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84화 (384/403)

384. 라떼는 말이야.-7-

접시 위에 오연히 피어오른 웅장한 연꽃 한 송이.

더없이 아름답고, 또 맛있게 보이는 연꽃을 받친 형형색색으로 물든 모래정원.

그 모래정원의 정체는 바로 소금. 교장 선생님과 이영율 셰프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오로지 하나의 요리를 위한 특제소금이었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플레이팅의 배치에 이상한 위화감이 들던 차였으니까.

교장 선생님은 우리를 가르칠 때 말씀하셨다.

셰프라면 접시 전체를 요리사의 의도가 지배케 하라. 무엇 하나 요리사의 뜻대로 되지 않는 요소가 접시 위에 있어선 안 된다.

그 말은 즉 저 접시 위에 설령 좁쌀 한 톨이 덩그러니 올라가 있다 하더라도 그조차 전부 두 대가의 의도라는 뜻.

그러나 난 저 접시를 처음 목격했을 때 그분들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야 저 두 분이 같이 만든 요리에 담긴 의도를 한눈에 알 수 있었으면 내가 회귀 전에 그 꼴이 아니었겠지.'

하지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요리 전체에 대해 고객이 반드시 알 필요는 없다.

허나 겉모습. 겉모습만큼은 어떤 손님이 보더라도 한눈에 그 의도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하게 꾸민단 말이 아니다. 더없이 아름답게 장식한다고 해도,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하게 만든다고 해도 그것을 보는 고객이 무의식 속에서 이것이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만들라는 뜻이다.

그래야만 어느 사람이든 갖고 있는 마음의 벽까지 허물고 진정한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 뒤에 알려주신 게 자연물을 모방한 플레이팅과 인공물을 모방한 플레이팅이었지.'

예술이란 모방에서 시작한다. 물경 수십억 원에 이르는 명화나 조각 중에서도 자연물을 모델로 삼은 작품은 얼마든지 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 연꽃의 모습을 정밀하게 모방한 플레이팅.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자연물의 모방은 '최대한 원본과 똑같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자연은 그 자체로 예술이므로.

만약 내가 이것과 같은 플레이팅을 하고자 했다면 나는 최대한 맑고 투명한 색감을 가진 액체 소스를 얕게 깔아 그 위에 저 연꽃을 올렸겠지.

'보통 연꽃은 물 위에 피는 거니까.'

거기까지가 바로 앞서 말한 최초의 단계.

예술가의 창작은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표현력으로 모방의 위를 덧씌우는 것으로 자신의 내면세계를 바깥으로 끄집어내어서.

그렇게 교장 선생님과 이영율 셰프가 완성한 것이 바로 저 요리.

수면이 아니라 모래와 자갈 위에 피어난 연꽃에 어떤 의도를 숨겨놓았는가 했더니, 저런 비밀을 몰래 숨겨놓았을 거라곤 짐작도 하지 못했다.

여기서 한 가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다. 우리는 요리사다."

요리사의 의도란 결국 요리를 맛있게 만드는 것으로 수렴하는 법이다.

과연 저 특제 소금이 어떤 방식으로 수렴하게 될까. 기대되는 심정으로 시선을 향할 찰나, 입가를 덮은 손바닥에서 묘한 느낌이 든다.

"…… 하하."

웃고 있었다. 심사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승기라는 놈이 보이기 시작했다.

***

연꽃이 피어오른 모래정원의 정체는 바로 소금! 모래의 정원이 아니라 소금의 정원이었단 사실에 심사단이 경탄한다.

"과연. 어쩐지 부족했던 염분은 이것 때문이었군요."

"육회에 이 소금을 곁들여 먹는 게 이 요리의 올바른 취식법. 우리가 요리의 1할밖에 먹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만해요."

말하자면 그들은 훌륭한 반찬을 눈앞에 두고 맨밥만 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잘 지은 밥이라도 그것 하나만 먹어선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닌 것처럼, 그들도 제대로 이 요리를 먹지 못한 것이다.

안영길이 웃으며 그들에게 조언했다.

"드실 때는 하얀색 소금부터 시작해서 시계 방향으로 드시는 걸 권장 드립니다. 간은 조금씩 드셔보시며 취향에 따라 조절해주세요."

심사단은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뜸 들일 것 없이 수저를 든다. 당장에라도 먹어치우겠다는 기세다.

"그럼, 어디……."

한 젓가락 분량의 육회를 접시에 덜어낸 심사위원이 그 위로 하얀 소금을 뿌리며 작게 감탄했다.

"지금 보니까 이 소금, 접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갈수록 입자의 크기가 조금씩 커지네요! 조미료가 혀에 닿을 때, 입자의 크기에 따라 혀의 수용체가 맛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다르죠. 먹는 사람이 거기까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거예요."

요리를 먹는 사람을 극한까지 생각한 편의.

그건 분명 놀라운 일이었으나, 그보다 중요한 건 맛이다.

