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 도쿄 리유니온.-2-
"너, 왜 여기 있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에 잠깐 반가운 표정을 지었던 녀석은 순식간에 인상을 구기며 내게 되묻는다. 종종 봤던 쌈닭이 되기 직전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진심? 두 달 만에 처음 만났단 놈이 할 말이 정말 그게 다가?"
"아니, 어……."
내가 봤을 때 상식이 박힌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나랑 비슷한 반응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이게 보통인 거 아닐까?
그러나 양희연은 내 '보통'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여전히 쌈닭 직전의 쌈병아리 같은 표정을 짓고선 날 노려볼 뿐이었다.
아마 이런 내 생각을 알면 미친 듯 화를 낼 것 같긴 하지만. 솔직히 워낙 키가 작은 녀석이라 키 차이만 20cm를 넘어가는 우리다. 아래쪽에서 그런 식으로 노려보면 누구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리라.
"……."
"응? 진짜냐고."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간 이 녀석이 언제 돌변에서 날 들이받을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두 손을 올려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겠으니까 그만해 좀.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지금은 내 봐 준다."
"봐주는 거냐……."
이쪽이야말로 져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내 어처구니없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희연은 '정말 못 써먹을 녀석일세~' 싶은 얼굴로 웃을 뿐이다.
표정이 너무 건방져서 열 받는데, 이거 내가 정상 맞지?
꿀밤이 마려워지는 표정을 지은 녀석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내야 잘 있었다. 닌 뭐 잘 지내제? TV 보니께 안 물어봐도 될 거 같드마."
"그래. 덕분에 잘 지낸다."
"알았음 됐다!"
콧김 뿜어내지 마라. 진짜 충고하는데 한 번만 더 했다간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 전해질 리도 없이, 내 팔뚝을 찰싹찰싹 치며 날 옆으로 밀쳐낸 녀석이 날 대할 때와는 일변한 태도로 두 손을 모아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일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안영길 님, 이영율 님, 유동건 님, 차윤구 님. 여러분의 안내를 맡은 카츠라기 여관의 양희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아니, 야. 이보세요.
나 대할 때랑 태도가 너무 다른 거 아니야? 나도 일단 손님인데요.
그런 불평을 털어놓을 새도 없이 인사를 받고 고개를 든 양희연은 날 제외한 우리 일행을 끌고 이미 공항 출구를 향해 걸어나가고 있었다.
"하……."
이건 뭐 사람 차별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잠시. 결국 나 또한 그 뒤를 따라 걷는 것 외엔 방도가 없었다.
이 외국에서 미아가 되는 건 사양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마음속에선 여전히 '쟤가 왜 여깄지'하는 의문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
양희연을 따라 공항을 나서니, 공항의 도로 앞에는 총 세 대의 검정색 택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도 이런저런 택시가 있지만 이렇게 검게 도색한 놈은 상당히 비싼 요금을 받는 고급 택시일 터.
그런 걸 용케 세 대씩이나 미리 준비해 둔 모습에 놀라기도 잠시, 앞서 걸어가 기사들에게 무어라 설명을 마친 양희연이 우리에게 돌아와 말한다.
"트렁크에 짐을 넣어주시고 뒷좌석에 탑승하시면 됩니다. 저까지 합쳐 여섯 분이시니, 두 분씩 나눠서 탑승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고선 내게 손가락을 까딱까딱. 눈이 '넌 나랑 같이 타'라고 말하고 있기에,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행선지는 미리 설명해뒀으니 기사님께 따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목적지까지 모셔드릴 겁니다. 시간은 40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탑승 중 도쿄 시내를 구경하시면 더욱 즐거우시리라 생각합니다."
뭐랄까, 평소 보던 녀석과 너무 달라서 살짝 얼떨떨한 느낌이 든다.
그 정도로 양희연은 제게 주어진 안내원이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고 있었다. 시그니처 같이 느껴지던 사투리도 거의 쓰지 않았고, 몸가짐은 이제 막 전입한 이등병처럼 각이 쫙 서 있다.
'나한테 하는 태도만 빼면 다른 사람인 줄 알았겠어.'
진심을 말하자면 나한테 저렇게 예의를 차린답시고 대했다면 오히려 난처했을 것이다.
