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79화 (379/403)

379. 라떼는 말이야.-2-

토끼고기는 굉장히 다루기 편한 식재료다. 로랑의 생각이었다.

사실 이건 로랑의 주관적인 의견이라기보다는 객관적 사실에 가깝다.

토끼고기를 잘 다루지 않는 문화권에서야 생소할지 몰라도 토끼고기는 제법 오랜 세월 인간 식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유서 깊은 단백질 보충원이다.

크기가 작으니 도축도 편하고, 맛도 포유류와 조류 사이 어딘가에 가까운 고기.

현대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이유라고 해봐야 기르는 난이도와 값에 비해 고기가 너무 적게 나오는, 흔히 말하는 수율 문제 때문이지만 맛 하나만큼은 충분히 주류로 올라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게 바로 토끼고기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사람 손에 잘 길러져야 그렇겠지만.'

예를 들어 그가 가져온 이 토끼고기처럼 말이다.

풍족한 먹이와 편안한 잠자리, 호화로운 환경 속에서 사육된 토끼.

겨울을 맞아 먹이를 잔뜩 먹고 몸에 지방을 저장한 토끼고기는 생으로 씹어도 약한 단맛이 느껴질 정도로 맛이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것.

야생동물의 고기가 맛이 없는 이유는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보다 정확히 들어가면 이야기가 복잡해지긴 하지만, 스트레스로 호르몬과 신체화학성분의 분출이 과다해지고, 그 탓에 몸의 모세혈관 등의 체조직이 파괴되는 일이 잦다.

바로 그런 신체조직 파괴가 고기의 맛을 망친다. 말하자면 평생을 호르몬 가득한 생 핏물에 마리네이드한 고기나 마찬가지니까.

거기다 그 대상이 토끼처럼 스트레스를 쉽게 받는 동물이다? 이런 고기는 맛이 있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사육부터 도축까지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생산된 토끼고기는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그런 완벽한 고기를 갖고 있다면 그다음은 이야기가 훨씬 편하다.

보다 완벽하게 요리하면 된다. 범상한 요리사들에겐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르나 로랑 마틴에겐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 또한 틀림없는 객관적 사실에 가까웠다.

"로랑 선수, 드디어 토끼고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손질을 시작하려는 걸까요?"

"젊은 관객 여러분께는 생소할 토끼고기. 과연 그걸로 어떤 요리를 보여줄지 기대되는 순간입니다."

해설자와 MC의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칼을 집어 든 로랑이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섬전閃電. 한 치의 과장도 없는 표현이었다. 관객의 눈에는 그저 칼날에 반사된 빛이 몇 번 반짝이는 것으로만 보였으리라.

"수, 순식간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살을 발라냈어요!"

"저, 정말 빠르군요. 어떻게 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세 마리나 되는 토끼의 살을 한 점의 손실조차 없이 발라내는 데에 3분 미만.

아무리 뼈의 구조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토끼라고는 해도 마리당 1분이라는 기록. 어마무시한 속도였다.

물론 그걸로 끝이 아니다. 로랑은 이미 한계에 이른 것처럼 보이던 손발에 더더욱 박차를 가한다.

한 마리를 잘린 곳 없이 통째로 벗겨낸 토끼고기 위에 올리브 오일, 헤이즐넛 오일, 아보카도 오일 등. 여러 종류의 기름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혼합한 기름을 뿌려 바른 뒤, 마찬가지로 혼합 향신료로 간하여 진공포장지에 밀봉한다.

'이 정도면 딱 괜찮겠어.'

토끼고기는 뛰어난 식감을 가진 좋은 고기지만, 아쉽게도 고기 본연의 맛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약간 부족하다. 조류나 대형 토끼라면 모를까 식용 토끼는 포유류로선 덩치가 너무 작은 탓이다.

그렇기에 토끼고기를 다룰 때 유의해야 할 것은 어떻게 고기에 맛을 입히느냐는 것.

단순한 달고 쓰고 짠맛이 아니라, 고기 자체의 깊이 있는 풍미를 연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로랑이 도출한 해결법.

혼합유와 향신료로 마리네이드를 한 상태 그대로 수비드한다.

물론 고기 자체가 그리 두꺼운 편이 아니기에 적당한 온도에서 30분 정도.

그러나 고기 깊은 곳까지 향기로운 기름의 풍미가 배기엔 충분하다. 애당초 고기 자체가 가진 육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얀 물감은 뭘 섞어도 색이 금방 변하고, 하얀 도화지에는 점 하나만 찍혀도 눈에 띄는 것과 같다.

