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42화 (342/403)

342. 남동풍.-5-

한국팀의 심사가 끝난 뒤로도 관중들은 환호의 도가니에서 쉽게 빠져나올 줄 몰랐다.

8강전 개막 후 첫 번째 대결이기에 보다 쉽게 흥을 타준 것도 분명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 이상으로 상상 이상으로 선전한 한국팀의 결과물이 관중들에게 커다란 흥분과 기대감을 안겨준 덕이었다.

'첫 번째 대결이 이 정도면 다음 것도 쩔겠지?'

'와, 보고 있으니까 배고프다…… 그러고 보니 아까 보니까 바깥에 푸드트럭 와 있던데…….'

'당장 나가서 뭐라도 사 먹고 싶은데 이것도 보고 싶고……!'

식욕과 호기심의 사이에서 엄청난 딜레마를 겪는 관객이 늘어났다는 게 흠결이긴 했지만…… 지금의 관중은 그 식욕조차 재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을 만큼 시합에 향한 엄청난 집중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30분밖에 안 쓴 한국팀이 그 정도였는데, 인도팀은 더 대단하겠지?"

"글쎄. 시간이 많이 든다고 음식이 꼭 맛있는 건 아니잖아. 바비큐야 오래 훈연하면 맛있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 한국팀에 안 꿇리는 물건이 나올 건 확실해."

"아무래도 좋으니까 얼른 완성된 걸 보고 싶어."

한국팀의 심사가 종료된 후 10분.

시합 시작된 뒤로 약 4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한 차례 오른 흥이 아직 식지 않은 관객들은 과연 인도팀은 어떤 대단한 요리로 그들을 놀라게 만들지 잔뜩 부푼 기대감을 가슴에 품었다.

그런 기대 속에서 다시금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 아직인가?"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냐?"

"한국팀 심사 끝난 지 벌써 20분은 지났는데."

그때가 되어서도, 인도팀의 요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분명 요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 있었지만, 이미 사용할 차례가 지난 탄두르에 이르러선 다시 불을 지필 수 있을 정도의 불씨만 간신히 남았을 정도로 인도팀은 슬로우 페이스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아냐. 한국팀이 너무 빨랐던 거지, 원래 요리하면 이 정도 시간은 걸린다고."

"조금 더 참아봐. 내가 장담하는데 곧 큰 거 하나 온다."

"인도 요리 맛있는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

물론 어디까지나 한국팀에 비해 슬로우 페이스였을 뿐, 인도팀 또한 평소보다 살짝 여유를 부리는 정도에 불과했기에 관중의 불만도 약간에 그쳤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시합이 시작하고 한 시간이 족히 지났을 무렵.

"뭘 그렇게 뜸을 들여!"

"빨리 완성해!"

"우리도 밥 먹으러 나가고 싶다고!"

"얼른 좀 해라 이 게을러터진 놈들아!"

그때까지도 요리가 완성되지 않자, 행사장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고함이 하나둘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당초엔 말렸던 주변 사람들도, 이쯤 되자 막으러 나서는 이 없이 침묵을 지켰다.

행사장을 뒤덮은 불온한 분위기.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팀원을 보며 란초가 입을 열었다.

"시끄럽구만, 우리 대신 요리해줄 것도 아니면서."

"셰, 셰프……."

"됐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나 마저 해."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란초도 슬슬 시간을 끄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단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간신히 평형으로 유지되던 제자들의 집중력과 관객의 흥미, 그리고 짜증의 균형이 점점 한쪽으로 쏠리는 중이란 건 굳이 깊게 따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

거기에 더해 요리 또한 마무리 작업만을 남기고 있었으니, 이제는 시간을 끌 명분도 남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한 란초가 작게 인상을 찡그렸다.

'30분이라…….'

한국팀의 심사가 끝난 지 30분. 작게나마 아쉬운 심정이 들었으나, 란초는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는 수 없지.'

30분씩이나 지났으면 이미 그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에 먹은 음식이 무엇이든 30분이나 지났다면 혀에 남은 유분까지 깔끔하게 사라졌을 테니까.

"이제 그만 마무리 한다. 서둘러서 끝내."

"……! 아, 알겠습니다!"

지금껏 그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당차게 대답한 팀원들이 저마다 서둘러 끝 작업에 착수한다. 마치 장난감이 조립되는 것처럼 순식간에 여러 식재료가 하나로 뭉쳐 접시 위에 담긴다.

요리가 완성되는 것을 본 관중이 간신히 화를 누그러트리고, 점차 나아지는 분위기에 탄력을 받은 인도팀이 더더욱 속도를 붙여 작업을 이어나간다.

란초의 지시가 떨어진 뒤 정확히 3분.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요리를 완성해낸 그들 사이에서 란초가 손을 들어 올리기 무섭게 MC가 소리를 지른다.

