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80화 (380/403)

380. 라떼는 말이야.-3-

언젠가 찬혁은 말했다.

한 업계의 최고봉을 노리는 이는 어딘가 한구석 정도는 미쳐 있어야 한다고.

실제로, 찬혁은 자신의 행동으로 그 말을 증명했다. 수백 도로 달아오른 철판에 장갑 하나만 믿고 맨손으로 고기를 굽다니. 어지간한 담력으론 흉내도 내지 못할 광인의 소행 그 자체였으니까.

"와, 쟤 진짜 제정신 맞나?"

"누가 고기를 저렇게 구워…… 속은 하나도 안 익었겠다."

"그것보다 연기 이거 괜찮은 거야? 스프링클러 터지고 그러는 거 아니지?"

관객에 더불어 같은 스테이지에 선 선수들마저 당혹스런 시선을 보내는 가운데, 찬혁은 다만 홀로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딱 좋게 구운 고기를 꼼꼼하게 밀봉하여 얼음물로 재빨리 냉각. 잔열 탓에 모처럼 잘 빠진 고기를 망칠 수는 없었다.

한차례 잘 식힌 고기는 그대로 상온에서 보관한다. 냉각한 채 보관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고기를 먹을 때 너무 차가우면 섬세한 맛을 느끼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다음은……."

그래, 이거다.

짧게 웃은 찬혁이 다음 단계를 밟는다. 산더미처럼 쌓인 재료 속을 헤집는 찬혁의 손. 이윽고 손가락 끝으로 느껴진 미끈미끈한 감촉을 느낀 그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맺힌다.

이윽고 찬혁이 제 손을 다시 바깥으로 드러낸 그 순간, 관객 사이에 다시 한번 술렁임이 일기 시작한다.

찬혁의 손아귀에 잡힌 재료.

마치 커다란 뱀 같은 굵기와 길이를 자랑하는 새하얀 고깃덩이. 온통 새빨간 고기 밖에 없던 말고기에서 대체 어디에 저런 새하얀 식재가 있었단 말인가?

대부분의 관객이 그 정체 모를 식재료에 의문을 표하던 그때, 해설자가 놀랍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이야, 드디어 저게 나왔네요! 언제 나올지 정말 기대하고 있었거든요!"

마치 무언가를 아는 것 같은 말투에 MC가 다급히 질문을 건넸다.

"아, 혹시 저게 뭔지 아시는 건가요?"

"그럼요! 저게 바로 말의 창자, 속된 말로 검은 지름이라 불리는 부위입니다. 말고기를 즐기시는 분들은 꼭 챙겨 드시는 부위죠!"

"말의 창자?"

"아니 확실히, 다시 보니까 창자처럼 생기긴 했는데……."

관객들이 처음 저것을 보고 창자를 바로 연상하지 못한 건 다름 아닌 그 굵기 때문이었다.

동물의 창자는 분명 한국에서도 주로 소비되는 부위이긴 하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즐겨 먹는 창자는 곱창, 대창 등을 비롯한 소의 창자 정도.

그러나 말의 창자의 두께는 그중 두꺼운 대창과 비교해도 족히 두 배를 넘는 굵기를 자랑했다. 어리둥절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저게 왜 검은 지름이라는 거지? 지름이면 분명 기름이란 뜻이잖아."

"아무리 봐도 새하얀 색인데."

이어지는 관객의 의문에 찬혁은 행동으로 답했다.

깨끗하게 세척한 말의 창자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프라이팬에 담아 약불로 천천히 볶기 시작한다.

아무리 지방이 거의 없는 경주용 말이라 하더라도 지방을 저장하는 창자에까지 지방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

오히려 근육에 저장할 지방까지 한 곳에 농축했다는 듯, 약한 화기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창자에서 지방이 녹기 시작한다.

역시나 기름의 색은 투명하다. 당연하다. 동물이 몸에 쌓은 지방이라고 해봐야 결국 녹으면 기름일 뿐이고, 기름은 보통 어느 정도 색이 있더라도 투명도가 있기 마련이니까.

"어, 어어?"

"뭐야. 기름이 점점 까맣게 변하고 있잖아?"

그러나 잠시 후, 그런 그들의 상식을 깨부수는 광경이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진다.

프라이팬에 녹아 나오기 시작한 기름이, 투명한 색에서 갑자기 검은 색채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 기름이 검은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저거 정말 먹어도 괜찮은 걸까요?"

"아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게 정상입니다."

"예?"

기겁하는 MC를 보며 호탕하게 웃은 해설자가 말을 잇는다.

"말의 지방은 녹는점이 낮아 어느 정도 열기만 줘도 쉽게 기름이 됩니다. 그래서 지방이 있는 부위를 육회로 먹어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고소하죠. 그런데 그런 말의 막창 안에는 특이하게 검은색으로 변한 지방이 뭉친 곳이 곳곳에 있어요."

