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코리안 시크릿 웨폰.-3-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스스로 자문해보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니 진짜 왜지? 여길 오기로 결정한 건 나지만, 그 결정을 독촉받을 때까지의 과정이 너무 급전개라 생각이 좀처럼 따라가질 못한다.
"오호, 셰프. 여기 음식 괜찮은데요?"
"값에 비해 음식 퀄리티가 되게 좋아요. 이 정도면 호텔 뷔페 메뉴랑 비슷한 수준인데."
"그렇군. 맛이 좋아."
특히나 내 앞에서 걸신들린 듯 프라이드치킨을 뜯어먹는 인도팀 셰프들을 보고 있자니 더더욱.
"자네도 어서 들지. 아주 맛있어."
"아, 네."
한 손에 닭다리를 든 채 건배라도 하듯 내밀며 권유하는 란초 셰프의 말에 나도 내 접시를 챙긴다.
넓적한 접시 위에는 날개와 다리, 가슴살이 각각 두 조각씩. 그리고 끓인 녹색 채소와 옥수수빵. 잼과 버터, 후추를 섞은 소금 따위의 간단한 조미료가 있다.
그중에서 먼저 손이 가는 것이라 하면 역시 치킨이겠지.
─와삭!
닭다리를 들어 가볍게 한입. 가장 도톰한 부위를 씹으니 바삭한 튀김옷과 짭조름한 살이 함께 뜯겨 나온다.
"오."
잡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고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풍부한 육즙. 튀김옷 안에 갇혀 있던 맛이 입속에서 단번에 폭발한다.
'뭐야 이거. 괜찮은데?'
단돈 10달러짜리 메뉴라곤 생각하기 힘든 퀄리티에 살짝 놀랐다.
케일과 비슷한 채소와 옥수수빵을 반찬 삼아 먹자 살짝 강하던 짠맛이 딱 좋은 뒷맛으로 남는다.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맛이다.
한국의 치킨하고는 조금 궤가 다르지만, 이쪽은 이쪽대로 상당히 맛있다.
"반응을 보니 자네도 이 집은 처음인 것 같은데. 여길 소개해준 건 자넨데 말이야."
"네. 사실 저도 우연찮게 알게 된 친구에게 소개받은 가게거든요. 직접 와보는 건 처음이에요."
뭐, 소개를 받은 건 회귀하기 전이었지만 말이다.
이 가게를 알려준 건 당시 주방에서 함께 일하던 흑인 친구였다.
'정확히는 그립다고 하소연하던 걸 계속 듣다가 알게 된 거지만.'
마마 벨의 키친하우스. 개업한 지 50년도 더 된 낡은 레스토랑이지만 맛과 분위기 하나는 일품인 곳이다.
정확히는, 그런 곳이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엔 이미 가지 못하는 곳이 되었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가게의 오너인 마마 벨이 노령이 되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게 내가 미국으로 건너가기 조금 전이라고 했으니까…….'
앞으로 대충 7~8년쯤 뒤일까.
그 친구가 말하길 마이애미에 제 친구가 놀러 온다면 반드시 소개해주고 싶은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고 했는데. 과연, 직접 와 보니 알겠다. 이 정도면 데려오고 싶을 만도 하지.
"좋은 친구를 뒀구만."
"그러게요."
식사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뭐, 밥이 맛있는데 어떻게 식사가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식사의 만족도란 건 함께 먹는 사람에게도 달린 거니까.'
같이 먹는 사람의 테이블 매너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게 테이블 만족도다.
괜히 우리 식당에서 싸운 다음에 식당 평가에 안 좋은 후기를 남기는 커플이나 단체 손님을 싫어한 게 아니지.
식당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을 갖고 그걸 식당 탓으로 돌리면 어쩌라는 건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인도팀 셰프들은 아주 좋은 식사 상대였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먹는 자리에서 꺼내지 않고, 맛있다며 추임새를 넣을 때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얌전히, 조용하게 밥을 먹는다.
친구도 아니지만 아주 모르는 사람도 아닌, 그런 애매한 거리감을 가진 상대라면 이 정도 분위기가 딱 좋다.
'뭐, 애당초 그런 사람을 왜 식사 자리에 같이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맛있는 걸 먹으러 올 수 있었으니 됐다고 칠까.
