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 부두 리퍼블릭.-4-
"단체전의 주제는! 내장요리! 내장요리입니다!"
어설픈 첩보 영화를 찍고 조금 시간이 지나 시작된 2차전.
그 주제는 역시나 앞서 들었던 대로 내장요리가 낙점되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말한 대로 주제가 정해질 줄이야. 프로그래밍 같은 건 잘 모르지만, 저런 추첨도 그렇게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는 건가?
나는 모를 일이다. 뭐 출력 화면을 잠깐 바꿔서 정해진 영상이 나오는 디스플레이를 전광판에 띄운 걸 수도 있고, 다 방법이 있겠지.
그것보다 우스운 건, 아무리 그래도 염치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부정행위 자체도 그렇지만 하필 저런 주제를 선택하다니…….
"내장요리…… 철저하게 이기겠단 속셈이로구만."
미국은 내장요리에 있어서 그다지 강세를 보이지 않는 나라 중 하나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들 자체가 동물의 내장이라는 부위를 선호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간 정도나 먹을까.
내장이란 예로부터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곤란한 나라에서 주로 섭식하던 부위다.
살코기만 가지곤 수지타산이 전혀 맞질 않으니 속에 가득 찬 내장까지 전부 어떻게든 먹지 않으면 안 됐던 국가의 사람들이 주로 먹게 되고, 그게 발전하여 어떻게든 고약한 냄새나 특유의 식감, 맛 따위를 해결해보려 발달한 게 내장요리인 것이다.
'고기가 부족하다니, 미국하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지.'
미국에 고기가 부족해? 이만큼 웃기는 소리가 있을까.
미국은 나라 전체가 아사자로 들끓던 대공황 시기에도 돼지를 살 사람이 없어서 떼로 폐사시키던 나라다.
그런 사람들이 고기가 부족해서 내장을 먹어? 기껏해야 내장 고기를 갈아 만든 소시지 정도지.
국민들 자체가 내장을 빈민이나 먹는 저급하고 청결하지 못한 부위로 취급하는데 잘도 요리가 발달하겠다.
'그야 요리사들이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태어나며 가진 편견이나 상식 같은 걸 그리 쉽게 버릴 수 있을까? 난 아마 아니라고 보는데.
당장 미국에서 몇 년을 일해도 땅 크기에 대한 실감조차 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그에 비해 중국은…….'
중국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내장요리에서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강국. 그게 바로 중국인 것이다.
일물전식一物全食.
고기를 먹는다면 골수까지. 채소를 먹는다면 잎과 뿌리까지. 과일을 먹는다면 껍질과 씨까지.
중국의 한방요법 중 하나로 알려진 이 개념은 다른 먹는 음식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여태껏 전해 내려온다.
다른 그 어떤 나라를 비교해도, 내장이란 부위에 대한 시야의 넓이가 전혀 다르다.
중국을 내장요리의 강국으로 만든 건 분명 그 힘이 크겠지.
"하지만……."
그런 강자의 힘을 이런 식으로 발휘하면 대체 무슨 소용이야.
하다못해 게임 좀 잘하는 사람이 초보한테 가서 양학을 해도 욕을 먹는 세상이다.
그런데 핵을 켜고 양학을 해? 염치가 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발상이 아닐까.
'…… 이 이상 볼 가치가 있나.'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이만 일어나기로 결정했다.
심판까지 매수한 걸로 모자라 주제까지 자기네 입맛대로 고르겠다 이거지.
"하."
치졸한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아마 이전에 쳤던 분탕 탓에 더욱 신중하게 행동하는 그들을 곁눈질하며 나는 대회장을 나섰다.
"…… 배고프네."
그런데 밥을 먹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밥맛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허기는 또 처음이었다.
***
찬바람에 열불을 식히기 위해 홀로 산책이나 잠깐 즐긴 뒤 조용히 숙소로 돌아온 나는 도착하기 무섭게 개인실에 비치된 TV로 생중계 채널을 틀었다.
"…… 역시 이렇게 됐나."
내가 가볍게 산책을 즐기는 사이, 미국팀과 중국팀의 2차전은 끝을 맺은 듯했다.
