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37화 (337/403)

337. 코리안 시크릿 웨폰.-7-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리 완료를 선언한 두 사람이었으나, 그중 더 빨리 손을 든 쪽은 분명 란초 셰프였다.

버터 치킨 커리와 난, 그리고 함께 먹을 간단한 샐러드를 함께 준비한 란초 셰프.

탕 요리를 평가받는 자리에서 난이며 샐러드가 다 무슨 소리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저게 저 나라의 탕 요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말하자면 탕 자체의 건더기를 미리 빼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누룽지탕을 만들 때 누룽지와 탕수를 따로 준비했다고 둘을 따로 먹으라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아주 부합한다곤 도저히 말할 수 없긴 하지만, 대충 그렇다는 소리다.

'그것보다 지금은 저게 더 궁금한데.'

나는 심사를 받으러 앞으로 나선 란초 셰프에게서 눈을 돌려 교장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공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태연한 안색으로 음식이 식지 않게끔 화구 위에 뚝배기를 올리고 아주 약한 불로 데우고 계신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이 당황하시는 모습은 상하이에서 있었던 식중독 사건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반대로 말하면, 그 정도로 상정할 수 없는 사태를 제외하면 교장 선생님은 결코 침착함을 잃으신 적이 없단 뜻이다.

사람의 침착함이란 단순히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가지 성격이 있고, 만 명이 있으면 또 만 가지의 성격이 있으니까.

선천적으로 다혈질인 사람, 고지식한 사람, 쌀쌀맞은 사람, 예의 바른 사람, 정의로운 사람, 외골수인 사람, 변덕꾸러기인 사람.

그게 전부 다른 사람의 성격일 수도 있고, 그게 전부 한 사람의 성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가 됐든 본인 스스로 인식한 위기나 문제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 때엔 그 사람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자신의 능력이든, 동료의 도움이든, 앞서 안배한 준비이든.

교장 선생님도 분명 훌륭한 인격자며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요리사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당신 또한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오히려 상식적이고 모범적인 사람일수록 앞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만큼 저걸 믿고 있으시단 거겠지.'

조선식 한방삼계탕.

솔직히, 나는 맛이 짐작도 가지 않는다.

삼계탕이라는 요리야 평생 살면서 못해도 백 번은 먹었던 토종 한국놈인 내가 삼계탕 맛을 모를 린 없다.

하지만 한약을 향신료 대용으로 사용해서 만든 궁중식 삼계탕을 언제 먹어봤겠는가. 심지어 난 한약조차 먹어본 적이 없는데.

'살면서 먹은 한약이래봤자 쌍화탕 정도고…….'

그거, 일단 한약 범주에 들어가긴 하지?

아무튼. 먹어본 적이 없으면 맛을 짐작하는 것도 힘들다.

삼계탕이나 백숙을 만들 때 소량의 한약재를 넣어 만든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개 개인이 적당히 구할 수 있는 범주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약효가 비교적 떨어지는 양식 인삼이라든가, 대추나 은행, 감초 같은 것들 말이다.

당장 아무 백숙집이나 전기통닭집에 가서 배를 갈라보면 그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근데 교장 선생님이 넣은 건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분석을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다. 근데 나는 그 절대적인 정보량 자체가 부족하니 신문물을 발견한 인류처럼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마 이건 참가자, 시청자, 관객 가리지 않고 다들 비슷한 심정이리라.

정보가 없으니 분석을 할 수 없다.

분석을 못 하니 가늠을 할 수 없다.

가늠이 안 되니 확신을 가질 수 없다.

확신을 가질 수 없으니 불안이 생긴다.

보통 그럴 때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방법이 뭐 있나.'

그냥 비는 거지 뭐. 그럴 때 하라고 있는 게 기도다. 부디 교장 선생님이 생각하신 바 일을 뜻대로 마무리하시고 이 시합에서 승기를 거머쥘 수 있기를.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합 참가자 류찬혁으로서의 심정.

