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43화 (343/403)

343. 권력투쟁.-1-

다시 한번 승리한 한국팀.

이 뉴스는 당연하게도 여러 선수들에겐 무시할 수 없는 소식이었다.

"이번에도 2연승인가."

"그러네요. 2연승이 드문 건 아니지만……."

"시드팀을 상대로 연속 2연승을 거둔 건 한국팀이 유일하죠."

당초 16강전에 임한 32팀 중 시드팀은 단 8팀.

태국, 인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중국. 그리고 한국.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내공을 가진 나라를 무려 두 팀이나 꺾고 올라왔다.

"사실 저쪽 대진운이 나쁜 탓도 있긴 하겠지만……."

"하긴. 같은 조에 시드가 저렇게 많이 낀 곳도 없긴 하겠지."

토너먼트 대진표를 A열과 B열로 나누어 양쪽으로 나열했을 때, A열의 시드권 보유팀은 여섯 팀. 그리고 B열에는 고작 두 팀이 있을 뿐이었다.

물론, 이중에서 한국팀은 A열에 소속되어 있었고, 심지어 결승전에 진출할 때까지 만날 가능성이 있는 팀은 대진표 완성 당시부터 4팀.

요컨대 16강, 8강, 4강, 결승. 이 모든 단계에서 시드권 팀과 맞닥뜨린다는 가능성도 분명 있었다.

'애당초 16강전에서 시드권 보유팀끼리 맞닥뜨린 건 한국 대 프랑스 전 뿐이었으니까.'

이 말은 즉, A열에 소속된 다른 팀들도 대부분 결승에 이르기 전까지 한 번쯤은 시드권 팀과 대결을 펼치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그조차 운이 나빠도 한두 번이지, 네 번 전체를 시드권 팀과 맞대결할 가능성이 있는 한국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지지리도 운이 없군요. 저 팀."

"동감이다. 수상할 정도로 대진표가 편향됐어. 하지만……."

잠시 말을 흐린 남자가 이윽고 작게 중얼거렸다.

"큰 시련은, 보다 큰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법이지."

이미 두 번의 커다란 시련을 넘은 그들.

과연 그런 이를 상대로 자신이라는 시련은 그들을 고꾸라트릴 것인가, 아니면 발판이 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시련조차 되지 못할까.'

그 해답은, 곧 나오겠지.

그가 소속된 일본팀. 다음 한국팀의 상대를 결정하는 8강전 제2시합의 결과로써.

"다음 상대는 스페인이다. 쉽지 않을 거야. 이만 가자.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예."

전광판 화면을 가득 채운 태극기를 보며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이젠 그들의 싸움을 해야 할 차례였으니까.

***

힘겨운 싸움이었다. 음. 충분히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시합이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힘든 걸로만 따지면 프랑스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건 개인전에 나간 게 교장 선생님이었던 덕이겠지. 2연전이라는 건 상상 이상으로 사람의 체력을 갉아먹는다.

그러나 그걸 제하고 보더라도 이번 시합은 특히 힘든 부류에 들었다.

단순하게 적당히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뛰는 조깅과 온 힘을 다한 전력질주의 차이라고 할까.

안 그래도 손이 가는 과정이 많은 요리를 30분 만에 끝낸다는 건 나 같은 베테랑한테도 제법 고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 무리를 하긴 했어도 아무튼 이겼으니 됐다 싶긴 하지만…….'

아무리 승리하더라도 체력의 소모는 뼈아픈 일이다. 특히 나이가 찬 어르신들에게는 그 의미가 진실로 물리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요컨대 우리 팀 어르신들은 그로기 직전이라는 것. 이야. 경험 많은 베테랑이 많다는 건 좋지만 그에 따른 리스크가 없지만은 않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파스를 챙겨오길 잘 했지 뭐야.'

기본 파스에 더해서 국소부위에 붙이는 소형 파스, 뿌리는 파스, 관절냉각 밴드 따위를 가져온 게 제법 큰 도움이 됐다. 왜 그런 걸 갖고 다니냐고? 내가 경험자라 잘 알거든…….

아무튼, 우리들의 차례가 끝나고 2시합 전의 쉬는 시간이 찾아오기 무섭게 관중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수만에 달하는 인파가 열 개 조금 더 되는 출구를 향해 동시에 움직이는 상황. 관계자 전용 출구로 나와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꼭…….

'좀비 웨이브 같네…….'

예전에 김철정이 하던 게임에서 본 광경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소설 원작 영화의 게임판이라고 했던가. 좀비가 한 곳에 뭉쳐 탑처럼 솟아 벽을 기어 넘어오는 모습이 인상 깊은 게임이었다.

뭐, 저 수많은 관중이 그 정도 광기를 보여주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목표는 그런 좀비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도 했다.

식욕.

