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 라떼는 말이야.-1-
"아니, 혹시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아, 예. 그렇군요."
역시 내 귀는 아직 정상이었다. 그럼 잘못된 건 뭐지? 혹시 셰프의 뇌? 아니면 반대로 내 뇌?
어느 쪽이든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리가 없을 테니까.
"저기, 셰프.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전 말고기를 조리는커녕 먹어본 적도 손에 꼽거든요?"
"예."
"그런데 제가 메인 하나를 오롯이 맡으라고요?"
"맞아요."
뭐지? 진짜 뭐지 이거?
당황하고 있는 내게 이영율 셰프는 오히려 태연한 태도로 질문을 던져온다.
"힘들 것 같나요?"
"그야 뭐……."
아니라곤 할 수 없지.
하지만 이미 주방의 예스맨으로 커 버린 나로선 '안 된다'는 말을 쉬이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절대로, 죽어도 못할 것 같아요?"
"예? 아, 아뇨. 할 수 있죠. 네."
"그럼 됐네요."
그렇게 죽을 것처럼 여쭤보시면 안 된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것도 이영율 셰프만한 짬이 있는 사람한테.
'아, 적어도 우리 팀에 한 사람 있긴 하구나.'
문제는 그러신 분이 이 대화를 듣고 아무 참견도 없다는 거다. 암묵적 동의.
이 팀의 서열 1, 2위가 같은 마음을 먹은 이상 그 아래는 짜져야지. 원래 스피드 팀전도 1, 2위를 먹히면 나머지가 그 아래를 휩쓸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고.
"찬혁 학생. 힘들 거란 거 알아요. 하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경험해봐야 하는 거예요."
"…… 이게 무슨 경험일까요."
"글쎄요. 걸음마 떼기 전에 뛰는 법 익히기?"
"오……."
근데 왜 저한테는 걸음마 교육 대신 운전대를 먼저 쥐여 주시나요? 급만 따지면 여기가 F1에도 안 꿇리는 곳일 텐데.
"조종간이 아닌 걸로 만족합시다."
"아, 네."
응애 찬혁의 F1 도전기가 막을 여는 순간이었다.
…… 벽에 꼬라박고 뒈지지나 않음 다행이겠네.
***
자, 그래서.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일단 수긍하고 요리를 맡겠다고 한 이상 음식을 내놓아야 한다. 그게 요리사니까. 끄덕.
"문제는 이건데."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말고기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한다. 애당초 요즘 시대를 살면서 말고기를 먹어볼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
나와 동갑내기 중에서 말고기를 한 번이라도 먹어본 적 있는 애들을 뽑아봤자 많아도 백 명 중에 한두 명? 아마 그 정도도 안 될 거다.
물론 회귀 전까지 포함하면 그보다야 많겠다마는.
'뭐, 우리 학교 출신은 그런 한두 명이 잔뜩 모인 곳이지만 말이야.'
희귀육류에 대한 수업을 우리 학교에서 하지 않을 리가 있나. 개인이 가진 호오에 따라 취식한 고기가 이래저래 갈리긴 하지만 나도 학교에서 3년을 공부하며 제법 다양한 고기를 먹었다.
개고기나 토끼고기는 물론, 사고로 죽은 동물이나 이런저런 루트로 구한 희귀한 고기 같은 걸 말이다.
곰, 족제비, 뱀, 도마뱀, 낙타, 악어, 그 외에도 몇몇 말하기 싫은 별 괴상망측한 동물, 심지어는 곤충도 몇 번 먹어봤다.
좋아서 먹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회를 마다할 성격도 아닌지라.
아무튼 그중에서 말고기만 빠졌다면 뭔가 섭섭하지 않겠는가?
말은 그나마 국내에서 판매하는 특수육류 중에선 합법적인 루트로 굉장히 구하기 쉬운 고기였기에 어느 하루는 그걸로 배가 가득 찰 때까지 먹어본 적도 있다.
"좋아, 오랜만에 기억력 좀 써보자."
요리사에게 있어 아주 유용한 재능 중 하나는 기억력이다.
머리로 기억하는 그 기억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물론 레시피 암기하고 필요할 때마다 써먹으려면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몸의 기억력.
기억은 뇌로만 하는 게 아니다. 반복적인 학습과 훈련을 통해 신체 자체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한 번 탈 줄 알게 되면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도 금세 해내는 것처럼.
