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77화 (377/403)

377. 쇼는 계속된다.-2-

한편 한국팀 대기실.

앞선 프랑스팀의 예견대로 찬혁은 이번 주제에서만큼은 그리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특수식재료는 나한테 조금 힘든 분야란 말이지.'

찬혁 또한 특수식재료를 다루어 본 경험이 아예 없다곤 못했다. 하지만 그걸 대회 수준 요리로 써먹을 수 있느냐면…….

'솔직히 무리야.'

이는 찬혁의 주 파트가 연회 주방이었던 데에 기인한다.

연회 주방이란 말 그대로 파티용 음식을 담당하는 곳이며, 파티란 곧 다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다.

그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최대한 대중적인 식재료를 쓸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특수식재료는 가끔 VVIP용으로 입고되는 것을 몇 번 보았을 뿐이지 호텔에서 실제로 조리해본 적은 손에 꼽는다.

'다른 주방? 영세주방에서는 특수육류를 구입해서 쓸 일이 없습니다. 아시겠어요?'

이러한 이유로 현재 찬혁은 제대로 된 활약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의견을 내놓고 싶어도 이 부분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이라.

찬혁에게 있어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한국팀은 결코 찬혁의 원맨팀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이번 주제는 아무래도 영율 씨가 고생을 해줘야겠어요."

"예, 선생님."

아무 말도 없이 한걸음 뒤로 물러선 찬혁을 대신해 앞으로 나서서 팀원을 이끄는 안영길.

평소 뒤에서 묵묵히 뒤를 받쳐주는 대신 이렇게 대놓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아주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지목한 인물. 이영율.

여태껏 든든한 또 하나의 한식 전문가로서 역경, 고난을 함께 해온 인물에게는 아직 안영길 이외의 이들이 모르는 비밀 하나가 더 숨어 있었다.

"이영율 셰프?"

"혹시 좋은 생각이 따로 있으신 겁니까?"

그들의 물음에, 이영율이 웃으며 답했다.

"예. 마침 제 고향이 이런 주제에서는 좀 강한 편이거든요."

이영율. 그는 제주도 태생이었다.

***

짧은 작전시간이 끝난 뒤 다시 스테이지로 모인 두 팀.

명목상으로는 2라운드지만 실질적으로는 결승전의 첫 시합인 이번 경기.

거기에 더해 '특수육류'라는 평범한 사람이 보기 드문 주제까지.

이번 대결은 그야말로 모든 사람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무슨 재료가 나오려나?"

"막 아마존 오지에 사는 동물 고기 같은 거 아냐?"

"뱀이나 악어 같은 거?"

"악어는 여기 나오기엔 좀…… 사냥이 불법이잖아."

"하긴 그렇지."

"아무튼, 되게 보기 드문 게 나올 거야."

"이 주제를 중국이 했어야 했는데."

"그러게. 거긴 다리 네 개 달린 건 책상, 의자, 자동차 빼고 다 먹는다니까."

호기심에 가득한 대화만 보아도 사람들이 얼마나 기대했는지 아는 건 자명한 일.

사람들의 호기심이 냄비에서 끓어 넘치기 전에, MC가 서둘러 외친다.

"이제부터 시합을 시작!…… 하기 전에, 양 팀이 준비한 재료를 먼저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국팀! 프랑스팀! 각자 본인들이 준비해온 특수육류를 선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C의 호령이 끝나자, 두 팀은 기다렸다는 듯 서로가 준비한 식재료를 자신들의 조리대 위에 여봐란듯이 올렸다.

"오?"

"뭐지? 둘이 서로 느낌이 꽤 다른데?"

사각 은쟁반 위에 올라간 식재는 하얀 무명천으로 덮여 내용물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굳이 내용물을 안 보더라도 한눈에 들어오는 차이점.

"크기가 엄청 달라."

그건 바로 재료가 담긴 쟁반의 크기였다.

프랑스팀이 내놓은 식재료가 담긴 쟁반은 기껏해야 덩치가 있는 남성의 상반신만한 크기.

그에 비해 한국이 꺼내놓은 쟁반은 그보다 살짝 컸으며, 무엇보다도 그 쟁반의 개수가 하나가 아니었다.

"와. 저게 다 고기야?"

"다 모으면 사람 한 명 무게 정도는 나가겠는데."

총 다섯 개나 되는 쟁반 위로 볼록하게 솟은 고깃덩어리.

그 내용물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었으나 프랑스팀이 꺼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비주얼적인 충격이 훨씬 강했다.

"천을 걷어주십시오!"

MC의 요청에 맞추어 두 팀이 동시에 식재료를 덮은 천을 벗겨낸다.