오로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눈이 반쯤 돌아간 채 질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차라리 애처롭기까지 하다.

행사장 주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수십 대의 푸드트럭조차 그 물량공세를 받아낼 겨를이 없을 정도.

이미 푸드트럭 뒤로는 길게 늘어선 줄이 한가득이고, 그걸로 모자라 이미 만석이 되어 버린 푸드트럭 행렬을 지나 차를 몰고 가까운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와……."

솔직히 말해서, 압도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전 가봤던 상하이의 야시장 수준은 아니지만, 사방이 뻥 뚫린 하늘 아래 같은 목적을 갖고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수만 명의 인파란 그 자체로 압도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런 감상을 품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내 옆에서 누군가의 감탄사가 새어 나오는 소리가 똑똑히 귀에 들렸다.

"엄청나구만……."

"어?"

그런데, 그 감탄사란 게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라.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그쪽을 쳐다봤다.

"오랜만일세."

"…… 오랜만, 은 아니지 않나요?"

"그랬나? 하하하!"

그랬다. 이 옆에 있는 사람은 당장 아까까지만 해도 우리와 대결한 장본인이었으니까. 그것도 그 팀의 팀장으로서 말이다.

"란초 셰프."

"류차…… 차느…… 그러니까……."

"그냥 류라고만 하셔도 돼요."

"미안하게 됐구만. 류 주루 마삭."

살짝 검버섯이 올라온 주름진 얼굴. 어째 시합을 하기 전보다 몇 년은 늙은 것처럼 보이는 그가 날 보며 작은 웃음을 짓는다.

"괜찮습니다. 제 이름이 발음하기 힘든 건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걸세. 사람의 이름을 똑바로 알고, 옳게 부른다는 건 그 사람만이 아닌 전부를 향한 존경심을 뜻하지.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름을 올바르게 대하는 것으로 일개 개인을 넘어 그의 피 전체를 공경한다는 말이거든."

억센 손길로 내 등판을 두드리며 말을 맺은 그가 웃었다.

"자네는 그럴 자격이 있어. 자네를 낳아주신 어머니, 길러주신 아버지, 가르친 스승, 동락한 벗. 그들 전체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니까."

"그…… 감사합니다."

뭔가, 살면서 이런 칭찬을 들어본 건 또 처음이라 애매한 반응이 나왔다.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드는 건지 어떤 건지. 여전히 애매한 웃음을 지은 그가 아직도 행사장에서 줄지어 나오는 관중을 가리키며 말했다.

"류 주루 마삭. 자네는 저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예?"

글쎄.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딱히 특별한 감상이 떠오르진 않았다.

"저도 푸드트럭 한 대 있었으면 좋겠네요."

"응? 그건 왜지?"

"한 몫 단단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고객을 돈으로 보면 안 되긴 하지만, 반대로 고객과 돈을 완전히 떨어트려서 생각할 수 있는 자영업자는 없다. 애초에 돈을 주니까 고객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저만큼 지갑을 열 의지가 왕성한 고객(진)이 수만 명씩이나 있는데, 저 중에서 1%만 내 가게로 데려올 수 있어도 엄청난 이득임은 분명하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든 걸까. 그는 껄껄 웃으며 나이답지 않은 통쾌한 목소리를 낸다.

"그래! 그런 해석도 좋군."

"그럼 란초 셰프는 다르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되돌아간 내 질문에, 그는 잠시 수염을 쓰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류 주루 마삭. 혹시 자네는 종교가 있나?"

"아니요. 따로 믿는 종교는 없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잠깐 다닌 기억은 있지만, 그마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엔 일요일에도 곧잘 일을 나가시던 어머니를 대신해 주아를 돌봐야 했기에 종교와는 그다지 연이 없었다. 커서도 평범하게 무신론자로 자랐고.

힌두교 신앙이 투철하다고 알려진 란초 셰프 앞에서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었지만, 의외로 그는 흔쾌히 내 말을 받아들였다.

"그럼 조금 더 편하게 말할 수 있겠군. 우리 힌두교의 가르침 중에는 이런 말이 있지. 올바른 방향으로 욕망을 실현하라."

"욕망을…… 실현?"

"재밌지? 유럽의 기독교나 티벳의 불교에선 욕망의 절제가 주된 교리인데, 힌두교에서는 딱히 욕망을 절제하라는 말은 하지 않네. 그보다는 방향이지. '올바른' 방향."

올바름을 배우고, 욕망을 이루고, 이룰 만큼 이룬 뒤에 미덕을 쌓아 종래에 해탈하는.

힌두교란 그런 것이라며 란초 셰프는 웃었다.

"저들은 말일세. 욕망이야."

"관중들이 말인가요?"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원초적인 욕구뿐인, 정돈되지 못한 욕망이지. 타이어에 바람을 넣다가 너무 많이 넣어서 여기저기 구멍이 난 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나."

