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72화 (372/403)

372. 재전.-1-

많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한 주였다.

중국팀의 부정행위 사건에 엮여 각종 해명과 뒤처리, 그 외에 기타 자잘한 상황 해결을 위해 제법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자됐고, 덕분에 원래 1월 중으로 끝날 예정이던 대회 스케줄에도 영향이 미쳤다.

"아니, 너 대회하느라 바쁜 거 아니었어?"

"그게…… 뭐, 좀 그렇게 됐다."

"그렇게 된 게 뭔데…… 무지 여유 있어 보인다, 너."

그래. 내가 여유가 좀 넘치는 상황이긴 하지. 괜히 이렇게 나 홀로 야유회를 즐기고 있을까.

'아니, 정확히 나 홀로는 아니지만…… 아무튼 이것도 저것도 죄다 중국팀 때문이야.'

그쪽에서 난리를 친 탓에 스케줄에 공백이 생긴 거 아닌가. 그 장본인들이야 결국 하차하긴 했지만, 그래도 당장 스케줄에 문제가 온 건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사건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지금도 인터넷에선 중국팀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중국팀이 실제로 부정행위를 저질러서 물러나는 거라느니, 계속 누명을 쓰는 게 싫어 돌아간 거라느니 하면서 말이다.

물론, 여론의 주장은 전자가 훨씬 우세했다. 아마 후자의 경우는 일종의 알바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야야, 근데 진짜냐?"

"뭐가?"

"중국팀 말이야. 걔네 진짜 부정행위 한 거야?"

그렇게 논란이 될 정도였으니, 당연히 내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선 내게 이런 질문을 해오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대놓고 그렇다고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중국의 자진사퇴라는 결과로 끝난 이번 사태. 내가 쥐여 주었던 증거가 저들을 묻어 버리기에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명백한 사실 확인 없는 자진사퇴.

'그물에 들어온 물고기를 일부러 놔줬다…….'

아무리 커다란 물고기라도 집어넣을 수 있는 선창을 가진 어부가 그럴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선창에 그대로 집어넣기엔 수지가 안 맞기에.

아마 중국팀과 미국팀, 그리고 제작협회 사이에서 무언가 거래가 있었을 테고, 이런 시끌벅적한 상황에 그걸 공개하지 않았다는 건…….

'공개할 필요가 없다. 혹은 공개해선 안 된다.'

예상컨대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가 정답일 확률이 높으리라.

자, 여기서부터는 이야기가 아주 간단해진다. 고래 두 마리가 서로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했는데, 그걸 옆에서 엿들은 새우가 멋대로 비밀을 퍼트리면 어떻게 될까?

그날로 등이고 배고 가릴 거 없이 터져 나가게 될 거다.

난 그런 꼴이 되는 건 사양이고, 뭣보다 지금 내막을 알고 있단 게 탄로 나면 미국팀에게 증거를 흘린 인물로 특정될 테니 최대한 조용히 작금의 사태가 지나가길 숨죽이고 기다릴 뿐이다.

"나도 몰라. 난 중국팀이랑 시합은커녕 직접 만나본 적도 없어."

"진짜? 선수한테만 들어오는 정보 같은 거 없어?"

"영화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아니, 이 녀석의 경우에는 게임을 너무 많이 한 걸까.

"재미없네. 너는 뭐라도 알고 있을 줄 알았어."

"몰라서 미안하게 됐다."

태평하게 투덜거리는 김철정을 보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뱉었다. 재미라니, 이쪽은 목숨이 걸린 기분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철정이 녀석은 아직 아쉽다는 듯 몇 마디를 덧붙인다.

"선수가 다 같은 선수가 아니잖아. 특히 너 같은 경우는."

"내가 뭐."

"결승전까지 진출한 선수면 그 대회에서도 상위 1%대 성적이니까. 특별취급이라도 받나 했지."

"그거야……."

김철정의 말대로, 우리 한국팀은 바로 지난주 열렸던 준결승에서 상대 터키팀을 제치고 결승으로 진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뉴스에 우리 기사가 대서특필될 경사였겠지만…….

