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주어작청 야어서청.-3-
찬혁이 시작한 정보전은 여러가지 의미로 찬혁이 원하는 방향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 번 지핀 불은 인터넷이라는 도화선을 통해 이어진 장작더미로 잇따라 옮겨 붙었고, 개중에는 단순한 모닥불이나 캠프파이어 선에서 끝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찬혁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했다.
'아니 잠깐만. 이거 왜 커지는 게 안 멈추지?'
당초 찬혁이 불씨를 지핀 이유는 어디까지나 중국팀의 무분별한 부정행위를 견제하여 눈치를 주기 위함.
어차피 인터넷에 떠도는 증거도 없는 찌라시에 무언가 커다란 변화가 있을 리도 없다.
찬혁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찬혁이 분명히 간과하는 사실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본인이 가진 문화이해도.
찬혁이 집중적으로 떡밥을 뿌린 커뮤니티는 대략 다섯 곳. 그 커뮤니티를 가장 주로 사용하는 국가에서 오랜 기간 직접 살거나, 혹은 그 국가에서 살던 이와 깊은 교우 관계를 가진 찬혁은 해당 국가의 역린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짓을 해야 그 나라 사람이 빡치는 지 잘 알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이탈리아인 앞에서 파스타면을 반으로 꺾어 삶는 것처럼, 그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언행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찬혁은 그런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에 커다란 재능이 있었다.
참다 참다 못 참겠으면 차라리 주먹질을 했으면 했지 말다툼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던 찬혁의 성격 탓에 여태껏 알지 못했을 뿐.
물론 그게 전부였다면 어디까지나 부정행위를 저지른 측이 공분과 의심을 받는 정도로 끝났겠지만, 하필 그 부정행위를 저지른 게 중국팀이었단 것이 문제였다.
근래 들어 급격한 팽창주의로 산 온갖 사회적 공분을 나라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밟힌 게 몇 번이던가.
각 국가 커뮤니티 유저들의 중국에 대한 반발심은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게 원인이었다.
커다란 불이 나는 데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건조한 날씨, 무성한 낙엽, 적당한 바람.
그리고 첫 화마를 불러올 불씨.
처음엔 인터넷 커뮤니티를 향해 신호를 보낼 봉화를 지필 생각에 불과했다.
그런데 하필 봉화를 피우는 이가 화력조절을 실패한 나머지, 굴뚝을 타고 튀어 날아간 불똥이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기름 젖은 숲에 정확히 떨어지고 말았다.
실수였든 고의였든, 이렇게 된 이상 결과는 뻔했다.
전세계의 커뮤니티가 불타오르고, 서로가 서로의 강 건너서 구경하는 불길이 된다.
바야흐로 대 장작시대의 개막이었다.
"…… 아니, 이게 뭔 일이래."
정작 그 시대의 첫 불길을 뗀 장본인은, 이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다른 어디도 아닌 중국 측.
특히 공식적으로는 중국팀의 해외활동 보좌 역할을 맡은 량웨이의 발등에는 단순한 불똥이 아닌 화산탄이 직격한 것과 같은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부하들에게서 소식을 듣자마자 아내에게 무어라 설명할 시간도 없이 고향행 기차에서 내린 량웨이는 비싼 통행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택시를 잡고 지부로 돌아왔다.
그나마 기차가 멀리 가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볼 수 있었지만, 고작 그 정도 다행으로 상쇄가 되리라 기대하기엔 불행의 크기가 너무나 큰 것이 문제였다.
'어쩌지? 어떡해야 하는 거지……?'
이 사건을 처음 접한 당초만 해도 이 사건은 이만큼 화력이 강하진 않았다.
위구르나 몽골 쪽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들어가는 노고를 생각하면 새 발의 피에도 못 미치는 수준.
딱 그 정도 노력으로 잠재울 수 있는 논란이었을 터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
분명 별거 아닌 사건으로 끝나야 했을 이 사건이 단순한 댓글부대나 인터넷 공작 수준으로 막을 수 없게 커져 버린 건.
