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71화 (371/403)

371. 부두 리퍼블릭.-6-

일본에서 시합이 끝난 바로 다음 날, 비로소 사건이 터졌다.

대사건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 그 이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성황리에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에서 부정행위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습니다. 논란의 중심은 이번에도 역시…….

─중국팀의 대변인 량웨이 감독은 "전혀 사실관계가 없는 일"이라 일축…….

─미국팀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증거를 대회 사무국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증거의 내용에 대해선 여전히 공개를 하지 않았으나 중국팀 대변인 량웨이 감독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추한 모략"이라 비판을…….

"……이게 다 무슨 일이라니."

"그러게 말이에요."

아니 뭐, 한 6할…… 아니, 7할 정도는 내가 키운 불판이긴 하지만 말이야.

"정말,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네요."

나는 정말 모르겠단 듯 헛웃음을 지었다.

요즘 드는 생각인데, 최근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표정을 지어내는 실력이 굉장히 좋아진 듯했다.

***

미국팀이 중국팀을 고발했다. 고발이라고 해도 진짜 법원 같은 곳에 고소장을 제출했단 이야기는 아니고, 평범하게 이 방송을 주관하는 국제방송기구에 정식으로 항의를 넣었을 뿐이지만.

…… 아니, 사실 파급력 면에서는 이쪽이 더 큰가.

단순한 요리 대회일 뿐이지만, 명목상으로는 미국이 중국한테 대놓고 쿠사리를 넣은 격이었으니까.

어지간한 나라의 항의라면 적당히 씹고 넘겼을 중국팀조차 미국팀을 그렇게 취급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뉴스판에서는 서로 부정행위를 한 게 맞니, 아니니, 서로 따지고 멱살잡이를 하며 점차 난장판 싸움이 되어가는 중.

과연 이 사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상황에 대한 지분을 상당량 가진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팝콘 맛있네."

라임 콜라랑 찰떡궁합이야 아주.

이전 퀸 마제스틱 호에서 알게 된 미국의 농부, 토마스 테일러 씨가 학교를 통해 집으로 보내주신 팝콘용 건조 옥수수를 직접 버터에 튀겨 만든 수제 팝콘은 최고급 식재와 프로의 솜씨가 합쳐져 이미 단순한 팝콘 수준을 넘었다.

아마 영화관 팝콘이랑 비교해도 내가 만든 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뭐? 고작 조금 더 나은 게 전부냐고?

모르는 소리 마라. 세상에서 똑똑하기로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석학들이 어떻게 해야 최고의 가성비로 최고로 맛있는 팝콘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서 만든 것이 바로 그 대기업 팝콘이다.

팝콘만을 위해 만들어진 전용 기계를 이길 수 있다 자신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하지, 암.

주아 녀석도 내가 만들어준 팝콘을 한 번 맛본 뒤로는 내 얼굴을 볼 때마다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덕분에 시멘트 포대만 한 사이즈로 받아놨던 건조 옥수수가 단 석 달 만에 끝을 보이고 있을 지경.

여고생의 식욕은 무서웠다. 그런 주제에 나보고 너 때문에 살쪘다며 성내는 건 참아줄 수 없었지만.

'아니, 돼지라고 놀릴 수도 있지.'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160을 넘는 키에 몸무게 50 중반이면 정상체중…… 아니, 제법 날씬한 편이기야 하겠다마는 그래 봐야 내 눈에 돼지처럼 보이는 걸 어떻게 할까.

그 녀석은 어머니한테는 못 대드니까 괜히 나한테 성내는 거다. 자기 먹이는 데에 진심인 건 오히려 어머니가 훨씬 극성인데 말이지.

아마 그거야 어릴 적에 먹는 것도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는 탓이란 걸 주아 그 철없는 녀석도 얼추 알아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뭐 아무튼, 연초부터 역대급 사건이 연달아 뻥뻥 터진 탓에 요 근래 방송가의 시선은 전부 중국팀 부정행위 사건을 향했다.

이번에는 단순한 찌라시가 터진 수준이 아니다. 같은 참가팀. 그중에서도 최대급 덩치를 자랑하는 미국팀의 증거를 포함한 공식적인 항의.

어중간한 수준의 나라라면 설령 부정행위를 실제로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저지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와, 반대로 실제로 저질렀더라도 아니라고 윽박지르면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나라의 힘 싸움.

그거 아는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지만, 같은 물속이 아니라 육지 높은 곳에서 보는 고래 싸움은 인생 살면서 한 번만 봐도 눈 호강이 되는 진기한 구경거리라는 거.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래.

"볼 맛 나네."

덕분에 날 향한 어그로까지 풀렸으니, 정말 일석몇조인지 셀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

찬혁이 팝콘과 콜라를 양손에 쥐고 한국의 자택에서 무위도식을 하는 한편, 아직 일본을 뜨지 못한 미국팀과 중국팀, 그리고 그들 사이를 조율하는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제작진은 그야말로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기세로 싸움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대체 무슨 대단한 증거가 있다고 우리를 몰아세우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알량한 증거 하나로 우리를 핍박하다니. 도저히 같은 대국 딱지를 단 나라의 소행이라곤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치졸합니다!"

