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46화 (346/403)

346. 권력투쟁.-4-

두 팀의 시합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시점. 나는 이때 내가 중식을 배워놓길 잘 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맴돌고 있었다.

회귀 전, 당시에는 정말 멸종 직전이던 구식 주방에서 국자와 젓가락, 집게와 뜰채로 상반신 전체를 몽둥이찜질 당해가며 몸에 익힌 전통 중식의 기초.

정년을 넘겨도 한참 넘긴 꼬장꼬장한 50년생 대만 출신 노인네와 가정사 탓에 중졸 신분으로 동네 중국집 주방 알바부터 시작해 경력만 40년 가까이 되는 목청 큰 게 자랑인 아저씨.

가게의 홀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홀 마스터이자 가게의 인사담당자인 영감님의 손녀딸, 사모님.

거기다 당시의 나와 비슷한 연배인 아저씨와 사모님의 아들딸까지.

합계 6인의 대가족이 다 함께 운영하는, 인천에서도 특히나 유명한 대규모 고급중식당.

오래 일한 건 아니지만, 기본으로 익혀둔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이른 시기에 잡부가 아닌 요리사로서 주방에 설 수 있게 됐다.

그나마도 화구와 웍에는 손조차 못 대는 말단 중의 말단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아마 그때가 전통 중식에 대해 가장 많은 공부를 한 시기가 아닐까.

어쨌든, 그런 경력 덕분일까. 나는 지금 이 시합에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인전은 일단 중국이 이겼어.'

두 팀이 준비한 요리는 양쪽 다 어디 하나 흠잡기 힘든 사천요리의 특색을 담은 훌륭한 요리였다.

중국팀은 전통식에 가깝고, 대만팀의 요리는 조금 더 퓨전이 가미된 요리라는 점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까.

곱게 다진 돼지고기를 여러 향신채와 함께 라유로 볶아 구운 가지 속에 채워 넣고 매콤한 국물에 졸인 요리를 선보인 중국팀.

건조 숙성한 오리고기를 아주 얇게 저며 채 썬 채소와 함께 매운 양념으로 볶아 꽃빵에 싸 먹는 요리를 선보인 대만팀.

분명 내가 다 침샘이 제어가 안 될 정도로 훌륭한 요리들.

이 대결에서 중국팀이 이긴 건 '매운 요리'라는 주제에 대해 빠꾸 없는 매콤함으로 승부한 중국팀과, 꽃빵이라는 방파제를 통해 보다 부드럽게 다가가려 했던 대만팀의 고객을 대하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겠지.

요리의 자체의 차이라기보다는, 주제에 대한 해석에서 승패가 갈린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생각 이상의 명승부에 제법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중식을 제법 공부했다곤 해도 평생 한 장르만 파고든 셰프에 비하면 모자란 게 사실.

단순한 염탐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경기를 통해 색다른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점까지 합쳐서 이 시합을 보러 온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뭐지?'

그런 생각은 이어지는 시합을 보고 점차 뒤바뀌기 시작했다.

두 번째 단체전의 주제는 Broth. 국물. 바꿔 말하자면 국물이 있는 요리.

이전 인도와 대결에서 나온 '탕 요리'라는 주제와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넓은 개념으로 볼 수 있는 요리다. 수제비나 칼국수를 탕 요리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국물이 있는 요리라고는 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주제에 대해 중국팀의 메뉴선택은 아주 심플했다.

새우완자를 넣은 달걀게살스프와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 그리고 행인두부라는 차게 식힌 또우장에 넣어 먹는 디저트.

'조합이 완벽한데?'

셋 다 중국 요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메뉴지만, 그 선택만큼은 아주 탁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살스프로 식욕을 돋우는 동시에 혀와 식도, 위벽에 막을 형성하여 자극적인 훠궈를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일품요리임과 동시에 애피타이저다.