"아니, 기름이 어떻게 검은색으로 변한다는 겁니까?"

"요즘 말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 말을 도축해서 먹을 때에는 보통 노역마가 노쇠해져서 일을 못 하게 됐을 때에나 잡아먹었죠. 그렇게 고생하다 죽은 말의 지방에는 모세혈관 따위가 터지면서 지방에 소량의 피가 섞이게 돼요. 말의 피가 원체 검은색에 가까운지라 지방의 색도 검게 변하게 되는 거죠."

"아하."

"저 정도로 기름에 검은색이 배어 나온다는 건 그런 검은 지방이 제법 섞였다는 거예요. 아마 평범한 식용마가 아닐 겁니다."

날카로운 해설에 멀리서 듣고 있던 이영율이 작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해설자라지만 지식의 깊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아는 건 아니야.'

그렇게 혈분이 섞여 만들어진 검은 지방은 평범한 말의 지방에선 나지 않는 독특한 풍미를 만든다.

고소하고 담백하지만 마땅한 특징을 느낄 수 없는 지방에 혈액의 강렬한 풍미가 섞여 더할 나위 없는 악센트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쓴 건가?'

이영율은 놀란 심정으로 찬혁을 바라봤다.

아무리 말고기 맛을 아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부위라곤 해도, 반대로 말하면 모르는 사람은 먹을 생각도 못 하는 부위다.

저 부위를 쓸 생각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어떻게 사용할까에 대한 호기심은 그 이상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혁은 그저 담담히 요리를 계속해나갈 뿐이었다.

***

뭐예요. 이거 기름 색이 왜 이래요.

…… 아니 뭐, 사실 정말 모르는 건 아니긴 한데 말이야.

그래도 이 정도로 기름 색이 까맣게 될 줄은 몰랐다는 게 내 진심이었다.

"…… 잠깐 따라두고 마저 하자."

기름을 뽑을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 유별난 색이 나오면 내 요리에도 제법 영향이 크다. 일단 색의 조화가 무너질 테니까.

다행히 한 번 검은 기름이 빠진 다음부턴 살짝 색이 강하긴 해도 충분히 투명한 기름이 뽑히기 시작했다.

'막창을 사용한 게 정답이긴 했구나.'

아예 지방만 모아놓는 비계를 제외하면 동물의 몸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맛 좋은 기름을 뽑아낼 수 있는 부위가 바로 내장이다.

특히 음식을 다이렉트로 소화하는 위장이나 창자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

안 그래도 비계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는 경주마에게서 기름을 원하는 만큼 뽑아내려면 이 부위를 사용하는 게 베스트였다.

한 차례 기름을 뺀 창자를 다시 옥수수 알 정도의 크기로 잘라 볶는다.

'맛이 생각보다 훨씬 괜찮아.'

일단 엄청나게 농후하고 크리미한 고소함과 고기와는 다른 내장 특유의 쫄깃함이 있다. 뭣보다 마음에 드는 건 특징적인 육향.

고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악센트가 내장 전체에 가득하다. 말고기를 처음 먹는 사람에게 이걸 주면 못 먹진 않더라도 고생깨나 할 것 같다.

'딱 내가 원하던 맛이다.'

내장에 살짝 소금을 쳐서 수분을 용출하여 좀 더 꾸덕한 느낌이 나게끔 볶는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이러면 고소한 맛은 더더욱 올라가지만 그 대신 약한 쓴 내도 함께 배어 나온다.

'거기서 등장하는 게 이놈이지.'

마유주. 몽골족의 술로 유명한 아이락을 증류하여 만드는 이 술의 도수는 대략 적으로 40도를 넘나든다.

이게 무슨 뜻이냐? 아주 살짝만 더 끓이면 불이 붙을 정도라는 거다!

─화륵!

"휘유."

프라이팬 위로 솟구치는 불꽃에 절로 휘파람이 샌다.

프렌치의 조리기술 중 하나인 플람베.

재료를 볶을 때 꼬냑이나 브랜디 따위를 넣어 술의 향기로 재료의 나쁜 냄새를 덮을 때 주로 사용하는 조리법. 그러나 내 목적은 반대다.

마유주는 이름 그대로 말의 젖을 숙성하여 만드는 술인 만큼 자기만의 향이 굉장히 강하다. 젖 내음과 목초 내음,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야성적인 짐승의 노린내.

알콜이 기화하며 그런 냄새의 성분이 볶아지던 내장에 들러붙자, 이미 충분히 강렬하던 내장의 향이 한층 더 존재감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어우, 이거 생각보다 훨씬 강하네."

이대로 나가면 좋은 소리를 듣긴 글렀다. 물론 이대로 나갈 생각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도록.

내 머릿속 응애찬혁 토론단은 한 차례의 멱살잡이를 겪은 뒤로 조금 더 돈독해졌다.

덕분에 머리가 굴러가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이 요리에 산재해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 또한 완벽하다.

