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66화 (366/403)

366. 부두 리퍼블릭.-1-

일본에서의 개막전이었던 한일전은 끝내 한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물론 그 과정에 전혀 잡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일례로 마지막 인터뷰 과정에서 한국팀이 밝힌 여러 가지 트릭.

특히 도시락을 계속 데우기 위한 열선 매트 같은 요리 외적인 도구 사용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저희가 제한한 것은 어디까지나 도시락 안의 내용물뿐, 그 외적인 도구는 본 시합의 규칙이나 당위성을 어기지 않는 합법적인 것이라면 얼마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팀 또한 사용하고자 하면 사용할 수 있었을 겁니다. 다만 일본팀은 그 부분에 대해 저희에게 묻지 않았을 뿐입니다."

라는 게 제작진의 입장이었다.

자신들의 일은 판정이지, 심사를 받는 선수들에게 힌트를 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뭐, 그래 봤자 그쪽은 열선 매트가 있어도 못 썼겠지만.'

오세치라는 게 원래 차갑게 먹는 음식이라, 밥 정도라면 모를까 다른 대부분의 반찬은 조리 후에 추가로 열기가 가해지면 밸런스가 무너지니까.

그렇다고 반대로 음식을 식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처음의 선택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보아야겠지.

추운 겨울날에는 따뜻한 음식이 끌린다.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고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고? 아이고 이를 어쩌나. 난 에스프레소만 마셔서 그런 거 모른다.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라 해봤자 결국 밥통에 따땃하게 데운 고기찐빵 선에서 컷 당하는 게 현실이라 이거야.

야간 냉동창고에서 일한 다음 편의점에 들려 사 먹는 고기찐빵 맛을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말라 했다. 아는 십장 아저씨가 맨날 닳도록 하던 말버릇이다.

아무튼, 내 개인적 취향 같은 건 제쳐두더라도 온도라는 요소가 준 자극은 분명 강렬한 게 사실이다. 결과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온도 변화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메뉴를 고민하다 보니 결정된 장어 요리는 우리가 계산한 것 이상으로 제 역할을 수행해냈다.

'뭐, 웃긴 건 그다음이었지만…….'

그렇게 한일전이 끝나고 이틀의 시간이 흘렀다.

이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대회. 다른 식으로 말하면 이 대회에서 일어난 일은 온 세상 사람들이 그만큼 빠르게 접하게 된다는 뜻도 된다.

심지어 이번 시합은 시즌2 최초의 관객 평가 심사가 있기도 했고.

일본팀이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일식 승부로 졌다!

이 소식은 그야말로 발 없는 말조차 혀를 내두를 광속으로, 시간을 넘어, 온 세계에 퍼졌다.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건 엄청나게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야 나도 일본 사람이랑 한식으로 싸워서 지면 더럽게 쪽팔리겠지.'

그래서일까? 요 근래 한국 커뮤니티 등지를 통해 일본 쪽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종종 그런 글이 올라온다.

─한식에 진 거면 몰라도 일식에 진 거니까 결국 이긴 건 일식 아님?

└그렇지. 걔네도 한식으로 이길 자신 없으니까 일식 만든 거www

└한국에서 선발된 요리사가 우수하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음식문화의 측면에선 일본의 승리지.

└제일 어린 선수 인터뷰 보니까 일본 전통 료칸 후계자한테 요리를 배운 덕에 이겼대잖아.

└그럼 이 시합은 선택을 더 많이 받은 일식의 승리네!

"하, 하하."

이야, 신기하네.

그 상황이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거구나. 사람 사고의 유연성이라는 건 참으로 신비하다. 새삼 느꼈다.

물론 일본 커뮤니티에서의 그런 반응은 한국 커뮤니티 쪽에선 그저 웃음벨일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지들 나라 요리로 대결해서 져놓고 이걸 입을 터네ㅋㅋㅋㅋㅋㅋ

└ㄹㅇㅋㅋㅋ

└거기가 지들 홈구장만 아니었어도 우리 찬혁이가 더 개쩌는 요리 만들어주는데ㅋㅋㅋㅋ

└백스테이지 메이킹 영상 녹화본 올라왔던데 봤음? 와 류찬혁 걔 개쩔더라ㅋㅋㅋ

└숯불 기계 앞에서 장어 스무 마리씩 동시에 굽는 거 보고 개지렸다 진짜

└진짜 말이 안 나옴. 걔 올해로 스물 아님? 난 그 나이 때 뭐하고 있었지?