훠궈는 매운 육수인 홍탕과 뽀얀 야채 육수 청탕이 칸막이로 나뉜 원앙훠궈 타입. 양고기, 쇠고기 꼬치를 따로 두되 꼬치 끝에 달린 장식으로 어떤 종류의 고기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해놓은 점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행인두부. 행인두부는 중국식 우유푸딩으로 홍콩에서도 제법 유명한 간식 중 하나다. 뜨겁게도, 차갑게도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먹는 쪽과 만드는 쪽 양자에게 제법 자유도가 높은 음식인데, 이걸 중국식 콩국인 또우장과 함께 먹는다는 발상은 하지 못했다.

'원래는 두유랑 같이 먹기도 한다지만…….'

또우장은 두유보다 단맛이 훨씬 적은 대신 풍부한 고소함과 감칠맛, 약간의 짠맛이 아주 인상적인 콩국 요리다.

보통 튀긴 빵과 함께 아침식사로 먹는 또우장을 디저트 용도로 쓸 줄이야. 단맛이 상당히 강한 행인두부와 함께 먹는다면 상당한 상승효과가 있을 터.

뭣보다 보호>  자극>  진정으로 이어지는 세 번의 단계가 아주 훌륭하다. 이 메뉴의 구성을 누가 맡았는지는 몰라도, 보통 고심해서 만든 세트가 아니리라.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부터 계속 내 머리를 스치는 이 싸한 느낌은 대체 뭘까.

뭐, 그래. 주제에 완벽히 대응할 수 있는 마리아주가 훌륭한 레시피. 만들 수 있다. 프로 딱지를 달고 수십 년. 10분 정도 생각해서 완벽한 레시피를 만드는 건 어렵지만 하라면 못 할 것도 없는 일이다.

다만 내가 걸고 넘어가고 싶은 건 어떻게 레시피를 짰느냐 하는 것보단 좀 더 근본적인 것. 바로 조리과정에서 느껴진 싸한 느낌이었다.

게살스프나 행인두부 쪽은 그러려니 싶지만, 훠궈의 조리과정을 보던 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아마 바로 뒤에서 보는 게 아니었다면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훠궈라는 요리는 육수에 고기를 살짝 데쳐 먹는 샤브샤브식 요리로,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가며 자신만의 맛을 만드는 샤브샤브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육수가 거의 완성된 상태로 제공된다는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도 원앙훠궈는 붉은 홍탕과 하얀 청탕이 한 냄비에 담겨 나가는 요리. 당연히 이 요리를 내어가기 위해선 지금 중국팀이 사용한 것과 같은 칸막이가 달린 전용 냄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의아한 점은, 중국팀이 요리를 할 때 저 전용 냄비를 따로 챙긴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조리대 아래에 있는 냄비 종류가 쌓인 찬장에서, 평범한 냄비를 꺼내 쓰듯 저 냄비를 꺼냈다.

그렇다면 저 냄비는 원래 행사장 측에서 준비해 둔 것일까?

'아니, 그럴 리 없어.'

적어도 내가 저 스테이지에서 요리를 하는 동안 저런 특이한 형상의 냄비를 본 기억은 없다. 못 보고 지나친 거 아니냐고? 설마. 난 그렇게 옹이눈이 아니다.

'애당초 중간에 칸막이가 달려 훠궈 말고는 사용처를 찾을 수 없는 냄비 따윌 왜 미리 준비해놨겠어.'

특이한 일이지 않은가? '없던 물건'을 '당연히 있는 것'처럼 사용하다니?

그것도 하필 국물 요리라는 주제에 맞춰서 말이다. 뭔가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중국팀에서 훠궈와 함께 접시에 담아 제출한 저 쇠고기와 양고기 꼬치.

오직 고기가 꽂힌 것, 내장이 섞인 것, 내장만 있는 것, 특정한 내장만 꽂은 것 등. 다양하게 종류가 나눠진 저 꼬치를 보라.

