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45화 (345/403)

345. 권력투쟁.-3-

당연하지만 중국과 대만의 대결을 염탐하러 온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시선이 너무 쏠려서 정체가 들통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지금은 따로 앉았지만, 나와 함께 참관한 우리 팀 어르신들도 있고, 오늘 시합 내내 관객석을 힐끔거리다 발견한 다른 팀의 팀원도 몇 사람 있었다.

'아마 더 있겠지…….'

우리처럼 괜한 주목을 끌기 싫어 변장을 한 팀도 있었고, 오히려 그런 주목이 반가운지 대놓고 얼굴을 드러내고 뭉쳐 다니는 팀도 있었다.

전자를 꼽자면 일본팀.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팀이었다.

이게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뭐 아무튼. 비 시드권 팀이라곤 해도 충분히 강팀으로 평가받는 독일을 바로 방금 이기고 올라온 미국은 작금의 미국인들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영웅이고, 스타였다.

심지어 이 장소는 미국팀의 홈플레이스가 아닌가. 오죽하면 저들이 단체로 관객석에 입장할 때 들린 환호가 중국팀이나 대만팀이 입장할 때 들린 환호보다 클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아무튼, 방금 막 시합이 끝낸 그들까지 지친 몸을 이끌고 이 자리에 나온 것도 우리와 별다를 거 없는 이유일 터.

그들이 마침 내가 앉은 곳 반대편에 앉아준 덕에 관중들의 이목이 그쪽으로 쏠린 것만큼은 환영할 만했다.

'그런데…….'

미국팀은 내가 앉은 곳 반대편에 앉았다.

내가 앉은 곳은 중국팀의 후방이므로. 즉, 미국팀이 앉은 자리는 대만팀의 바로 뒤. 관중석이 스테이지를 포위하듯 위치한 미국 행사장 특유의 형태가 아니었으면 나오지 않는 각도다.

말하기에 앞서 염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 수 있다시피, 기본적으로 내가 다른 팀의 시합을 보는 목적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함이다.

그건 미국팀도 다르지 않을 터. 아니, 오히려 이 시합으로 다음 자신들의 상대가 정해지는 만큼 이 자리에 모인 어느 팀보다도 가장 정보를 원하는 건 다름 아닌 그들일 것이다.

하지만 길어봐야 고작 세 번에 불과한 시합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라고 해봐야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다.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나 팀원 사이의 연계. 기본적인 솜씨 정도는 알 수 있겠지.

맛도, 향도, 소리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각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한계란 알만한 법이다.

'근데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라.'

눈으로 보는 정보는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습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전혀 다르다.

포수나 타자의 입장으로 투수의 공을 받으면 저 공이 얼마나 빠른지를 실감할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면 게임 전체의 흐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같은 경기라도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렇다면 나나 미국팀이 잡고 있는 포지션에선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조금 더 자세한 실력을 알 수 있지.'

조리대 앞쪽에 턱이 있는 탓에 정면이나 측면에서는 제대로 관측하지 못하는 주방의 상세한 상태.

하지만 후방에서는 그들의 움직임이 훤히 보인다. 평범한 사람은 정면이나 후방이나 결국 그게 거기서 거기로 느껴지겠지만, 같은 업계에 오래도록 투신한 요리사들은 그것만으로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용하는 칼의 종류와 다루는 방법을 통해 어느 나라의 요리를 주로 공부했는지 알 수 있다.

주로 맡는 재료를 통해 주특기와 꺼리는 재료를 알 수 있다.

불과 조리기구의 사용법, 재료의 손질법, 연계에 응하는 법.

갖가지 동작을 보고 사고를 관찰하여 그 인물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

한 팀의 전력을 알아내는 데에 이 이상의 요소가 있을까?

쉽게 말해 그 팀의 후방에 앉았다는 건 그 팀을 샅샅이 파헤치겠다는 의지표명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저래선 대만팀의 요리는 잘 볼 수 있어도 중국팀의 요리과정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렇다는 건…….

"대만팀을 중국팀보다 위에 놓고 보고 있다는 거야?"

그것도 굳이 중국팀을 관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정도로 확고하게.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팀이. 이 시합의 귀추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팀이 그렇게 판단했다.