더군다나 로랑이 손수 준비한 혼합유는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달했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아로새겨지는 아트가 밋밋한 화폭을 수백, 수천 배 이상의 값으로 탈바꿈시키듯이, 토끼고기라는 소재에 더더욱 높은 가치를 부가할 수 있는 솜씨.

젊은 프랑스 셰프 중 다음 세대의 톱에 가장 근접한 요리사라는 평가는 과연 틀림이 없었다.

'이제 스터핑을 만들어서 속을 채운 다음 짧게 구워서 완성하면 되겠어.'

수비드 머신에 진공 포장한 토끼고기를 집어넣은 로랑이 머릿속에 입력해둔 조리과정을 복기하며 잠시 시선을 돌렸다.

"말고기라."

프렌치에서는 말고기 또한 주로 쓰이는 식재료 중 하나다.

그렇기에 말고기를 조리하는 난이도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 또한 잘 안다.

특출난 매력이 있으나, 그렇기에 조리법이 한정되는 식재료.

과거 자신을 한 차례 패퇴시켰던 소년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이번에는 어떤 참신한 발상을 보여줄까.

싸우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가는 미묘한 심리가 담긴 눈빛이 찬혁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로랑은 자신이 바라던 모습을 보는 일은 없었다.

그가 시선을 돌린 곳에선,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요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하아?"

찬혁의 자리 앞. 불 위에 올라간 스킬렛skillet.

스킬렛이란 후라이팬의 일종으로 어느 배틀로얄 fps에 등장하여 유명세를 얻은 조리기구다.

이것의 특징은 코팅이 되지 않은 무쇠 재질의 후라이팬이라는 것.

스테이크 등을 조리할 때 기름을 발연점까지 높이는 과정에서 코팅팬의 코팅이 상하는 일이 많기에 고기요리에 주로 사용되는 팬이다.

그렇다. 이번 대결의 주제는 특수육류 조리기에 스킬렛을 쓴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당초 결국 살짝 특이하게 생긴 후라이팬일 뿐이니까.

다만, 그것을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빨갛잖아……?"

빨갛다. 왜 그런 색이냐 하면, 소스나 조미료가 묻어서 그런 게 아니라, 쇠의 색이 빨갛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스킬렛 자체가 빨간색이었다. 붉은빛을 내뿜을 때까지 불에 달궈진 것이다!

"어, 어어?"

로랑의 목구멍에서 저도 모르게 바보 같은 소리가 흘렀다.

스킬렛은 구경에 따라선 총알도 막을 정도로 두꺼운 무쇠 후라이팬. 보통 저렇게는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이 상황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어떤 미치광이가 서양식 후라이팬을 중식용 화구에 올려놓고 녹일 기세로 불을 붙이고 있을까!

그러나 맙소사. 하필 그런 미치광이가 로랑의 바로 반대편에 있었다.

류찬혁이라는 또라이가, 결국 제 기질을 이기지 못하고 또라이 짓을 하고 있었다.

"아, 응애에요."

그러니까 응애한테 운전대를 쥐어주면 안 됐지.

그 누구도 찬혁의 그 한마디를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팀마저도.

***

Q1. 고기는 어째서 불에 구우면 맛있어지는 걸까요?

A1.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단백질 변형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높은 온도에서 고기 내부의 지방질이 녹아 고기 전체에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Q2. 그럼 고기는 무조건 구워야 맛있는 건가요?

A2. 그렇지 않습니다. 고기는 생으로 먹는 편이 더 맛있는 부위도 있습니다.

Q3. 말고기는 구워야 맛있나요, 생으로 먹어야 맛있나요?

A3. 둘 다.

Q4. 예?

A4. 뭐.

뇌 내 회의의 파탄이었다.

서로 질문자석과 답변자석을 박차고 뛰쳐나와 정수리 부근에서 멱살잡이를 시작한 두 응애찬혁의 격투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 정도면 애썼지."

사실 두 응애찬혁 중 누구도 잘못된 질문이나 답변을 하지 않았다. 말고기의 특성이 그런 걸 어떻게 하리.

익히는 시간이 길수록 고기가 질겨진다.

하지만 제대로 마이야르 반응을 만들어주면 그만큼 맛있어진다.

결국 이 두 개를 다 챙기는 건 서로 반대쪽으로 도망치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쫓는 격이었다.

"아, 토끼는 저쪽이었지."

그럼 나는 말로 하자. 서로 반대쪽으로 질주하는 두 마리 말. 와, 더 어려워졌는데?

