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68화 (368/403)

368. 부두 리퍼블릭.-3-

'이런…….'

일단 잘 모르는 척 둘러댔지만, 사실 난 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량웨이. 중국팀의 감독이라고 자칭하는 남자.

이전 해명방송 때 대표로 나온 이 사람을 모를 리가 있나. 괜히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면 눈길을 끌 것 같으니 시치미를 뗐을 뿐이다.

아니, 근데 이 사람은 어떻게 날 한 번에 알아본 거야?

'나름 변장을 한 줄 알았는데 말이지.'

이것저것 껴입을 만큼 껴입은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다니. 눈썰미가 좋은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나를 이미 눈여겨보고 있었다?'

…… 아니, 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아닌가.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뭐하지만 이래 봬도 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나는 선수들 중에서도 제법 얼굴이 많이 알려진 편에 속한다.

전 시즌 우승팀 소속. 개인전, 단체전 통합 승률 100%.

그야 나 같아도 정보 수집을 열심히 했겠지. 음. 날 알아본다는 것 자체는 크게 대단한 것도 아니구만.

"그런데 류찬혁 선수는 어쩐 일로 오셨나요? 한국팀 경기는 이미 끝났을 텐데요."

"아, 그게……."

내 뒤쪽을 곁눈질하며 묻는 량웨이에게 나는 이곳에 들어올 때 사용한 핑계를 꺼냈다.

"저번 시합 뒤로 물건을 하나 잃어버렸거든요. 숙소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던 탓에 혹시 여기 대기실에 두고 간 거 아닐까 해서 와봤죠."

"…… 그러시군요. 물건은 잘 찾으셨나요?"

"예, 뭐."

"다행입니다."

웃으며 말하는 량웨이였으나 이상하게 좋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살짝 기분이 나쁘다면 나쁠까.

'이 사람 얼굴은 웃고 있는데 말이지…….'

뭐라고 할까. 시선의 질이 다르다. 접객업을 오래 하다 보면, 특히 오랜 시간 손님의 앞에 서 있어야 하는 카운터 주방 같은 곳에서 일하다 보면 사람의 시선을 알아채는 재주가 생긴다.

동공의 움직임이나 묘하게 느껴지는 감각으로 대충 고객의 시선이 어디에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해야 할까.

너무 느낌적인 느낌이라 나도 잘 설명은 못 하겠지만, 내 칼질에 집중하는 손님이나 불 쇼 같은 걸 유심히 바라보는 손님.

손이나 앞치마, 소매, 명찰, 머리 등을 보고 위생 점검이라도 나온 것처럼 요리사를 유심히 관찰하는 손님도 있다.

내 앞에 있는 이 남자의 시선은, 마치 예비 범죄자를 맞닥뜨린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발과 주머니, 손, 가방 등을 짧게짧게 스치듯 확인하고 가는 시선.

자기 집에서 튀어나온 좀도둑이라도 보는 듯하다.

'그야 비슷한 거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 대면한 사람한테 저런 태도면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 않겠는가. 어? 이게 역지사지?

…… 아무튼.

내 대답을 듣고 웃으며 날 살핀 그는, 이내 다시 꾸벅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귀하의 팀과는 꼭 결승에서 다시 만나면 좋겠군요."

"예. 중국팀도 오늘 시합 건투하시기 바라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다음 시합 대책 회의를 해야 해서요."

"예. 수고하세요."

그렇게 인사를 마친 뒤 나는 재빨리, 하지만 성급해 보이지 않도록 발걸음을 서둘렀다. 모퉁이를 몇 개 지난 뒤. 복도 화장실에 앉아 녹음파일을 확인.

"적당히 잘 나왔네."

소리는 좀 작아도 잡음은 없고, 1분 정도 되는 대화가 잘 녹음되어 있다.

아직 무슨 내용인지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일단 가지고 돌아가서 증폭이든 뭐든 먹여서 대충 확인해보면 되겠지.

일단 오늘 시합 결과가 나온 다음 이야기긴 하지만 말이다.

"…… 무슨 내용이 녹음됐든, 되도록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게 가장 좋은 일이겠으나, 다들 알다시피 세상사가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

"…… 흠. 대기실에 들르러 왔단 말이지."

