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44화 (344/403)

344. 권력투쟁.-2-

8강전 개막 이후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요 며칠 사이 많은 사건이 있었다. 우선 대표적으로는 우리의 다음 상대가 결정된 것을 꼽을 수 있겠지.

어차피 4강전에 올라갔으면 다음 시합에 누굴 만나든 당연한 건데 그게 뭐 대단한 사건이냐고? 아니, 그게 참 그렇지만도 않단 말이지.

그 별 대단치도 않은 사건에 쏠린 관심이 지금 어마무시하거든.

"일본이라니……."

아니 뭐, 그야 같은 조에 들어왔으니 아다리가 잘 맞으면 볼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생각만 하고 있던 일이다.

근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 버렸습니다.

"설마 진짜 한일전이 될 줄은 몰랐지."

드넓은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서 한일전이 결정되는 순간을 직관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한일전에 참가하는 당사자로서 말하건대, 정말 진심으로 당황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한일전이란 게 일종의 사문死門이니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어떤 대회를 나가든, 일본에게 져서 은메달 따기vs일본 이기고 예선 탈락하기라면 닥치고 후자를 선택하는 게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 아니던가.

뿌리 깊은 감정이나 이웃나라 사이의 대항의식 같은 건 잠시 제쳐두더라도, 확실한 건 다음 시합에는 정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태껏 해온 다른 시합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단 건 아니다.

다만 한일전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지. 이걸 지면 진짜 제대로 된 꼬리표가 달릴 거다. 그것도 쉽게 뗄 수 없는, 단단히 용접된 꼬리표가 말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저번 시즌 때 안효민 선배가 너무 잘 한 탓이다. 젠장. 이런 걸 1학년 때 해서 우승했다고? 천재란 족속과는 상종이 안 된다니까.

'게다가…….'

이번 일본팀의 기세도 제법 만만치 않은 것 또한 마음에 걸린다.

다른 게 아니라. 일단 팀 자체가 전 시즌 때보다 강해진 게 보인다.

시합을 직관한 내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다.

일본 대 스페인. 그 시합에선 예상을 배신하는 그림이 엄청나게 자주 나왔다.

예를 들어 개인전 때 쌀이란 주제를 택한 일본팀이 스페인 팀에게 패배했던 것.

그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스페인에서도 쌀 요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애당초 주식이 쌀인 국가에서 화식을 공부했단 양반이 쌀 요리로 질 줄은 몰랐으니까.

놀라운 사건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개인전이 끝난 직후 시작된 단체전. 그 주제가 다른 것도 아닌 토마토였으니까.

토마토라는 건 유럽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 중 하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토마토에 진심인 나라가 두 곳 있다.

하나는 이탈리아. 하나는 스페인.

토마토를 가장 먼저 요리에 사용한 나라와 유럽에 최초로 토마토를 들여온 나라.

이 두 나라의 토마토 사랑은 대단하다. 그만큼 토마토에 관련된 요리도 엄청나게 발달했고.

'그때는 이건 스페인이 이기겠구나 싶었는데…….'

설마 이걸 일본이 이길 줄 누가 알았겠어.

복싱으로 치자면 이건 서로의 빅펀치를 겨냥한 카운터를 서로 주고받은 꼴이었다.

서로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아 정신이 몽롱한 상황.

그러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은 사실이었는지, 터진 멘탈을 먼저 수습한 건 일본팀 쪽이었다.

하긴, 일본팀이 금간 멘탈을 승리로 메꿀 동안 스페인은 실시간으로 멘탈을 털렸으니 오죽 했겠냐마는.

그렇게 이어진 3회전에서 일본팀은 극적인 역전승에 성공. 모르긴 몰라도 일본 쪽 커뮤니티엔 온갖 낯부끄러운 감탄사가 연발하고 있을 것이다.