쓸데없는 말장난은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해봤다.

평소 같았다면 나는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근데 여기는 일단 세계대회 결승장이고, 나는 세계 최고의 음식을 만들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두 마리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무식한 생각 아니냐고? 그러니까 이렇게 무식한 짓을 하고 있는 거 아냐.

"어우야."

─화륵!

스킬렛 위로 조심스럽게 떨군 기름종이가 스킬렛 표면에 닿자마자 발화하더니 재가 되어 사라진다.

거의 모닥불 수준의 온도는 된다는 거겠지.

"대충 500도는 확실히 넘었겠어."

이 이상은 못 잰다. 조리용 적외선 온도 측정계가 이 이상 안 올라가거든. 이 다음은 숯가마 온도를 측정할 때 쓰는 물건이라도 가져와야 하지 않을까?

웍을 올려놓고 쓰는 받침대에 스킬렛을 억지로 낑겨둔 탓에 평형도 무너진 상태.

원통 모양으로 재단한 말의 등심의 두께는 대략 성인 남성의 상박과 비슷했다.

이런 온도에다 고기를 구워봤자 속은 전혀 안 익고 겉에만 화려하게 탈 것이다. 특히 이만큼 두꺼운 고기는 더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그게 좋은 거야."

극한까지 온도를 높인 주철 후라이팬. 거기서 딱 몇 초만 구워서 종이 한 겹 정도의 두께로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킨다.

속은 생고기의 쫄깃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겉은 마이야르 반응을 극대화한다.

'근데 이게 말이나 쉽지…….'

아마 굽는 시간을 몇 초…… 아니, 0.몇 초만 오버해도 마이야르 반응에 의한 고소함이 아니라 탄 맛만 올라오게 될 거다.

"이런 짓은 처음 해보는데."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며 즉각적인 조리를 위해 조리도구를 쓰지 않는다.

두 겹으로 낀 면장갑. 그 사이에 쇠사슬 장갑을 한 겹 추가로 착용했으니 데이진 않겠지만, 그렇게 장갑을 끼고도 느껴지는 미칠 것 같은 열기.

훈제되는 베이컨이 딱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열기를 확인하고, 골고루 기름칠을 마친 말의 등심을 손에 쥔다.

"후……."

긴장되는 순간. 하지만 지체해선 안 된다. 이 이상 가열하면 그때부턴 구우면서 철이 박피되기 시작한다. 그럼 진짜 고기를 못 먹게 되어 버린다.

'간다!'

─치이이이이이익!!

고기 굽는 소리? 아니, 이건 그렇게 귀여운 소리가 아니었다.

갑작스런 온도변화에 팬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지르고, 미친 듯이 올라오는 연기가 눈앞을 가린다.

눈물이 맺히지만 감을 수도 없다.

'여기서 눈 감으면 실수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팬 위로 고기를 굴리며, 화기火氣가 닿지 않은 곳을 찾아 꼼꼼히 불마사지를 끝내준다. 고기 입장에서는 불벼락을 맞는 기분이겠지. 기분이랄 게 남아 있다면 말이다!

고작해야 30초 안팎으로 진행된 굽기였으나, 그 결과는 엄청났다.

조리대 위에는 불이라도 난 것처럼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라 관객의 시야를 방해했다.

연기 속에 있는 나는 눈을 뜨는 것조차 괴로울 지경이었으나, 최대한 침착하게 제 역할을 마친 화로의 불을 끄고, 고기를 내 조리대로 옮겼다.

'저 스킬렛, 이제 못 쓰겠지?'

단 한 번에 조리에 저 비싼 통짜 주철팬을 갖다 버리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진짜로.

하지만 그 희생 덕분에, 내 첫 번째 목표는 달성됐다.

"…… 나이스."

진한 갈색으로 익은 고기의 표면, 그 끄트머리를 잘라내자 비로소 보인다.

마치 일식 중간의 태양처럼,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 겉면과 아직 열기가 채 침투하지도 못한 속살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

응애찬혁들아. 너희가 해냈다.

'그런데 말이지…….'

문제는, 이게 말 그대로 첫 번째 목표라는 것이다.

내가 만들 메인. 크림소스를 곁들인 말 등심 블랙 앤 블루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계단 중, 이제야 첫 번째 걸음을 올랐을 따름이었다.

***

"…… 미친놈인가."

그 모든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로랑이 툭 말을 내뱉는다.

아주, 정상적인 반응임과 동시에 옳은 평가일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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