"치졸? 말 잘 했다. 먼저 부정행위로 대회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든 건 당신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부정행위 같은 거 한 적 없다고!"

"여러분! 여러분! 조금 진정! 예? 진정하시고 대화합시다."

협상 자리에 나온 것은 중국팀의 감독 량웨이와 미국팀의 대변인. 그리고 그런 그들 사이를 통역하는 역할로 자리에 나온 일본인 통역가 한 사람과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을 관리하는 방송사 연합기구에서 파견된 임원급 직원이었다.

그러나 임원급이라고 해도 결국은 일본 방송국의 일개 직원.

두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다툼의 중개인 역할을 맡기에는 부족한 인사였으나, 당장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선 먼저 나설 수 있던 것이 그뿐이었단 이유로 반쯤 강제로 폭탄을 떠안은 불쌍한 이였다.

'칫……!'

량웨이는 작금의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부정행위를 저지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어째서 그걸 걸고넘어진단 말인가?

'이번에는 정말 아무 꼬리도 남기지 않았을 텐데……!'

설마 이번에도 어디서 찌라시라도 퍼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못 먹은 감 찔러나 보잔 심정으로 이런 난리를 친 것인가.

'……둘 다 아닐 확률이 높다.'

겉으로는 억울함에 성이 잔뜩 난 모습을 연기하며, 량웨이는 속으로 냉철히 계산했다.

'우리 정보국에서 각종 커뮤니티를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그럴 기미가 보이면 진즉 나한테 정보가 왔거나, 정보가 들어오기도 전에 잘렸을 거야.'

그렇다고 후자일 리도 없다. 량웨이는 덩치가 커다란 국가가 가진 약점을 안다.

덩치가 크다는 건 그만큼 엉덩이가 무겁다는 뜻. 정말 제대로 된 건수를 잡은 게 아니면 그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들이 틀렸을 때 잃을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건은 전파가 너무 빨라. 분명 언론에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은 거야.'

즉, 브레이크를 걸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줄만 한 무언가가 저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량웨이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건수를 잡았기에…….'

저 덩치를 성난 황소처럼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가. 안 그래도 좀처럼 저쪽에서 밝히려 들지 않으니, 이게 공갈인지 아닌지조차 판단이 어렵다.

량웨이는 신중에 또 신중을 가해 생각을 이어나갔다.

당연한 일이다. 이번 일에는 량웨이의 생명이 물리적으로 걸려 있다. 면책 정도로 간단히 끝나는 곳이 아님을 안다.

그의 나라에서 신분상승이란 가파른 기암괴산의 절벽을 오르는 것과 같다.

평범한 노력과 행운으로는 오를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험준한 벽. 오를 때에는 온몸이 부서지도록 힘들고 더럽지만, 반대로 떨어질 때에는 '아차'하면 눈 깜짝할 새에 저 바닥을 뒹굴고 있는 것이 이 업계.

분을 식히는 척 머리로 온갖 계산을 끝낸 량웨이의 말수가 점차 줄어들자, 중재 및 협상의 진척을 위해 자리하고 있던 제작진 측 임원이 말허리를 끊으며 나섰다.

"일단 두 분 다 진정하시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떻습니까?"

미국팀 측 대변인도 소득 없는 말다툼에 지친 건 매한가지였는지, 고개를 끄덕이곤 옆에 준비되어 있던 생수통을 단숨에 비우고 일어섰다.

"그럼 십 분 정도만 쉽시다. 일본은 흡연구역 관리가 빡빡하다고 들었는데, 여긴 흡연구역이 어딥니까?"

"아, 그럼 제가 안내를……."

"됐습니다. 제가 애도 아닌데 사람을 붙일 건 또 뭡니까. 그냥 위치만 좀 압시다."

"네…… 그럼 회의실 나가셔서 비상계단으로 한 층만 올라가시면……."

임원의 설명에 대변인은 고맙다고 말하곤 자리를 일어섰다. 량웨이 또한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여태 싸운 인물과 같은 장소에 있고픈 마음은 없지만, 흡연 욕구가 그것을 억누른다.

"……."

"……."

뚜벅뚜벅. 구두 굽 소리 두 개가 외로이 복도를 채운다. 서로가 말이 없는 탓이다.

그런데 그때, 어색한 동반자가 함께 비상계단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그 순간이었다.

"이보쇼. 중국팀 감독 양반."

"……!"

량웨이는 깜짝 놀랐다. 여태껏 말이 없던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건넨 것도 그렇지만, 그 입에서 나온 것이 유창한 중국어였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할 줄 알면서 일부러 통역을 동반했다. 자기가 중국어를 할 줄 모른다는 인상을 심기 위해.

'누구에게? 나? 아니면 제작협회 임원 쪽인가?'

지금 자신에게 일부러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는 것을 보아 그 대상이 후자라는 것을 어렵잖게 짐작한 량웨이가 굳은 얼굴로 답한다.