행사장 전체가 단숨에 고요해지고, 사람들의 눈이 빠질 듯 충혈됐다. 조금이라도 각자의 식재료를 자세히 보기 위함이었다.

"저건 뭐지? 덩치가 되게 작은 동물 같은데."

"고기가 엄청 연한 분홍색이야. 색만 보면 닭고기랑 좀 비슷한 것도 같고?"

"아, 저거 뭔지 알겠다! 토끼! 토끼고기야!"

"토끼고기!?"

머리와 가죽을 제거하여 분홍빛 속살을 드러낸 토끼고기.

젊은 한국 관객에게는 대단히 낯선 모양새지만, 보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입에서 흐르는 군침을 멈출 수 없었다.

토끼고기는 수많은 특수육류나 지비에 중에서도 가장 호불호를 덜 타는 고기.

담백하고 쫄깃한 맛은 저 옛날 전후시기에 아주 특별한 별미였던 것이다.

토끼고기라는 드문 식재료를 본 한국인 관객들이 감탄하는 가운데, 행사장의 절반을 채운 프랑스인 관객들은 살짝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토끼고기잖아."

"특수육류라더니, 고작 저거야?"

자국을 향한 말임에도 쌀쌀맞은 평가.

기실, 토끼고기가 가진 입지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한국과는 달리 서양에서 토끼고기는 제법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식재료. 나라에 따라서는 오리 같은 가금류보다 토끼고기의 소비율이 더 높은 나라도 있다.

프랑스는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으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토끼고기를 많이 소모하는 나라 중 하나다.

'국민의 식육 소비율의 퍼센티지가 1% 미만인 육류를 조리해야 한다'라는 규칙을 어기진 않았으나, 딱 1% 바로 아래서 턱걸이로 버티는 식재료란 건 분명 사실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임팩트가 없다. 주제에 맞춰 최대한의 기량을 뽑아내기 위한 프랑스팀의 힘든 결정이었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불평이었다.

"그런데 한국팀이 준비한 저건 뭐지?"

"고기랑 내장 같은데……."

"맞는 것 같아. 근데 크기가 무슨?"

한국팀이 준비한 고기는 프랑스팀과는 반대되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고기는 온통 시뻘건 색. 마치 갓 도축한 쇠고기처럼 윤기가 좔좔 흐른다.

그것을 본 관객 중 평범한 사람보다 좀 더 지식을 갖춘 이들이 감탄과 동시에 걱정이 섞인 말을 흘린다.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저거 다루기 엄청 까다로운 고기일 것 같다."

"응? 왜?"

"색을 좀 봐봐. 엄청 빨갛지? 저건 평소에도 피가 엄청 지나가던 고기라는 거야."

고기의 색조가 빨갛다는 것은 그만큼 고기를 구성하는 세포에 포함된 미오글로빈의 수치가 높다는 것이며, 평소에도 다량의 혈액을 공급받는 부위라는 뜻이다.

생선의 혈합육과 같다. 척추가 지나가는 자리에 피가 고이게 되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런 고기의 가장 큰 특징. 냄새가 엄청나다는 거지."

"냄새?"

"있어 보이는 말로 하면 육향이지만……."

그건 잘 관리 받고, 맛있어지기 위한 사료를 먹고 자란 가축에게나 통할 말이다.

특수육류 취급을 받는 동물의 먹이는 좀 더 투박한 것일 때가 많다.

"저기 봐봐. 저건 아무리 봐도 허파 부위인데 엄청 크지? 저만한 폐를 가진 동물은 초식동물밖에 없어. 그럼 풀을 뜯고 사는 동물이란 거고, 고기에도 자연스럽게 풀냄새가 배지."

"그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야?"

"고기를 먹을 때 잡초향이 난다고 생각해봐."

"오우야……."

그건 싫다는 듯 관객이 끔찍한 표정을 짓는다.

"게다가 다른 내장 부위의 모양새를 보면……."

저런 장기를 가진 동물을, 남자는 분명 본 기억이 있었다.

그렇다. 한국 남쪽의 섬. 제주도에서.

"…… 말고기?"

그것은 분명 초원을 질주하는 주자走者의 상이었다.

상이라고 할까, 초상初喪이었지만.

***

"토끼고기? 저거를 들고 왔어?"

생각 잘 했네. 무심코 그런 말이 나왔다.

토끼고기는 언뜻 보기에 볼품없게 보일지는 몰라도 셰프로서 '이길 수 있는 식재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프렌치에서 토끼고기는 상당히 메이저한 고급요리니까.'