적당히 향을 입혀 볶아준 내장이 담긴 프라이팬에 생크림과 우유,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섞은 액체를 부어준 뒤 약한 불로 천천히 끓여준다.

'이러면 내장에서 나온 기름이랑 생크림, 우유, 치즈에서 나온 유지방이 아주 골고루 섞이겠지.'

우유 등의 유제품에 섞인 지방 분해 효소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있던 말의 기름을 분해하고, 서로 재조립되어 지방의 맛을 한층 더 높은 맛의 세계로 이끈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다.

내 코를 찌를 정도로 독했던 냄새가 크림과 치즈에 감싸여 아주 유순한 것으로 바뀐다.

그러나 그 실체는 바뀌지 않는다.

냄새가 사라진 게 아니다. 서로 결합된 유지방 사이사이에 숨었을 뿐.

아마 이걸 입에 넣고 먹는 순간, 상상한 것보다 훨씬 강렬한 향기의 파도가 해일이 되어 구강을 휩쓸어 버릴 터.

"크으……!"

바로 이렇게!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짜릿한 맛을 자랑하는 크림소스가 이렇게 완성됐다.

소금과 후추, 아직 정돈되지 않은 향미를 다잡을 몇 가지 향신료.

미리 구워놓았던 고기를 얇게 저며 접시 외곽을 따라 둥글게 깔고, 그 중앙에 몽글몽글 잘 녹아든 건더기가 가득 담긴 찐득한 크림소스를 담는다.

마무리로 크림소스 위에 푸른 허브를 한 장.

고기 위로는 미리 갈아둔 유자 제스트를 조금씩.

그리고…….

"…… 뭔가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여기까지만 해도 내가 보기엔 정말 충분히 뛰어난 음식이긴 하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분명 아직 뭔가 개선점이 남았다는 느낌이 든다. 꼭 거미줄이 몸 어딘가에 걸린 것 같은 기분.

딱히 문제가 없다고 뇌는 말하지만, 몸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길 거부하는 것처럼.

대체 뭐가 걸려서 이러는 걸까.

그렇게 시선을 쭉 돌려보던 그때,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그것.

"저건……."

갑자기 검은 기름이 튀어나와서 깜짝 놀라 기름을 따라낸 그릇.

당황한 탓에 미처 버리지 못한 그 기름이, 왜 지금 와서 갑자기 눈에 띄는 걸까.

"…… 쓸 수 있겠는데."

혹시 당신은 그런 말은 아는가?

칼로리는 맛의 전투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 접시에 부족한 것. 그게 무엇인지 지금 깨달았다.

***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조리가 비로소 끝을 맺는다.

양 팀은 각자 조리가 끝난 요리를 조리대 앞에 내놓는다.

한국팀의 요리는 말고기를 사용한 세 가지 요리.

정성스레 힘줄을 제거한 말의 엉덩이 살을 가늘게 채 썰어 깨소금과 간장, 엿기름, 배, 유자 후추 등으로 간하여 각종 채소와 함께 버무린 냉채 스타일의 마둔살 육회.

말의 막창을 볶아 만든 크림소스를 곁들인 말 등심 블랙&블루 스테이크.

말의 뼈와 목살, 양지, 내장 등으로 우린 육수로 만든 국물과 풍성한 내장 고기 토핑이 인상적인 중화 쌀국수.

애피타이저, 메인, 식사 순으로 이루어진 코스.

프랑스팀의 요리는 토끼고기를 사용한 세 가지 요리.

토끼의 뒷다리를 통째로 고아 각종 채소와 함께 끓인 가정식 느낌의 스튜.

발라낸 토끼의 살을 수비드하여 사과와 견과류 등을 졸여 만든 속 재료를 넣고 김밥처럼 말아 숯불 직화로 겉 부분만을 바삭하게 구워낸 토끼고기 포르게타.

그리고 한 차례 끓여 소독한 토끼의 피에 젤라틴과 생크림, 설탕과 향신료, 몇 종류의 과육을 넣고 굳힌 블러드 푸딩.

"우와, 진짜 말고기랑 토끼고기로 요리를 했잖아."

"못할 건 없지. 못할 건 없는데……."

"나, 말이나 토끼 같은 건 절대 못 먹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당장 먹으라고 주면 접시까지 핥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 아니, 거기까진 말 안 했는데."

"그럼 아냐?"

"맞긴 함."

도저히 그들에게 생소한 고기로 만든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정갈하고 아름다운 고급 요리의 향연에 머리를 감싸 쥐는 관객들.

그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놀라운 특권을 가진 심사단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번뜩인다.

'역시 결승전이다……!'

'요리의 수준이 격이 달라……!'

많고 많은 경기 중 결승전의 심사위원으로 자신이 뽑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한 심사단이 일제히 마이크를 들어 외친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 결승전!"

"지금부터 첫 심사를 개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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