아주 세심하게도 개수가 수십 개는 거뜬할 꼬치는 혹시 먹는 이가 헷갈리지 않도록 꼬치 손잡이 쪽에 동남서북東南西北 백중발白中發 이라는 한자 장식이 멋스럽게 달려 있었다.

'아니, 이상하지 않아?'

동남서북 백중발? 저거 마작패 한자잖아.

당연하지만 저런 장식이 달린 꼬치가 미국 행사장에 있을 리가 없다. 저것도 전부 중국팀 팀원 중 한 사람이 자기 칼가방에서 자연스럽게 꺼내서 쓴 것이다.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자기 칼가방에 꼬치를 몇십 개씩 들고 다녀?'

이렇게 말하는 나도 가방에 쇠꼬치나 송곳 정도는 들어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끔 필요할 때 쓰기 위해서 한두 개 쯤 챙겨둔 거지, 저렇게 무식한 숫자를 들고 다니진 않는다.

'아무리 봐도 수상하잖아.'

분명 랜덤으로 정해질 터인 단체전 주제.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주제에 맞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조리도구를 딱딱 준비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꺼내 쓴다?

중식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또 모른다. 그런데 이걸 어째? 나는 그 중식을 공부한 놈인데.

본래 하나를 의심하게 되면 다른 것도 그렇게 된다고, 지금 내 촉은 이 시합에 뭔가 구린 것이 있다며 더듬이를 마구 까딱이고 있었다.

언제였더라. 철정이 녀석이 예전에 해줬던 일화 하나가 생각났다.

어떤 게임대회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이게 본래는 프로와 감독들이 짜고 친 탓에 거의 걸릴 가능성이 없는 승부조작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덜미가 잡히고 만 것이다.

숨긴다고 잘 숨긴 승부조작이 어째서 걸린 걸까?

그건 하필 그 승부조작 경기를 보던 검사가 그 게임의 고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 쟤 왜 게임을 저렇게 해?'하고 의심을 가진 검사가 수사를 해보니 정말로 승부조작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지금 내 기분이 딱 그 검사와 같았다.

평범한 사람은 알아채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미세한 이상 요소.

그런데 하필이면 그들을 관찰하던 베테랑의, 즉 나의 눈에 그것이 딱 잡히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요리사고, 그 사람은 검사라는 것이다.

내가 운영측에 내가 알아낸 사실을 알린다고 해보자. 그럼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우와! 그거 진짜 빼도 박도 못할 결정적인 증거네요! 바로 승부조작 혐의로 수사하겠습니다!' 라는 반응이 나올까, 아니면 '에이, 그런 것 좀 준비해왔을 수도 있죠. 잘못 본 거 아닙니까?'라는 반응이 나올까?

심지어 지금 나는 따로 영상을 찍어서 증거를 확보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게 정말 운이 좋아서 수사까지 간다고 해도…….'

우리는 안 그랬어요! 우연입니다 우연! 쟤가 뭐 잘못 본 거 아닙니까? 라며 발뺌만 해도 솔직히 내겐 어쩔 방도조차 없다.

검사에게는 수사권이라도 있지만, 나는 그냥 평범한 미성년자 요리사일 뿐이니까.

'뭣보다…….'

이렇게 말하면 좀 쪽팔리지만 나는 아직 중국인들의 공분을 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확실히 자리를 잡은 다음, 그 자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괜찮다. 난 얼마든 소신을 지켜 들이박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나 혼자라면 모를까, 17억 인구의 깽판을 상대로 나와 내 주변인들까지 커버치기엔 아직 내 힘이 모자라다.

"저 사람들이 저걸 봤어야 하는데……!"

내 시선이 자연스레 반대편에 앉은 미국팀에게로 향했다.

이곳은 다름 아닌 저들의 홈플레이스. 미국팀이 단체로 들이받는다면 뭐가 어찌 됐든 상황이 변하긴 할 터.