"기다리다 지쳐 쓰러질 뻔했습니다! 인도팀, 드디어 긴 침묵을 깨고 조리 완료를 선언합니다!"

미국 놈들 말본새가 무례한 건 알아줘야 한다며 란초는 입술을 달싹였다.

***

인도팀이 준비한 메뉴는 이러했다.

튀긴 과자에 요거트, 처트니 따위를 얹어 먹는 다히 푸리 중에서도 으깬 고구마를 곁들인 바타타 다히 푸리Batata Dahi Puri.

쌀과 견과류 등을 마살라로 양념하여 튀겨 만든 과자인 치와다Chiwada를 공갈빵처럼 속이 빈 인도식 튀긴 빵, 푸리 안에 다양한 향신료, 소스와 함께 채워 넣은 파니 푸리Pani Puri.

마지막으로 수제 애플민트 아이스크림을 인도 전통 음료인 마살라 탁Masala Taak에 아포가토처럼 넣어 먹는 디저트까지.

이 세 가지 요리는 세계에 알려진 인도 요리 중에서도 특히나 높은 유명세를 구가하는 것인데, 오죽 유명했으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길거리 음식'이라는 별명도 있을 정도다.

그 이름 그대로, 이것들은 인도의 길거리 가판대 등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요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들이 준비한 저 요리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이란 뜻은 결코 아니었다.

란초가 직접 선택한 메뉴. 심혈을 기울여 고쳐 쓴 레시피.

그런 것이 합쳐지며 그들의 요리는 길거리 음식을 넘어 일류 레스토랑에서나 볼법한 메뉴로 재탄생했다.

분명히, 그럴 터였다.

'…… 뭐지?'

이상하다. 란초는 어느 순간부턴가 직감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다.

처음 자신들이 만든 요리를 그들 앞에 내려놓았을 때, 심사단은 요리의 모양새와 색감, 예술적 감각에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오래 기다린 끝에 나온 완성작인 덕에 기대감이 컸던 탓도 있겠으나, 인도 특유의 다채로운 색을 조화로우면서도 특색 있게 사용하는 심미안의 위력이었다.

그렇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다음.

고작 보이는 것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맛의 심사가 시작된 뒤부터 시작됐다.

처음 음식을 입에 담을 때까지 기대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던 심사단.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표정이 점차 구겨지기 시작했다.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마치 부모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가 신나서 포장을 풀어헤쳤더니, 정작 본인이 기대하던 장난감이 아닌 엉뚱한 물건이 튀어나왔을 때처럼.

묘하게 기대가 어긋났다는 듯 인상을 쓴 심사단의 표정.

그것은 단언컨대 란초가 원하는 반응이 아니었고, 심지어는 심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오히려 심사단의 주름은 깊어질 뿐이었다.

'어째서?'

아무리 일부러 여유를 부렸다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심혈을 기울인 요리다.

급박했다면 결코 신경 쓰지 못했을 세세한 부분까지 두루 손을 썼고, 직접 맛보고 간을 조절하며 요리 사이의 궁합도 맞췄다.

이 정도면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당장 내놓더라도 괜찮을 수준이라고 내심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레스토랑이 자랑하는 수제 요거트나 커드를 사용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

─달그락.

심사단이 손에서 식기를 놓는 소리가 유독 귓가에 크게 울렸다.

그러나 란초는 그들의 손에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손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온 심사단의 얼굴이 그에게 이미 정해진 결과를 통보하듯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고 말았기에.

"란초 바트 셰프."

심사단의 부름에 란초는 제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이런 말씀을 전하게 되어 죄송하군요. 하지만 공정한 결정이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결과를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 의미심장한 발언에 란초가 의아한 시선을 향하자, 심사단이 말을 잇는다.

"다들 보기에 좋은 요리였고, 만듦새가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맛을 단조롭게 연출하신 건가요?"

맛을 단조롭게 연출했다고? 란초는 제 귀를 의심했다.

"말도 안 돼!"

"하지만 사실입니다. 란초 셰프의 요리는 먹으면 먹을수록 맛의 전환점이 느껴지지 않아요. 초콜릿을 먹고 단 음료수를 마시는 것처럼, 반복된 맛이 그다음 요리의 맛을 흐립니다. 임팩트가 전혀 느껴지질 않아요."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그들이 준비한 요리에 주된 재료 몇 가지가 겹친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기에 향신료를 통해 풍미를 조절하여 전혀 색다른 요리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세심히 만들었을 텐데, 어째서 그것이 단조롭게 느껴진단 말인가?

란초는 자신이 정녕 그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는지 의심했으나, 결과는 확정적이었다.

