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아온 요리고 고인물-330화 (330/403)

330. to the next stage.-8-

"…… 그래요. 결국 그렇게 됐군요."

인도와 영국의 시합이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시합을 결과를 내게 전달받은 교장 선생님은 팔짱을 낀 채 담담히 그 말을 곱씹으셨다.

"윌리엄 셰프쯤 되는 실력자가 이끄는 팀이 16강전에서 떨어질 줄이야."

"운이 없었죠."

그렇다. 운이 없었다.

첫 번째 개인전 때 주제인 소고기 같은 경우야 윌리엄 셰프의 실수와 란초 셰프의 임기응변이 적절히 어우러져 나온 결과라고 쳐도, 두 번째, 세 번째 시합의 주제는 분명 영국에게 불리했다.

오히려 해산물 생산량 강국 중 하나인 인도와의 해산물 대결에서 이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에요. 우리라고 그런 일이 없으리란 법은 없어요."

"…… 그렇겠죠."

"반대로, 운이 따랐을 때 그걸 살리는 것 또한 실력이 없으면 못 할 일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대로, 인도팀 또한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을 실력이 있었기에 영국 같은 강팀을 꺾고 올라온 것이다.

'특히, 란초 셰프의 실력은 인도팀 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시합을 보며 살핀 다른 인도팀 팀원의 평균적인 실력을 1이라고 쳤을 때, 란초 셰프는 못해도 2.5에서 3 정도였다.

물론 요리 실력이란 게 절댓값으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사람들이 숨긴 것까지 모두 꿰뚫어 본 것도 아니긴 하다만.

'이번 1회전 시합 중에서 명장면을 딱 하나 뽑으라면 분명 그거겠지.'

실시간으로 배합한 마살라.

각각의 요리에 사용될 마살라가 30초에 하나 꼴로 튀어나오던 모습을 반추하면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아니, 정말 솔직히 말하면 무섭다. 그게 사람이야? 기술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한 가지 직종에 오래 매진한 달인이 무게를 그램 단위로 맞추는 모습 같은 게 자주 나온다.

물론 나도 얼추 가능하다. 손에 잡히는 무게의 물체를 얼추 가늠하는 거야 시간을 들여 익숙해지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각각의 요리에 어울리는 최적의 향신료 배합을 감각과 지식만으로 정확하게 때려 맞힌다?

난 못 한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끝에 탄생한 결과물을 보라.

난과 난 반죽을 튀겨 만든 로티, 그리고 인도식 볶음밥 중 하나인 비리야니.

30분이란 짧은 시간 만에 열 가지가 넘는 빵과, 그 빵을 사용한 주식 요리를 만들어낸 영국팀과는 달리 인도팀이 내놓은 주식은 고작 그 세 가지뿐이었다.

그러나 인도팀이 힘을 쏟은 건 다른 곳.

단순한 커리나 양고기 볶음부터 시작해서 난과 로티, 비리야니를 맛있게 먹을 수 있게끔, 그러면서도 질리지 않게끔.

수십 가지의 곁들이는 요리를 통해 매일매일 먹으면서도 쉬이 질리지 않는, 주식이라는 주제를 그 무엇보다 잘 살려내어 인도팀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흐음……."

"음……."

핸드폰으로 녹화된 생방송 장면을 살피던 다른 어르신들 사이에서 깊은 침음성이 흐른다.

마침 후반부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란초 셰프의 영상이 나오는 듯하다.

이해한다. 어느 팀이 올라오든 한국팀에게 있어 난처한 상대라는 건 변하지 않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걸 직접 보면 기가 죽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까, 이러면 또 시드권 보유자끼리 시합하게 됐네."

무심코 떠올랐다는 듯 신기하단 어투인 유동건 사장님의 발언에 내 입이 굳게 다물렸다.

'설마, 진짜 설마 싶긴 한데…….'

우리, 이대로 계속 시드권 팀하고만 싸우는 거 아니야?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거, 번호 처음 뽑은 사람이 완전 역적 되는 전개인가?'