"이거…….'

아무래도 난, 봐야 할 팀을 착각하고 만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

두 팀의 대결은 생각보다 큰 잡음 없이 개시했다.

솔직히 나는 이 대결이 지금 성사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이 대회의 스폰서 중에는 분명 중국의 방송사도 있었을 터.

중국이 평소 대만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만과 함께 화면에 나오는 것 자체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게 중국이다. 애당초 그들은 대만의 국가적 지위를 용납하지 않으니까.

중국 방송사가 대부분 나라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있단 걸 생각하면 더더욱 쉽지 않은 시합이 됐겠지. 물론 대회 외적인 면으로 말이다.

대만에게 다행이었던 건, 이곳이 중국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가장 힘든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이며, 다양한 국가의 스폰을 통해 시작된 대회인 덕에 그 영향력이 한층 더 감소했다는 점이리라.

'여기가 아니라 다른 나라…… 설마 싶지만, 중국으로 대회장이 결정됐다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긴 몰라도 기쁨과 흥분이 가득한 관객들의 함성이 전혀 다른 의미로 변질되었을 수도 있단 것만큼은 확실하다.

'문제는 이 다음인데…….'

여기서 이기느냐 지느냐. 어느 쪽이 됐든 대만의 사정이 딱한 건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이겨도 뒤탈 안 생길 곳에서 이기는 게 낫지.'

짧은 생각을 이어나가는 동안, 어느새 두 팀은 코인토스를 마치고 대표와 주제 선택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흠."

대표 선출권을 뽑은 건 대만팀. 재료 선택권을 뽑은 건 중국팀이었다.

대만팀의 대표는 그들 중에서도 유독 젊은 나이의 셰프였다. 물론 젊다고 해서 나나 루이 셰프 수준이란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마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까.

50에서 60대가 평균 연령인 그들 사이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모르는 얼굴인데……."

내가 대만 요리사 생태를 잘 아는 건 아니라지만, 이런 대회에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은 다른 나라에도 제법 얼굴이 팔린 사람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 사람의 얼굴은 본 적이 없다.

'시합을 풀로 뛰어도 지치지 않을 체력을 가진 사람을 내보낸 건가?'

물론 그거 하나만 보고 승점 1점을 맡길 만큼 대만팀이 멍청하진 않겠지. 아마 남들은 잘 모르는 숨은 고수라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중국팀 쪽에서는 마찬가지로 멤버 중 비교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전적이 별로 없던 셰프가 지목됐다.

중국의 경우 시드권 국가 중 유일하게 웹플릭스로 예선전을 방영하지 않은 국가였던 탓에 더더욱 낯선 분위기가 강했다.

왜 방영하지 않았냐고? 뭐, 간단한 이유다. 애당초 중국엔 웹플릭스가 서비스되지 않으니까.

'그런 것치곤 저쪽은 다른 팀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야.'

아마 국가의 승인이 있었겠지만, 애당초 법으로 막은 걸 오로지 상부의 허가 아래 예외적 승인조치가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참…….

내가 잡담 섞인 핀잔을 뱉는 동안 양 팀의 대표로 뽑힌 두 셰프가 앞으로 나선다.

겉보기로 나이는 비슷, 실력은 미지수.

그렇다면 승패를 예측할 수 있는 요소는 당연히 주제가 될 터. 과연 중국팀의 저 선수가 어떤 주제를 고를까 궁금하던 찰나. 드디어 그들 사이에 선 심판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커다랗게 외친다.

"주제가 결정됐습니다!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 더 아메리카 스튜디오! 마지막 대결의 첫 번째 주제는!"

심판이 크게 숨을 들이켠다. 길게, 길게. 폐가 터질 듯 계속 공기를 빨아들이는 그.

행사장의 외곽에서부터 하나씩 꺼진 조명이, 마침내 스테이지 천장에만 남아 오롯이 그만을 비춘 그때, 그가 마침내 참았던 숨을 토해내며 외친다.

"A Spicy Foooood!"

…… 여기는 뭐 MC가 심판도 겸하고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쳤지만, 이내 그마저 사라지고 순수한 호기심이 자리를 대신한다.