량웨이가 모퉁이 너머로 사라진 찬혁의 뒷모습을 좇으며 짧게 중얼거렸다.

"그저께 한국팀이 사용한 대기실은 반대편 복도일 텐데."

저번 시합 때 일본팀이 사용한 대기실은 지금 중국팀이 사용하고 있는 곳의 바로 맞은편이었고, 그 대결 상대였던 한국팀의 대기실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반대편 복도가 된다.

출입구로 향하는 가장 큰 복도가 각 대기실 사이에 있단 걸 생각하면 이 복도에서 만난 건 뭔가 이상했다.

"…… 길이라도 잃은 건가."

하긴, 이쪽 복도는 어딜 가든 비슷하게 생겨 먹은 탓에 익숙하지 않으면 길을 잘못 들기 십상인 곳이었다.

괜히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량웨이는 고개를 털어 생각을 떨쳐냈다.

'요새 당에서 쪼여서 과민해진 모양이야.'

안 그래도 누군지 모를 고발자 탓에 뒷수습을 한다고 바빴던 량웨이였다. 이젠 주변에 다가오는 이가 죄다 자신만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졌고, 밤에는 술, 아니면 수면제가 없으면 잘 수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거기다 지금은 중국팀이 개인전에서 꼴사나운 패배까지 당했다.

'전통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놈들을 상대로 향토요리 승부에서 질 줄이야.'

저들은 중화 4천 년을 날로 말아먹기라도 했단 말인가!

속으로 자국팀에 대한 욕을 내뱉은 그의 발걸음이 난폭해졌다.

중국팀의 대기실은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부터 이미 그렇게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안에서 서로에게 외치는 고함이 문 바깥까지 들릴 지경이었으니 오죽할까.

─쾅!

"시끄러워!"

다시 한번 인상을 찡그린 량웨이가 일부러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며 대기실로 들어서자, 그토록 커다랗던 고함 소리가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양 사라진다.

"진 놈들이 시끄럽기까지 하니 아주 가관이 따로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중국 전역에서 모은 요리사 실력이 고작 이 정도야?"

모욕적인 언사에도 중국팀의 요리사들은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분명 안정적이게 1점을 챙겼어야 할 대목에서 점수를 뺏긴 것도 사실이었거니와, 당국의 공안인 량웨이와 그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신분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괜히 대들었다 책이라도 잡히면 앞으로 국내에서의 생활에 커다란 장애가 생긴다.

그게 싫었던 이들은 애당초 이 대회의 예선전에조차 참가하지 않았다. 사실, 중국팀 요리사의 평균적인 실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것도 그 탓이었다.

이 대회에 출전한 건 패배 했을 때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더 밝은 앞날을 위해 출전한 이들.

반대로 말하자면 이미 충분히 잘 나가는 가장 잘난 요리사들은 굳이 출전할 이유가 없다는 뜻.

실제로 이곳에 있는 요리사는 실력이 뛰어나도 본인의 과거 행실 탓에 마땅한 일터가 없거나, 실적이 없어 먹고 살길이 막힌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 인생에 이보다 더한 고난을 안겨주고픈 마음은 없던 그들이 굳게 입을 다물자, 그제야 직성이 풀린다는 듯 한숨을 뱉은 량웨이가 말을 이었다.

"너희가 멍청한 덕분에 내 할 일이 아주 많이 늘었다. 정말 고맙다고 인사나 해두마."

가볍게 비꼬는 그의 말이 한마디, 한마디 튀어나올 때마다 요리사들의 얼굴이 먹물을 끼얹은 듯 꺼멓게 죽어간다.

입이 열릴 때마다 험한 말만 나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량웨이 또한 이 일에 제 정치적 생명…… 아니, 진짜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므로.

"명심해둬라. 저 미제 자본주의자들과의 대결을 주석께서 주시하고 계신다. 한 번의 패배는 역전의 미담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두 번의 패배는…… 굳이 말로 하지 않으면 모를 만큼 멍청이들은 아니라 믿으마."

주석께서 주시하고 계신다.

중국인들에게 이보다 영광스러우면서도, 이보다 두려운 말은 또 없었다.

