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to the next stage.-3-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돌굴뚝의 등장에 관객석이 술렁인다.
시장에서나 볼법한 철제 카트 위에 올라간 그놈은 그야말로 상당한 덩치를 자랑했다.
높이는 대략 1.5미터. 굴뚝의 지름은 대충 50cm 남짓일까.
마치 원뿔 도형이 중간에서 잘린 것처럼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상을 한 무언가.
"아니, 잠깐만. 저거 설마……."
인도팀이 가져온 정체 모를 물건을 유심히 살피던 나는, 그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시감에 비로소 저 굴뚝의 진짜 용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탄두르 아냐?"
탄두르Tandoor. 인도라 하면 흔히 떠올릴법한 난이나 케밥 따위의 음식을 구울 때 사용하는 원통모양의 재래식 오븐을 이르는 말이다.
사방을 막고 입구를 뚫어 사용하는 유럽식 오븐과는 달리, 오븐의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뚫어 그곳으로 식재료를 넣어 익히는 식으로 사용하는 인도식 오븐.
설마 그런 물건을 여기까지 가져왔겠나 싶었으나, 이내 조리대 한쪽에 굴뚝을 설치하는 인도팀의 행동을 본 뒤에 설마가 사람을 잡았음을 깨달았다.
"…… 진짜 탄두르네……."
놀랍게도, 그들은 어떻게 준비했는지 모를 불붙은 숯을 가져오더니 굴뚝 안에 부어 버린 것이다.
세상에 맙소사. 운영측에서 요리 대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일부 구간의 스프링클러 센서를 꺼두지 않았다면 행사장 전체가 물바다가 됐을지도 모른다.
태평한 모습으로 탄두르의 뚜껑을 닫고 예열을 시작한 그들은 거기에 더해 탄두르의 사이즈에 맞춘 넓은 발판까지 가져와 세팅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눈을 뺏겨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멍하니 구경하기를 어언 수십여 분.
모든 준비를 끝낸 인도팀은 당최 뻔뻔한 건지, 아니면 당당한 건지 모를 태도로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조리대 앞에 나란히 선다.
이미 공식적인 시합 개시 시간은 제법 지났는데도 말이다.
"인도팀. 조리도구의 반입은 허용됩니다만, 준비할 게 있다면 시합 시작 전에 미리 해두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여기 경비가 엄청 깐깐해서요. 저희가 준비할 게 있대도 개방 시간 전까지는 들여보내 주질 않더군요. 급하게 준비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 알겠습니다. 경비 측에는 따로 언질을 넣어두도록 하죠."
보다 못해 경고를 주는 심판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인도 특유의 발음이 섞인 영어로 능청을 부리며 답하는 인도팀 팀장의 반론에 정상참작 해주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 사람이…….'
인도팀 팀장, 란주 바트 셰프. 국내에서는 거의 정보가 없지만 웹플릭스 방송 내용에 따르면 수십에 달하는 제자, 그리고 수백에 달하는 제자의 제자와 함께 뭄바이의 도심을 제패하다시피 했다는 셰프.
'다른 팀원 중 몇 사람도 저 사람 제자라고 했던가.'
어떤 의미로 우리 팀과 비슷한 상황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잡음이 좀 끼긴 했지만, 시합 자체는 별문제 없이 그 개시를 알렸다.
영국팀도 언짢은 표정을 감추진 못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는 쪽이 더 싫었는지 아무 반론 없이 스테이지 중앙에 섰다.
"개시 시간 지연에 대한 책임은 분명 인도팀 측에 있으므로 코인 토스는 생략하고 영국팀에게 선택 권한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영국팀. 대표 선택과 주제 선택, 어느 쪽을 고를지 말씀해주세요."
"우리는…… 주제를 선택하겠습니다."
호오, 주제라. 그것도 괜찮은 선택이지.
영국팀 대표로 나선 윌리엄 램든 셰프의 선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팀은 개개인이 전부 대단한 명성을 가진 셰프이기에, 상대가 누굴 고르던 큰 부담 없이 시합에 임할 수 있다.
하지만 주제만큼은 다르다. 인도팀을 상대로 주제를 고를 권한을 넘겨준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다.
영국팀에게 불리하다기보다, 인도팀에게 너무 유리한 주제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커리를 주제로 고르게 두면 안 돼.'
우리나라에서는 카레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카레는 정확히 말하자면 커리라는 대분류에 포함된 요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수십 종의 향신료를 그들의 방식대로 섞어 만들어내는 인도의 커리 문화.
아무리 영국이 인도의 요리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곤 하나, 인도와 커리로 싸우는 것만큼 무모한 짓은 또 없다. 프랑스와 닭으로 싸우는 것조차 인도와 커리로 싸우는 것보단 쉬운 일이리라.
윌리엄 셰프도 그걸 모르진 않겠지. 주제를 고르겠다는 말을 보면 분명하다.
"주제. 확인했습니다. 그럼 주제 선택에 앞서 인도팀 대표, 란주 바트 선수는 개인전 상대를 지목해주십시오."
란초 셰프는 특색 있는 수염을 엄지와 검지로 새끼줄을 꼬듯 만지작거리며 짐짓 고민하는 척 낮은 목소리를 흘리더니, 이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저는 윌리엄 램든 셰프를 지목하겠습니다."
─오오오!
란초 셰프가 말을 끝낸 그 순간, 행사장이 단박에 관중의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그럴 만도 하지. 팀장이 팀장을 고르는 건 이 대회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니 뭐, 처음이라고 해봤자 이제 두 번째 경기긴 하지만.'
아무튼, 한 팀의 장이 다른 팀의 장을 두려워 않고 불러내는 용기 넘치는 모습은 확실히 사람들의 환호를 받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란초 셰프의 용감함에 제법 놀랄 정도였으니까.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미 주제 선택권이 상대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그나마 자신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조차 상대방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한다?