"2차전의 승자는, 이번에도 한국팀입니다."

세 심사위원의 만장일치였다.

***

"찬 음식의 치명적인 단점? 그게 뭐야?"

인도팀의 심사를 뒤에서 지켜보던 내가 흘린 '찬 음식의 단점'이라는 키워드에, 유동건 사장님이 의아하단 목소리로 되물었다.

"신맛이에요."

"신맛? 신맛이 왜?"

"찬 음식에는 대부분 신맛이 있거든요."

국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계의 차가운 음식이란 건 어쩔 수 없이 대다수가 신맛을 가미한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가장 커다란 것을 두 개 꼽자면 이러하다.

일단 차가운 음식 특유의 청량감, 산뜻함을 강조하기 위해 식초나 비네거 따위의 신맛을 내는 조미료가 쓰이는 일이 많다.

그리고 또 하나.

신맛의 주성분인 산성은 차가운 음식이 미처 없애주지 못하는 혀에 남는 유분을 처리하는 데에 특효약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는 더 그렇지.'

인도는 차가운 음식의 레퍼토리가 아주 적은 나라 중 하나다.

어째서냐 하면, 일단 나라 자체가 너무 뜨거우니까 차갑게 음식을 내갈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통 찬맛을 연출하는 데 쓰인 식재료가 요거트와 커드.

신맛을 통해 청량감을 늘리는 기법이 인도의 차가운 음식 대다수에 사용된다.

실제로 지금 인도팀이 심사 받는 요리 세 가지에 각각 요거트나 커드가 하나씩은 쓰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게 왜? 얼핏 봐도 인도팀 요리가 그렇게 평가절하 당할 수준으로는 안 보이는데……."

"맞아요. 사실, 저희 뒤를 따라 바로 심사를 봤으면 분명 호평을 받았겠죠."

인도팀의 요리가 저평가 된 이유.

그건 다름 아닌 내가 만든 디저트에 있다.

"유동건 사장님. 혹시 미라클 베리라고 아세요?"

"미라클…… 베리?"

미라클 베리. 다른 이름으로는 미라클 후르츠.

그것은 서아프리카에서 나는 어느 열매의 이름으로, 말 그대로 먹었을 때 기적처럼 특이한 효능을 발휘하는 과일 중 하나다. 그 효능이란…….

"이 미라클 베리라는 건요, 먹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신맛을 단맛으로 바꿔줘요."

그렇다. 그게 바로 내 디저트. 변화하는 맛을 가진 소르베 드 투르의 비밀.

내가 냉동분쇄하여 사용한 프로즌 후르츠 파우더 중 하나가 바로 그 미라클 베리를 사용한 가루였던 것이다.

미라클 베리의 효능은 확실하다. 미라클 베리를 먹고 레몬을 먹으면 레몬이 엄청 단 과일로 느껴질 정도라고 하니까.

"그, 그런 게 가능해?"

"과학적으로는 말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미라클 베리의 성분이 혀의 단백질 수용체에 달라붙어 신맛을 느끼는 기관을 착각시켜 단맛으로 느껴지게끔 만든다.

그러나 이 효능이 제대로 나타나는 건 미라클 베리를 섭취하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그마저도 효능이 발생하고 30분에서 한 시간가량 지나면 다시 평소대로 돌아오게 되지.

내가 굳이 재료실에 널려있던 드라이 타입 대신 직접 프로즌 타입을 만들어 쓴 것도 그 효능을 죽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급속냉동으로 언 과육은 세포가 파괴될지언정 그 특성만큼은 그대로 얼어붙은 가루 속에 남아있으니까.

'역시, 란초 셰프가 아니었다면 안 통했을 거야.'

만약 란초 셰프가 우리의 속공을 보고 함께 속도전을 감행했더라면.

인도에서 자랑하는 다량의 요거트를 사용한 메뉴를 고르지 않았더라면.

약간의 신맛이 단맛으로 변화하는 정도로 맛의 균형이 무너질 만큼 섬세한 풍미를 조절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든 요리는 단순히 맛있는 디저트에 그쳤을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 재빨리 요리를 완성해낸 팀원들의 노고도 쓸모없는 일이 되었겠지.

어느 의미, 란초 셰프는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 것이었고. 그 결과는 이러했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란초 셰프의 등 뒤에서, 심판이 앞으로 나서 프로레슬링 심판 못지않은 성량으로 외친다.

"시합 종료오오오! 8강전 제1시합! 한국 대 인도! 인도 대 한국! 승리를 차지하여 다음 4강전으로 진출하는 팀으으으은!!"

스테이지 바로 위편의 전광판, 하얀 배경에 태극무늬가 새겨진 국기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KoreaaaaaAAAA───!!!"

이걸로, 간신히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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