요리사인 류찬혁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해할 수 없다면 눈으로 보기라도 한다.

식재료의 모양, 손질 방법, 사용하는 기구, 불의 조절. 자잘한 요소요소를 놓치지 않고 살피며 연구하면, 언젠가 그 또한 나의 것이 될 것임을 잘 알기에.

그리고 지금은 아직 그 언젠가가 아니라는 것도.

지금은 다만 관찰할 뿐이다. 그날이 더욱 빨리 내게 다가오도록 말이다.

"……."

느긋하게 국자를 저으며 뚝배기 바깥으로 드러난 닭이 마르지 않도록 국물을 끼얹는 교장 선생님.

그러던 그때, 선생님이 빙글빙글 국물을 젓던 손을 뚝! 멈추곤 살짝 수그렸던 고개를 들어 시선을 돌리신다.

"저쪽도 끝났나."

교장 선생님보다 앞서 심사를 받은 란초 셰프는 방금 막 심사를 마친 제 요리를, 정확히는 요리가 담겨 있던 대접을 당당히 선보이듯 들고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 마냥 보무도 당당히 처음 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조리대로 돌아왔다.

'접시가…….'

깨끗하다. 꼭 방금 막 설거지를 끝낸 접시처럼.

커리가 담겼던 흔적이라곤 접시 한구석에 살짝 묻은 노란 국물 정도. 진짜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구만.

아직 제대로 된 심사평은 나오지 않긴 했지만, 저 접시만 봐도 대충 어떤 평가가 나올진 예상이 간다.

'상당히 괜찮은 모양인데.'

커리는 예로부터 대중적인 픽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박힌 요리 중 하나다.

괜히 카레가 그토록 전세계에 퍼졌겠는가.

본판이 그 정도 파급력을 가졌으니 거기서 가지를 치고 나온 파생상품도 그만큼 광범위하게 퍼져 인도 요리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 봐야 할 건 요리의 이름값이 아니라 만든 셰프의 이름값이지.'

사실 커리는 그렇게 희귀한 음식이 아니다. 애당초 인도 본토의 식당에서 파는 평균적인 커리와 한국에서 파는 3분 카레는 맛에서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니까.

그러나 저 버터 치킨 커리는 본토의 평균을 한참 웃도는 실력을 가진 란초 셰프가 가람 마살라부터 직접 커스텀하여 만든 요리.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심사단의 호응이 적었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이상했을 것이다.

'문제는 저걸 이겨야 한다 이건데.'

심사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온 란초 셰프와 바통터치를 하듯 앞으로 나서는 교장 선생님.

아마 이 자리의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요리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진 단 한 사람.

'그러니 괜찮아.'

음식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된다. 내게는 만든 이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

당당히 앞으로 걸어나가는 교장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

'흠…….'

란초는 자신과 교대로 심사를 받기 위해 나아가는 안영길을 바라보며 낮은 침음을 흘렸다.

'이번 시합은 장점을 살리지 못했어.'

란초의 생각을 남들이 알았다면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인도 요리의 가장 메이저한 메뉴 중 하나인 커리를 아무 제약 없이 만들 수 있었는데 그게 왜 장점을 살리지 못한 것이냐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파보면, 란초의 말은 요리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향한 말에 가까웠다.

살리지 못한 건 '커리'라는 요리가 아니라 '란초'라는 요리사의 장점.

본래 란초가 자랑하는 즉석 향신료 배합의 가장 큰 강함은 다름 아닌 무궁무진한 대응력에 있다.

내가 만드는 음식, 상대가 만드는 음식.

피아를 가리지 않고 궁합을 극대화하거나, 혹은 궁합을 망쳐 버리는 요리를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란초 바트라는 요리사의 저력.