└└성인 됐다고 좋아서 친구랑 술빨고 있었겠지

└└└친구가 있냐고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냐

└└└└설마 이룬 것도 없는데 친구까지 없었음? 개등신이네 이거ㅋㅋㅋㅋ

└└└└└존나 나쁜 새끼……

이룬 것도 없는데 친구도 없는…… 회귀 전에 나 아닌가? 그렇구나. 회귀 전의 나는 개등……. 아니, 이 화제는 뒤로 잠시 미뤄두자.

어쨌든 격전 끝에 마무리된 한일전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말이 받아들여졌다지, 실상은 그렇지도 않지만.'

누군가는 받아들이지 않고 이 결과가 부당하다며 소리치고, 또 누군가는 자기 멋대로 해석한 망상으로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다.

아무리 그래 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겠으나, 한일전이라는 건 원래 그런 법이다.

정확히는 한일전만 그런 게 아니라 국가 사이에 앙금이 있는 나라끼리의 시합은 결국 그렇게 흘러가는 거라고 해야 할까.

앙금이 있는 만큼 내 자신의 이름이 걸린 것도, 딱히 국가의 커다란 위신이 걸린 것도 아닌 승부에 저토록 과하게 몰입할 수 있는 거다.

'먼젓번 영국 대 인도도 상황이 엄청 비슷했으니까.'

그리고 중국 대 대만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쪽은 국력의 차이가 너무 커서 한쪽 의견이 거의 피력되지 못한 게 큰 차이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점점 곧 있을 시합에 대한 고민에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이런 고만고만한 나라들끼리 한판 벌여도 이 정돈데 말이야……."

그건 어째서인가.

왜냐하면, 오늘 예정된 시합은 한일전 같은 거에 비하면 스케일이 정말로, 진짜 정말 엄청나게 크니까 말이다.

"미국 대 중국이라……."

얼마 전 내가 내 손으로 직접 풀어헤쳤던 그 분탕질이 다시금 떠오른다.

설마, 진짜 설마 하는 거지만 말이야.

'……또 저지르진 않겠, 지?'

아니. 아무리 또라이라도 설마 그런 짓을 하겠어? 다른 팀이랑 붙는 것도 아니고 미국팀이 상댄데.

그럼, 아무리 중국이라도 미국팀한테 개수작을 부렸다가 들키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리란 건 당연히 알고 있겠지. 대만하고는 이야기가 다르단 말이야.

거기까지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사실.

"아."

생각해보니, 쟤네가 대만팀을 담군 곳이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이었구나.

"와아……."

어쩌지 이거.

굉장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생각해보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단 지리적인 특징부터 문제가 좀 있다고 해야 할까.

이건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문제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미국의 동맹을 표방하면서도 당장 러시아 다음으로 미국의 가장 큰 가상적국인 중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애당초 미국은 지구 반대편에 있고 중국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지 않은가.

아무리 든든한 뒷배가 있어도 당장 코앞에 들이민 주먹은 무서운 법이다. 하물며 그게 단순한 주먹도 아니고 십수억 인구의 총부리여서야…….

덕분에 국가적 감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지만, 그 인구가 만들어내는 경제적 효과는 결코 간과할 수 없기에 싫어도 꾹 참고 교류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덕분에 우리나 일본이나 중국의 입김에 제법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생각해보라. 본인들이 제일 손을 쓰기 힘든 장소 중 하나인 미국에서 이미 한 번 일을 저지른 이들이, 그보다 훨씬 제 입맛대로 다루기 편한 나라에서 같은 짓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아니, 없을걸…….'

당연히 없다. 그렇게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그럼 만사 제쳐두고 그 사람부터 털어야지. 걔가 제일 수상한 놈이다.

하필이면 이 둘은 왜 또 이런 데서 붙어 버린 건지.

골치가 아픈 상태로 나는 어쨌든 다음 상대가 될지도 모르는 상대의 시합을 염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젠장, 더럽게 불편하네."

