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 라떼는 말이야.-5-
헝가리안식 래빗 스튜로 시작부터 상상 이상의 고득점을 획득하고 시작한 프랑스팀.
물론 따로 기입되는 점수 같은 것이 없는 상대평가이긴 하지만, 마치 즐거운 꿈이라도 꾼 것 같은 몽롱한 표정을 지은 심사단의 얼굴을 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지경이었다.
'거 참. 얼굴만 보면 심사 다 끝난 줄 알겠네.'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긴 했으나 찬혁이라고 심사단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그만큼 훌륭한 요리라는 건 두말할 것 없는 사실. 적이지만 같은 요리사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기에.
다만 그렇기에 오히려 찬혁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건 당장의 심사가 아니라 이 뒤에 이어질 심사에 대한 것이었다.
'로랑 마틴. 메인이 나올 차례다.'
겉모양부터 예술적인 요리의 모양새에 찬혁이 놀라움과 우려, 그리고 호승심이 섞인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안 그래도 나이를 먹어 젖살이 빠지며 날카로운 인상을 더한 찬혁의 얼굴. 그 미간에 주름이 잡히니 분명 잘생긴 얼굴임에도 사람을 겁먹게 만드는 기운이 절로 샌다.
그러나 자신의 인상이 그러리라곤 딱히 생각하지 않는 찬혁이었거니와, 알더라도 굳이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찬혁의 미간에 아로새겨진 주름은 깊어지기만 할 뿐이다.
'토끼고기를 사용한 포르케타. 일단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심사 전, 로랑이 직접 말한 요리의 이름을 떠올리며 찬혁이 팔짱을 낀 채 턱을 괸다.
'포르케타라는 게 원래는 오겹살로 만드는 요리지.'
넓게 잘라 펼친 통오겹살 속에 스터드라 불리는 속 재료를 채워 김밥처럼 만 뒤 오븐에서 장시간 굽는 요리. 그게 보통 세간에서 포르케타란 이름으로 통하는 요리다.
'근데 저건 토끼고기로 만든 거란 말이지…….'
포르케타라는 요리를 보통 돼지고기로 만드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돼지고기보다 껍질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가축은 없기 때문이다.
포르케타는 고기와 스터드 사이의 궁합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가장 바깥에서 포르케타 전체를 감싸는 바삭한 껍질의 맛이다.
'돼지의 껍질은 지방 함량이 굉장히 높아서 소나 양의 가죽과 비교하면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약하고 무르지.'
야생의 멧돼지가 집돼지로 품종개량 되며 외부공격에 대한 방어체계가 약화된 탓이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돼지껍데기를 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만.
'덕분에 돼지껍데기는 올바른 방식, 적당한 열기로 가열하면 아주 맛있는 별미가 돼.'
겉면에 물엿이나 기름 따위로 층을 만들고 껍질 속 열기와 기름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로 만들어 가열할 경우, 껍질 내부의 기름과 공기방울이 팽창하여 잘 구운 파이반죽처럼 바삭한 크러스트를 형성한다.
그것이 바로 포르케타를 비롯한 돼지를 통으로 굽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식, 프렌치, 이탈리안, 필리핀 등등. 수많은 나라에서 공통되는 사항이다.
'예전에 배웠던 레촌이나 상천에서 봤던 새끼 돼지 통구이도 그랬었고. 그런데 토끼고기는 그런 게 없단 말이지.'
단순히 모양만 흉내를 낸 거라면 저 요리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작 찬혁은 로랑의 요리가 반쪽짜리일 것이란 예상은 처음부터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이렇게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찬혁이 그렇게 생각한 근거.
그것은 로랑이란 요리사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당장 그의 눈에 보이는 요리의 모습이 여태껏 가진 그의 상식을 무너트리고 있었으니까.
"껍데기가 있잖아, 저 토끼고기."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을 봐도 이렇게 당황스럽진 않을 텐데.
찬혁은 제 심정을 짧게 토로했다.
***
심사단이 처음 로랑이 준비한 메뉴를 보았을 때의 반응은 찬혁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토끼 한 마리 분량의 고기를 전부 사용한 포르케타…… 맞죠?"
"처음 로랑 선수가 말한 대로 스터드는 졸인 사과와 견과류로 만들어졌네요."
"그런데 이 껍데기는 대체……."
이런 질감의 껍데기를 형성할 외피가 있을 리 없는 토끼고기.
제 눈을 의심한 심사단이 나이프를 들어 황금빛으로 익은 껍데기 위를 긁자, 기분 좋은 소음이 손가락과 고막에 동시에 진동을 전달한다.
─드르르륵!
"…… 아주 잘 익은 돼지껍데기를 훑는 것 같습니다. 느낌이 정말 비슷해요."
"저, 로랑 선수……?"