"그런 우리가 묻혔잖아. 지금 이게 얼마나 큰 상황인지 안 보여?"

그렇다. 현재 사람들의 관심도를 빅데이터를 통해 대충 구분하면, 1위는 중국팀의 부정행위 진상, 2위는 지옥 같은 패자부활전을 치르고 끝끝내 이겨 돌아온 부두 리퍼블릭. 좀비 공화국 프랑스와 미국팀의 재대결. 한국의 결승 진출 사건은 고작해야 3위에 불과하다!

…… 아무튼. 그런 경사마저 묻혔다는 것 자체가 이 사태의 파급력을 증명하고 있다.

나는 깔끔하게 발을 뗀 보람도 없이 다시 저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고픈 마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탈리아팀은 그나마 좀 살만하겠지. 안 그래도 위로 올라갈수록 빡세지던 스케줄이 좀 풀렸으니까."

그래도 그쪽도 상당히 당황스럽긴 할 거다. 원래는 우리가 터키팀과 준결승을 매듭지은 날에 자기들도 준결승을 치러야 했을 텐데 스케줄이 밀려 버렸으니까.

상대팀의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도 여간 곤욕이 아니겠지.

중국팀에서 미국팀, 미국팀에서 프랑스팀. 원래 진즉 끝냈어야 할 정보수집 및 대책수립이 엄청나게 꼬여 버렸으니.

한 번 모은 정보를 버려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더욱이 신경 쓰이는 점이 하나 있다.

'프랑스…… 설마 패자전 전승으로 올라올 줄은 몰랐어.'

기실 프랑스팀이 다시 본경기로 돌아온 것도 대부분 중국팀 탓이지만, 그렇다고 프랑스팀의 노고를 폄훼할 순 없다.

여태껏 탈락한 서른 남짓한 팀 전부를 이기고 올라온 셈. 아마 경기 수만 따지면 현재 결승 진출자인 우리 한국팀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 프랑스팀의 수준이 어느 정돈지 알 수 없단 거야.'

실전…… 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뇌지컬과 피지컬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하는 강팀과의 시합은 요리사로서의 능력을 성장시킨다.

정형화된 무언가를 마냥 따라하지 않는 발상의 유연함. 그리고 거기에 따라갈 수 있는 신체와 신경.

본인이 경험하지 않았던 것을 예상케 하는 상상력.

그저 업무에 익숙해지는 것과는 다른 방향의 성장을 겪은 요리사는 많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나 또한 이번 대회에서 많은 부분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프랑스팀의 경우는 어떨까.

20년 후의 자신을 그 자리에서 따라잡을 기세던 헬레나 피에르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본신의 실력이 이 대회에서 본 무수한 원로 셰프들에게도 꿇리지 않던 로랑 마틴 같은 기린아들은 과연 얼마나 많은 성장을 이루었을까.

심지어 그들이 싸운 상대가 약체인 것도 아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이 국가급 경쟁전을 뚫고 출전한 이들이고, 패배한 것도 압도적인 패배보다는 아깝게 종이 한 장 차이로 패배한 이가 많다.

그런 셰프 군단을 상대로 전승.

'과연 어느 정도일지…….'

그 성장의 척도를 잴 수 있는 기회가 곧 찾아온다.

앞으로 며칠 뒤에 사이드 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공개만 되는 B조 준결승 진출자 결정전.

그리고 곧바로 뒤이어 방송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시합.

거기서, 우리는 부활한 프랑스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프랑스팀에 대한 건 잠시 미뤄두고 내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결승 진출이 확정된 후 깔끔하게 공란이 생겨 버린 우리 팀의 스케줄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허송세월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강한 적수가 생겼다면 그 적수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는 생각해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우리 한국팀은 저마다 일종의 강화주간에 들어갔다.

'강화라곤 해도 저번 강화 합숙 같은 건 아니지만.'

그때보다는 비교적 간단하게, 각자가 스스로 생각한 자신의 강점이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연습을 시작하게 됐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나는 나 자신의 약점이 바로 회귀 전의 경험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경험 전체가 잘못 됐다는 뜻은 아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절에 쌓았던 기초에 대한 이야기다.