그리고 그 번호를 처음 뽑은 사람이 나고?

우와, 농담이 아니라 지금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등골에 얼음을, 그것도 그냥 얼음도 아니고 드라이아이스를 집어넣은 것 같은 기분이다.

"…… 꼭 이기죠, 저희."

"응? 어. 그래야지. 이겨야지."

안 된다. 그러다가 지면 진짜 역적이다. 농담도 과장도 없이 똥손으로 대회를 말아먹은 사람으로 역사에 박제될지도 모른다.

나는 요리사로서 이름을 남기고 싶은 거지, 똥손의 상징 같은 걸로 남고 싶은 게 아니라고.

절대로 져선 안 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기고 말았다.

아니 뭐, 원래도 질 생각은 없었지만.

***

첫 번째 승리를 기념하는 뒤풀이 날로부터 며칠.

우리는 우리대로, 대회는 대회대로 제법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16강전, 32개의 팀 중 벌써 반수 이상이 승리, 혹은 패배를 기록하며 각각의 자리로 떠났고, 앞으로 남은 16강전 시합도 몇 개 안 되는 상황.

그런 나날 속에서 한국팀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면…….

"그럼 이건 뭐게?"

"어…… 하나는 넛맥이고……."

"또 하나는?"

"거기다가 차이브 분말? 비율은 넛맥 7에 차이브 3 정도 같은데……."

"오, 아까워. 다 맞았는데 마지막 게 틀렸어. 비율은 7:3이 아니라 6:4야."

"…… 그 정도면 그냥 맞은 걸로 쳐주시면 안 돼요?"

"자기는 0.5 단위로 틀렸다고 했으면서 잘도 말한다. 자, 이번엔 내 차례."

"에헤헤…… 옙.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또 하나 만들어올게요."

"그래. 이번엔 좀 알만하게 해주라."

공부 중이다.

무슨 공부냐고? 그야 당연히 다음 시합에서 인도를 상대로 이기기 위한 공부지.

갑자기 웬 공부냐 하면, 어차피 우리들의 실전 능력은 한 주 단위의 연습으로 커다란 성과를 보기 힘든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조금 더 성과를 볼 방법이라고 해봐야 지식을 쌓는 것뿐.

그중에서도 우리가 선택한 과목은, 보시다시피 향신료 공부였다.

물론 우리 일행의 향신료에 대한 지식은 그렇게 일천하지 않다.

아무리 한식이 향신료를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는 요리라곤 해도 향신채를 포함하면 제법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고, 중식 전문인 차윤구 셰프나 프렌치, 이탈리안 전문인 나도 각자의 주체에 맞는 향신료에 대해선 제법 빠삭하다.

뭣보다 요리사로 살아온 수십 년에 달하는 세월은 거짓이 아닌지라, 우리 다섯 사람은 적어도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향신료 사용법을 체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부터 시작한 향신료에 대한 공부는, 말하자면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장르에 대한 공부였다.

인도에서 사용하는 향신료. 그리고 그 배합.

우리가 아는 수많은 셰프를 통해 수집한 일종의 집단지성을 사용하여, 조금이나마 그것에 가까운 배합을 직접 체험하고 지식을 쌓아야 그걸 어떻게 이용할지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란초 셰프의 향신료 다루는 솜씨는 하루이틀 해서 생긴 게 아닐 테니까.'

이렇게 며칠 공부한다손 쳐도 아마 그리 대단한 도움은 안 될 것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큰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지레 손 놓고 있으면 그쪽이 우릴 봐주기라도 할까.

지금 이 순간도 란초 셰프를 비롯한 인도팀은 우리들의 정보를 파헤치고 대책을 세우느라 바쁠 것이다. 마치 우리들처럼.

