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67화 (367/403)

367. 부두 리퍼블릭.-2-

하와이는 50개에 달하는 미국의 주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위치를 가진 섬이다.

뭐, 미합중국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주라던가, 주라고 말하는 것 치곤 본토에서 바다 건너 수천km 떨어진 곳에 있다던가 하는 건 일단은 제쳐두자.

재밌는 점은 같은 본토 안에 있는 불야성의 도시 로스앤젤레스가 있는 캘리포니아 주와 하와이 사이의 거리보다 미스터리의 본고장 메인 주 사이의 거리가 더 멀다는 점일까.

한 나라의 최서단과 최동단의 거리가 수천km……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미국에서 잠깐 일할 때엔 그나마 중부여서 괜찮았지만, 출장 탓에 LA에 갔을 때 '지금쯤 본점은 아직 대낮이겠네'하는 소리를 듣고선 잠깐 어질어질했었지.

그러나 그 드넓은 땅에 포함된 하와이가 다른 주에 비해 가장 이질적인 점은 비단 거리나 위치 같은 게 아니라 바로 역사에 있다.

하와이는 미국에 포함된 주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곳이니까.

'뭐, 그나마 있던 왕조는 미국 손에 망하고 반쯤 강제로 합병된 거긴 하지만.'

하와이는 그나마 미국 본토보다는 사정이 낫다. 인디언이라 불리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명맥만 간신히 남긴 것에 비해 하와이는 전통 왕조의 핏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긴 하지 않은가.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태평양의 가운데에 위치한 하와이는 그 입지 탓에 다양한 나라와 교류를 이어왔다.

영국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서양의 문물을 들이고, 근대로 들어와 동서양을 오가는 이들의 휴게소 같은 역할을 하며 각국의 문화가 자연스레 하와이에도 녹아들게 된다.

음식 문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한때 유행한 스팸이 들어간 직사각형 모양 주먹밥인 스팸 무스비의 경우, 하와이에서 초밥을 팔던 일본 요리사들이 부족한 회 대신 스팸을 올려 판 게 시초니까.

그리고 그 무스비는 현재까지 하와이의 향토 음식으로 전해지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 본래 하와이의 문화와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여 태어난 게 현재 하와이의 요리.

향토음식이란 주제에 관해선 아마 미국의 어느 곳보다도 폭넓은 다양성을 가진 지역이다.

중국의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조금 손색이 있을지 몰라도, 한 번의 대결에서 써먹기에는 충분할 터.

'뭣보다 전통이 비교적 짧다는 것 자체가 크게 불리한 건 아니야.'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요리가 향토요리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며 살아남았다는 건 그만큼 그 요리가 맛있고, 또 접하기 쉬운 요리라는 뜻이니까.

현대인의 입맛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바뀌어왔다.

아무리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음식이라도 이 시대의 사람 입맛에 맞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점에서 하와이의 요리는 서양 사람의 입맛 변화에 함께 발맞춰 따라온 가장 최신의 향토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 터.

분명 요리의 세계에서 전통이란 이름이 가진 무게는 크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대의 석박사가 모여 해석하고 알아낸 미시세계의 화학적 변화와 발달한 조미료, 풍부한 향신료의 조합을 이겨내기란 요원한 일.

전통을 어떻게 발달시키느냐.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우리들 손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거인의 어깨에 탔다고 뭐든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지……."

서로가 가진 강점은 다르다.

폭넓은 다양성과 발전된 진보성.

여태껏 양 팀의 경기를 관전하며 본 두 선수의 실력과, 이상의 조건을 얼추 대입했을 때, 이번 경기는 나름 대등한 상태라고 보아도 되겠지.

"그럼 이 시합은……."

전통을 어디까지 진화시킬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될 터.

몇 년 후까지의 미래를 현재로 불러올 수 있느냐. 거기에 두 선수의 승패가 달렸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내 전문분야였다.

***

별달리 커다란 이변은 없었다.

"미국팀이 1점 가져갔네."

그래. 하와이 출신 사모아인 요리사의 승리라는 정해진 결과로 말이다.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애당초 난 각자의 요리가 절반쯤 진행된 시점에서 대충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중국팀 요리사의 요리는 말린 오리고기를 비롯한 각종 채소를 직접 만든 라유와 두반장, XO장 등으로 볶고 데친 건두부를 면처럼 가늘게 썰어 데친 뒤 파스타처럼 볶아 만든 요리.

그렇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뭐하지만, 재료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내가 과거에 만들었던 요리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사천 마파두부의 변형이었다.