결과는 당연히 예상한 대로 중국팀의 승리.
돼지의 위장에 각종 속 재료를 채워 넣고 삶고, 찌고, 튀긴 변형 미트로프.
소의 뼈와 내장을 사용한 스프.
돼지의 피를 응고하여 만든 블랙푸딩에 생크림과 향신료를 더해 만든 디저트.
내장이라는 생소한 주제에도 아주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놓은 미국팀이었지만…….
'역시, 내장이라는 분야를 보는 시야가 너무 좁아.'
중국팀의 요리는 그들을 한참 뛰어넘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거위의 간인 푸아그라를 중화식으로 볶아 만든 내장볶음.
생선의 내장을 절여 만든 짭짤한 어장魚醬에 갑각류의 내장으로 쓴맛을 가미한 볶음밥.
마지막으로 소의 척추에서 뽑아낸 골수와 힘줄을 송아지의 뇌를 갈아서 만든 양념국물로 졸인 소 골수와 힘줄 조림.
맛도 맛이었지만, 그 진가는 다름 아닌 컨셉에 있다.
육해공陸海空.
지구의 세 가지 보고寶庫에서 나온 식재료를 골고루 사용한 세 가지 요리라는 발상.
거기에 더해 단순히 뱃속에 든 장기만을 내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고의 유연함.
결국, 두 번째 시합은 심사단 만장일치로 중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가히 내장요리의 강국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요리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런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저 놀라운 실력을 본인들의 해이한 정신이 썩히고 있단 걸 정말로 모르는 건가?
첫 번째 시합 때만 해도 그렇다.
마라두부면의 아종인 그 요리도 실수만 아니었더라면 충분히 상대와 비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
발상은 그렇다 치지만, 적어도 내가 만든 요리에서 한 단계 더 개량을 거친 요리였으니 맛 하나만큼은 120% 보장될 요리였으니까.
그걸 져선 안 된다는 본인의 초조함이 망친 게 바로 그런 결과를 불러왔다.
안 그래도 이 대회에 참가한 요리사들은 다들 절박한 사람들이다. 승리에 굶주리고, 성공에 목마른 사람들.
그런데 이미 절벽 앞에 선 사람을 뒤에서 밀고 있으니, 사람이 조급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량웨이…… 아니. 그 사람만 그런 게 아니지."
그보다 더 위.
요리란 분명 대단한 문화지만, 그렇다고 고작 요리에 사람의 안위를 들먹이는 놈들이 난리 치는 꼴은…… 솔직히 말해 그렇게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다.
요리는 국격을 올리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요리는 어디까지나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그 과정을 통해 만인의 인정을 받아 국격 또한 같이 올라가는 것이지.
지금 중국팀은 말 그대로 앞뒤가 뒤바뀐 상황이다.
두 번째 시합이 끝난 뒤 이어서 열린 세 번째 시합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이어졌다.
"세 번째 시합의 결과를 공개합니다!"
중국팀의 손을 든 심사위원이 둘, 미국팀의 손을 든 심사위원이 하나.
그렇게, 세 번째 시합은 2:1의 스코어로 또다시 중국팀의 승리가 되었다.
"역전승! 역전승입니다! 중국팀, 개인전의 패배를 만회하고 준결승으로 향합니다!"
화면 속에서 놀랍다는 듯 외치는 MC의 감정에 조금 공감이 된다. 나도 놀랍거든.
아마 놀라는 포인트는 서로 상당히 다르겠지만 말이다.
"자……."
사태는 내가 가장 우려했던 상황으로 이어지고야 말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차라리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 졌더라면 이렇게 고민도 안 했을 텐데.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그만한 어드밴티지를 먹고 간단히 져줄 정도로 만만한 팀은 아니라는 것일까.
'이상한 곳에서 실력을 증명하네.'
참,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어쨌든, 일단 나는 확실한 증거를 하나 갖고 있다."
부정행위를 써서 이기기까지 한 이상, 이젠 정말 돌이킬 길이 없다. 물론 이전에도 같은 짓을 했으니 이미 때늦은 소리긴 해도.
'그렇다고 이걸 내가 터트릴 수는 없어.'