'하지만…….'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될 일이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그쪽을 대비해서 중, 남부아시아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에 대한 공부를 해봤자 결국 절대적인 정보가 모자라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리고 우리가 아는 향신료에 대해선 이미 코나 혀가 향과 맛에 둔감해질 정도로 공부했다. 이 이상 공부해봐야 슬슬 독이 되리라.

'아마 이래도 꽤 많이 부족하겠지.'

란초 셰프가 사용하는 향신료 중에는 분명 우리가 전혀 모르는 것도 많을 것이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수입 금지품목에 들어있는 식물의 씨앗이나 열매의 분말 같은 것이 외국에서는 멀쩡하게 식재료로 쓰일 때도 있다.

그런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우리의 공부로는 란초 셰프의 모든 저력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

'애당초 고작 일주일 공부해서 평생 노력한 사람을 따라잡겠다는 것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떻게든 가능성을 만들겠다는 점에서는, 아주 의미 없는 노력은 아니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알려진 레시피를 통해 우리들만의 가람 마살라를 개발해보는 등, 여러 노력을 거친 끝에 우리도 분명히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다량의 향신료를 사용하여 만든 음식은 과하게 임팩트가 강하다.

그게 때로는 강점이 되지만, 어떨 때엔 약점이 된다.

예를 들어 아예 컨셉을 한 가지 방향으로 몰지 못한다면 여러 가지 메뉴로 마리아주를 형성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던가 하는 게 약점이 되겠지.

'요컨대 요리 하나를 보면 다른 요리도 대충 예상할 수 있단 뜻이 된다.'

물론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의외로 상극이 될 것처럼 보이던 조합도 막상 따로따로 두고 먹어보면 은근히 조합이 괜찮아서 계속 손이 가던 요리도 있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이런 부분에서 란초 셰프가 실패하리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한 나라에서 셰프만 수십 년을 했는데 설마 그걸 모를까.

그 외에도 향신료를 자주 접하지 않은 사람이면 제법 크게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던가 하는 것도 있지만, 어차피 심사위원 중에 그런 사람은 없을 테니 패스.

향신료와 재료의 배합을 실패하면 사용된 식재료의 맛이 크게 밀린다거나, 처음 먹은 향신료 때문에 뒤에 먹을 음식의 맛을 느끼는 데에 방해가 된다거나.

깊게 파고 들어가면 제법 이런저런 약점이 분명 눈에 띄게 있었지만…….

'문제는 이게 시합 형식에선 우리한테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라는 거지.'

애당초 이쪽에서 흔히 사용하는 향신료는 당연히 저쪽에서도 곧잘 쓴다.

파, 마늘 같은 건 당연하고 고춧가루나 잣, 깨, 깻잎, 고수 같은 향신료에 대비되는 물건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즉, 인도에게 선행 심사를 넘겨주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미각과 후각은 쓰면 쓸수록 쉽게 무뎌지는 감각기관인데, 향신료는 그 두 가지를 핀포인트로 찌르는 예리한 독침이다. 그것도 마비독이 발린.

'거기다 란초 셰프는 그런 빈틈을 찌르는 데 선수지.'

과연 그런 팀을 상대로 얼마나 우리가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런 불확실한 믿음 속에서 공부와 연습을 이어나가기도 잠시, 드디어 16강전의 일정이 마지막 하루를 남긴 날, 나를 비롯한 선수들에게 다음 8강전이 진행될 장소에 대한 연락이 도착했다.

전 우승팀에 대한 리스펙트로 열린 한국에서의 16강전.

다음 8강전이 열릴 나라는 바로…….

"오. 여긴 오랜만인데."

United States of America. 줄여서 U.S.A.

그렇다. 다음 8강전이 열릴 나라는 오대수PD님 피셜 방송 제작비 중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낸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 인종의 용광로.

"미국이라."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도시.

그중에서도 해변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플로리다. 그곳이 우리의 다음 행선지였다.

"…… 12월에 플로리다라."

그래, 적어도 조금 따뜻하긴 하겠네.

작은 아쉬움은, 애교로 봐주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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