고기 자체의 맛이 대단히 특별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전신이 닭의 다리살 같은 쫄깃함을 자랑하는 식감에 더해 소스 친화적인 담백한 맛은 셰프의 솜씨에 따라 천차만별로 맛이 뒤바뀐다.

말하자면 모난 곳 없이 깔끔한 새하얀 실크 원단.

그걸 어떻게 자르고 박음질하여 염색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옷이 탄생한다.

'제법인데.'

내가 아는 로랑 마틴이란 사람은 이런 선택을 할 위인이 아니었다.

아마 초장부터 재료로 기를 찍어 누르겠다고 별난 고기를 가져왔으면 가져왔지, 수수하다 욕을 먹어도 이길 각오를 다지는 냉철한 양반은 아니었는데…….

'바뀐 건가.'

하긴, 바뀐 걸로 치면 나도 만만치 않지. 나에 비하면 그 정도 변화는 사소한 것이리라. 이쪽은 말 그대로 인생이 바뀌었으니까.

사람은 변할 수 있다. 힘들지만, 정말 힘들지만 그건 분명 가능한 일이었다.

"주제를 막 봤을 땐 제법 승산이 될 것 같았는데. 이러면 생각보다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이영율 셰프도 프랑스팀의 선택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신다.

"말고기는 분명 커다란 강점을 가졌지만 그만큼 커다란 약점이 있는 식재료."

"그리고 그에 비해 토끼는 커다란 강점도, 그렇다고 이렇다 할 약점도 없지만, 그것 자체가 아주 강점인 식재료죠."

"잘 아는구나?"

"토끼고기는 프렌치에서도 단골이라서요."

"잘 배웠네."

"감사합니다."

서로가 가져온 재료가 가진 특징은 서로 너무나도 상반된다.

'결국 누가 더 식재료의 특징을 잘 활용하느냐의 싸움인가.'

이거 참. 내가 아는 말고기 요리법이라고 해봐야 육회 정돈데 말이야.

너무 고급고기라 먹어본 적도 없는 물건을 조리해야 한다는 부담감.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내 상황을 정리한 뒤 결론을 내렸다.

"별거 아니네."

여태껏 그랬던 적이 한두 번이었냐.

이제 그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류찬혁 학생. 하나만 부탁할게요."

"예?"

"저기 특별히 챙겨놓은 등심 있죠? 저걸로 메인 하나만 만들어줄래요?"

"예?"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었다.

***

이영율은 이 대회가 시작도 하기 전, 안영길을 만나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번에는 최대한 앞으로 나서는 일이 없게끔 할 생각입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생님? 그럼 대회는요?"

"물론 팀장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내야죠. 어디까지나 제자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국가 단위의 자존심을 건 요리대회.

그조차 버림패로 취급할 수 있을 만큼 높게 평가하는 제자.

류찬혁이라는 소년에게 그렇게나 커다란 가치가 있는가.

이영율은 요 세 달의 시간을 통해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알아낼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소년의 재능은 범상치 않다. 재능만으로도 능히 미래의 요식업계를 선두를 이끌 인재다.

그러나 그보다 놀라운 건 노력의 양과 질.

60 평생 수많은 요리사를 보았다. 그중에서는 정말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가지지 못한 이들'.

깨달음의 진도가 느리기에 몸을 희생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찬혁은 다르다.

천재적인 자질을 가졌음에도 범인凡人의 품성을 가졌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한 번도 굶어본 적 없는 이가 평생을 굶주린 이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음식에 달려드는 이를 추하다 여기지만, 흙먼지 묻은 고기 한 덩이에 목숨이 달린 이의 인생을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으려 하는 이의 집념은, 때때로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다.

그렇다. 찬혁을 보며 그런 광경을 몇 번이나 봤다. 자신이란 사람의 상식을 넘어서는 소년의 모습을.

"이 대회는 찬혁 학생에게 있어 시련이 될 겁니다. 사회로 나가기 전에 맞이할 가장 높은 벽이 될지도 몰라요."

"그 말씀은……."

"저는 그 벽을 허물어 높이를 낮추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죠."

안영길이 웃었다.

"이 벽을 최대한 두껍고 높게 덧붙여서, 찬혁 학생이 평생을 살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벽으로 만들고 싶어요, 저는."

그 웃음을 보며 이영율은 떠올랐다.

과거 안영길이 젊었을 시절, 그가 사사한 그 어떤 스승이나 선배보다도 두렵고 무서웠던 건 다름 아닌 눈앞에 앉은 이 양반이란 사실을.

'성격이 유해진 건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구만.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영율은 웃었다.

그리고 지금, 본인은 깨닫지 못한 사실이 하나.

이영율이 찬혁에게 지어 보인 웃음은, 그때 안영길이 지은 것과 아주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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