단순히 오기나 승부욕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과하다.
윌리엄 램든 셰프가 누구인가. 자서전 격으로 출간한 레시피북이 동시에 10개국의 베스트 셀러에 오른 전적도 있는 사람이다.
프렌치, 이탈리안, 브리티쉬 베이커리 등등. 알만한 분야에서는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고 보아도 이상하지 않은 셰프.
내 롤모델을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가는 셰프 중 한 사람.
란초 바트 셰프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그런 상대를 지목했는가.
'저만한 위치까지 간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진 않을 텐데…….'
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이득이 무언가 있을 테고, 그건 분명 이 시합에서 이겼을 때 발생할 무언가다.
그 말은 즉,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이 된다. 저 윌리엄 램든을 상대로.
내가 무엇보다 궁금한 건 바로 그 자신감의 원천이다. 믿는 구석이 대체 뭐기에 어떤 부담도 없이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만 알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것도 분명 그런 자신감 중 하나겠지.'
직경 1.5미터의 굴뚝, 탄두르.
'조리도구'라는 명목으로 아무런 태클도 없이 반입이 허가 됐다는 점에선 내가 다 당황스러울 정도긴 하나, 일단 저만한 준비를 거쳤다면 분명 무시할 순 없다.
탄두르로 만든다고 하여 탄두리.
탄두리라는 인도 요리의 거대한 장르의 원초가 바로 저 기이한 형상의 화덕이다.
저 탄두르 하나를 준비한 것만으로, 인도팀은 어느 의미 자신들만의 홈 플레이스를 구축했다고 보아도 좋겠지.
윌리엄 셰프의 유명세가 대단하긴 하지만, 요리란 게 이름값을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점차 승부의 행방이 묘연해져가는 가운데, 란초 셰프의 지명을 거부하지 않고 앞으로 나선 윌리엄 셰프가 드디어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연다.
"주제는 정하셨습니까?"
"예. 우리가 정한 주제는……."
긴장감 어린 기천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그가 말을 잇는다.
"쇠고기. 쇠고기 요리로 승부합시다."
쇠고기 요리. 그 선언에, 다시금 장내가 환호성으로 들끓었다.
***
주제가 정해진 직후 양 팀에게 주어진 준비 시간.
마치 종이 울리기 직전의 압력솥처럼 꾹꾹 눌린 긴장감이 행사장 전체에 감도는 가운데,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있었다.
'쇠고기…… 쇠고기란 말이지.'
윌리엄 셰프가 정한 쇠고기 요리라는 장르.
쇠고기는 유럽의 고급 요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재료 중 하나인 만큼, 윌리엄 셰프가 쇠고기를 선택한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은걸.
란초 선수의 안색이 좋지 않다. 꼭 걷다가 하수구에 핸드폰을 빠트린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나는 대충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도팀 또한 시드권을 가진 팀이니만큼 웹플릭스에서 전세계 공개로 예선전을 방송한 국가 중 하나였고, 거기에서 란초 셰프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나 많았으니까.
란초 셰프는 가족 전체가 힌두교를 믿는 모태신앙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국민의 80%가 힌두교를 믿는 나라에서 그게 뭐가 어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바로 중요한 것이다.
힌두교의 대표적인 교리 중에는 '소는 신성한 동물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힌두교도에게 있어서 소라는 건 굉장히 특별한 동물이라는 뜻이다.
'뭐, 그렇다고 절대 요리를 못한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는 착각 중 하나가 '힌두교도는 절대로 소를 먹지 못한다'는 거다.
신성시하는 것과 숭배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뜻이다. 소는 어디까지나 아주 특별한 동물일 뿐이지, 결코 해를 입혀선 안 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힌두교도도 쇠고기를 먹을 수는 있다.
다만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를 뿐이다.
예를 들어 카스트가 낮은 소는 도축할 수 있고, 이런 소는 먹어도 교리에 문제가 없다.
또 카스트가 높은 소라도, 도축업자가 교리에 따라 엄격한 과정을 준수하여 도축을 진행한 쇠고기 또한 먹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요리하는 사람도 엄격하게 요리해야 한다던가.
내가 힌두교에 대해 아는 거라고 해봐야 얼마 안 되긴 하지만, 요리를 할 때에 지켜야 할 율법이라면 몇 가지 안다.
'아마 이 경우에는…….'
역시 문제는 고기다.
힌두교 율법에 맞게 도축된 고기를 한국에서 구하려면 못해도 일주일은 낭비해야 한다.
그러니 사용할 수 있는 건 어쩔 수 없이 최하층 카스트인 수소뿐인데, 이게 바로 커다란 문제가 된다.
'보통 대회장에 납품되는 쇠고기는 최상급 육우고, 대부분 거세소나 암소 고기를 쓰지.'
왜 그러느냐 하면 암소나 거세소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수소보다 근육 조직이 덜 치밀하여 고기가 부드럽고 육향이 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암소와 거세소는 율법에 따라 다룰 수 없으니, 어찌저찌 수소를 구해서 쓴다고 해도 고기 자체의 품질에서 지고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과연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처음 예상대로 윌리엄 셰프가 가볍게 승점을 챙기고 떠날 것인가.
점점 흥미로워지는 상황 아래, 비로소 양팀이 준비를 끝낸다.
"양자, 위치로!"
척 봐도 거리낄 게 없다는 듯 당당한 표정을 한 윌리엄 셰프.
깊은 생각에 빠진 채 팔짱을 끼고 손가락을 까딱이는 란초 셰프.
"시합, 개시이이이!!"
심판의 구령에 맞추어 두 사람이 움직인다.
우리의 적을 정하는 시합이, 드디어 시작된다.