'다른 건 매운 거에 약한 심사위원을 위해 매운맛을 중화시켜 먹을 수 있는 오리뼈로 우린 국물을 추가로 줬다는 것 정도고.'

그리고 미국팀 요리사의 경우엔 마치 하와이 요리의 일종인 포케처럼 살짝 간장양념에 절인 참치를 다진 뒤, 볶은 샬롯을 비롯한 달큰한 맛이 감도는 채소와 함께 반죽하여 만든 패티를 멘보샤처럼 식빵 사이에 끼워 튀기고, 그 위로 파파야나 파인애플 등의 남국 과일로 만든 달콤하고 고소한 양념을 뿌린 요리였다.

'전자의 경우에는 그리 대단치 않았어.'

1년 정도만 빨리 만들었어도…… 아니, 적어도 내가 예선전에서 마라두부면을 선보이기 전에만 만들었어도 제법 혁신적인 아이템으로 기록됐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한 가지 뼈아픈 실수를 했지.'

괜히 서양인 심사위원을 배려하겠답시고 국물을 추가로 준 게 문제였다.

오리기름 향이 강하게 밴 육수는 기껏 만든 수제 라유의 향을 어지럽힌다. 매운맛 요리는 혀를 마비시키는 대신 향의 처리가 굉장히 중요한 장르.

차라리 육수를 안 주고 소신 있게 나섰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놀란 건 미국팀 요리사 쪽이야.'

나는 그 요리를 보고 굉장히 놀랐다. 왜냐하면 그가 만든 요리는 앞으로 약 4~5년쯤 뒤부터 상당히 인기를 끌 어느 요리와 아주 닮아 있었으니까.

하와이의 관광지 요리로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그 요리는 대충 이러한 구성이었다.

간장에 절인 참치와 여타 채소 따위를 얼기설기 다져서 탁구공 사이즈 정도로 반죽하고, 그 위에 기름 없이 소금을 뿌려 살짝 볶은 쌀알을 튀김옷처럼 입히고 그것을 그대로 튀긴다.

그다음은 마치 탕수육의 탕수처럼 달콤하고 고소한 소스를 뿌려 완성하는 요리.

저 파인애플과 파파야로 만든 소스는 당시 그 포케 라이스 프라이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가장 인기가 좋았던 집의 특제 소스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이래저래 조금 더 개량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저 정도면 거의 원전이나 시초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과거로 돌아오니 이런 일이 다 있다. 설마 그런 인기 요리의 시초를 보게 될 줄이야.

'조금만 더 발전하면 금방 내가 아는 수준에 닿겠어.'

아마 원래 시대보다 2~3년 정도 이르게 파도를 몰고 올지도 모르겠다.

허 참. 세상은 넓고 대단한 요리사는 많은 법이었다.

"그나저나 중국 쪽 분위기 장난 아니네."

중국 쪽 선수석은 그야말로 살인 현장이라도 되는 듯 싸늘했다. 쥐 죽은 듯 고요하다고 해야 하나. 그 경우에는 살인殺人 현장이 아니라 살서殺鼠 현장이겠지만.

그야 뭐 승률이 훨씬 높으리라 생각했던 종목에서 지면 조금은 분위기가 다운되는 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저건 좀 너무 다운된 거 아냐?'

너네 분위기는 얼마나 다운됐는지 조금만 더 있으면 지층을 뚫고 맨틀로 파고들겠다!

그 아저씨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나름 젠틀한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방송만 나가면 사람이 변하더라고. 요리할 때는 그것보다 더 무서웠지만.

어쨌든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시선을 내리깔고 옴짝달싹 못 하는 개인전에 나왔던 선수와, 그런 그를 놔두고 저희끼리 진중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다른 사람들.

꼭 따돌리는 것 같은 모양새에 좋은 말은 나오지 않는다. 거 사람이 좀 질 수도 있지 대놓고 저렇게 대하면 쓰나.

'그런데…….'

그들의 눈빛이, 뭔가 묘하다.

분명 대화는 서로와 하고 있는데 시선은 서로를 향하지 않는다.

얼굴은 마주대고 있지만, 눈동자가 마주치지 않는다고 할까.

꼭 풀을 뜯으면서도 사방을 경계하는 초식동물 같은 분위기.

'…… 설마.'

정말로 뭔가 저지를 셈인가? 그래서 작당모의를 하는 거야?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스피커에서 튀어나온 MC의 외침이 내 고막을 흔든다.