왜, 가끔 그런 것 있지 않은가. 평소 '아들~'이라거나 '찬혁아~'라고 부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류찬혁'이라고 풀네임을 박으면 머리칼이 곤두선다던가 하는 거.
아마 그거랑 비슷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차라리 지금 같은 태도가 낫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양희연의 안내에 따라 택시에 짐을 넣은 뒤 얌전히 뒷자리에 앉았다.
우리들의 택시는 순서로 따지면 가장 뒤쪽의 택시로, 맨 후미에서 올바른 경로로 가기 위해 이 택시에 탔다는 게 양희연의 설명이었다.
교장 선생님과 이영율 셰프가 탄 차가 앞서 출발하고, 그 뒤를 따라 차윤구 셰프와 유동건 사장님이 탑승한 택시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뒤를 따라 출발한다.
서서히 증가하는 가속도에 맞춰 시드에 몸을 맡긴 채 고개를 돌려 양희연을 바라봤다.
"아니, 그래서 진짜 어떻게 된 거야?"
"? 뭔가 궁금하신 게 있으신가요, 손님?"
"진짜 하지 마 그거. 소름 끼친다."
"이노마가 못 하는 말이 없네, 확 뒤질라꼬."
"그래, 그게 너답다."
아주 손바닥 뒤집듯이 태세를 바꾸는구나.
"내는 좋아가 이카고 있겠나. 공석에서 사투리 쓰면 안 된다 카니까 이러제. 내 지금 알바 중이다."
"알바?"
"응. 삼촌네에서."
"삼촌이면…… 성 셰프 형제분이 하는 여관인 거야?"
"정확히는 엄마 동생이랑 할아버지가 세운 도쿄 분점이다."
"허."
대체 왜 여기 있는 건가 싶었더니, 마침 우연히 도쿄에서 알바 뛰던 중에 우리랑 만난 거였나?
"우연? 뭔 소리고. 어떤 정신 나간 년이 좋은 오사카 두고 도쿄까지 와가 이 쌩난리를 하고 자빠진다꼬."
"우연이 아니라고?"
"하모. 애초에 내도 여기 교장 선생님이 연락하셔가 온 거다. 내는 오히려 니가 모르고 있는 게 이상하다."
아니 잠깐. 그럼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인맥이 이거였어?
그러곤 나한테 일부러 아무 말씀도 안 하셨던 거야?
뒤통수를 강타하는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아니, 뭐 대단한 걸 숨기신다고 이런 준비를…….
"아니 그것보다, 교장 선생님이 번호를 갖고 계셨어?"
"몰랐나? 왜, 니랑 부산 가가 한 따까리 하고 온 다음에 대회반 생각 없나 물어보시더라."
"…… 진짜?"
"마 그럼 구라겠나. 내는 됐다꼬 했는디, 그럼 번호라도 갖고 있으라 캐가 갖고만 있었다. 진짜 전화한 건 요번이 처음이다."
해외 통신요금이 무섭지도 않은지 오래도 수화기를 붙잡고 계시더라며 양희연이 고개를 저었다.
정작 난 뜬금없이 밝혀진 진실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지만, 그 허탈감과 당황스러움을 어떻게든 삼킨 뒤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 더 건넸다.
"근데 너, 오사카 대학 입시 쳤다며. 그건 잘 됐어?"
"하? 그건 니가 또 우에 아는데? 혹시 엄마야가 말했나?"
내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녀석은 또 엄마가 괜한 소릴 하고 다닌다며 짜증을 부린다.
"엄마야야 뭐 맨날 그런다 치고, 니는 그게 궁금하나?"
"그야, 뭐.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지."
"와? 뭐야, 망하믄 놀릴라꼬?"
"…… 그런 놈으로 보여?"
"가끔 그래 보일 때도 있다."
…… 내가 친구 사이에 이토록 신용이 없던 놈이던가. 푹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친구 잘 되면 좋잖아. 근데 뭐, 붙었으면 가끔은 보러 와야 할 텐데 여행비 깨나 깨지겠다 싶어서."
"…… 보러 오게?"
"그럼. 뭐 평생 안 보고 살리. 걱정 마. 군대 가기 전까진 해에 한두 번은 들려줄게. 돈도 많겠다. 현주나 철정이도 같이 끌고 와주마."
