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36화 (336/403)

336. 코리안 시크릿 웨폰.-6-

나뭇가지. 교장 선생님의 비밀병기 상자에서 튀어나온 그 물체의 정체는 분명 나뭇가지였다.

"나뭇가지…… 맞지?"

틀림없다. 분명 나뭇가지였다. 이래 보여도 꾸준한 시력보존운동을 통해 양쪽 시력을 1.5로 유지하고 있는 나다. 고작 30미터쯤 떨어졌다고 물체를 분별하지 못할 리는 없다는 거다.

나뭇가지. 대략 20cm 정도 길이일까. 한 다스 정도가 새끼줄로 꽁꽁 묶인 나뭇가지는 함부로 손대기가 꺼려질 만큼 짧고 굵지만 아주 날카로운 가시가 오돌토돌 솟은 듯 보였다.

'잠깐만…….'

저거, 어디서 분명 본 적 있는 생김샌데.

세상에 있는 나무가 전부 똑같이 생긴 건 아니다. 세상에 알려진 나무의 품종만 해도 수백 가지 이상.

당연히 각 품종마다 서로 자라는 땅, 이파리, 가지, 줄기, 생장. 그 모든 게 다르다.

물론 그중에서도 식용으로 쓰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기초적으로 열매나 잎을 식용으로 쓰는 부류부터 시작해서 뿌리를 식용으로 쓴다거나, 나무껍질, 내피 따위를 향신료로 사용하는 품종도 있다.

가끔은 죽순처럼 줄기 자체를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나무 자체를 훈제용 장작으로 쓰거나 옻나무처럼 육수를 만들 때 집어넣기도 한다.

때문에 나도 조리에 사용할 수 있는 품종은 어느 정도 외우고 있으며, 마침 교장 선생님이 꺼내든 나무 또한 그런 품종 중 하나였다.

다만, 일반적으로 요리에 쓰이는 품종이 아니다. 저건 보다 전문적인 분야에서 쓰이는 물건이었으니까. 오히려 그래서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나무와는 차별화되는 특이한 생김새. 외피조차 벗겨내지 않고 건조시킨 처리법.

"음나무잖아."

음나무. 통칭 엄나무. 한국에서 자라는 나무의 일종으로, 그 주된 사용처는 식용이 아니라…….

'약재.'

한약재다.

여기서 갑자기 음나무가 나온다고?

생각지도 못한 재료의 커밍아웃으로 받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교장 선생님은 상자에서 꺼낸 음나무 묶음을 조리대 한편에 올려두곤 또다시 상자를 뒤져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시작하셨다.

"아니, 진짜 뭔데."

잠시 후, 상자에서 튀어나오는 물건을 하나씩 살피던 난 이내 음나무 정도는 고작해야 빙산의 일각 정도 밖에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빙글빙글 말린 나무껍질, 건조된 버섯, 무언가의 뿌리, 정체 모를 가루, 이름 모를 씨앗, 끝에 이르러 대체 뭔지 짐작도 못 할 덩어리까지.

대체 상자 속이 어떤 상태였던 건지 상상조차 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한도 끝도 없이 조리대 위를 가득 채운다.

"……."

"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저게 다 뭐지.

정말, 딱 그런 생각. 나름 요리에 잔뼈에 굵은 나나 어르신들이 이런데 관객은 오죽할까. 사장님을 잡은 카메라 화면을 보는 관객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건 마찬가지다.

심지어 MC나 해설자, 심사위원도 굳게 닫힌 입을 쉽사리 열지 못하고 있었다.

란초 셰프의 향신료와는 달리 한 번 봐선 정체를 깨닫기 힘든 물체의 나열.

그 정체를 밝혀낼 결정적 힌트는, 교장 선생님 당신이 아닌 내 옆에 계시던 이영율 셰프로부터 튀어나왔다.

"찬혁 학생. 혹시 안 선생님이 어떤 자격증을 갖고 계신지 알고 있나요?"

"자격증이요? 어, 조금은 알고 있어요."

학교 홈페이지만 봐도 교장 선생님의 경력이나 자격증 취득 여부 같은 건 쉽게 알 수 있으니까. 애당초 요리사나 교사에게는 그게 세일즈 포인트이기도 하고.

교장 선생님의 자격증 목록은 약소하게 간추려 등록한 것만 봐도 두 손으로 세지 못할 만큼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빛나는 걸 하나 꼽자면 조리기능장일까.