불법 녹취도 그렇지만, 이걸 내 이름으로 공개해서 불 역풍은 얼마나 클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저번처럼 익명성 커뮤니티를 이용해서 동시다발적으로 터트린다?
글쎄…… 저 치들이 한 번 당했던 수법에 그대로 똑같이 당해줄지 모르겠다.
세계 2 인자도 1 인자의 책략에 세 번 연속으로 속아 넘어갔단 기록은 있지만 나는 단수고 저쪽은 복수이지 않은가?
아마 이번에는 그마저도 막힐 가능성이 있다.
"흠……."
컴퓨터로 음성 증폭 보정작업을 끝낸 수정파일과 원본파일을 바라본다.
량웨이와 마주치기 전 녹음된 대화에서는 크게 건질만 한 게 없었지만, 반대로 그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간 다음 설치한 블루투스 마이크로 녹음한 대화는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뭣보다, 마치 지방 사람이 억지로 서울말을 익혀서 쓰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사투리 티가 전혀 없는 북경어는 해석에 다른 여지도 주지 않을 만큼 정확한 발음을 고수했다.
덕분에 나도 이 사람의 말만큼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내 컴퓨터에 담긴 이 녹음파일은 말 그대로 폭탄이었다.
언제고 이 상황을 뒤집어 엎어버릴 수 있는 초특대 폭탄.
동시에 함부로 다뤘다간 소유주까지 단박에 파편으로 바꿔 버릴지도 모르는, 불길한 화약고.
잠시 이 녹음파일을 보며 생각을 거듭하던 나는, 이내 뇌리를 스치는 생각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고로 장사치들한테는 이런 말이 있지."
에어컨을 팔 거면 사막으로, 히터를 판다면 동토凍土로.
"물건의 가치는 궁한 사람이 정해주는 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궁한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이 나를 대신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폭탄을 손에 들까?
그 정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도출됐다.
해답이 나온 그 순간, 나는 재빨리 거실로 나가 인터폰을 들었다. 자동으로 담당자에게 연결되는 전화.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뭔가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여보세요?"
─뭐꼬. 니였나.
사람따라 대응이 휙휙 바뀌다니. 서비스직 태도가 그게 맞냐!
…… 라고 말했다간 내 고막이 터질지도 몰랐고,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재빨리 양희연에게 외쳤다.
"야, 택시 하나만 수배해줘."
─택시? 와? 어디 또 나가게?
"어. 잠깐 갈 곳이 생겼어."
─…… 또 뭔 짓을 할라꼬. 와? 어디 가게?
"아키하바라."
아키하바라. 도쿄 내…… 아니, 일본 내에서 가장 큰 전자상가가 존재하는 곳.
당장 필요한 물건을 최대한 빨리 사기 위해 선택한 장소였다.
─…… 니 그런 취미가 있었나? 그 뭐꼬, 오타쿠? 그거가?
"…… 아니야."
얜 또 왜 사람을 오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거기가 뭐, 그런 이미지가 있기야 하지만.
***
그렇게 향한 아키하바라.
나 혼자만 보내기에는 불안하다며 날 따라나선 양희연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최대한 빨리 목표한 물건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다행히 일본 최대의 전자상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나는 내가 목표했던 몇 가지 물건을 아주 간단히 구매할 수 있었다.
"뭐 산 건데?"
"그런 게 있어."
간단히 쓰고 버릴 수 있을 만큼 싸구려 USB 두 개와, 종종 레크리에이션 소품으로 쓰이는 노래방 마이크 하나.
그리고 마찬가지로 싸구려 녹음기 하나.
"뭐 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나? 노래방 기계 방에도 있을 긴데?"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니고."
"흐음……."
양희연의 의심스럽단 시선을 피하며 나는 짧게 답했다.
"가끔씩은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분탕을 치고 싶을 때가 있거든."
분탕?
아직 K인터넷 슬랭에 익숙하지 못한 양희연이 말꼬리를 높인다.
그래. 너는 모르는 게 나은 말이란다.
내가 그렇게 답하며 웃자, 녀석은 내 팔뚝을 후려쳤다.
아니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