"시합 종료! 첫 번째 개인전의 득점은 미국팀이 차지합니다!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미국팀! 그리고 중국팀! 다음 시합을 시작하기 전 휴식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곧 시작될 다음 경기! 놓치지 말고 지켜 봐주시기 바랍니다!"

분위기가 요상해지기 시작한 걸 느낀 MC의 컷.

좋은 판단이라고 해야 할까. 마침 딱 괜찮은 타이밍이었다.

'…… 이럴 땐 직접 발로 뛰는 것만큼 괜찮은 게 없지.'

휴식시간 개시 선언에 맞춰 자리를 일어나는 사람들.

그 인파 사이에 섞여 나는 조심스레 행사장 바깥으로 몸을 빼낸다.

해가 일찍 저물기 시작한 탓에 살짝 붉은 기미가 번진 겨울철 하늘.

쌀쌀한 날씨는 옷을 싸매기에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안경 ok, 목도리 ok, 마스크 ok, 모자도 ok."

여기다 옷도 꽤 두꺼우니 체형으로 한눈에 들킬 일도 없겠지.

"좋아."

스파이 첩보 무비나 한번 찍어볼까.

***

도쿄돔의 관계자용 통로. 그중에서도 선수 대기실로 직통으로 이어진 출입구는 지하에서만 들어갈 수 있다.

당연하게도 cctv로 24시간 감시 중인 출입구.

거기다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혹시 모를 잡음을 피하기 위해 경비 인력이 출입구를 지키고, 그들을 지나쳐도 통행증이 없으면 들어가지도 못한다.

"물론 나한테는 상관없는 이야기지."

마! 내가 남이가! 내가 여기서 스테이지도 서보고! 인터뷰도 하고! 마 다 했어 인마!

내가 머리 빡빡 민 암살자도 아닌데 굳이 어렵게 들어올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냥 대기실에 놓고 간 게 있는 것 같아서 잠시 살펴보러 왔다고 말하니 스무스하게 들여보내 주더라.

출입부터 시작해서 목적지 도착까지. 나는 그야말로 순풍을 탄 배처럼 무엇 하나 어려움 없이 목표했던 대기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국팀 대기실. 여기구나."

일본어로 적힌 푯말을 보고 멈춰 섰다. 사실 한국팀이 원래 사용하던 대기실은 다른 방향이었지만 그거에 딴죽을 걸 사람은 어차피 없었다.

─쓰지……!

─하지…… 썼다가……!

─애당…… 이게 다 네가……!

"어이고, 벌써부터 꽤 시끄러운데."

대기실의 방음처리가 무색하게도 문 근처에 선 나한테까지 들리는 고함.

안 그래도 지방 사투리가 섞이면 섞일수록 청해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중국어 대화. 설상가상으로 흥분해서 말의 속도까지 빨라지니 몇몇 단어 말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뭐,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미리 준비한 연장 마이크를 핸드폰에 연결하여 문틈에 대고 녹음 시작.

아무리 청해가 어려워도 반복해서 듣다 보면 대충 알아들을 수 있겠지.

혹시 갑자기 안에서 문을 열고 튀어나오진 않을까 긴장을 바짝 곤두세우고 문의 벽에 달라붙어 있던 그때였다.

─뚜벅뚜벅

"!"

내 뒤에 있는 복도 모퉁이 쪽에서 작게 들린 구두굽 소리.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바로 마이크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뒤로 돌아섰다.

긴장 탓에 배어든 땀을 닦아내고, 최대한 태연한 태도로 원래 그쪽으로 걸어가던 척.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걷던 나는, 이윽고 모퉁이 너머에서 들리던 구두굽 소리의 주인과 러브코미디 만화의 주인공들처럼 딱 마주치고야 말았다.

"아."

"어."

…… 분위기는, 러브코미디가 아니라 스릴러였지만.

"어라, 당신 혹시."

"…… 절 아세요?"

하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마주치고 말았다. 중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들려온 말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한다.

"한국팀 소속의 류찬혁 선수 아니십니까?"

"예. 맞습니다. 근데……."

"아, 저는 중국팀 감독 량웨이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시죠."

"아, 네. 량 선생님."

잠시 내게 미소를 향한 그는, 이윽고 내가 온 방향의 복도를 쓱 쳐다보더니, 이윽고 날 보며 묻는다.

"그런데, 류찬혁 선수는 왜 여기 계십니까?"

"그게……."

자, 여기가 고비다 찬혁아.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이, 그의 방향에서 보이지 않길 바라며 나는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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