"뭡니까."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

그렇게 말한 남자가, 갑자기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동작을 보고 순간 총일까 착각하며 움찔한 량웨이를 보며 남자가 웃는다.

"이런 데서 그런 걸 꺼내겠나? 아무튼, 이거나 들어보는 게 어때."

량웨이는 남자가 건네준 핸드폰을 얼떨떨하게 받아들며 물었다.

"……이건 뭐지?"

"증거."

"!"

증거! 여태껏 미국팀이 그 어느 곳에도 공개하기 꺼렸던 그 증거가 바로 이것이란 말인가! 깜짝 놀란 량웨이가 핸드폰을 살피니, 화면에는 이미 하나의 음성파일이 실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그것은 쉬이 짐작하기 힘들었지만, 틀림없이…….

"내, 목소리?"

량웨이. 그의 목소리였다. 심지어 이전 대기실에서 중국팀 팀원에게 호통을 칠 때의 대화가 그대로 담긴,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할 증거.

"!?"

량웨이는 기겁하여 핸드폰을 집어 던지듯 놓쳤다. 돌계단에 부딪친 액정이 손쉽게 갈라졌으나, 남자는 크게 개의치 않은 표정이었다.

"들었으면 알겠지만, 이건 자네들을 고발하기엔 충분히 효력 있는 증거야."

"무, 무슨 짓이야! 대기실에 멋대로 녹음기라도 설치한 건가!? 이건 정식으로 항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오, 감사. 우린 이게 어디서 녹음된 건지도 몰랐는데. 대기실이었단 말이지? 덕분에 정보를 하나 더 얻었어. 덤으로 이게 진짜라는 것도 알았고."

"……!"

실언이었다.

그것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남자가 말을 잇는다.

"이제 정말 물러서지도 못하게 됐구만."

"……그래서, 그걸 나한테 보여준 이유가 뭐야."

"자진 사퇴하게."

"자진, 사퇴?"

그 단어에, 잠시 풀어졌던 량웨이의 얼굴이 급격하게 찌푸려진다.

"좋은 말 할 때 물러나라, 뭐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마치 역으로 협박하듯 날카롭게 쏘아내는 말. 그러나 대변인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흔들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우리는 자네들과 협상이 하고 싶은 거라고."

"……무슨 협상. 이미 테이블은 그쪽이 훨씬 유리할 텐데."

"그건 그렇지만…… 이게 또 그렇지만도 않단 말이지."

"……?"

의아해하는 량웨이에게 남자가 말한다.

"물론 이걸 공표해서 자네들을 떨어트리는 건 간단해. 하지만 그렇게 하면 포기할 게 너무 많단 말이야."

"포기라니?"

"물론 이득이지. 자네는 대체 이 대회에 얼마나 많은 돈이 걸렸다고 생각하나? 십만 달러? 백만 달러? 아니! 그 이상이야! 전세계의 주방용품 메이커, 식자재 유통사, 관광상품 개발지! 일개 개인이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돈이 이 대회에 엮여 있어!"

"……."

"알겠나? 이 사실을 공표해서 자네들을 떨어트려봤자, 우리한테 남는 건 심사위원 관리도 똑바로 안 되는 정통성 없는 대회라는 오명 붙은 딱지야!"

그러니. 남자가 말을 이었다.

"자네들은 절대로 부정행위를 인정하지 말게. 대신 이런 모욕을 두 번이나 감내할 순 없다고. 자네들 좋아하는 체면을 들먹이고 자진사퇴 해. 이 대회를 싫어하는 건, 아깝지만 중국 시장 하나로 충분해. 중국 시장을 희생하고 그 외의 세계를 붙잡을 수 있으면 우리는 그걸로 만족하네."

"……그래서 우리가 얻는 건 뭔데."

"그야 당연히 체면이지! 너무 잘해서 시기 질투 끝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지만, 실력 하나로는 이미 미국까지 꺾었다는 명예! 그리고……."

잠시 말을 흐린 남자가 액정이 깨진 핸드폰을 흔들어 보인다.

"정말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과거의 소실."

"……."

"이 두 가지로는, 충분하지 못하나?"

량웨이는,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때까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

─속보입니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2에서 부정행위 논란에 휩싸였던 중국팀이 공식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상의 치욕을 견딜 수 없다. 패배할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억지나 부리는 모자란 이들과 더 손을 나눌 필요를 우리는 발견할 수 없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 바깥을 보여주었으나, 미물은 세계를 세계라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건 기대가 너무 높았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발언을 끝으로 기자회견조차 거부한 중국팀 대변인 량웨이 감독을 포함한 다섯 명의 셰프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현지에서 알렸습니다. 공석이 된 중국팀의 자리는 프랑스팀이 채우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미국과의 재시합을 거쳐 준결승에 오를 팀을 선발한다고 제작협회 측은 공표했습니다. 이상, CBS뉴스였습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야."

TV에서 방송하는 뉴스의 내용을 보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뭔가, 카라멜 팝콘을 먹고 손을 닦지 않은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었지만, 한 가지 좋은 점은 있었다.

"개꿀맛이네."

카라멜 팝콘은 달콤고소해서 맛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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