"매운 요리라."

이건 또 한국인으로서 어그로가 안 끌릴 수 없는 주젠데.

너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 내가 코리안 파이어 치킨 누들을 볶아서 네놈 입구녕을 틀어막아 줄 테니까!…… 같은 농담을 할 때도 아니었다.

저 주제를 고른 중국팀 대표의 속내가 대충 짐작이 됐기 때문이다.

"사천 사람이구나, 저 아저씨."

매운 요리로 유명한 고장인 사천. 중국 땅 그 어디서도 사천의 요리만큼 맛있게 매운 요리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 매운 요리 같은 애매모호하고 레퍼토리가 과도하게 넓은 주제를 꺼내 들었지. 저 셰프 딴에는 사천에서 배운 매운 요리를 대만 사람이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그게 맞는 선택일까?"

글쎄.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 나는 조용히 살짝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치켜올린다.

이제 가타부타 떠벌일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는 입이 아니라 몸으로 싸워야 할 시간이니까.

***

"역시 사천 출신 맞나 보네."

아니면 사천요리를 깊게 배웠거나. 나는 중국팀 대표의 요리를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

사천은 수질이 나쁘기로 유명한 중국 내륙지방에 비해 월등히 좋은 수질과 비옥한 농토라는 천혜의 자연.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수많은 산해진미가 유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습하고 더운 기후 탓에 쉽게 음식이 부패한 탓에 보존을 위하여 과다한 향신료를 사용하게 된 것이 오늘날 사천요리의 모습이다.

저 유명한 마파두부, 마라탕, 어향육사, 딴딴면 따위의 유명한 요리의 탄생지이기도 한 사천요리의 특징은 당연히 매운맛.

저토록 능숙하게 라유를 뽑고 향신료를 볶는 등. 스무스하게 요리를 완성해나가는 모습은 분명 사천의 고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리사의 모습 중 하나다.

'자기한테 유리한 걸 골랐구만.'

하지만 말이다. 본인이 매운 요리를 잘 만든다고 상대가 매운 요리를 못 만들리란 생각을 하진 않았겠지? 대만요리는 다른 중국요리와는 상당히 차별화되는 특징이 있다

그건 바로 대만이란 나라가 만들어진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장개석과 모택동의 정치대결이 모택동의 승리로 돌아가고, 장개석과 그를 따르는 국민당 인사들은 타이완 섬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렇게 생긴 게 대만이란 나라.

그런데 이때, 대만으로 피신한 장개석 지지자들은 어느 특정 지역이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이동한 사람들이었다.

광동, 사천, 강소, 산동.

4대 요리로 이름 높은 지역의 사람들은 물론, 온갖 지역에서 몰린 사람들.

쉽게 말해, 대만이란 나라의 요리문화는 중국 전 지역의 요리문화가 타이완이라는 작은 섬 안에서 함께 뒤섞여 진화한 문화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대만의 요리사들은, 보통 서로 계파를 가르는 중국 본토의 요리사들과는 달리 특정한 선 없이 이것저것을 다양하게 배우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지금 대만팀의 대표로 뽑힌 저 셰프 또한, 틀림없이 그런 부류의 셰프 중 한 사람이었다.

중국팀 대표 못지않은 솜씨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요리를 이어나가는 대만팀의 셰프. 그 움직임을 살피니 감이 잡힌다.

"저쪽도 사천요리를 배운 티가 엄청 나는데."

이제야 알겠다. 대만팀 중에서 대표로 나선 사람이 어째서 그들 중 가장 젊은 사람이었던 건지.

그들은 희생양을 선출한 것이 아니었다.

저 셰프는, 상대가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그 주제에 능수능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신식 대만요리를 공부한 셰프였던 것이다.

'이건 진짜 모르겠네.'

서로 자신이 진짜 중화라고 칭하는 두 나라. 백 년을 넘게 이어온 아귀다툼.

그 연장선으로 시작된 이번 맞대결에 승리하여 기선을 제압하고 시작할 나라가 과연 어디일지.

이제 막 시작한 싸움은, 아직 내게 그 결과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