"…… 바람이 빠지겠죠."

"그래. 저들은 그 바람과 마찬가지로 새어 나간 욕망이지."

새어나간 바람.

그 말을 듣고 보면 제법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행사장이라는 타이어에서 계속해서 새어 나오는 바람.

사람을 밀치고 인파를 헤집으며 어떻게든 나오려고 애쓰는 욕망.

하지만 그 말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걸까.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날 보며 란초 셰프가 말을 잇는다.

"아까 자네는 말했지? 푸드트럭이 지금 한 대 있었으면 한다고."

"예. 그랬죠."

"그럼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자네한테 정말 푸드트럭이 있었고, 방금 시합이 끝나자마자 바로 나와서 푸드트럭에 올라 장사를 시작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그건……."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정말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죽도록 바빴겠지.

"그래. 저들의 욕망을 만든 건 우리니까. 지금은 대상을 잃어 난잡하게 아무 방향이나 찌르는 저 욕망에 하나로 정돈된 방향성을 주게 되면 그렇게 됐을 거야."

잠시 말을 끊은 그가,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다른 곳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자그마한 식당이 한 채 있었다. 물론, 그곳도 이미 인산인해로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자네가 가진 게 푸드트럭이 아니라 저 가게였다면, 저 가게 앞에는 지금의 수십 배는 되는 줄이 생겼겠지. 저 앞에서 하루를 지새우더라도 자네 요리를 먹고자 하는 고객이 있었을 거야."

그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고 연달아서 다른 곳을 계속해서 가리킨다.

먼저 가리킨 식당보다 조금 더 큰 식당. 그다음은 2층짜리 프랜차이즈 식당. 그다음은 그보다 큰 빌딩의 꼭대기. 우리가 머무는 호텔 방향으로.

"지금 자네라면, 저곳들 중 어느 것을 가지든 그곳을 만원사례로 만들 능력이 있어. 그건 타인의 욕망을 자신에게로 이끄는 능력이지. 그게 뭔지 아는가, 주루 마삭?"

잠시 숨을 고른 그가, 외치듯 말한다.

"권력일세. 그게 힘이고, 일개 요리사를 뛰어넘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거야. 이 대회는, 바로 그런 권력을 얻기 위해 준비된 자리고."

권력.

이 대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가질 수 있는 힘.

"저 작은 행사장 안에서, 고작 두 시간 만에 얻어낸 권력. 그만한 권력조차 이만한 규모를 가지지. 류 주루 마삭. 자네는 목이 좋은 곳에 트럭 따위를 몰고 갈 생각을 해선 안 돼. 자네는 목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상상해보게. 저 세계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그런 힘을 얻게 될 그 날을."

작게 열변을 토해낸 그가, 이내 조금 지친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나는 그 힘을 가지는 데에 실패했지만, 이미 은둔생활기에 거의 접어든 내가 무슨 권력을 더 누리겠나. 그건 보다 젊은 나날이 길게 남은 누군가의 손에 있는 게 나은 거야. 이건 그걸 깨달은 늙은이의 충고라고 생각하게."

충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에 새삼스러운 충격을 느꼈음을 고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타셰프라는 빛나는 사람이 되어본 적이 없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사회라는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살았고, 그 외에 삶을 모른다. 그저 막연히 빛나는 그 자리를 동경했을 뿐일지도.

하지만 란초 셰프의 말을 통해서, 조금은 그 세계를 안 느낌이 들었다.

일개 개인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힘이지만, 그 힘을 얻는 자리에 지금 내가 있다.

"…… 예. 감사합니다."

"감사는 괜찮네. 다만 날 이긴 녀석들이 괜히 고꾸라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 뭐지. 다 늙은 어르신이 갑자기 새침데기처럼 굴면 이쪽이 곤란한데.

그 말도 농담이었는지 이내 히죽 웃는 란초 셰프. 그러던 그가, 갑자기 보다 훨씬 진중해진 얼굴로 말을 잇는다.

"나는 권력이라는 힘을 얻고 싶다는 욕망을 '올바르게' 실현하기 위해 이 시합에 임했네. 하지만……."

세상 사람 중에는 그런 올바름 따윈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

란초 셰프가 말한다.

"이번 시합. 대진표의 구성이 상당히 치우쳤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건……."

"강팀이라는 정보가 퍼진 팀 대부분이 너무 같은 조로 쏠렸어. 확률로 따지면 굉장히 가능성이 낮은 일일 텐데도 말이야."

확실치 않지만, 옳지 않은 방향으로 욕망을 이루려는 누군가가.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획책하고 있다.

란초 셰프의 과민증 같은 경계가, 어째서인지 내 마음에 굉장히 와닿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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