요리사 또한 그런 몸의 기억을 활용해야 하는 때가 있다.
칼질을 할 때, 불의 온도를 잴 때, 국자로 퍼낸 조미료나 소스의 무게를 가늠할 때.
그리고 또 하나. 맛을 기억해낼 때.
세계에 존재하는 식용 동물, 식물, 조미료, 향신료, 화학합성료, 그 외 기타 등등의 숫자는 많다는 단어 하나로 정리하기에는 부족하다. 개인에게는 거의 무한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런 식재료를 머리로 일일이 기억하려면 머리 터진다.
그러니까 혀를 활용해야 하는 거다. 뇌라는 데이터베이스에서 필요 없는 정보를 딱딱 잘라서 걸러내는 필터로.
'말고기는…… 그래, 대충 이런 맛이었지.'
내게 주어진 말고기의 일부분을 살짝 잘라 입에 넣고 씹는다.
생고기지만 별문제는 없다. 애당초 말고기의 대표적인 취식법은 육회고, 육회에 한정해선 쇠고기보다도 훨씬 고급 고기 취급을 받으니까.
'역시, 엄청 고소하고 담백해.'
안심보다는 기름기가 훨씬 많을 등심조차 지방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담백하다. 그렇다고 맛이 심심하단 뜻은 아니다.
농후한 철분의 맛, 입을 통해 비강으로 확 들어오는 육향. 제법 강렬하지만, 그렇다고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생초生草보단 건초乾草를 주로 먹은 녀석인가.'
먹이는 고기의 맛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 소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호주산 쇠고기처럼 땅 넓은 곳에 위치한 개방형 목장에서 들판에 난 풀을 뜯어 먹고 자란 녀석과, 좁은 우리에서 사람이 만든 사료나 쇠죽 따위를 먹으며 자란 녀석은 고기의 질감부터가 완전히 다르니까.
지금 먹은 말고기는 잡초의 강한 쓴내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철분의 냄새가 강하다. 인간이 만든 사료를 주식으로 먹고산 동물 특유의 향.
'식용으로 길러진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기름기가 적은데.
우리에 갇혀 자랐다고 보기엔 과할 정도로 지방이 없다.
'게다가 이 식감은…….'
소나 돼지와 비교하면 훨씬 쫄깃한 맛이 강한 육질. 구조의 차이 탓에 근육의 탄성이 훨씬 강한 말고기의 특징.
그러나 이건 내가 아는 평범한 말의 육질이 아니다. 이만한 탄력이라면, 내가 아는 지식의 한계선에선 한 가지 답안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거 보통 육질이 아닌데? 설마 경주마 품종이야?'
소도 한우나 와규 따위를 따지듯이 말도 그 엇비슷한 것이 있다.
애당초 식용 하나만 보고 품종을 개량한 것도 아니라 맛만 보고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차이점이 많은 것도 아니긴 해도, 그 기준점이란 게 분명히 있다.
"분명해. 경주마야, 이거."
경마 등의 산업에 사용되던 말을 도축한 고기.
고기의 육향이나 육질을 따져봤을 때 그렇게 늙은 말은 아니다. 오히려 제법 어린 말처럼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수업할 때 들은 것 같기도 하네.'
아무리 오랜 훈련 끝에 경마의 세계에 데뷔한 값비싼 경주마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은퇴 처리를 한 뒤 도축되는 일이 많다고 했던가.
멋대로 낳게 해서 멋대로 훈련시키고 멋대로 잡아먹는다.
잔혹한 이야기지만, 슬프게도 그런 말의 사정에 제대로 공감해줄 만한 여력이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실력 없는 요리사 손에 안 들어가서 잘 됐다고 생각해주라."
와, 좀 쓰레기 같은 대사였는데. 사람이 이렇게 제멋대로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분명 진심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생명의 무게가 손에 쥐어진 이상, 적어도 세계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
"좋아. 정리해보자."
우리가 가져온. 정확히 말하자면 이영율 셰프가 챙겨온 말고기는 경주마 품종의 고기다.
특징은 육향이 비교적 약하고, 지방이 적으며, 고기의 탄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이건 구워 먹으면 완전 최악인데.'
