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to the next stage.-5-
투르네도 로시니.
이는 수 세기 전 유럽의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천재 작곡가이자 불후의 미식가인 조아키오 안토니오 로시니라는 인물이 만들어낸 요리다.
요리의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겉에 바삭바삭한 크러스트가 생기도록 잘 구운 식빵 위에 필레미뇽 스테이크를 얹고, 그 위에 푸아그라 소테를 올려 얇게 저민 트러플을 곁들여 먹는 요리.
만드는 방법 자체는 아마추어라도 조금 연습하면 얼추 따라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만, 그 결과물은 믿기지 않도록 강렬하다.
'당연하지. 그만한 재료가 들어가면 맛이 없는 게 이상해.'
물론 완벽한 일품을 만들기 위해선 솜씨가 필요하겠지만, 투르네도 로시니는 들어가는 수고에 비해 결과물이 너무나도 알차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가성비가 좋다?
"…… 그야 뭐, 수고만 생각하면 그렇겠지."
제대로 된 투르네도 로시니를 만드려면 재룟값만 따져도 수십만 정도는 금방 깨지는데, 가성비라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다.
아무튼, 그런 메뉴를 만들려는 윌리엄 셰프의 의도는 한눈에 짐작할 수 있는 만큼, 오히려 이쪽에는 그다지 눈을 줄 필요가 없게 됐다.
MC와 해설자인 박종원 선생님의 설명으로 이제야 윌리엄 셰프가 꺼낸 재료가 무엇인지 알아챈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감탄사를 내뱉었지만,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즉 눈치챈 지 오래일 터.
실제로 관객석 사이에서 가끔 보이는 다른 팀의 선수들은 이미 윌리엄 셰프가 아닌 란초 셰프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자, 이제 어떻게 하려나.'
이 상황을 이겨내느냐, 이겨내지 못하느냐.
방도를 생각해내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로 란초 셰프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윌리엄 셰프가 팬에서 사방을 잘 시어링한 안심을 빼낼 무렵, 드디어 란초 셰프도 움직인다.
다만, 이번에는 활동하는 반경이 굉장히 크다.
"쓸 생각이구나."
아까부터 불을 지핀 채 조용히 예열되던 탄두르의 덮개를 열어젖히는 란초 셰프. 평균 섭씨 400도의 열기로 달아오른 탄두르의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어지럽다.
아무리 히터를 틀고 있다지만, 넓이가 상당한 만큼 완벽한 난방은 기대할 수 없는 행사장. 그러나 탄두르의 주변만큼은 기이하리만치 일렁임이 인다.
'막상 보면 대단하단 말이지.'
인도의 평균 기온은 사시사철 30도 남짓한 수준에서 머문다. 한국에서 제법 무더운 여름날이 인도에서는 1년 365일 항시 이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습도나 지리, 풍량, 풍향 등에서 발생하는 차이가 있기야 하겠다마는, 그럼에도 인도가 더운 나라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
그런 나라의 주방에서 400도짜리 화덕을 매일같이 지펴두고 근무하는 인도 요리사들의 사정이란…… 참 이해가 가다가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좀 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화덕 가까이에서 400도의 열기를 온몸으로 쬐는 란초 셰프의 얼굴은 어딘가 평온하다. 뿐만 아니라 살짝 미소가 지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긴, 한창 깊은 겨울을 맞이한 한국 땅에서 익숙하지 않은 추위에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저 사람들에겐 차라리 저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상황에서 미소라.
란초 셰프의 정확한 실력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투르네도 로시니같이 재료만 봐도 결과물을 짐작할 수 있는 메뉴를 보고 아무것도 눈치 못 챌 리는 없다.
그런데 그걸 알고도 저토록 편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건…….
'이길 방법이 있다는 건가.'
과연 무슨 대책이 있기에 이 위기 상황에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지 호기심이 동해질 무렵, 비로소 탄두르 체크를 끝낸 란초 셰프가 손을 놀리기 시작한다.
시작은 고기 반죽을 쇠꼬치에 단단히 뭉친 시크 케밥부터.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쇠고기를 굽는 향기로운 내음이 숯향과 함께 스테이지를 채우기 시작한다.
시크 케밥은 만드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요리가 아니다.
다진 고기와 야채, 향신료를 반죽.
꼬치에 붙이고 탄두르에서 구움.