"그, 그으래? 아이 뭐, 꼭 죄다 바리바리 안 끌고 와도 괜찮긴 한데…… 아, 음. 아이. 아이다."
"뭐라는 거야. 말 좀 똑바로 해봐."
"아무 것도 아이라 캤다! 벌써 귀가 먹었나? 귓구멍을 째가 넓혀줄까?"
아니,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장난 좀 쳤다고 사람을 째려 드냐. 무서워서 살겠나.
움찔거리며 몸을 빼는 내 행동이 우스운지 작게 킥킥댄 양희연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들고 있던 작은 핸드백을 뒤적이더니 제 지갑을 꺼내 들었다.
백이고 지갑이고 상당한 명품이다. 일단 장담하건데 학생 수준에선 꿈도 못 꿀 물건이고, 지금의 나도 조금 허리띠를 조를 생각이 아니라면 살 수 없을 가격대인 물품.
'레플리카?…… 는 아닌 것 같은데.'
프랑스 파리에서 길러진 내 명품 보는 눈으로 느껴지는 미묘한 아우라. 이건 아무리 봐도 진짜였다. 뭣보다 얘가 굳이 레플리카 명품 같은 걸 사서 들고 다닐 애는 아니었고.
그러나 양희연 녀석은 그 백과 지갑의 가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갑을 꺼낸 가방을 좌석 옆쪽에 휙 던져두곤 두 손으로 지갑을 매만지며 히죽거릴 뿐이다.
"그래서, 어떨 것 같은데?"
"뭐가?"
"내가 합격했을 것 같냐고 못 했을 것 같냐고."
"…… 모르겠는데."
"후, 후후……!"
내 대답을 듣고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양희연이, 날 향해 지갑을 환히 펼쳐 보였다.
"자, 봐라!"
나 같았으면 박음질 떨어질까 무서워서 손도 못 댔을 물건을 거칠게 쫙 펼치는 그녀. 양쪽으로 펼쳐진 지갑의 신분증 포켓에, 단정한 차림으로 찍은 양희연의 증명사진이 박힌 신분증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증명사진 위에 적힌 글자. 오사카 대학 학생증이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왔을 때쯤, 녀석이 깔깔 웃으며 말을 잇는다.
"보이나! 내도 올해부터 한대생阪大生이다!"
어찌나 좋았으면 체통도 없이 깔깔 웃는 양희연이, 내 눈에 묘하게 대견하게 보여서.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녀와 닮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잘 했다. 힘들었을 텐데. 진짜 잘 했어."
놀라운 일, 당황스러운 일,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일.
이런저런 사건이 많긴 했지만. 그래, 이제 그건 아무래도 좋아질 것 같았다.
이렇게나 좋은 일이 있다면, 그 정도는 잊을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일본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나는 진심을 담아 환하게 웃었다.
"정말 잘 했어."
"니, 니……."
잠시 말을 더듬던 양희연은, 이내 내 팔을 툭 쳐내며 몸을 돌려 앉는다.
"돼, 됐다 마. 내 잘 한 걸 내가 모르겠나."
그런 양희연의 목소리에 섞인 미묘한 떨림이, 택시의 시트를 타고 내게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그 뒤, 녀석과 나는 별 대화도 없이 장장 20분을 서로 창밖만 바라보며 이동한 끝에, 비로소 우리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니, 적어도 난 조금씩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쟤가 칼차단을 박아서 그렇지.
말을 걸려던 시도가 무산될 때마다 사람이 얼마나 무안해지는지 알아?
양희연……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날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잖아요.
물론 덤비면 내가 진다. 반쯤 진지하게 하는 말이니까 무시하면 안 된다.
아무튼, 다시 택시에서 짐을 내리고 숙소 입구 앞에 모인 우리 앞에 나선 양희연은, 아까 전의 그 선머슴 같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아주 당당한 프로처럼 올곧은 자세로 우리와 마주했다.
"흐흠, 이동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습니다, 고객 여러분. 저희 카츠라기 여관 도쿄점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깊게 고개를 숙이는 양희연의 뒤로 뚫린 커다란 대문. 그리고 양옆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드높은 담벼락의 위용에, 나는 그저 전열할 수밖에 없었다.
내 학교친구가 해외에서는 도내 최상위급 재벌?
같은 우습지도 않은 문구가, 격하게 머리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