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81화 (381/403)

381. 라떼는 말이야.-4-

굳이 말하기도 무안할 만큼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대회의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단. 즉 세 곳의 미식 잡지사로부터 파견된 그들은 살면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요리를 먹어왔다.

그 가짓수는 어림잡아도 수천 가지 이상. 어쩌면 만 단위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나름 미식가란 딱지를 달고 수십 년. 대기업의 정보보호 속에서 암행어사 저리 가라 할 은밀 평가원 역할을 수행해온 경력은 평범한 사람이 한평생 먹을 음식의 수십 배에 달하는 종류의 요리를 맛보게 해주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이번 시합의 주제인 특수육류처럼 희귀한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 또한 있었다.

사실 요리 한 접시를 먹기 위해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길 마다하지 않는 이들로선 대단치도 않은 일이다.

어느 나라에선 전국방방곡곡을 이 잡듯 뒤져야 저 시골에서도 벽촌에 위치한 곳에서야 간신히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식재료가 어느 나라에선 아무 식당이나 대충 들어가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흔하게 취급될 때도 있다.

오프 더 레코드긴 하지만 낮은 멸종위기 등급을 가진 생물의 고기마저 몇 번쯤은 먹어본 경험까지 있는 이들.

그런 그들에게 있어 토끼나 말 정도의 고기는 조금 거칠게 말해서 식상하단 말로도 부족한 식재료였다.

그러나, 자부심 가득한 그들조차 이런 상황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고언이 있었다.

세상만사 무슨 일에든 '예외'란 있는 법이라는 것을.

"이건 정말이지……."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양 팀이 각각 세 접시.

그들 앞에 대령된 총 여섯 가지의 메뉴.

요리의 맛은 외관에 따르지 않는다.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의 스테이크를 본래 내놓던 대로 내놓든, 대충 조각내서 가니쉬와 한 접시에 뒤섞어주든 순수한 맛에선 그리 커다란 차이가 없겠지.

그러나 사람은 여타 짐승처럼 그저 생명 활동을 위해 맹목적으로 먹는 생물이 아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그만큼 외관이라는 것은 사람의 식욕을 자극하기 용이한 첫 번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때로, 너무도 뛰어난 외관은 사람을 압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장엄한 건축물을 볼 때 웅장함을 느끼듯이.

위대한 예술품을 볼 때 경외심을 갖듯이.

개인의 인지를 넘어선 무언가에 사람은 경도되기 마련.

두 팀의 요리가 딱 그러했다.

요리를 모르는 사람조차 예술품이라 착각할 정도로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가진 접시들.

심지어 요리에 대해 명백히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가진 심사단의 눈에 그것은 어떻게 보였겠는가.

파가니니의 연수를 일견하고 그 진가를 단번에 이해한 리스트처럼, 도저히 리스트와 같다고는 하지 못하는 심사단이더라도 당시의 리스트에 버금가는 충격만큼은 똑똑히 느꼈다.

그들에게 남은 생애가 앞으로 수십 년. 아마 그 전부를 걸어도 다시 만나리라 장담할 수 없는 요리를 눈앞에 두고서 그들의 이성은 인내심이란 목줄을 억지로 끊어내려 안달했다.

심사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떻게든 길게 뺀 목을 집어넣고 조금이라도 점잖은 태도를 내보이는 것뿐이었다.

"크흠, 그럼 이제부터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앞서 요리를 제출한 쪽은 프랑스팀이므로 프랑스팀 심사 후 한국팀을 심사하도록 하죠."

"이의는 없으십니까?"

이의는 없었다.

그 사실에 심사단은 마음 깊이 안도했다.

자신들의 결정을 모두가 순순히 받아들여 주었다는 것에 대한 안심이 아니라, 음식을 맛보는 시간이 이 이상 뒤로 밀려나지 않게 됐다는 데에 대한 안심이었지만.

서로의 뜻이 묘하게 어긋난 상황 속, 프랑스팀의 심사가 시작됐다.

***

"첫 메뉴는 토끼 뒷다리와 내장으로 끓인 스튜…… 로군요."

"뒷다리살을 넣고 끓인 스튜 자체는 제법 흔한 요리죠. 하지만 내장이라."

기본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사육된 가축은 야생동물에 비하면 내장의 악취는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지 않는다.

야생의 가혹한 환경 탓에 내장에 상처를 입거나 스트레스성 내출혈이 생기는 등, 악취를 유발하는 신체적 이상이 생길 일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도축 전 먹이 조절을 통한 장내 잔여 오물 처리 등의 작업으로 미약하게 남은 오염마저 확실히 대비하는 최신식 도축기술까지 더해진다면 더더욱.

하지만 그렇다고 내장의 냄새가 좋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고기가 되는 근육과는 다르게 가장 직접적으로 외부의 요인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기관인 내장은 그만큼 생명활동을 통한 노폐물 따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악취가 생긴다.

