그가 뒤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던 거예요! 이 요리에는 말의 젖이, 그 우유에서 나온 산물 두 가지가 사용됐던 겁니다! 크림소스의 향을 강하게 하고, 단순히 고기를 먹어선 절대 느끼지 못할 풍미를 더하기 위해서!"
거기까지 들은 찬혁이, 짙은 웃음을 짓는다.
그것이 꼭 자신이 최선을 다해 만든 덫을 풀어내려 애쓰는 이를 지켜보는 어느 유명 영화의 살인마의 시선 같았기에 심사위원은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으나, 딸꾹질을 참아내며 끝끝내 자신의 추리를 마저 토해냈다.
"말의 치즈! 이 크림소스는 아이락Airag을 넣어 만든 크림소스가 분명합니다!"
소스와 고기가 전혀 따로 놀지 않는, 처음부터 이런 맛의 식재료였다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체감은 그것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자리까지 박차고 일어나며 열변을 토해낸 남자에게, 찬혁은 박수갈채로 답했다.
─짝, 짝, 짝
느릿하고, 불길한 리듬.
초승달처럼 휜 찬혁의 눈매가 자신을 향했을 때, 심사위원은 저도 모르게 오금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와, 그걸 맛으로 눈치챌 수가 있구나.'
뭐, 찬혁의 입장에선 순수한 찬사를 담은 박수이긴 했지만.
"정답입니다. 열심히 고생해서 만든 레시핀데, 순식간에 정답을 알아내시네요. 역시 대단하세요."
찬혁의 눈웃음이 그를 직시한다.
과거, 니콜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은 당대의 음악가 중 일부는 그의 도를 넘어선 천재성을 보고 그를 악마라 손가락질했다고 한다.
미식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조예가 있는 뼛속까지 이탈리아 로맨티스트인 이 남자는 그 뛰어난 음악을 듣고 그것을 어떻게 악마의 연주라 폄하할 수 있느냐며 그런 사람들을 흉봤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두렵다……!'
악마는 결코 악마의 모습을 하지 않는다.
꿀 같이 달콤하고, 크림처럼 부드럽게, 사람을 타락으로 유혹할 뿐.
이 나이에 나올 수 있는 요리가 아니다. 자신은 어쩌면, 악마의 탄생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 그럼 마지막 순서를 지키셔야죠. 이번에는 빵 위에 스테이크와 크림소스를 얹어서 드셔보세요."
악마의 유혹은,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순백은 천사의 색. 순결과 정의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그러나 눈앞의 인물도 순백이다.
그 격렬한 조리를 거쳤음에도 고기 한 조각, 소스 한 방울 묻지 않은 순백의 의복을 입었다.
그렇다.
악마는 조리복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