처음에는 고작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조금 조회수를 끄는 정도에 불과했던 부정행위 루머를 이제는 몇몇 국가의 공영방송에서도 언급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어느 의미로 량웨이와 그 윗선의 상황판단이 잘못된 탓이었다.
물론 량웨이 또한 논란의 중심이 된 글을 읽어보았을 때는 상당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헛다리를 집은 건 물론이요 억지스런 루머도 많았지만, 그중 소수는 아주 정확한 지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량웨이는 그 글을 쓴 장본인이 이쪽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니라 여겼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인가.'
뿌려놓은 루머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중요한 것을 잡아내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고작 이 정도 루머라면 중국팀에 앙심을 품은 누군가의 근거 없는 악의적 비방이라고 둘러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렇기에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이 그의 휘하에 있는 인터넷 공작팀을 이용해 '#GFS', '#Cheating', '#Chinese' 따위의 태그를 달고 활동하는 커뮤니티 계정에 무차별적 공세를 가했다.
하지만 그게 오산이었단 사실을 당시의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찬혁이 얼마나 많은 곳에 의심의 씨앗을 뿌렸는지.
그 의심이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움직였는지.
무엇보다 량웨이는 지금 그들이 선 무대가 평소와 전혀 다른 곳이라는 걸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을 포함하여 20여 개국 이상의 방송사에서 동시 후원하는 이 대회.
중국이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큰손임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가장 큰손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번 사건에 불만이 있는 국가는 고작 한둘이 아니었고, 그 전부를 모으면 당연히 중국 이상의 영향력을 끼치는 게 가능하다.
특히 자신들의 영역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격분한 미국이나, 그 루머에 언급된 피해자인 대만의 경우에는 더더욱 이 스캔들에 깊이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단순한 집단도 아니고 국가적 차원에서 이토록 강하게 나오는 이상 단순히 커뮤니티 내에서의 반박으로는 불길을 잠재울 수 없음을 량웨이는 직감했다.
'게다가 이젠 이쪽을 틀어막는 것도 힘들어.'
황금방패라는 것이 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중국의 인터넷 차단막으로, 중국 본토의 인민이 해외 사이트에 접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다.
보통 중국 당국에서 쓸데없는 정보가 중국 내부에까지 흘러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사용하는 황금방패.
하지만 이번 사건은 커도 너무 컸다. 압도적인 정보의 홍수 앞에선 황금방패조차 기록적인 폭우 앞의 우산과도 같았다.
비가 너무 거세면 아무리 큰 우산을 써도 발이 젖을 수밖에 없듯이, 황금방패도 국내와 해외의 모든 접촉을 막아주는 방벽이 될 순 없었다.
루머를 근거로 중국을 비난하는 해외의 인파들.
거기에 대항하는 체면을 가장 우선시하는 중국의 인민들.
결렬이고 뭐고, 협상의 가능성은 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언젠가 시작되었을 다툼이 조금 더 시기를 앞당겼을 뿐.
문제는 이 과정을 통하여 조용했던 당국까지 이 사건으로 시끌벅적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단 점이다.
"량웨이 경독님, 어떡하죠……."
"……."
절망스런 부하의 물음에 량웨이는 돌려줄 말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혈향이 입안에 퍼짐과 동시에, 턱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핏방울의 감촉이 느껴졌다.
깊은 절망감이 그를 덮친다.
이제 그와 중국팀을 감시하는 눈은 해외에만 있는 게 아니게 되어 버렸으므로.
"…… 일단, 성명문을 준비하지."
당장 할 수 있는 건 결국 하나뿐이었다.
끝까지 부정하는 것.
욕이야 먹겠지만,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자국민의 신뢰까지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
"이러자고 한 짓은 아니었는데……."
아니,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바라고 한 일이 맞던가?
상상 이상으로 커져 버린 일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새해가 시작하고…… 아니. 정확히는 내가 여행을 빙자한 분탕 무사수행을 끝마친 뒤로 당장 시합이 열릴 나라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 이 순간까지.