기능사, 산업기사 루트를 밟은 뒤에야 간신히 취득할 수 있는, 말하자면 자격증 계통의 끝판왕이다.

이쯤 되면 한식, 중식, 일식 따위로 자격증이 나뉘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조리에 관해선 공식적으로 더 오를 곳이 없다는 증서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조주기능사나 제과제빵 산업기사, 티마스터 같은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요리로 딸 수 있는 자격증은 거의 대부분 취득하고 계신다고 봐야겠지.

내 말을 들은 이영율 셰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요. 잘 알고 있네요."

"그야, 저희 선생님이시고……."

전통한식계의 카리스마 같은 분이니까. 보통 유명한 사람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행적이 드러나는 법이다.

이해한다며 웃은 이영율 셰프가 말을 잇는다.

"그런데 혹시 그거 알아요? 안 선생님이 평소 남한테는 잘 안 알려주시는 게 하나 있다는 거."

"예?"

"안 선생님이 가진 건 자격증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자격증만 있는 게 아니라뇨?"

자격증 말고 또 뭐가 더 있단 걸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나왔다.

"한국 이름난 요리사 중에선 몇 안 되는 '면허'를 가진 요리사 중 한 분이시니까요."

"면허…… 요?"

당연한 소리지만, 이영율 셰프가 언급한 면허란 운전면허 같은 사소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면허. 그 두 글자가 가진 무게감은 자격증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이 더 잘났다, 못나다 하는 기준을 떠나서, 자격증과 면허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상해 가능성의 유무'.

이 기술을 배운 사람이 주로 하는 업무가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자칫하면 죽일 수도 있는 경우 국가에서는 그 기술을 면허로 관리한다.

자격증은 '이 기술을 사용하는 이의 신뢰를 보장하는 것'이라면, 면허증은 '면허를 소지하지 못한 이의 기술 사용을 금지한다'는 차이.

그렇기에 자격증 중에서도 복어 자격증만큼은 그 취급을 면허증과 동등하게 치는 것이다. 제대로 숙달되지 못하면 사람 하나 죽이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복어조리기능사는 결국 자격증이잖아.'

그렇다면 면허를 갖고 있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이영율 셰프는 굳이 의문을 길게 끌 것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해답을 내놓았다.

"안영길 선생님은 한약사 면허증을 취득하셨어요."

"한약사 면허……?"

번쩍, 하고. 뇌리에 섬광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약사 면허 취득자. 그건 말 그대로 일반 도소매가 불가능한 한약재를 사용해 한약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과, 그걸 일반 고객을 상대로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잠깐만요. 그럼 혹시 저게 다……."

"예, 맞아요. 전부 한약재에요."

"!"

"뭐, 물론 저 중에서 일반 도소매 금지 품목은 따로 없지만요."

'그런 걸 들이려 했으면 시합은커녕 바로 철창에 갇혔을 걸요?' 라는 이영율 셰프의 너스레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약재라니.'

음나무가 나올 때부터 예상했어야 했는데.

설마 요리대회에서 식재료가 아닌 한약재를 사용하리라곤 요만큼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 충격은 갑절 이상의 파괴력을 갖고 내 머리를 강타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한식은 요리문화의 전파지인 중국에 비하면 향신료를 훨씬 적게 사용한다고요. 그런데 사실, 그건 잘 모르는 사람의 착각에 가깝답니다. 정확히 말하면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향신료를 사용하는 방법이 상당 부분 소실된 거죠."

1900년대부터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이어진 일제강점기. 간신히 광복을 맞이하기가 무섭게 발발한 한국전쟁.

반백 년 동안 끊긴 전통문화의 맥 속에서, 수없이 많은 것들이 여태껏 힘들게 버텨온 누천년의 세월이 무색하도록 소리 없이 스러졌다.

요리만이 그 시대의 파도에서 예외가 되길 바라는 건 참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소망이었겠지.

실제로 그런 단절의 역사 속에서 유실된 조리법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단 한 사람. 시대의 파도를 몸으로 막으며 비바람 속 촛불과도 같은 명맥을 어떻게든 미래로 전하려 한 이가 있었다.

거목을 이쑤시개 꺾듯 손쉽게 부러트릴 삭풍을 골육으로 막고, 바위도 자갈로 부술 물벼락을 신념으로 받아친 사람.