시합에 맞춰 새로운 발상을 짜낼 때는 괜찮지만, 회귀 전의 나는 요리의 첫 시작을 너무 잡다하게 배운 탓에 제대로 된 기초가 없다.

기초라 함은 정형화된 형식. 물론 틀에 내 자신을 구겨서 끼워 맞출 생각은 없으나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도 제대로 된 형식을 쌓은 다음에 가능한 것이다.

회귀 '전'의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

회귀 '후'의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

두 지식과 경험 사이의 괴리를 없애고 하나로 합치기 위한 정련 과정에 들어갔다고 봐야겠지.

얼마 전에 철정이를 만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김철정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잠시 일하고 배우며 한 분야에 정통한 달인에게 모난 곳이 없나 점검을 받고, 틀린 게 있다면 연습하여 고쳤다.

김철정의 아버지는 업계에서도 제법 알려진 명사시다. 이런 분에게 교육을 받을 기회는 흔치 않다.

'오랜만에 친구 덕 좀 봤지.'

아니, 일본에서도 친구 덕은 잘 봤던가. 아무튼.

그 외에도 내가 특히 약한 부분인 한식에 대해 교장 선생님이나 이영율 셰프에게 집중 교습을 받기도 하는 등, 내 약점을 줄임과 동시에 다양성이라는 강점을 재정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외에도 미래에 유행했던 조리법 등을 되새기고, 그걸 토대로 지금 사람들에게도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창작 레시피를 몇 개씩 만들고 시험하며, 아무리 꽉 막힌 상황이더라도 사고만큼은 계속 유연하게 돌아가게끔 만들기 위한 훈련 또한 이어나갔다.

"후읍, 하아…… 좋아, 한 번 더 해보자."

연습이란 건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과도 같아서, 아무리 꾸준하게 해도 한눈에 알 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멈추면 정말 제자리에만 있게 된다. 어쩌면 달라붙은 벽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여기서 떨어질 순 없다. 멈추면 안 된다. 속으로 되새김질하며 계속 움직인다.

매일 밤늦게까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울 법도 한데, 어머니와 주아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그저 날 응원해준다.

오히려 가끔은 웃는 낯으로 맛있는 야식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맛 평가를 자처하실 때도 있다.

…… 주아 녀석은 가끔 나 때문에 급식 먹는 게 힘들어졌다며 투덜대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지.

"…… 어."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실험적으로 만들어본 요리를 입에 넣었을 때, 혀끝에서 느껴지는 요리의 맛이 태어나 만들어본 그 어떤 요리보다도 딱 머릿속 상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이런, 맛이었지."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리고 태어나 만들어본 것조차 처음인.

그런 요리를 먹고 내뱉는 감상이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지만, 정말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런 맛이었다. 내가 만들고자 한 요리는.

더듬이가 떨어지고, 등껍질이 깨지고, 뱃가죽이 찢어지도록 기어간 달팽이가 무심코 뒤를 돌아본다.

바닥에 구불구불 남은, 달팽이가 기어온 흔적.

그것은 결코 대 쪽처럼 곧지도, 한 방향으로만 향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하하."

그 시작점은 분명, 이미 달팽이의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있었다.

우직함이 남긴, 근성의 길이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의 주목이 향해 있던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의 B조 대진표에 커다란 이변이 일었다.

첫 경기에서 패배한 뒤, 아득바득 패자전을 기어올라 여러 사건사고 끝에 다시 본선에 발을 들인 프랑스팀.

중국팀에게 한 차례 패배했던 미국팀을 꺾고.

여태껏 단 한 번의 라운드를 제외하면 전승으로 올라온 유럽 요리문화의 기원 이탈리아를 꺾으며.

프랑스가, 다시 한번 왕좌에 도전한다.

되살아난 공화국과 왕좌의 주인이 맞붙는 결승.

2월의 새벽. 푸른 하늘 아래, 회색빛 쌓인 눈을 뚫고 새싹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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