검게 죽은 얼굴로 폭포수 같은 식은땀을 흘리는 요리사들 사이에서 량웨이가 말을 잇는다.

"물론, 나도 이대로 너희가 지는 꼴만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은 없다."

"그 말씀은……."

"그래. 너희들에게 좋은 정보를 들고 왔지."

량웨이가 그렇게 말하자, 여태 썩은 시체 같은 낯을 하고 있던 요리사들의 얼굴이 그나마 새파란 수준으로는 돌아왔다.

'대만 전 때에는 덕분에 상당히 편하게 이겼다.'

'이번에도 아마 비슷한 걸 거야.'

그가 이번에도 무언가를 해줄 것이다. 난관에 대한 해결책을 줄 것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일단 같은 배를 탄 입장이니까.

량웨이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우선, 다음 시합의 주제는 '내장요리'로 예정됐다."

"내장요리!"

"그 주제라면……!"

"서두르지 마. 아직 말이 안 끝났으니까."

뭔가 더 남았다고?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들을 향해 이어지는 량웨이의 말.

그 말을 들은 이들의 표정이 휘둥그레 변했다. 그만큼 놀라운 이야기였으니까.

"이번 시합을 맡은 심사위원 중 한 명을 포섭했다."

심사위원 포섭! 포섭을 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들이 더욱 궁금했던 건 '어떻게 심사위원을 찾았느냐'였다.

내부에서도 상당한 철통보안 속에서 실행되는 심사위원 선발.

각 회사마다 선발 과정을 따로 치르기 때문에, 시합 때마다 바뀌는 심사단조차 서로를 만나는 건 시합장에 도착한 다음이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아서 포섭했는가.

거기에는 량웨이의 노고가 숨겨져 있었다.

공안의 위치를 사용해 일본과 한국, 중국을 오가는 중국계 마피아를 섭외하고, 거기서 일본의 야쿠자와 연계해 도쿄돔 근처의 호텔을 조사.

이미 제 심사를 마친 심사위원 몇 명의 거처를 알아낸 뒤, 그들의 뒤를 쫓아 비슷한 시기에 입국하여 같은 숙소에 숙박하게 된 외국인 중 심사위원을 선발하는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인물을 찾아냈다.

그다음은 막대한 돈을 사용하여 매수하는 것으로 끝.

일본에서 시합이 결정된 다음부터 지금까지, 최대한 일을 빠르게 끝마친다는 목적 탓에 상당한 금전과 인맥을 소모했지만, 결국 목표한 바는 이루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첫 번째 시합 때는 일부러 미국팀을 찍으라 했지. 불행 중 다행히 네가 형편없는 음식을 만든 덕분에 자연스럽게 넘어갔어."

량웨이에게 지목된 사천 출신 요리사가 얼굴을 붉히며 분한 얼굴로 고개를 수그렸다.

"남은 두 번째, 세 번째 심사에선 이쪽을 찍을 거다. 그 한 표가 의심받지 않도록, 부끄러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없길 바라마."

"예!"

"설마 3분의 1을 먼저 제 점수로 받아놓고 지진 않겠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다행이야. 너희들한테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본국으로 돌아가 '처리'를 당하기 전에 너희 신변에 이상이 생기게 될 테니까.

농담의 기미라곤 전혀 섞이지 않은 량웨이의 담담한 말에 요리사들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아, 이 새끼는 하려면 진짜 할 새끼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결코 지면 안 된다.'

'앞으로의 생활 같은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달렸어……!'

비장한 각오로 이를 악무는 그들.

량웨이는 노고 섞인 한숨을 뱉으며 담배를 빼 물었다.

"알아들었으면 얼른 꺼져. 다음 시합이 시작될 테니까."

쉬는 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예비 방송.

그 소리를 들은 요리사들이 서둘러 대기실을 나선다.

이윽고 량웨이 홀로 남은 대기실.

얕은 담배 연기가 만든 구름 속에서 오만상을 찌푸린 그가 이번에 사용한 예산을 되새기며 연달아 욕을 뱉을 뿐이었다.

***

"헤에."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챙겼다.

"블루투스 마이크라……."

좋은 세상이었다.

미래가 부럽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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