고기의 탄력이 강하다는 말은 곧 구웠을 때 근육의 수축이 어마무시하다는 뜻. 쉽게 말해 구우면 구울수록 미친 듯이 질겨진다는 거다.
삶든 찌든 마찬가지. 익혀도 아주 살짝만 익히는 게 베스트.
'그리고 육향이 약하다는 것도 포인트야.'
육향이란 건 무조건 세거나 약하다고 좋은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 입에 들어갔을 때 확실한 자기주장을 하면서도 거슬리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딱 좋다.
"이건 조금 아쉽네."
육향이 조금만 더 강했으면 아주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리고 마지막 포인트. 지방이 너무 적다는 것.
이게 애피타이저 정도였다면 차라리 모르겠는데 메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임팩트가 너무 후달려."
세상에 수많은 메인 요리가 있지만, 담백하기만 한 메인 요리는 없다. 코스를 안정시킬 묵직함이 필요한 자리니까.
그럼 세 가지 정도로 이야기를 축약할 수 있겠다.
하나. 익히는 과정을 최소화한다.
둘. 특징적인 향미를 강화한다.
셋. 부족한 지방의 맛을 채워 넣는다.
"이야, 이거 이렇게 몰아넣고 보니까……."
졸라 못 해먹을 짓이네 이거.
새삼스레 그런 불평이 꽉 막힌 숨줄기 너머로 튀어나왔다.
못 해먹을 짓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 세상사라는 게 원래 그런 모순을 참아야 하는 일이란 사실이 마냥 슬플 뿐이었다.
***
"시작했네요."
"이제야 정리가 끝난 모양입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빨랐어요."
고기 귀퉁이를 잘라 씹으며 간을 보던 찬혁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쪽을 이전부터 주시하고 있던 안영길과 이영율이 작게 웃었다.
"보통 도저히 넘지 못할 것 같은 벽을 마주한 사람은 대게 두 가지 모습을 보여요. 하나는……."
"하나는 무작정 움직이거나, 또 하나는 포기하고 주저앉거나. 맞죠?"
"…… 이 말도 너무 자주 했네요."
"제가 주의 깊게 들은 거죠."
무안한 표정을 짓는 안영길의 말에 이영율이 대꾸했다.
"그다음에 하신 말씀이 분명 이거였죠. 하지만 둘 다 정답은 아니다."
"진짜 제대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찬혁은 저에게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놓치지 않고 습득하고, 그에 맞는 방안을 구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게 정답일지 아닐지는 아직 그들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어리석은 선택만큼은 피했다.
마치 첫 심부름을 보낸 어린 손주의 뒤를 밟는 기분에 그들이 웃었다.
"다음은 어떤 재료를 고르는지만 보면 대충 다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침 쓸 재료를 먼저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쟁반이면…… 내장이로군요."
동물의 내장은 고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육향이 강렬한 부위.
더군다나 그것이 특수육류의 것이라면 아무리 신선한 것이라도 시장터에서 사람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부속고기로는 상대도 안 될 정도다.
"이 고기의 약점을 잘 알아챘군요."
그렇기에 오히려 더 좋다.
굳이 강렬한 향취를 가진 부위를 찾는다는 건 이영율 본인이 준비한 경주마 고기의 특징을 최소 하나 이상 파악했다는 뜻일 테니까.
그렇게 찬혁이 사방을 오가며 재료를 뒤지는 모습에 두 연장자들은 기쁨의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던 그때였다. 이영율의 얼굴에, 처음으로 의문스런 기색이 떠오른다.
"저건?"
찬혁이 재료더미에서 챙긴 물건.
그것을 본 이영율이 저도 모르게 말소리를 높였다.
"마유주馬乳酒?"
마유주. 말 그대로 말의 젖으로 만든 술.
그중에서도 내몽고에서 만들어지는 증류주인 아르히가 찬혁의 손에 들려 있었으니까.
여태껏 말고기를 수많은 방법으로 조리해본 이영율.
그러나 아르히를 사용한 말고기 요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
애당초 그냥 반주로 마시면 모를까 요리에 어울리는 맛을 가진 술은 아니었으니까.
"호오……."
과연 어떤 영감을 받았기에 당당히 저런 재료를 고른 것일까.
젊은 피가 열어젖힌 새로운 길을 발견한 이영율이 흥미로운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심부름을 보낸 손주가 시장터의 노련한 여주인과 값을 흥정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직관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