각자 한 접시를 깔끔히 비운 우리는 거기에 더해 저마다 치킨 몇 조각을 추가해 먹는 것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후식 겸 드링크로 나온 음료수를 홀짝이며 자리에 앉아 소화 시키는 것도 잠시. 물티슈로 손을 닦은 란초 셰프가 내게 말을 건넸다.
"덕분에 잘 먹었네. 훌륭한 가게를 소개해줘서 고맙구만."
"아뇨. 저도 소개받은 곳으로 왔을 뿐인걸요. 그게 다행히 좋은 가게였던 거죠."
"그게 중요한 거지."
흠흠, 작게 헛기침을 뱉은 그가 말을 잇는다.
"우리 힌두교의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는 이런 구절이 있네. 용감한 우자가 겁쟁이 현자보다 낫다. 결과에 두려워 말고 앞서 행동하라. 도전이란 항상 멍청이의 전유물이지만, 그렇기에 위대하다."
뿔테 안경 너머로 그의 눈이 빛난다.
"우리는 자네를 초대했고, 자네는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했지. 덕분에 우린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었고. 서로가 행동하지 않았다면 이런 행운도 없지 않았겠나."
묘하게 날 치켜세우는 것 같은 발언에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였지만, 대회장에 탄두르를 통째로 들고 온다는 발상을 실제로 해낸 사람이 행동의 중요함을 논하니 무게감이 다르다.
설마 이번에도 비슷한 짓을 저지를 생각인가?
'그럼 이번엔 안 늦었으면 좋겠는데.'
설마 싶은 생각을 애매한 웃음으로 넘기며 응수하는 날 본 란초 셰프가 너스레를 떨며 말을 잇는다.
"아무튼, 고맙네. 맛있는 식사를 하게 해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식사는 우리가 사는 걸로 하지."
"예? 아니요. 괜찮아요. 제 몫은 제가……."
"보답이라고 생각하래도."
한사코 거절하는 내 말에도 란초 셰프는 괜찮다며 거절을 거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난 정말로 이 친절을 잠자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단순히 체면이나 그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건 상대를 향한 배려라기 보단, 내 자신의 마음가짐을 바로잡기 위한, 날 위한 거절이었다.
"아닙니다. 제 몫은 제가 낼게요. 내일 시합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여러분께 무언가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시합에 임하기 전 좋든 나쁘든 사감이 생길 일은 피하고자 했다. 그래야만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합에 임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의 휴식은 그런 평상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나는 그걸 깨트리고 싶지 않다. 거절하는 이유라곤 오직 그게 전부다.
나는 이 말이 건방지게 보일 수 있단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겸양으로 보이는 것보단 차라리 그게 나았다.
"흐음……."
내 일관된 거절에 란초 셰프는 생각을 알기 힘든 눈빛으로 날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자네가 그러길 바란다면 억지로 내 생각을 밀어붙이는 게 오히려 악행이겠지. 각자 계산하는 걸로 하세."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따로 계산을 마친 우리는 이윽고 가게 앞에서 마주섰다. 나는 바로 호텔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란초 셰프 일행은 식사 후 들러야 할 곳이 있다며 다른 행선지로 향했기 때문이다.
서로 작별인사를 할 때까지도 란초 셰프는 혼자 돌아가는 건 위험할지도 모른다며 셰프 한 사람을 내게 붙여주려 했으나, 내 대답은 이번에도 역시 거절이었다.
"요 바로 앞이니까 금방 갈 수 있습니다. 영어도 할 수 있고, 핸드폰도 챙겨 나왔으니까요."
"그렇다면야…… 좋아. 조심히 들어가게."
"네. 란초 셰프도요."
"그래. 아, 그리고……."
말꼬리를 늘린 란초 셰프가 팔짱을 낀 채 잠시 시선을 돌린다. 말을 고르는 듯한 모양새.
잠시 후, 겨우 할 말을 정리한 그가 날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내일 자네 팀의 팀장에게 개인전을 신청할 생각이네."
"…… 예?"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왜 자기네 전략을 나한테 알려주고 자빠졌지?