비니에 도수 없는 안경, 그리고 마스크에 목도리까지.

어제부터 바깥에 나설 때마다 계속 이렇게 차려입고 다니는 중이다.

한 번 대충 마스크에 캡만 적당히 쓰고 나갔다가 옆자리 관객한테 정체를 들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카메라가 날 잡는 바람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양희연이 말하길…….

"이 빙시나! 니는 와 가만히 처박혀 있으라꼬 충고를 해줘도 지랄인데!"

"아, 아니. 난 그냥 다음 상대가 될지도 모르는 팀을 좀 확인하러……."

"생방송 한다 안카나! 눈이 삐꾸가? 리모콘 글자 못 읽나?"

"이, 일본어는 좀……."

"숫자다! 숫자라꼬! 닌 언제부터 숫자도 못 읽는 병신이 됐는데? 마, 그리고 니 일본어 잘만 읽드마? 아가리를 벌릴 때마다 구라가 나오네?"

"그…… 카메라로 보는 거랑 눈으로 직접 보는 거가 차이가 좀……."

"그 차이를 확인하는 게 니 배때기에 칼 꽂히는 것보다 중하드나?"

"아, 아니죠. 네."

"알았으면 조용히 가만히 있어라, 진짜."

"앗, 옙."

물론 말만 그렇게 하고 다시 나왔다. 이것만 보고 바로 들어가야지. 안 그러면 분풀이로 해코지하려는 사람보다 양희연 손에 먼저 죽겠다.

'이번엔 진짜 안 들키게 조심해야지…….'

숨쉬기 힘든 갑갑함까지 어떻게든 참아가며 자리를 잡은 곳은 이번에도 중국팀의 뒤편.

물론 도쿄돔 스테이지는 마이애미 행사장과는 구조가 달라서 바로 뒤쪽에 앉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일거수일투족을 잘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후우……. 어디 보자."

도수 없는 렌즈로 끼는 김을 닦아가며 상황이 돌아가는 추이를 살핀다.

미국 대 중국의 첫 번째 개인전은 이미 시작한 상태였고, 거의 마무리에 들어가는 상황으로 보였다.

'개인전 주제는……. 과연.'

네이티브 푸드. 향토요리인가.

'코인 토스는 중국팀 쪽이 진 건가?'

향토요리란 주제는 중국팀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주제다. 아마 주제를 고른 건 중국팀 쪽이겠지.

미국의 역사는 대략 200년. 향토요리라는 무언가가 발전하기에는 상당히 짧은 시간이니까.

그에 비해 약 4000년에 달하는 중국 역사 속에서 탄생하고 스러진 향토요리는 대체 얼마나 많겠으며, 거기에 더해 여태껏 살아남은 향토요리는 얼마나 맛있는 요리겠는가.

'그야 무조건 자기나라 요리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향토요리는 본인이 나고 자란 지역의 요리를 가장 깊게 이해하고 잘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중국 팀 쪽은 저번에 나왔던 그 사천지방 요리사.'

그리고 미국 쪽은…….

"와오."

나는 잠시 눈을 크게 뜨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팀의 자리에 선 요리사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컸다.

엄청나게 크고, 두꺼웠다. 그건 그야말로 근육의 덩어리였다.

거의 내 세 배는 될 것 같은 상완근. 드러난 팔뚝에 빈틈없이 새겨진 화려한 문신.

키가 거의 2미터는 되는 게 아닐까 싶은 남자가, 아주 조신한 손놀림으로 요리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사모아인?"

저 특이한 모양새의 타투나 피부색 등을 보면 아마 맞을 터.

체구와 행동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잠시 눈을 빼앗겨 확신하지 못했지만, 특징적인 모습을 살펴보고 있자니, 대충 느낌이 오기 시작한다.

"심사단은……. 셋 다 유럽인이네."

미국팀으로 참가했다면 저 요리사는 하와이 출신의 사모아인일 것이고, 거기에 더해 상대는 사천 요리사. 심사단은 전부 유럽인…….

'……이거, 해 볼만 한데?'

미국과 중국의 첫 번째 대결은, 점차 내 예상을 벗어난 방향으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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