내 입장에서 베스트는 미국팀이 중국팀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먼저 나서서 견제를 해주는 것이겠지만…….

'반대쪽에 있으니 뭘 어떻게 알려줄 수도 없고…….'

젠장. 이렇게 있으니 더욱 실감이 된다.

'모자라…….'

모자라다. 명성이, 권력이. 힘이.

모자람을 실감한 자아가 한없는 허탈감을 뱉고, 텅 비어 버린 그 자리에서 란초 셰프의 말이 맴돈다.

'인간의 욕망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힘. 그것이 권력.'

그리고 이 대회는, 그 권력을 얻기 위한 자리.

란초 셰프가 승리 선물이라며 내게 안겨준 그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내 뇌리를 강타했다.

'…… 이기고 싶다.'

심판의 호령에 의해 종료된 중국 대 대만의 시합. 결국, 승리는 중국의 차지였다.

중국팀의 국기가 전광판에 내걸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

"봤죠, 보스?"

중국 대 대만의 경기가 끝난 뒤. 미국팀은 승패가 갈리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그리하여 숙소로 돌아가는 길목. 당장 미식축구의 라인맨으로 서도 이상할 것 없을 풍채를 자랑하는 경박한 인상의 남자. 알버트의 말에 보스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중국 놈들, 매수한 건 행사장 진행요원만 있는 게 아니었나 봅니다."

사실, 미국팀은 이미 중국팀이 무언가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까지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중국팀의 요리를 제대로 관찰하지도 않은 그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진행요원 중 매수를 당할 만한 중요 업무를 맡은 이들을 이미 그들이 먼저 매수했기 때문이다.

딱히 미국을 위해 유리한 일을 하란 지시를 내리진 않았다. 지시의 내용은 '혹여 다른 팀에서 자신을 매수하려 했다면 그 정보를 귀띔해줄 것.' 그것뿐이었다.

그 덕분에 중국팀이 앞서 무슨 짓을 했다는 건 이미 아는 상황.

그러나 중국팀의 술수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놈들, 설마 대만팀 팀원도 매수했을 줄이야."

미국팀은 보았다. 대만팀 중 한 사람이 다른 팀원이 보고 있지 않을 때를 틈타 이미 완성된 요리에 추가로 조미료를 넣는 모습을.

요리를 잘 모르는 사람은 알 수 없을, 잘 알더라도 미국팀과 같은 앵글이 아니라면 시인하지 못할 부정행위.

그 대만팀의 요리사 또한 중국팀에게 매수된 것이 분명했다.

"어떡하실 겁니까, 보스?"

"……."

그들도 증거를 따로 확보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바로 운영위원회에 이 사실을 회부한다면, 그 즉시 대대적인 수사가 열리겠지. 이곳은 그들의 홈플레이스였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보스라 불린 남자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놔둬."

"예? 하, 하지만 보스."

"어차피 그 두 팀 중 객관적인 실력으로 더 위험한 쪽은 대만이었어. 중국팀이 그 많은 부정을 저질러놓고 질뻔한 것만 봐도 모르겠나?"

"그…… 렇긴 합니다만……."

흥. 코웃음을 친 그가 말을 잇는다.

"기왕 못난 놈이 억지로 올라와 준다는데 뺄 건 없지.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야."

만약 다음 심사에서 또 부정을 저지르는 낌새가 보인다면, 그때야말로 움직이면 된다.

그들은 그럴 능력이 있다. 다름 아닌 미국의 대표였으니까.

"가자."

"아, 예."

남자의 재촉에 일행이 걸음을 서두른다.

해질녘의 노을. 점점 까맣게 물들어가는 하늘.

매연으로 별빛 하나 쉬이 보이지 않는 하늘처럼, 이 대회 또한 점차 까만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알버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찝찝한 심정을 억지로 씹어 삼키는 입안이 텁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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