안 봐도 안다. 나도 일본 쪽에서 나름 일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쪽 성향이 대충 어떤지 알거든. 거긴 이상하게 낯부끄러운 말을 하는 데에 스스럼이 없더라.

'감성의 차이인가?'

뭐 아무튼.

그렇게 돼서 일본은 우리의 다음 상대가 됐고, 거기에 덤으로 참가국 중 유일하게 시드권 팀을 이긴 비시드권 팀이 됐다.

아마 외신에서 주목하는 건 후자겠지만, 난 안다. 국내 언론이 어느 부분을 제일 주목할지.

'당연히 걸고넘어지겠지?'

시즌2에서 찾아온 두 번째 한일전! 우연이 낳은 운명의 대결! 같은 우습지도 않은 타이틀이 머릿속을 맴돈다.

"후……."

거 참 진짜.

제발 이런걸로 호들갑 좀 떨지 말아야 할 텐데.

입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럴 리 없다는 사실만큼은 너무도 잘 아는지라. 결국 입에 남는 건 한숨뿐이었다.

***

내 입에서 한숨이 터지게 만드는 소식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흥미로운 사건은 아직 몇 가지 남아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 공중파에서 방영한 생방송의 순간 시청률이 30%를 넘었다거나.

또 혹은 방송사 계정으로 올튜브에 올라간 글로벌 푸드 서바이벌 시즌 2 한국팀 모멘트 다시보기 영상이 등록 사흘 만에 인기동영상 1위를 찍고 재생 수백만을 넘었다든지 하는 이야기.

뭐, 이건 대회 외적인……? 일이라 대충 그러려니 싶지만, 대회 쪽에서도 제법 눈길을 끄는 일이 하나 있긴 했다.

그것도 나뿐만 아니라, 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말이다.

"대체 대진표가 어떻게 짜져서 자꾸 이러는 거야?"

그 사건이란 바로 오늘 열릴 8강전 마지막 시합.

안 그래도 한일전만 해도 이미 정신없는데 또 뭐가 남았느냐고 묻는다면, 일단 스케일 만큼은 한일전 이상 가는 이벤트라고 답할 수 있겠다.

그래. 어림잡아도 열 배 이상의 규모를 자랑할 이벤트가 말이다.

"중국 대 대만이라……."

괜한 문제만 안 생겼으면 좋겠는데.

중국과 대만 사이에 있는 감정의 골은 한일 양국 사이보다도 깊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서로를 좋아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적어도 서로를 눈꼴시게 여기면서도 문화적 교류나 국가간 교역은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과 대만은…….

대만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일부일 뿐, 나라로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중국의 태도만 봐도 대충 감이 잡히지 않는가?

중국과 대만 사이는 한국과 일본보다는…… 그래. 남한과 북한 정도의 거리감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경우 힘의 역치가 역전된 상태의 남북 관계가 되겠지만.

어쨌든 일이 이렇다 보니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는 외교적, 정치적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그 덕분에 주변국도 눈치싸움에 껴서 쓸데없이 심력을 소모할 때가 많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지만 이건 고래 한 놈이 미꾸라지마냥 물을 흐리는 거에 가깝다. 문제는 행동이 미꾸라지여도 덩치가 고래라 여파도 고래만 하다는 거고.

덕분에 바로 옆에 붙은 우리만 등쌀에 못 이겨 죽을 맛이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런 사견을 제치고 저 두 팀의 전력을 분석해보자면 내가 보기엔 두 팀의 능력은 엇비슷하다.

일단 같은 뿌리를 둔 두 나라는 서로 아주 비슷한 조리법을 갖고 있다.

물론 분단된 시기가 백 년이 넘어서 서로 판이한 발전양상을 보이게 된 두 나라의 요리지만…….

'애당초 중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넓어서 지역마다 요리 특색이 전혀 다르기도 하고.'

산둥요리와 대만요리의 차이가 상해요리와 사천요리의 차이보다 적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두 팀의 전통에 기인한 전력은 대등하다고 봐도 되겠지.