특히 토끼처럼 작은 동물의 경우 신진대사가 너무 빨라 장시간 굶길 시 폐사할 확률이 매우 높기에 도축할 때에도 제대로 된 처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내장에서 심한 악취가 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지.'

그런 토끼의 내장을 사용해 끓인 스튜.

자칫 잘못 조리했다면 맛은 고사하고 향 때문에 입에 댈 수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 향은……!"

"악취가 없어! 전혀 나질 않아! 악취는커녕 은은하게 올라오는 구수한 야채와 고깃기름의 향기가 달게 느껴질 정도야!"

투명한 기름층이 얕게 뜬 건더기 가득한 새빨간 국물.

솔솔 뿌려진 프레시 허브와 그릇 한쪽을 완전히 잡아먹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풀풀 풍기는 통짜 뒷다리.

그러나 그런 시각적 특징보다도 심사단의 주목을 가장 잡아끈 것은 바로 그 향기였다.

"이건 허파, 이건 소장, 그리고 제일 귀하게 친다는 콩팥까지……."

"이렇게 다양한 내장이 들어갔는데 악취라곤 찾아볼 수도 없다니, 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가요?"

심사단의 질문에 스튜를 담당한 헬레나가 답했다.

"이 스튜는 프렌치보다는 헝가리안 굴라쉬 스타일로 조리했습니다. 내장은 흐르는 물로 깨끗하게 씻어낸 뒤 소금과 후추, 드라이 허브, 커리 등을 볶은 밀가루와 섞은 것에 잠시 재워 악취를 제거했고, 한 번 데친 뒤 볶아서 사용했습니다."

헝가리안 굴라쉬란 파프리카 가루를 사용하여 생긴 붉은색이 특징인 헝가리의 스튜 요리.

주특기인 프렌치를 마다하고 유럽 요리 중에서도 드물게 매운맛이 강한 메뉴를 준비한 건 어떤 연유일까.

기대 가득한 심사단의 시선을 마주한 헬레나가 말을 잇는다.

"드라이 토마토와 프레시 토마토를 같이 사용해 감칠맛을 극대화하고, 프레시 허브로 향미를 추가하여 각종 채소와 함께 드시기 좋게 푹 끓였죠."

"오오……!"

"그거 참, 듣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군요."

빈말이 아니라는 듯 군침을 꿀꺽 삼킨 심사단의 말에 헬레나가 웃으며 답한다.

"그럼, 시식 부탁드립니다."

심사단은 대답을 끄덕임으로 대신하며 일제히 수저를 들었다.

취식 순서는 처음 헬레나가 일러준 그대로.

처음에는 스튜의 국물만, 그리고 다음에는 채소와 함께, 다음은 내장, 그리고 다리의 살코기.

마지막으로 모두를 적절히 섞어서 한입에 먹어보고, 이후에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함께 서빙한 크림이나 소금, 후추, 치즈를 적절히 섞어가며 시식한다.

아니, 시식이 아니었다.

심사단은 그야말로 본격적인 식사를 하는 것처럼, 테이블 매너라곤 안중에도 없이 거칠게 접시 바닥을 긁어가며 스튜를 탐닉하기 시작한다!

─드륵! 드르륵!

"세상에 맙소사, 이게 정말 토끼로 끓인 스튜라고? 이제까지 내가 먹은 건 대체 뭐였지?"

"아찔한 매콤함 다음에 입 전체를 촉촉이 감싸는 감칠맛! 고기의 달콤한 지방과 채소 본연의 맛이 이토록 잘 어울릴 줄이야!"

"대체 어떻게 조리했길래 같은 토마토의 맛이 이렇게 다른 거야! 분명 겉보기도, 냄새도 같은 토마토일 텐데 씹으면 달고 짭짤한 맛이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하나로 섞인다!"

기껏해야 두세 국자 분량에 불과한 스튜.

가장 커다란 토핑이던 토끼 다릿살마저 피라냐가 한바탕 쓸고 간 것 같은 몰골이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도 필요치 않았다.

"아……."

"이런, 벌써?"

수저로도 모자라 접시 바닥까지 싹싹 핥아 먹을 기세를 선보이던 심사단이 허망한 얼굴로 첫 시식을 마쳤다.

기실, 이 시점에 이르러 심사단은 대체 이 요리에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 요리를 평가할 수는 있는 건가?'

'태어나서 이것보다 더 뛰어난 스튜 요리…… 아니, 이 요리보다 뛰어난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다!'

단 십수 분 만에 토끼의 내장이란 소재에서 악취를 깔끔히 제거한 솜씨부터 이미 어지간한 파인다이닝은 명함을 내려두어야 하는데, 심지어 그보다 더 신기한 수수께끼가 잔뜩 남았다.

아까 그들은 자신을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은 리스트에 비유했으나, 다시 생각하면 역시 그것은 틀린 비유였다.