과연 소금을 조금 뿌렸다고 살짝 부족했던 맛이 얼마나 충족될까. 의심스런 얼굴로 적당히 소금을 친 육회를 입에 넣은 그 순간이었다.

"…… 어?"

그 반응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앞선 프랑스팀의 요리를 먹었을 때처럼 커다란 반응은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 이 육회를 그냥 먹었을 때와는 묘하게 다르다. 입에 들어온 맛이 무엇인지 오래도록 확인하는 듯, 음미하며 계속해서 씹다가, 이내 꿀꺽 넘긴 심사위원이 믿기지 않는단 표정을 짓는다.

"…… 소금이 추가된 것만으로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는 건가……?"

소금이 가진 능력은 그저 짠맛을 더해주는 게 끝이 아니다.

소금은 음식 속에 갇힌 풍미를 해방한다. 보다 더 직관적으로 요리의 맛 전체를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이건…….'

맛의 해방 따위가 아니다. 마치 처음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풍미가 새로 생겨난 것 같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심사단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느낀 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가장 첫 번째로 그들이 육회에 뿌린 하얀 소금은 암염. 그러나 보통 암염이 아니다.

암염 중에서도 불순물이 적고 미네랄을 다량 함유한 하얀 암염 여러 종을 안영길과 이영율이 직접 블렌딩하여 만든, 말 그대로 이 요리만을 위한 소금.

그 속에 담긴 여러 가지 맛은 육회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자신만의 색채를 뽐낸다.

원래는 없던 풍미가 생겼다는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다, 다음은 이 검은 소금이죠?"

"아무래도 인도의 칼라 나막이나 하와이의 용암 소금과 비슷한 종류의 암염인 것 같습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심사단은 다음 소금에 손을 뻗는다. 소금 하나로 찾아온 이토록 커다란 변화. 과연 보기만 해도 특이한 색채를 지닌 다른 소금은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너무나 궁금했기에.

"아, 역시! 이 계란을 닮은 향! 화산 아래에서 황과 철이 다량으로 섞였기에 이런 특이한 향이 나죠!"

"거기에 흑후추도 섞여 있습니다. 소금의 색을 검게 한 건 이 흑후추와 색을 통일하기 위함이기도 했군요!"

"원래 한국식 육회는 계란 노른자를 생으로 더해 먹는다죠? 이 육회에는 그런 게 없지만, 이렇게 하니 계란의 풍미를 느낄 수 있어요! 날달걀이 거북한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조리해주면 아주 좋아할 것 같네요!"

다음 차례는 녹색 소금의 차례.

"아! 이번에는 입에 넣자마자 바다향기가 터져 나와요!"

"그리고 이 감칠맛! 혀, 입천장, 비강까지! 굽지도 않았는데 육즙이 철철 넘쳐흐르는 것 같은 맛이라니!"

"알겠습니다! 이건 다시마 액기스를 뽑아낸 국물에 소금을 넣고 계속 졸여서 수분을 날린 천일염이에요! 다시마에서 뽑혀 나온 글루타민과 녹색 색소가 소금 전체에 흡착된 겁니다! 그래서 이런 색이 나는 게 분명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특이한 적황색을 띈 소금까지.

"소금이…… 달아? 짜면서 달아! 소금이 달다!"

"설탕이 섞인 건가? 아니야, 설탕의 단맛이 아닙니다. 보다 더 농후한…… 부드러운 단맛이……."

"아…… 아아! 과즙! 조금 먹으니 알겠어요! 고기를 씹어 삼킨 다음에 입에 남은 이 농후한 향, 분명 과즙이에요! 파인애플과, 그레나딘 계열? 그런 과일의 향이 납니다!"

"설마 아까 다시마 소금처럼 과즙에 소금을 넣어 졸인 건가……?"

"그 발상 자체도 놀랍지만, 세상에! 이렇게 만든 소금이 어째서 이렇게 고기랑 잘 어울리는 거야!? 믿을 수가 없군!"

네 가지 소금을 넣고서야 비로소 완성된 요리.

그 맛은 실로 놀라웠다.

앞서 심사단이 평가하길 '조각 몇 개가 빠진 퍼즐' 같다고 평가한 요리가, 소금을 조금 곁들여 먹은 것만으로 빠진 조각에 더해 눈알이 빠질 듯 웅장한 액자 장식까지 함께 제공된 것 같은 느낌.

그저 짠맛을 더하는 것으로 끝낸 것이 아니다.

단순한 소금이 아니라, 소금을 재료로 조리한 양념.

소금이라는 형태를 한 소스. 그것이 바로 이 샌드가든의 진면목.

'심지어 이 요리는 이걸로 끝이 아니야!'

'소금 입자의 크기부터 시작해서, 각 소금을 적절한 비율로 섞었을 때 더해지는 맛까지 있어!'

먹고 또 먹을수록, 오히려 그 맛의 깊이가 계속 깊어지는 음식.