이전 확인했던 두 팀의 정보를 생각하면 인력으로도 큰 차이가 없는 듯했다.

"흠……."

모르겠는데. 과연 누가 이길지 쉽게 짐작이 안 간다.

시드권이라는 이유로 승리를 점치기엔 당장 얼마 전에 스페인에게 이긴 일본이란 전례도 있다. 대만이라고 두 번째가 되지 못하리란 보장은 없지.

차라리 문화권이 다른 두 팀의 대결이었다면 모를까, 두 팀이 거의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상황에서 문화적 차이로 승패를 가늠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지 않겠는가.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마지막 시합.

부디 이 시합에 저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다를 제쳐두고 온 보람이 있기를 바라며, 나는 눈에 걸친 커다란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유명 관광지에서 10달러에 파는 싸구려답게 빛 차단 성능이라곤 기대할 수 없는 놈이었지만,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들었다. 신원은 잘 숨겨주면서 시합을 보는 데에도 그다지 방해가 안 되거든.

'조금 스타병 걸린 놈 같긴 한데.'

당장 어제 바닷가에 갔다가 날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다시 호텔로 돌아온 내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지만도 않은 이야기였다.

…… 첨언하자면, 그것 때문에 바다 바캉스를 포기하고 여기 온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진지하게 저 두 팀의 대결이 궁금해서 온 거다. 정확히는 시드권 보유팀인 중국의 실력이 궁금했던 거지만.

…… 정말로, 진심으로 말이다.

도통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 모를 변명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곧 시작될 대결.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대결에 앞서 선수들이 준비하는 대기실. 그곳에 모인 중국팀 일행을 앞에 둔 감독이자 관리자인 남자는 그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대만 따위에게 질 일은 없다. 져서도 안 된다. 이기는 건 당연히 우리 중국이다."

"예!"

"이 시합에 당의 위신이 걸렸다. 나라의 체면이 너희 두 어깨에 달렸다 이 말이다. 대회의 결과가 곧 너희들의 미래다. 이해했지?"

"예!"

"좋아. 나 또한 너희가 여기서 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들었다면 대단한 자신감과 압박이 담긴 당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렇게 말하는 남자. 량웨이의 목소리에는 이상할 정도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 어떤 실력자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이 대회에서, 당연하다는 듯 승리를 자신한다.

자부심? 승부욕? 아니. 그런 것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심지어 그의 이야기를 듣는 요리사들에 이르러선 딱딱한 부동 차렷 자세를 유지한 상황.

어딜 어떻게 보아도 평범한 시합 전 회의가 아니었지만, 이 자리에 그것을 지적할 이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석께서 너희를 보고 계신다. 그 사실을 똑똑히 명심하도록."

"예!"

"좋다, 이만 가라! 가서 중화인민의 힘을 보여줘라!"

격려인지 질타인지.

정체 모를 호령이 끝남과 동시에 다섯 명의 요리사는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을 방불케 하는 굳은 얼굴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무표정으로 배웅한 량웨이는, 조용히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빼 물어 입에 물었다. 이 시설이 금연시설이라는 표지판도, 선수들이 사용하는 도구에 담배냄새가 배는 것도 상관없다는 태도였으나, 이미 그의 발치에 떨어진 몇 개의 담배꽁초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었다.

"후우……."

담배 연기를 길게 뿜은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당연히 이겨야 하는 게 맞지만…… 괜히 여기서 조금이라도 체면을 구겼다간 주석께서 노하시겠지."

만약 그랬다간 경을 칠 것이다.

요리사들따윈 아무래도 좋지만, 그 불똥이 자신에게까지 튀는 건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애당초 그런 불똥을 막기 위한 인간방패로 윗놈들 대신 이 자리에 선 게 자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대책을 세워놔야겠어."

그렇게 말하는 량웨이의 숨결 끝에서 뿌연 담배연기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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