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57화 (357/403)

357. 시간의 마술사.-4-

"말도 안 돼."

유이치가 기함을 터트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 외에 다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요리에 있어선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가리지 않고 겪어본 유이치에게도 지금 그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상식 바깥의 사태였으니까.

'10분이다. 고작 10분이란 말이다.'

조림 요리란 양념국물에 재료를 넣고 오랜 시간 끓여 만드는 요리. 그렇다. 기본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항이 '상식'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완성! 류찬혁 선수가 완성을 선언했습니다! 빨라요! 너무 빠릅니다!"

유이치는 진심으로 MC의 외침에 공감했다. 분명 자신의 요리보다 한참 늦게 불 위로 올라간 요리가 훨씬 먼저 완성되다니?

'저 요리는 분명 닭날개 조림일 텐데.'

최초 유이치가 추정한 예상 소요시간은 앞으로 약 20분.

그 20분의 시간이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땅으로? 하늘로? 설마 저 소년이 시간을 앞당기는 마술이라도 부렸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요리는 정성이니, 요리는 예술이니 하는 이상론자가 많은 이 업계지만 유이치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안다.

요리는 과학이다. 화학적 변화. 단백질의 변형, 지방과 탄수화물의 분해, 염도와 당도, 산성과 알칼리성에 좌우되는 순수한 이과적 논리를 기반에 두고 예술성이라는 한 떨기 꽃으로 장식한 지식의 탑이다.

그 과학에 마술 같은 미신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유이치는 심사를 받기 위해 나서는 찬혁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말하기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한마디.

그러나 유이치는 그런 자신의 생각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믿었다.

'채소는 덜 익어서 아삭거릴 테고, 닭날개는 뼈에 붉은 핏기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게 분명해. 껍질은 덜 익어서 질길 테고, 살에는 간도 배지 않았겠지.'

억측이 아닌 당연한 관측이었다. 음식이 익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충족하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찬혁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

아니, 찬혁뿐만 아니라 삼류라고 하더라도 요리사 딱지를 단 사람이라면 누구든 작금의 상황에 의문을 표할 것이다.

고작 음식을 빨리 제출하겠다는 이유로 미완성 음식을 제출한다? 제정신이 박힌 요리사라면 결코 하지 않을 짓이니까.

"흠."

유이치의 의심 가득한 시선 저편에서 찬혁의 심사 준비가 끝났다.

커다랗고 두꺼운 냄비에서 요리를 꺼내 플레이팅을 마무리하는 찬혁. 유이치는 접시 위로 장식되는 요리의 면면을 상세히 살폈다.

가장 먼저 꺼낸 것은 국물.

바닥에 아주 얕은 단차가 있는 접시 위로 무명천을 덧댄 채에 거른 조림 국물을 붓는다.

닭의 뼈나 지방, 연골 등에서 나온 콜라겐과 설탕이 더해져 제법 끈적임이 느껴지는 선명한 적갈색 국물. 접시 위로 균일하게 깔린 국물이 마치 루비로 만들어진 호수처럼 빛을 반짝인다.

'이상적인 농도야.'

조림의 국물은 너무 묽어도, 너무 되직해도 안 된다. 양념이 재료에 너무 덕지덕지 묻어나오면 보기가 안 좋을뿐더러 간 조절에 방해가 되고, 반대로 너무 양념이 묽어 쉽게 흘러내리면 맛이 밍밍해지니까.

조림 요리에 능숙하지 않은 이라면 곧잘 저지르는 실수.

그러나 찬혁의 닭날개 조림은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유이치가 보기에도 딱 이상적인 수준의 농도로 완성되어 있었다.

'으깬 고기와 뼈 탓에 농도를 확인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

놀랄 부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다음 냄비에서 나온 재료는 각종 채소.

당근과 감자, 무, 고구마 등의 야채. 가니쉬로는 제법 보편적인 재료였지만, 놀라운 것은 그 형상이었다.

"오오, 이건……!"

"꼭 처음부터 이런 모양이었던 것 같네요!"

"기계로 깎아도 이렇게 균일하고 매끄러운 모양은 안 될 겁니다!"

구의 형태. 한입에 쏙 들어갈 것 같은 직경 2cm의 야채구슬!