조리 과정이라고 해봐야 이게 전부. 사실 시크 케밥의 맛은 굽는 기술 자체보다는 반죽과 향신료의 조합에서 갈리는 법이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인도식 레스토랑에서 시크 케밥을 주문하면 아무리 늦어도 최소 10분 안에 갓 구운 난과 시크 케밥이 나온다.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느긋한 식사가 일상인 유럽에서도 그만한 속도를 자랑하는 거니까. 거의 라면 하나 끓일 시간에 케밥 세트가 나오는 거라고 보면 상당히 빠르다는 걸 알겠지.
란초 셰프의 요리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탄두르에 케밥을 넣기 무섭게 발판에서 재주를 부리듯 뛰어 내려와 빻은 민트잎을 섞은 플레인 요거트와 간단한 샐러드를 준비하고, 고기가 적당한 굽기로 익을 때쯤 다시 난 반죽을 들고 올라가선 순식간에 난까지 완성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체 탄두르의 뻥 뚫린 구멍 속으로 손이 몇 번을 오갔는지.
감각이 없는 일반인이 따라한다면 당장 팔뚝 전체에 골고루 화상을 입기 딱 좋은 짓이지만, 란초 셰프는 무슨 팔이 무쇠로 된 사람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저 불구덩이에 손을 막 집어넣는다.
'인도 출신 셰프들 하는 거 보면 여전히 신기하단 말이지.'
인도는 인구가 많다. 그런 와중에 나라 자체도 그리 폐쇄적이지 않다 보니…… 아니, 오히려 외국에 인재수출을 적극 장려하는 나라다 보니 직장에서도 인도계 셰프를 보는 일이 잦았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항상 끓는 기름에도 멀쩡히 손을 넣는다거나 불 온도를 그냥 촉으로 재는 등, 무슨 요리사가 아니라 기예단을 보는 것 같았지.
하지만…….
'이상한데.'
그렇게 단순하고 빠른 조리과정을 가진 요리이기에, 반대로 무언가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금방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란초 셰프가 지금껏 보여준 조리법은 아주 정석적인 조리법이다.
평범한 시크 케밥 세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조리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내가 이상하다고 한 건 '이기기 위한 궁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요리하느라 머리와 몸이 가릴 것 없이 바쁘다 해도 이대로 가면 승산이 없단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란초 셰프의 요리는 점차 완성되어간다.
커다란 자기 접시에 샐러드와 난을 깔고, 그 위로 꼬치에서 빼낸 시크 케밥을 얹는다.
거기에 더해 곁들일 양념 몇 가지와 민트를 넣은 플레인 요거트.
그리고…….
"어?"
설마 저게 끝인가? 하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란초 셰프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
조리대 한쪽에 있던 오븐에서, 갑자기 무언가를 꺼낸 것이다.
'쇠주전자?'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건 분명 쇠주전자였다. 그것도 손잡이까지 전부 일체형으로 된 오븐용 주전자 말이다.
주전자? 아니 그것보다 오븐?
이상하다. 탄두르라는 재래식 화덕을 굳이 준비한 팀이 왜 오븐을? 그것보다 대체 언제 오븐을 켰던 걸까. 잠깐 윌리엄 셰프를 봤을 때인가?
'그런데 냄비도 아니고, 대체 왜 오븐에 주전자를…….'
내 생각이 미처 정리되기도 전에, 란초 셰프는 손을 번쩍 들어 조리 완료를 선언한다.
윌리엄 셰프는 거의 완성하긴 했으나 아직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상황.
그러나 윌리엄 셰프는 심사가 뒤로 밀리는 게 무슨 문제냐는 듯 느긋하고 유려한 손놀림으로 요리를 이어나간다.
'자기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거야.'
과연 그게 옳은 생각일지, 아니면 과신일지는 곧 시작할 란초 셰프의 심사를 보면 알겠지.
"란초 바트 선수의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시작되는 영국vs인도 시합의 첫 심사.
제1시합 때와는 다른 심사위원이 앉은 심사단의 테이블에 란초 셰프가 접시를 올린다.
대충 몰아 담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플레이팅이지만, 오히려 저 특유의 난잡함이 인도 요리의 멋을 살려주기도 한다.
없어 보이는 것과 빈티지 패션의 차이라고 함이 옳을까.
운반이 끝나기 무섭게 심사단은 일제히 식기를 들어 올렸다. 시식을 시작할 셈이리라.
그런데 그때, 심사단이 음식에 포크를 찍기 직전.
갑자기 란초 셰프가 한 손을 뻗어 그들을 제지한다.