심사단이 의아한 목소리로 로랑을 부른다. 혹시나 이 요리에 정말 돼지껍데기를 갖다 썼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리 껍데기만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 또한 틀림없는 육류의 일종.
특수육류만을 사용해야 하는 시합에 그런 재료를 사용했다면 반칙패다.
그러나 로랑은 그런 의심의 시선에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이 작품에는 순수하게 토끼고기만이 사용됐습니다."
"허……."
아니 그럼 이 쿠키처럼 잘 튀겨진 껍질은 대체 어떻게 만들었단 말인가.
마치 최고급 레드카펫마냥 접시 위에 얕게 깔린 와인레드 빛깔의 소스 위, 잘린 김밥처럼 단면을 드러낸 포르케타의 모양새는 마치 지구의 단면도를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층이 나뉘어 있다.
"어, 음……."
알쏭달쏭,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그들은 이번에도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쥔다.
─드르륵! 스릉
"허어. 가장 바깥의 껍데기와 속살의 질감이 전혀 다르네요. 껍데기를 자를 때엔 무른 각목에 톱질을 하는 느낌이고, 반대로 속살 부분은 버터를 자르는 것 같아요."
"겉면의 바삭함을 그만큼 잘 살린 덕분이라고 봅니다. 살코기는 수비드를 했었죠? 그래서 그런지 부드러움이 남달라요. 그러면서도 고기의 결은 확실히 살아 있는 게 인상적이네요. 부드러움과 탄력을 둘 다 챙겼어요."
"향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식용 가축 토끼는 내장을 제외하면 살코기 부분의 육향은 거의 없다시피 하죠. 그런 고기로 요리를 하면 어딘가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들기 마련인데…… 킁, 킁킁! 역시. 고기 전체에 달콤한 과일향, 약간의 훈연향, 그리고 견과류와 와인의 향미가 감돌고 있어요."
코를 접시 가까이 대고 손부채를 흔들어 향을 살핀 심사위원이 이어 말한다.
"소스는 레드와인을 베이스로 한 글레이즈 소스…… 그런데 묘한 향이 더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 다음은 역시 직접 먹어 봐야 알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시식을 시작해봅시다."
포르케타를 즐기는 올바른 방법은 역시 껍질과 속살, 스터드, 그리고 소스를 곁들였다면 그 소스까지 합쳐 한 번에 먹는 것이다.
먼저 각각의 재료가 가진 식감을 즐긴다.
바삭하고, 쫀득하고, 쫄깃하고, 부드러우며, 건조하고, 질척인다.
이는 마치 정신없는 클럽에서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EDM의 리듬에 맞춰 몸을 뒤흔들 때와 같다.
도저히 음악을 즐기지 못할 것 같은 환경에서도 심장을 때리는 비트와 째질 것 같은 멜로디에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지만, 때로는 그것이 음악을 즐기기 알맞은 태도일 때도 있다.
홍수처럼 쏟아진 정보를 소화하며 한껏 기력을 소모한 뒤에 찾아오는 소강상태.
하지만 그것은 식감을 즐기며 입 안에서 골고루 섞인 요리의 침략 전에 찾아온 폭풍 전의 고요에 불과하다.
형체를 잃고 하나로 묶인 맛이 혀의 첨단부터 시작하여 깊은 뿌리까지 가리지 않고 점령하기 시작한다.
"!"
"흐허!?"
"흡!"
그렇게 혀를 강타한 맛은, 이미 말로 표현이 불가능한 경지에 이르렀다.
맛의 표현 하나에는 그 누구보다 잘났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심사단의 말문마저 틀어막을 정도의 경지에.
─달그락달그락!
─서걱서걱, 끼익!
한동안, 심사단의 테이블 위에는 오로지 음식을 먹는 소음만이 이어졌다.
말소리…… 아니, 숨소리조차 음식을 먹는 데에 필요한 호흡이 아니라면 필요치 않다는 듯이.
오죽하면 그런 심사단의 반응에 관객들이 들고 일어나려 할 지경이었다.
"아니 근데…… 저 사람들은 무슨 걸신들린 것처럼 먹냐."
"대체 얼마나 맛있다는 거야?"
"진짜 딱 한입만이라도 좋으니까 먹어보고 싶다……!"
"먹었으면 말을 해라!"
"너희들 밥 먹으라고 데려다 둔 게 아니잖아!"
이미 심사를 넘어 식사 시간이 되어 버린 순간이 흐를수록 관객들의 입에선 험한 말이 튀어나온다.
어쩔 수 없는 반응이다. 풀지 않고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난공불락의 난제. 그 해답을 알려주겠답시고 나선 이들이 벌써 5분 가까이 대꾸도 없이 묵묵부답이면 화도 날법하다.
그러나 점차 거세지는 분위기 속에서도, 심사단은 끝내 수저를 놓지 못한다.