직접 손으로 깎아낸 것이라곤 믿겨지지 않을 만큼 모든 구체의 크기가 완벽히 균등하고, 또 매끄럽다. 마치 이제 막 성형을 마친 유리구슬 같았다.

"……!"

유이치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림뿐만 아니라 재료를 넣고 오랜 시간 익혀야 하는 대다수의 국물요리에서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재료의 형태는 다름 아닌 구체.

숯불에서 고기를 구울 때 고기의 끄트머리가 가장 먼저 타듯이, 재료에서 각이라는 것이 사라질수록 재료는 균일하게 익는다.

그리하여 세계의 요리사는 재료에서 가장 먼저 모서리를 깎아낸다. 예각을 직각으로, 직각을 둔각으로. 그리고 끝에 이르러 둔각을 무각으로.

샤롯, 올리베트, 캐럿비시 따위의 기법은 전부 그 중간과정일 따름이다.

'하지만……!'

이상이 어째서 이상이겠는가. 상상想으로 닿을 수 있는 최선의 경지理라 하여 곧 이상理想.

실제 현장에서 저토록 구의 형상에 집착하는 곳은 없다. 그럴 솜씨도, 쏟을 시간도 부족하니까.

'오래 걸린 게 아니었어.'

어쩐지 요리의 진도가 느리게 보이던 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은 유이치가 이를 악문다. 모든 채소를 저렇게 손질했다면 속도가 느려지는 게 당연.

오히려 저런 공정을 그만한 시간 안에 해낸 것이라면 찬혁의 작업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유이치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동안, 찬혁은 접시 한구석에 모아놓은 동그란 채소 옆으로 이제 막 꺼낸 닭날개 조림을 단정하게 기대어 정리한 뒤, 파래가루를 뿌려 단조로운 색상을 투톤으로 장식함으로서 준비를 마쳤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닭날개 적된장 조림입니다."

유이치가 마른침을 삼킨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맛이 있을 수 없는 요리.

"……."

하지만 어째서일까. 유이치의 눈에는 찬혁의 요리가 음식의 형상을 한 폭탄처럼 보였다.

한 번 터졌다간 끝도 없는 폭풍을 일으킬 거대한 폭탄처럼.

***

"으음, 그럼……."

"시식을 시작해볼까요?"

"예. 그럽시다."

심사가 시작되자 심사단은 어딘가 떨떠름한 얼굴로 식기를 집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요리를 만들기보다 먹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그들이라지만 기본적인 요리의 지식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올바른 취식을 위해선 조리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그들의 조리에 대한 지식은 어중간한 요리사 이상의 풍부함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눈앞에 있는 이 요리가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완성된 요리가 아님을 알았다.

맛은 고사하고 자칫 잘못하면 덜 익은 요리를 먹을 수도 있는 노릇. 미식을 업으로 삼은 그들이기에 그런 경험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꿀꺽

"……."

"…… 흐, 흐흠."

"……."

어디선가 울린 군침 삼키는 소리에 세 사람이 서로에게 눈짓을 보낸다. 한 방향에서 들린 것 같기도 하고, 반대 방향에서 들린 것 같기도 했으며, 혹은 제 목에서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사실, 그들도 깨닫고 있었다.

군침을 삼킨 건 서로 마찬가지라는 것을.

'대체 무슨 놈의 향기가…….'

'적된장, 간장이 눌어붙은 향기가 진동하는구나.'

'조미료와 향신료 배합을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고풍스런 향이 나는 걸까?'

적된장의 구수한 보리내음이 섞인 달큰짭짤한 향, 간장과 맛술의 미묘한 누룩내, 살짝 두른 참기름의 고소한 풍취. 그리고 묘하게 피어오르는 매콤한 향기로 버무려진 압도적인 닭의 존재감.

만약 사람이 요리가 아니라 향을 먹고 사는 생물이었다면 그들은 이미 눈을 까뒤집고 졸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황홀하리만치 '맛있는' 냄새.

그것은 아까까지만 해도 심사단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꺼림칙한 감정을 단박에 부숴 버렸다.

"향부터가 엄청나네요."

"된장은 콩을 쪄서 발효시켜 만드는 조미료죠. 당연히 향이 굉장히 강하지만, 적된장의 경우에는 보리를 사용해 만든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짠맛이 덜하고 단맛이 조금 더 강하죠. 향 또한 특이합니다."