이것을 바꿔 풀이하면 란초는 상대보다 앞서 심사를 받을 때엔 다음 순번 심사를 받을 사람의 요리가 맛이 없어지는 요리를 만들 수 있고, 반대로 늦게 심사를 받을 때엔 앞 사람이 만든 요리를 먹은 다음에 먹으면 더더욱 맛있어지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요리를 배운 이였다면, 아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전 세계의 요리문화에 향신료를 전파한, 향신료의 고향인 인도에서 나고 자란 란초이기에 가능한 기예.

그러나 그런 그조차, 안영길이 만든 요리의 전모를 파악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동아시아의 극히 일부분에서만 사용된 향신료 문화. 거기에 더해 중국의 문화대혁명, 한국의 일제강점기 등, 문화와 역사의 단절을 만들어낸 사건들 탓에 현대에 와선 그 지식이 거의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 아무리 란초라 한들 기록조차 사라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조리법을 알 순 없다.

향신료의 세계에서 외관은 맛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작 평소 사용하던 향신료와 이파리 모양이 아주 살짝 다른 풀 한 포기가 사람을 간단히 죽이는 맹독을 품은 세계다.

무궁무진의 대응력이,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한 무지無知의 벽에 란초는 내심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스튜 요리라는 주제를 듣고 바로 재료를 고른 게 뼈아픈 실책이다.'

만약 버터 치킨 커리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아니, 적어도 커리를 만들되 닭을 쓰지 않았더라면 란초 또한 필승법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닭의 맛을 죽이는 향신료 조합을 썼으면 됐을 테니까.

하지만 그걸 깨달은 시점에서 그의 요리는 거의 완성단계에 진입한 뒤였고, 거기서 그런 향신료를 사용했다간 단순한 동반자살이 될 뿐임을 알았기에 하는 수 없이 대응올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없는 요리를 '일부러' 만들 순 없다는 요리사의 자존심이 컸다.

'설마, 전부 계산한 건가?'

주제를 고를 때부터, 재료를 집을 때부터.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고 계획을 세운 뒤, 마치 사냥감의 행동반경을 서서히 압박하여 제 발로 함정에 빠지기를 유도했다는 것인가.

'만약 내 생각이 사실이라면…….'

안영길. 그는 참으로 두려운 적이 아닐 수 없었다.

질린 눈으로 심사를 받는 안영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란초. 그 너머에서 안영길의 요리를 먹고 기함을 내지르는 심사단의 모습이 보이자, 란초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요리를 먹었을 때보다 확연히 커다란 반응.

그것만으로도, 란초는 이 시합의 결과가 어떨지 예상할 수 있었다.

"과연, 상대하기 힘든 적수란 말은 정말이로군."

시즌 1 때에도 참여한 그였으나, 그때는 한국팀과 대결하기 전에 탈락했기에 다른 셰프들이 말하던 한국팀의 강함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직접 맞상대해보니 그들의 말뜻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한국팀의 강점은 단순히 요리하는 솜씨가 좋다거나, 기상천외한 발상을 보여준다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16강전 때 보여준 모습은 새로운 멤버인 찬혁이 잠시나마 구심점으로 나섰기에 드러난 강점.

그들이 보다 진지하게 마주 봐야 할 상대는, 그런 외면이 아니라 적의 심부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고, 자신들이 가진 수단으로 상대의 길목을 차단하여 갈 곳 없는 신세로 만드는 플래닝planning.

작전의 귀재. 통솔하는 리더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

지금은 그런 보이지 않는 곳이 직접 눈이 닿는 곳까지 나와 맞서 싸워주었기에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지만…….

'다음 단체전에서 다시 저들 사이로 숨는다면.'

그리고 되찾은 손발을 통해 진짜 통솔력과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시작한다면.

"…… 힘든 싸움이 되겠어."

자신의 귀를 간지럽히는 한국팀의 승리 선언을 속으로 곱씹으며, 란초는 힘줄이 돋도록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전 찬혁의 손아귀에 잡혔던 곳이 욱신욱신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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