대한 최후의 대령숙수. 지금 저 스테이지 중앙에 선 안영길 대가야말로 그런 분의 진전을 이어받은 종가의 후손.

이미 몇 번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한 사실이, 새삼스레 한 줄기 벼락이 되어 정수리를 내려친다.

"한약재는 저마다 서로 전혀 다른 풍미를 지니고 있어요. 아무리 과거의 사람이라지만, 그런 풍미를 가진 재료를 요리에 사용하려는 시도를 한 사람은 과연 아무도 없었을까요?"

아니오.

"대령숙수는 임금의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은 궁중요리사였습니다. 서양에서도 귀족 중의 귀족만이, 임금의 신의를 받는 신하만이 그 자리의 주인이 될 수 있었죠. 전국 팔도에서 모인 최고의 재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재가, 과연 한약재를 요리에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아니오.

"왕족의 식사에 약재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그 사람이 가진 약재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단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수라상에 올라가는 첩 수는 공식적으로 12가지. 첩으로 치지 않는 반찬까지 합치면 한 상에 수십 가지 요리가 한꺼번에 올라갔죠. 그중 일부 요리에만 한약재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약재가 가진 효과를 오용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했을 겁니다."

대령숙수는 딱히 대를 이어 맡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 또한 명실상부한 벼슬 중 하나였기에, 시대에 따라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춘 이가 직책을 이어받는다.

요컨대 대령숙수란 인수인계가 필요한 직책이며, 인수인계를 통해 쌓인 지식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그래. 다름 아닌 저 안영길 대가에게로. 그리고 당신의 후손에게까지.

"한국에도 향신료 문화는 있어요. 그리고 오늘, 안 선생님께서 그 증인이 되어주실 겁니다."

조선왕조 500년…… 아니, 그 이전 시대부터 내려왔을지도 모를 지식의 총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목격자가 된다. 역사가 부활하는 자리의 목격자가.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말하면…… 아, 그래요! K-향신료쯤 되겠네요."

"아니, 좀."

왜 하필 붙여도 그런 이름을 붙이십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여태껏 느끼던 충격과 감동이 깔끔하게 담장 너머로 사라진 것 같은 기분에 황망해진 내 시선이 절로 이영율 셰프에게 향한다.

'이거 외신한테 안 들렸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간, 이걸 이긴다 치더라도 내일 신문기사나 올튜브 제목으로 '세계의 미식가가 K-향신료 앞에 경악하며 무릎 꿇은 이유!' 같은 문구가 걸릴지도 모르니까.

그런 미래, 난 감당할 수 없었다.

***

이영율 셰프의 깜짝 발표가 튀어나온 뒤에도 교장 선생님과 란초 셰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은 노계와 말린 밤, 대추, 음나무, 황기, 계피 등등. 다양한 한약재를 사용한 육수를 끓이시고는, 이내 그걸 한약재와 불린 찹쌀로 속을 채운 영계와 함께 뚝배기에 넣어 팔팔 끓이기 시작하셨다.

란초 셰프는 역시 내가 아는 버터 치킨 커리의 조리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요리를 이어나갔다.

넓은 팬에 기버터를 두르고 샬롯을 갈색이 나도록 볶은 뒤, 거기에 화력을 줄인 탄두르에서 짧게 훈연하여 숯향을 가미한 닭고기를 함께 넣고 특제 가람 마살라로 볶은 뒤, 직접 뽑아낸 브라운 스톡과 생크림을 넣고 끓인다.

솔직히 말해서, 둘 다 뒤지게 맛있을 것 같았다.

오죽하면 심사위원 대신 내가 심사석에 앉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애당초 한 국가에서도 손꼽히는 정상급 셰프가 온갖 정성을 들여 만든 요리가 맛이 없을 수가 있을까.

저기 저 심사석에 앉은 이들은 일국의 수장. 세계적 대기업의 총수도 쉬이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이 자리에 모인 수만 명의 관객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수십 미터 떨어진 백스테이지까지 맛 좋은 내음이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지럽히는 상황.

글자 그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향기 속에서, 두 셰프가 조리 종료를 선언한다.

"한국팀. 조선식 한방삼계탕. 조리 완료했습니다."

"인도팀. 훈연 닭고기를 가미한 버터 치킨 커리. 조리 완료했습니다."

전통의 합계. 물경 기천 년.

일개 개인이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역사가, 지금 이 자리에서 격돌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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