"Stop!"
멈춰!…… 묘하게 기시감이 드는…… 아니, 아무튼.
대체 무슨 생각일까. 갑자기 시식을 막아선 란초 셰프를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는 심사단 앞에서 란초 셰프는 여태 트레이 위에 가만히 올라가 있던 주전자를 들어 보였다.
아까 오븐에서 나왔던, 그 주전자다.
'뭐가 들어있는 거지.'
혹시 커리 같은 게 들은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커리는 만드는 데에 제법 수고가 드는 요리다. 커리를 만들었다면 내가 그 모습을 놓쳤을 리 없다.
"란초 셰프. 그 주전자는 뭐죠?"
나와 같은 의문을 품은 심사위원 한 사람이 그에게 묻는다.
그러자 란초 셰프는 의시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수염을 일그러트리곤, 마치 건배를 하는 듯 주전자를 내밀며 답했다.
"저희 케밥에 이게 빠지면 섭하죠."
조심하세요. 엄청 뜨거울 겁니다.
그 말과 함께, 란초 셰프는 심사단 앞에 놓인 요리 위에서 주전자를 기울여, 그 내용물을 접시 위로 쭈욱 붓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심사단의 목깃에 달린 마이크를 통해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이이이이이이익!
마치 엄청나게 달아오른 불판에 고기를 올린 듯, 요리 외부의 수분이 터지는 특유의 파열음이 온 행사장을 뒤덮는다.
"……!"
소리, 낯선 소리. 하지만 분명 들어본 적 있는 소리.
그렇다. 꼭 끓는 기름에 튀김반죽을 입힌 재료를 넣은 것 같은.
여기까지 생각한 순간, 내 머릿속에서 퍼즐의 조각이 맞아 들어가듯 주전자의 내용물에 대한 해답이 떠올랐다.
"…… 설마, 기버터?"
앞서, 나는 이 승부의 승패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 바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을 철회할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졌던 승부의 천칭이 기버터의 등장으로 갑자기 그 방향을 바꿨다.
"…… 엄청난 사람인데."
아마 이 시합, 이 이상의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승리는 란초 셰프의 몫이 되리라.
기버터의 모습이 드러난 직후 일그러진 윌리엄 셰프의 얼굴이 바로 그 근거였다.
***
중식의 조리법 중, 끓는 기름을 국자로 퍼부어가며 튀기는 건지 굽는 건지 모를 애매한 조리법이 있다.
얇게 썬 파채를 요리 위에 듬뿍 올리고, 그 위로 끓는 기름을 끼얹어 자연스럽게 파기름의 향을 요리에 첨가하거나, 생선을 아주 세밀하게 익히고 싶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기버터. 인도에서 주로 만들어지는 정제버터의 일종이다.
다른 버터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발연점이 여타 버터에 비해 굉장히 높다는 것.
그렇기에, 이 버터는 마치 식용유처럼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요리를 통째로 집어넣어 튀기거나, 혹은 앞서 말한 중식의 조리법과 유사하게 끓인 버터를 끼얹어 요리를 익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게 있다면, 평범한 식용유와는 달리 기버터는 그 자체로도 엄청난 풍미를 가진 기름이라는 것.
끓인 기버터를 케밥 위에 뿌려 순식간에 겉을 향긋한 풍미로 코팅함과 동시에, 부족한 기름기를 보충하여 식감과 맛, 온도를 먹기 좋게끔 만들어준다.
물론 이 버터에 난을 찍어 먹는 것도 좋다. 아마 그냥 맨 난만 먹어도 세 판은 해치우리라.
말하자면 밥도둑…… 아니, 난도둑이라고 해야 할까.
기버터 자체의 풍미는 그토록 놀랍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버터를 요리에 뿌려 먹는 건 다시 말하자면 '맛있는 기름'을 요리에 곁들여 먹는 것과 같다.
바로 이게 문제다. 주로 윌리엄 셰프 측에.
"맛있는 기름을 먹는 요리…… 이거 참."
이거 어쩌나. 윌리엄 셰프도 같은 꼴인데.
투르네도 로시니란 푸아그라라는 '맛있는 기름'을 기름기가 살짝 부족한 안심 스테이크와 함께 먹는 요리.
그렇다. 두 셰프의 요리는 지금 이 순간, 같은 강점,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요리가 된 것이다.
주제의 정면충돌.
이 시합의 구도가, 둘 중 하나는 크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