"다만 된장은 향미가 아주 강한 조미료인 만큼, 잘못 사용하면 다른 재료의 존재감을 덮어 버리기 십상이죠. 하지만 이건……."

"예. 닭과 버섯, 파와 생강, 술, 후추…… 복합적인 향이 굉장히 잘 느껴집니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아주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요. 향만 맡았을 뿐인데 잘 훈련된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을 본 기분이네요."

─오오…….

심사단의 일관된 호평에 관람석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인다. 예상하지 못한 찬혁의 쾌진격. 그것을 반기지 못하는 사람이 물경 수천을 넘었기에 생긴 반응이었다.

그 대항적인 분위기에 휩쓸렸는지, 이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심사단이 입을 연다.

"하지만 향이 음식의 전부는 아니죠."

"분명 시간이 모자랐을 음식……."

"맛이 향을 따라갈 수 있을지. 이번 대결의 승패는 거기에 걸린 것 같네요."

찬혁에게는 불행하게도 그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아무리 냄새가 좋아도 맛이 없으면 그건 빵점 요리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찬혁의 얼굴에는 티끌만 한 불안조차 없다. 자신의 요리가 완벽하다 믿는 신뢰만이 가득할 뿐.

과연 그것이 자신일지 자만일지. 아리송한 심정으로 심사단이 접시에 식기를 향했다.

조림의 취식은 크게 세 단계 정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국물, 둘째는 각 재료, 셋째는 다양하게 섞어서.

그 순서에 따라, 심사단은 가장 먼저 소량의 국물을 떠 입에 머금었다. 조림의 베이스가 되는 풍미를 파악하고, 이 풍미가 얼마나 제대로 재료에 배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엇."

"오오……!"

"이건……."

그러나 심사단이 국물을 입에 머금은 그 순간. 그들은 저희에게 주어진 파악과 평가라는 맡은 바 임무마저 잠시 망각할 만큼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야 말았다.

"이게, 무슨……?!"

"이게 고작 10분 동안 끓인 국물이라고……?"

"말도 안 돼!"

국물이라 함은 끓으면 끓을수록 여러 맛이 하나로 녹아드는 것. 오래 끓인 국물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일정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점점 맛이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서로 다른 조미료가 하나의 국물에 완벽하게 녹아들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적지 않다.

반대로 말해 그 시간이 모자라면 국물은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 채 따로 놀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건 달라요."

"국물에서 따로 노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감칠맛과 농축된 향도 어마어마하지만, 우선 맛이 확실한 하나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삼고 있어요!"

심사단의 놀란 목소리를 들은 찬혁의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굽는다.

"흐흐."

심사단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겠으나, 단 10분 만에 저만큼 다양한 조미료가 하나의 구심점을 갖고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각 조미료가, 저렇게 끓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의 확고한 구심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쉽게 알아채면 내가 섭섭하지.'

그 구심점이란 바로 국물 양념의 베이스가 된 적된장.

정확히 말하자면 적된장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인 '보리'였다.

적된장은 보리누룩을 재료로 만들어진 된장.

거기에 더해 첨가한 재료는 보리로 만든 보리간장과 보리에서 추출한 엿기름 등등.

타지에서도 같은 고향을 가진 사람끼리 곧잘 뭉치게 되듯이, 보리라는 공통점을 가진 서로 다른 조미료 또한 짧은 시간 만에 쉽게 하나로 뭉쳐 조화로운 맛을 내게 된 것이다.

'그게 다가 아니야.'

찬혁은 육수를 낼 때에도 일부러 다시마 중 가장 하품인 백다시마를 사용했다.

백다시마는 다시마의 겉면을 전부 긁어내 사용한 뒤 마지막에 남은 찌꺼기 같은 것이지만, 그 대신 외부에서 글루타민의 용출을 막는 방어기제가 전부 사라진 탓에 단시간에 감칠맛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최적의 재료였다.

시간.

오로지 20분의 시간을 뛰어넘는 기적을 실현하기 위한 온갖 기책.

그 기책의 결과물을 최초로 몸으로 느낀 심사단이, 비로소 찬혁의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누군가 그랬던가. 치타는 여유가 있기에 웃으며 자리를 지킨다고.

찬혁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달리는 것이다. 시작부터. 오로지 전력으로.

그게 이 남자가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