대체 사고가 어떤 방향으로 굴러간 건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내뱉은 그를 보며 당황한 날 향해 란초 셰프가 '뭐, 그것도 코인토스에서 상대를 지정할 권리를 얻었을 때의 얘기지만.'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까?"
"흠…… 글쎄. 무슨 뜻인 것 같나?"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편한 대로 생각하게. 이건 내가 자네를 흔들려고 한 거짓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심이 담긴 도전장을 전달할 우편부 역할을 자네에게 맡기고 싶어 한 말일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는 란초 셰프는 여전히 의미심장한 미소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웃음에 담긴 의도를 좀처럼 재단할 수가 없어서 혼란스럽다.
서로를 마주 보며 그 속내를 알기 위해 눈을 부라리는 것도 잠시, 나는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역시, 잘 모르겠네요."
딱히 알 필요는 없다. 그게 바로 내 결론이었다.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나?"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닌데요. 어차피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호기심을 해소하든 해소하지 않든, 결국 대결은 필연적이다.
"정말로 교장 선생님을 지목하시든, 아니면 저나 다른 팀원을 고르시든. 우리는 전부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도 하나 알려드릴게요."
"흠?"
"내일, 코인토스에서 저희가 대표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면……."
고개를 들어, 란초 셰프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때는 란초 셰프. 당신을 지목할 겁니다."
"호……."
"뭐, 이것도 거짓말이 아니라곤 장담할 수 없지만요."
씨익.
내 입이 호선을 그리고, 그에 맞춰 란초 셰프의 입가도 귓가를 향해 다가간다.
서로를 향한 웃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가. 이게 무슨 정치도 아니고, 그런 건 굳이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굴 상대하든 이긴다.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이, 스스로가 그렇게 믿고 행동한다.
장담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그렇게 믿고 행동하겠다는 약속. 그것 하나뿐.
잠시 후, 란초 셰프는 몇 시간 전 호텔 로비에서 그랬듯이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굳게 맞잡았다.
이전보다 강해진 아귀힘. 그에 맞춰 나 또한 더욱 억세게 손을 쥐자 그가 웃으며 말한다.
"즐거운 저녁식사였네. 주루 마삭."
"별 말씀을요. 셰프."
그렇게 말하고 떠나가는 란초 셰프를 향해 흔드는 내 손에는 그의 손아귀 모양 그대로 붉은 자국이 남았다. 젠장, 거 다 늙은 아저씨가 뭐 저리 힘이 센지. 손도 거칠어서 엄청나게 아팠다.
하지만 그런 란초 셰프 또한, 날 향한 등에 가린 곳에서 제 손을 조심스레 주무르고 있었다.
역시 세상사 요지경.
노인공격…… 아니, 노인공경이라는 유교의 정신을 그들이 톡톡히 맛보았길 바랐다.
***
"거, 젊은 놈이 늙은이 대하는 게 험하군."
"괜찮으십니까?"
"됐어. 괜히 신경 쓰는 거 보여주지 마. 쪽팔리니까."
란초의 강경한 말에 그의 제자인 자키르가 옆으로 물러섰다.
"아무래도 만만히 볼 녀석들은 아니군. 제일 어린 녀석이 저래서야, 다른 것들도 알만해."
그나마 영국 놈들은 기저에 인도인을 무시하는 편견이 깔려 있어 상대하기 편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저들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며 란초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단단히 고생해야겠어."
도통 만족스럽지 않은 모습에 대충 손을 털며 고통을 떨친 란초는 이미 보이지 않게 된 찬혁의 모습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거, 되바라진 놈이긴 하지만…….'
배짱 하나는 있는 꼬마였다. 이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한 치의 물러섬을 모를 정도였으니까.
과연 내 제자는 언제 저렇게 커서 내 부담을 좀 줄여줄까.
'저런 놈이 내 아래 있었으면 그놈한테 가게를 줬을 텐데.'
그런 한탄과 함께 란초는 서둘러 발을 놀렸다.
"서두르자. 아무래도 준비를 좀 더 확실히 해야겠어."
속도를 높이는 란초의 뒤를 두 제자가 서둘러 쫓는다.
마이애미의 달이 점점 머리 위로 오르는 저녁. 도시 외곽의 개인 철공소로 향하는 남자들의 발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