어언 10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수저를 내려놓은 심사단은, 오랜 잠수 끝에 간신히 수면 바깥으로 얼굴을 내민 사람처럼 거세게 호흡을 재개한다.
"허, 허억! 후욱!"
"세, 세상, 세상에……!"
"흡, 후어……!"
대체 어떤 요리였기에?
오랜 침묵 끝에 심사단의 말문이 트이자, 이번에는 반대로 아까까지 성화던 관객들의 목소리가 쥐죽은 듯 잠잠해졌다. 그들의 심사평을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기대에 반하는 일 없이, 심사단은 두서없지만 그들의 진심이 담긴 평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단한…… 대단한 요리였습니다! 아니, 제가 감히 이 요리를 평가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이보다 알맞은 평가를 내릴 수가 없어요. 정말입니다!"
"껍데기, 살코기, 스터드, 소스! 무엇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가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것! 소스입니다! 이 소스가 그저 아주 맛있을 뿐인 고기 요리를 세상에 둘도 없는 고풍스런 토끼고기 요리로 바꿔주고 있습니다!"
고기 요리를 토끼고기 요리로 바꿔주다니? 관객의 의문이 채 튀어나오기도 전에 그가 이어서 말한다.
"몇 번이나 말씀드렸다시피 토끼는 육향이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잡한 조리과정을 거쳐 먹게 되면 그게 토끼고기인지 제대로 알 수도 없을 지경이죠! 그런데 이 요리는 달라요! 온갖 조리과정을 거치고도 전 이 요리를 먹자마자 이게 토끼고기로 만들었다는 걸 혀로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뇌에 입력한 정보가 아닌 척수에 각인되는 것 같은 강렬함.
그것의 비밀은 생각 이상으로 심플하다. 그야 이 소스는, 말 그대로 토끼 한 마리를 그대로 응축한 것이었으니까.
"한 번 데쳐 불순물을 제거한 토끼고기를 소량의 소금, 후추로만 살짝 간을 해서 통째로 오븐에 구운 뒤, 뼈와 살을 발라 압착기를 사용해 뼛속에 잔재한 극소량의 액기스까지 뽑아냅니다. 그걸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든 육수와 섞은 뒤, 와인과 함께 끓여 졸인 게 분명해요!"
토끼 한 마리를 그대로 농축한 소스.
그 말에 담긴 의미는 단순하다. 정말로 한 마리 분량의 토끼고기를 단순히 액기스를 채취하는 용도로만 사용한 것이다!
물론 그 자체로는 향미가 너무 강하다. 그렇기에 육수에 희석하고, 희석한 액기스를 다시 한번 와인과 섞어 갖은 조미료와 향신료를 넣고 만든 것.
그것이 바로 소스의 정체였던 것이다.
'물론, 거기서 아예 끝은 아니지.'
로랑이 속으로 웃었다.
'한 번 데친 토끼 콩팥과 간을 버터로 소테한 뒤, 그걸 으깨서 소스에 넣고 같이 졸여준 거야. 이걸 걸러내서 버터, 밀가루로 농도를 잡아주면 최고의 소스가 나온다고.'
굳이 말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더 자세히 설명했다면 그만한 관심과 호응을 얻었겠으나 한순간의 주목을 위해 이런 비법까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으니까.
"이 껍데기의 정체도 알았습니다. 이건 동물의 껍질이 아니에요! 그것과 비슷한 질감이 나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말하자면 파이에 덮는 페이스트리 반죽 같은 겁니다!"
이번에도 로랑이 웃는다.
'그것도 반 정도는 정답. 밀가루와 전분을 적당한 비율로 섞고, 수분은 오로지 라드만 사용해서 반죽한 인공 껍데기지.'
라드가 계속 녹은 상태로 반죽을 하기 위해선 체온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기에 손으로만 반죽해야 했다.
밀가루에 글루텐이 생길 때까지 반죽을 한다고 고생깨나 했으나, 덕분에 끈덕지게 결합한 반죽 사이로 부푼 기름방울은 인공적인 껍데기의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해냈다.
거기에 최고급 사과를 화이트 와인 비네거와 견과류를 넣고 졸인 뒤, 시나몬 파우더를 살짝 첨가한 스터드.
달콤, 새콤, 짭잘. 철두철미하게 계산된 맛의 삼중주에 더해 와인과 사과, 토끼고기의 향미. 힘들게 재현한 껍데기의 바삭함을 비롯한 다양한 식감.
하나의 요리로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표현한 요리.
로랑의 인생을 통틀어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진정한 최고의 명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솔직히, 이쯤 되면 진심으로 말해도 될 것 같다.
"와, 진짜 뭐 하는 놈들이지?"
저것들, 완전히 정신 나간 미친놈들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