탐구형 요리! 요리가 오히려 먹는 이에게 '네가 가장 좋아하는 맛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건네온다!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란 바로 이런 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놀라운, 정말 놀라운 요리입니다! 소금은 요리의 기본이라 다들 말하죠. 하지만 장담컨대, 전 살면서 소금이란 조미료를 이토록 끝내주게 활용한 요리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요리는 후대의 요리사들에게 선명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요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이것을 먹을 수 있는 행운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네요."

도화지 위의 그림이 성공적으로 뒤덮인다. 이전의 그림 같은 것은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새하얀 페인트가 추억을 덧칠했다.

반격의 불씨는 지펴졌다. 성공적인 개전. 다음 후발주자의 역량이 충분하다면, 이길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으리란 믿음을 주는 요리다.

"우아아! 믿고 있었다고!! 우리나라도 먹는 거엔 적잖게 진심이라 이거야!"

"이번에도 꼭 우승해라!"

주눅 들어있던 한국인 관객들 사이에 다시금 거센 활기가 돈다.

이길 수 있으리란 희망. 그것이 연료가 되어 그들의 가슴에 다시금 불을 지핀 것이다.

"……."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환호성의 중심. 바로 다음 차례로 나서야 할 찬혁의 표정은 묘하게 담담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얼굴.

아니, 담담하다기보다는 아리송하단 얼굴이었다.

안영길과 이영율, 두 사람이 만든 요리에서 느껴진 기시감.

이상하게 머릿속 추억을 건드리는 감각에 의아해하고 있을 무렵. 첫 요리의 심사를 끝마치고 자리로 돌아온 안영길이 찬혁을 부른다.

"다음 차례죠, 찬혁 학생?"

"아, 네.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찬혁 학생만 할까요."

그것은 메인을 혼자 담당한 찬혁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소감이었지만, 방금 요리를 목격한 찬혁에게는 겸양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하하하…… 그럼, 저도 한바탕 하고 오겠습니다."

"좋아요. 잘 하고 오세요.…… 아, 잠깐."

"?"

복귀와 동시에 바로 요리를 들고 나서려던 찬혁을 갑자기 붙잡는 안영길.

그런 그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는 찬혁에게, 안영길이 질문을 건넨다.

"찬혁 학생. 혹시 찬혁 학생이 처음 치렀던 대회, 기억하고 있나요?"

"예?"

처음 치렀던 대회. 당연히 회귀 전을 묻는 건 아닐 것이다. 애당초 회귀 전에는 성심고 소속으로 대회에 나간 역사 자체가 없는 찬혁이니까.

회귀 후의 일을 묻는 것이리라 짐작한 찬혁이, 조심스레 답한다.

"네. 기억하고 있어요. 분명 서울시 배 U-20 요리경연대회에서 전시부로…… 아."

그제야 찬혁은 기시감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4색 마둔살 육회가 담긴 접시. 지금은 심사단이 건드려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원래 상태를 되새겼을 때의 모습은 분명 기억에 있다.

12시 방향 적황색으로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백, 흑, 녹.

그것은 분명, 3년 전 찬혁이 처음으로 대회에 나갔을 때 고육지책으로 만든 장식물. 사신수의 배치와 똑같은 것이었으니까.

"그때 찬혁 학생이 만들었다는 장식물을 보고 생각했어요. 이런 어린 학생이 이만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분명 커서는 저 같은 것보다 훨씬 큰 사람이 될 거라고."

"그, 그렇지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흔드는 찬혁을 보며 고개를 저은 안영길이 말을 잇는다.

"근데 틀린 생각이었네요. 찬혁 학생은, 분명 다 큰 다음이 아니어도, 이를테면 당장 몇 년 뒤라도 저보다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에 부정을 표하려던 찬혁이었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찬혁을 마주 보는 안영길의 눈빛이 너무나 부드럽고, 그럼에도 다른 말을 꺼낼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빛을 담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제자보다 못한 스승이 되기 전에, 또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대회가 끝나기 전에 작은 교육을 하나 해두려고 장난을 좀 쳤습니다."

안영길이 찬혁의 어깨를 토닥인다.

"찬혁 학생. 너무 미래에만 답이 있다고 생각하진 말아요. 가끔 보면, 걱정될 정도로 오늘을 희생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게 걱정이에요."

"아……."

"이렇게 고작 몇 년만 과거를 돌이켜 봐도 배울 게 있습니다. 오늘 이 시합에서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승리라는 미래를 위해서 어제와 오늘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울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인생의 성공은 언제 어느 때에 인생을 되새겨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쓰라린 기억을 과거에만 남기면, 미래에 반추하여도 즐거운 인생이 되진 않는다.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과하게 긴장하지도 말고.

그저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정도의 최선을.

교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가르침.

"…… 네!"

찬혁은,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안영길은 모르리라. 찬혁에게는 이 고행마저 가장 즐거운 추억으로 남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기에는 뭐하지만, 모든 것을 경험하고 이 길로 다시 돌아온 찬혁의 정신구조는 약간의 피학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괴로움을 즐거움 삼아, 찬혁은 심사에 나선다.

누누이 말하는 사실이지만, 찬혁 또한 분명히 어딘가 미쳐 있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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