리스트는 단 한 곡의 연주로 파가니니의 끝없는 잠재력의 저편을 들여다보기라도 했지, 그들의 눈에 이 요리의 깊은 곳은 끝없는 무저갱으로만 보일 따름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가 판단할 수준을 넘은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동감합니다. 풍미의 관리부터 줄지은 파도처럼 단계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맛까지, 완벽하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든 요리였어요."

"감사합니다."

헬레나가 짧은 감사를 표하자 심사단이 묻는다.

"가장 궁금한 건 재료에 맛을 들인 방법에 대한 겁니다."

"모든 고기와 채소에 스튜의 맛이 꼼꼼히 배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토마토는 정말 이해가 안 되더군요."

"하나는 달고, 하나는 맛이 확실히 배서 딱 좋은 소금기가 돌았습니다. 달고 짠 맛이 번갈아 들이치니 이겨낼 재간이 없었어요."

"드라이 토마토와 프레시 토마토. 두 가지를 같이 쓰신 건 알겠습니다. 단맛을 내던 건 분명 잘 말린 드라이 토마토겠죠. 하지만 다른 프레시 토마토에 그렇게 확실하게 맛이 배려면 드라이 토마토에도 분명 영향이 갔을 겁니다."

아니, 토마토만이 아니라 스튜 전체의 간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스튜에 담긴 각각의 재료는 저마다 개별적이면서도 독립적인 맛을 유지했고, 그것이 입속에서 하나로 조화하며 상상도 하지 못한 훌륭한 맛을 낳았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헬레나는 고개를 작게 저으며 잠시 미룰 뿐이었다.

"물론 저도 설명을 드리고 싶지만, 우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만큼 심사가 끝난 뒤에 말씀드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건……."

"확실히, 맞는 말씀입니다만……."

심사단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의문에 아쉬운 소리를 냈으나, 헬레나의 의견 또한 타당했으므로 더 이상의 지체없이 다음 순서로 나서는 로랑을 맞이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이 요리도 분명 맛있을 거고. 식어서 맛이 조금이라도 더 떨어지면 우리만 손해니까.'

이해득실을 꼼꼼히 계산한 그들이 다음 선수를 맞이하는 한편,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찬혁이 팔짱 낀 손에 빠득 힘을 주며 투덜거렸다.

"…… 역시 실력이 늘었네."

난적의 성장은 언제나 골치를 아프게 하는 법이었다.

***

'실력이 늘었어.'

정말로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헬레나 피에르가 선보인 헝가리안 굴라쉬 스타일 래빗 스튜.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천재적이었다. 진짜 대단하단 말밖에 안 나온다.

스튜 등의 요리에는 특히 치명적인 악취를 제거하는 방법이나 맛의 가미, 단계적인 향미의 변화를 통한 맛의 다양화.

한입 먹을 때마다 새로운 요리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며 다음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좋은 요리였다.

'맛을 보다 세밀하게 구분해서 요리에 담을 줄 알게 됐잖아.'

하나의 요리에 많아 봐야 두세 번의 변화를 담던 과거의 그녀와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아주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거기다…….'

더더욱 나를 놀라게 만든 건 재료를 보는 깊이의 차이다.

이전 그녀는 요리를 만들 때 본인에게 익숙한, 유럽에서 난 재료나 최대한 싱싱하지만, 그 특징 자체는 그다지 볼 게 없는 베이직한 재료를 고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시선을 돌려 프랑스팀의 조리대 저편으로 언뜻 보이는 재료더미를 살폈다.

다양한 종류의 상자와 몇 가지 신선제품.

그 사이로 이번 요리에 쓰인 토마토가 눈에 들어온다.

물론 이 거리에서 재료 겉모양만 보고 무슨 종인지 안 건 아니다. 그보다 좀 더 단순하게, 박스에 쓰인 상표를 읽었을 뿐이다.

"대저토마토라. 하."

과연 심사단의 그런 반응이 이해가 된다.

대저토마토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토마토의 일종으로, 다량의 염분이 포함된 땅에서 자라는 탓에 토마토 자체에서 강한 짠맛이 감도는 품종이다.

이런 토마토는 수분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토마토 요리에 지극히 쓰기 편하다.

강한 소금기 탓에 조금만 맛이 배어도 중심까지 확실히 맛이 밴 것 같은 효과를 주니까.

'저 토마토 자체는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대저토마토를 고른 헬레나의 안목이다.

재료를 픽업하는 시야가 말도 안 되게 넓어졌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요리에 최적화된 재료를 서치하는 능력.

행운인지 본연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걸 찾아낼 정도의 탐구심을 길렀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성장을 의미한다.

"진짜로 골치 아파졌네."

헬레나 피에르가 저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저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천재라는 꼬리표를 단 로랑 마틴은 대체 얼마나 커다란 성장을 이룩했단 말인가.

이제야 조금 보이기 시작한 적의 상승세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심정.

까놓고 말해서 좋은 기분은 아니다.

'…… 뭐, 그 빙산이 바다 밑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걸 볼 때의 기분만큼은 아니겠지만.'

다음 심사가 시작된다.

젠장.

빙산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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