기껏해야 일주일 남짓 만에 이 사건은 엄청난 크기로 제 몸을 불렸다.
미국, 대만, 러시아, 일본, 프랑스에선 이미 이 루머가 방송까지 탄 상황이었고, 이 대류를 놓치기 싫었던 건지 한국의 방송사들마저 이 화제를 붙잡고 연일 방송을 이어나갔다.
물론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인터넷 온갖 장소에 상주하는 음모론자들부터 시작해서 이런 화제에는 빠지면 섭섭한 사이버 렉카, 요리 개인방송인, 그 외 기타 등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사건을 언급하는 곳보다 언급하지 않는 곳을 찾는 게 더 힘들 지경이었다.
"…… 큽."
아, 실수.
선생님. 이건 제가 웃은 게 아닙니다. 저희 고양이가 웃은 겁니다. 우리 집에서 고양이는 안 키우지만요.
솔직히 예상을 한참 벗어난 반항을 끌고 있는 현 상황을 보는 나는 그저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너무 사건이 커지며 내가 적은 글이 출처고 뭐고 무시하고 이곳저곳으로 복붙된 덕분에 내가 쓴 원문을 찾기 힘들어졌다.
나한테는 호조였다. 그럴수록 내 흔적을 뒤쫓기가 힘들다는 뜻이니까.
중국은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루머의 최초 유포자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뉴스에서는 다음 시합에 앞서 성명문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더더욱 그렇겠지.
전세계의 눈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 시합에서 그들이 이기든 지든 그 시선은 사라지지 않겠지.
이기면 '또 부정행위를 해서 이겼겠지!'라는 소리를 들을 테고, 지면 '역시 치사한 짓 못 하니까 바로 나가떨어지는 거 봐'라며 흉을 볼 거다.
사람이란 게 한 번 의심이 생기면 어떤 증거가 나오든 쉽게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전문용어로 확증편향이라고 하던가?
살면서 그런 꼴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나만 해도 학폭 논란이 진화된 다음에도 계속 그 떡밥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뭐…… 이 경우 사람들의 인식을 기울게 만든 쪽이 나였으니 크게 할 말은 없지만.
때린 사람은 쉽게 잊지만, 맞은 사람은 평생을 잊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과거의 충고를 잊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과거에서 배우는 사람이고, 그것을 실생활에서 사용해내는 사람이 가르침을 진정으로 체득하여 깨우친 이가 되는 법.
내가 바로 그 깨우친 이다.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우치진 않았지만.
…… 생각해보니 불교에도 윤회에 대한 가르침이 있던가?
'…… 그거야 뭐 아무래도 좋지만.'
내가 신학을 공부할 것도 아닌데 더 신경 써봐야 머리만 아프지. 회귀하여 3년을 더 살았지만 어쩌다 돌아오게 됐는지에 대한 벼룩만 한 단서도 못 찾았고.
어쨌든, 이야기를 돌려서 생각해보자.
당장은 중국이 제 앞가림하느라 바빠 이 사건의 범인을 찾을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어차피 시간문제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바로 범인색출에 나설 테고, 만약의 경우엔 오랜 시간이 걸려 언젠가 나한테 도달할지도 모르지.
내가 만들어낸 건 여유다.
견제하여 정당한 시합을 위한 판으로 끌어내기 위한 여유.
내가 저들의 외압에 물러나지 않기 위한 힘을 얻을 때까지의 시간.
그리고 그 힘을 얻기 위해선, 당장 그들에게 쏟을 신경이 없다.
강적이자 난적인 상대가, 목을 빼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여행길이 그닥 길지 않으리란 것. 해봤자 서너 시간?
그리고 불행인 건.
그 짧은 여행을 통해 향하는 곳이, 그 상대의 소굴이라는 것.
이번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의 무대.
그 이름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가자, 일본으로."
진짜. 이러다 자칫 잘못하면 정말 똥손의 대명사로 남겠어.
그런 슬픔 섞인 한탄만이 내 속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